▲ ⓒ CJ 엔터테인먼트

[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지구를 지켜라', '화이' 두 작품을 통해 본 장준환 감독은 평범한 걸 만들지 않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렇기에 거대하고 무거운 1987년 이야기를 다루는 '1987'을 연출한다고 할 때부터 많은 이들이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화이'와 '1987'에서 함께 호흡 맞췄던 김윤석 또한 "정말 이걸 만들 것이냐? 본인 스타일이 아니지 않느냐?"고 되물었을 정도다.

그렇게 비밀리에 시작되었던 '1987'은 수많은 배우들이 조그만 배역이라도 좋으니 참여하고 싶다는 등 자발적으로 뛰어들겠다며 영화계 내에서도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그 반향은 위대한 결과물로 탄생했다. 앞서 '1987'을 언론시사회로 관람했던 평단이나, 27일 개봉해서 직접 경험한 관객들은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그만큼, 먹먹했고, 벅찼고, 뜨거웠던 영화였기 때문이다. 장준환 감독은 모두를 놀라게 한 셈이다.

'1987'이 개봉하기 일주일 전인 18일 오후 서울 중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장준환 감독과의 인터뷰를 가졌다. 만장일치에 가까운 호평을 받았음에도 그는 여전히 '1987' 보완작업을 위해 온 힘을 쏟아붓다가 감기까지 걸리는 등 열정을 보이고 있었다.  왜 그가 이 작품을 만들게 되었는지, 직접 만나 들어보았다.

'1987'을 잘 봤다. 기획 단계부터 개봉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들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
└ 빨라진 것이다. '화이'를 만들 때까지는 10년 걸렸고, 다음 작품인 '1987'까지 횟수로는 4년 걸렸다. 어떤 작품을 할까 고민이 많았는데 이 시나리오를 보고 박 처장이라는 반동인물을 척추에 두고, 많은 인물이 모이고 부딪치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는 게 굉장히 독특했고 재밌었다. 창작자로서 시도할만한 부분이었고, 형식적으로뿐만 아니라 나중에 관객들이 '내가 주인공이구나' 같이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선택했다.

▲ 영화 '1987' 스틸컷

언론시사회 이후에도 영화 완성도를 위해 보완작업을 했다고 들었다.
└ 마지막 장면인 광장이 중요한데, 여기서 박종철 열사도 다시 한번 보여주면 좋지 않을까 해서 커다란 걸개 디자인을 삽입하다 보니 끝이 없다. 음향과 CG 작업도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것도 있어서 보완하고 있다.

그래도 언론시사회에서 만장일치로 호평을 받지 않았던가?
└ 좋은 반응을 보여주셔서 안심되었다. 혹시나 유족분들 비롯하여 그 당시 피땀 흘렸던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는데, 그분들도 영화를 보신 후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한 시름 놨다.

언론시사회 이야기가 나왔으니 물어보겠다. 그 날 당신이 감정에 북받쳐 올라 눈물 흘렸던 게 주목받기도 했다. 당시 심경을 자세하게 듣고 싶다. (웃음)
└ 사실관계를 말하자면, 그날 배우들도 완성본을 처음 보는 자리였는데, 옆에서 울고 있었다. 편집하면서 영상을 많이 봤지만, 같이 보는 자리는 또 달랐다. 분위기에 전이되었는지 눈물이 나왔다. 기자회견 때도 언급했듯이, 두 열사는 갓 스물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국가권력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게 너무 슬펐다. 그래서 그 생각을 하니 감정이 벅차올랐다.

그래서 대기실에서 감정을 추스르고 있는데, 절친인 박희순이 대기실 와서도 눈물을 흘리더라. 그걸 보니까 이상한 감정이 느껴졌다. 고맙기도 했고, 이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진폭이 매우 크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기자회견 참석에 너무 늦어지면 안 되니까 나가야만 했다. 옆을 돌아보니 박희순은 스타일리스트 덕분에 정리가 끝났지만, 나는 감정 추스를 새 없이 나갔다가 그런 사태가 났다. (웃음)

▲ ⓒ 문화뉴스 MHN 이현지 기자

영화를 보면서 1987년이 그렇게 멋진 해였는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지난해 촛불 집회를 많이 연상케 했는데, 어찌보면 그때와 지금이 상당히 많이 닮은 것 같다.
└ 굉장히 신기했다. 촛불집회가 있기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작품인데, 어느 날 보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세상이 바뀌게 된 가장 큰 동력은 촛불의 뜨거움이었고 국민의 힘을 다시 한번 느꼈다. 한편으로는 30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 오늘날에 어떻게 또다시 비슷하게 일어나며 반복되었던 것인지 착잡함을 느끼기도 했다.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다.

특히나, 당신은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가 있던 입장이었기에 '1987'을 기획하던 시절에 위협을 느끼진 않았는가?
└ 굉장히 비밀리에 진행했기 때문에 거기까진 생각하진 못했다. 혹시나 이 기획이 알려지게 되면, 원치 않은 장애물이 생기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던 건 사실이다. 지금 정권이 바뀌니까 시류에 편승해 쏟아져 나왔다고들 많이 생각하지만, '택시운전사'나 '1987' 같은 영화들은 이전 암울했던 정권 시절에 기획하고 용기를 내어 시작한 영화였고, 그래서 더 뜻깊은 영화라고 본다.

이번 영화는 특이하게도 많은 배우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고 들었다.
└ 영화의 틀이 대충 윤곽이 나온 후에 배우들 캐스팅이 활발하게 이뤄지기 마련인데, 그때 시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던 게 컸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게 아니어도 자발적으로 참여해주지 않았을까 한다.

그 중에서 1987년 그 때와 가장 연관 깊은 두 배우 우현과 문성근이 출연해 실제와 정반대였던 악역 연기를 하며 권력을 대변했던 게 가장 인상 깊었다.
└ 김윤석, 우현 선배님과 함께 식사했던 적이 있다. 실제 학생운동을 주도하셨던 우현 선배님은 당시 이야기를 영웅담처럼 적극적으로 언급하기보단, 오히려 툭툭 던지면서 그때 상황을 이야기하셨다. 그때 기억 남는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함께 학생운동 했던 故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 이야기였다.

▲ 영화 '1987' 스틸컷

재밌는 사실은, 문성근 선배님은 아버님이신 문익환 목사님과 같은 영화에 출연했다(설명 : 극 중에서 안기부장 역을 했던 문성근이 받은 문서에 문익환 목사 이름이 적혀있다). 이것이 참 절묘하고 재밌지 않은가.

두 배우 뿐만 아니라 박종철 열사의 유족 역을 맡았던 김종수와 조우진 또한 잊혀지지 않았고, 그 외 많은 배우들이 열연을 펼쳐서 기억에 남는다. 배우 캐스팅에 주안을 둔 점이 있다면?
└ 등장하는 인물이 매우 많다 보니까 관객들에게 여러 역할이 나왔다는 걸 쉽게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고, 그런 차원에서 멀티 캐스팅을 하게 되었다. 흥행력 있는 유명한 배우보단 이 작품에 부합되는지를 먼저 보고 캐스팅했다. 조우진 씨의 연기를 현장에서 보면서 '역시 신스틸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연기를 펼쳤다. 그 외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다 좋았다.

이번에 특별출연한 여진구와 강동원 또한 주목받고 있다. 여진구는 '화이' 때 같이 한 인연이 있었지만, 강동원이 어떻게 출연하게 되었는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한다.
└ 강동원 씨는 예전에 단편영화를 한 번 같이 한 게 인연이 되어 서로 가끔 안부를 묻던 사이였다. 그래서 대본이 나오자마자 "한 번 볼래?"라고 넌지시 제안했다. 동원 씨가 워낙 대스타라서 대본을 들이밀기 민망했었고, 기획 당시 분위기가 이런 영화에 선뜻 출연할 수 없던 시기라 망설였다.

그랬는데 동원 씨가 "제가 할게요!"라고 답했다. 오히려 작품보다 너무 자기 자신이 두드러지게 나올까 봐 해가 되지 않겠냐고 걱정했던 그의 말이 지금 생각해도 감사했다. 그래서 영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윤석 선배님이 큰 형님으로서 "'도원의 결의'처럼 뭉쳐보자"며 자리를 만들었고. 정우 씨도 흔쾌히 "작품 좋아요. 재밌어요"라고 짤막한 답으로 동참했다. 그런 부분들이 기적 같았다.

▲ 영화 '1987' 스틸컷

극 중 강동원과 김태리가 만나는 장면을 보고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더라. 혹시 그 장면, 늑대의 유혹 패러디인가? (웃음)
└ 의도했던 건 아니다. (웃음) 그 파란 비닐우산이 그리웠고 영화 속에서 보여주려고 하다 보니 비 오는 날로 설정했다. 그런 부분이 재밌었던 것 같다. 동원 씨의 극 중 역 이름이 '잘생긴 청년'이다 보니 그런 잘생긴 남학생으로 등장하는 게 재밌지 않을까 그런 장면을 생각했다. 물론 대본 구조 자체가 그의 정체가 숨겼다 드러나긴 한다.

그리고 '연희'라는 이름이 이한열 열사의 모교 연세대학교가 있는 동네에서 따온 것인가?
└ 김경찬 작가님한테 대본 초고를 받았을 때부터 있었던 이름이었다. 듣고 보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 ⓒ CJ 엔터테인먼트

유해진과 김태리가 연기한 배역들의 실제 모델이 되었던 인물은 없었는가?
└ '한병용'은 사실 실제 교도관이었던 한재동 씨와 전병용 씨를 합친 인물이다. 영화 구조상 등장인물이 너무 많다 보니 두 분을 하나로 합친 것이고, 연희만 순수하게 창조된 인물이었다. 당시 보통사람들, 서민 사람의 마음으로 저항하고 싶지만 저항할 수 없었던,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 필요해서 연희라는 인물이 탄생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박종철 열사로 시작해 이한열 열사로 끝나는 이야기지만, 직접적인 관계가 전혀 없는 인물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고민하다 보니 연희가 필요했다.

[문화 人] '1987' 장준환 감독 "1987년 이야기, 생각보다 만들기 힘들었다" ②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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