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에 이어 '히카루' 역으로 공연

   
 

[문화뉴스] 뮤지컬 '팬레터'에서 '히카루' 역을 맡은 '김히어라' 배우와 만났다.

최근작인 '리틀잭'에서 많은 남성의 아련한 첫사랑인 '줄리'를 연기했던 그녀를 만나면서 많은 궁금증이 앞섰다. 서구적이고 도도한 느낌의 외모와 달리 '오늘 멋 좀 냈다'면서 사진 촬영이 반갑다고 말하고, 아무렇지 않게 진솔한 이야기를 툭툭 던져낸 그녀는 개성이 없다고 느껴진다는 본인의 말과 달리 '김히어라'만의 독특한 개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앙상블 중 한 명이라는 존재감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고 말하는 당당함, 반면 '감사하게도 많은 도움을 받아왔다'는 말을 당연하게 할 수 있는 사람. 많은 이들과 나누는 삶을 살고 싶은 그녀가 보여줄 내면이 기대됐다. 특별한 인연의 연속이 만들어낸 배우 '김히어라'와 나눈 이야기들.

본격적인 주연은 '리틀잭'이 처음이다.

ㄴ 처음은 아니지만 DIMF 작품이나 창작 작품들을 많이 해서 그렇다. 대중적으로 본격적으로 알려진 작품은 '리틀잭'이 처음이라 볼 수도 있다.

'잭더리퍼'가 아니라 '살인마 잭'부터 경력이 있어서 놀랐다. 신인급 배우인 줄 알았는데 경력이 꽤 된다.

ㄴ 앙상블을 오래 하다 보니 이름이 잘 알려지진 않았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진 학전이나 작은 무대에선 배역을 맡고, 대극장에선 앙상블을 했다. '잭더리퍼'의 경우도 계속 커버로 있었다. 연출님들도 뭔가 '얘는 될 것 같은데, 너무 어리다' 하셨다. 제가 21살 때 데뷔했다. 지금에야 흔한 나이지만 그때만 해도 거의 생소한 일이었다. '21살에 데뷔한 애가 있대!' 이럴 정도로. '네가 그 '김히어라'니? 네가 그 어린애니?' 이렇게 대극장에선 이슈였다. 제 바로 위 언니가 27살이었다. 당시엔 24, 5살 정도 언니들이 힘들어하면 '너는 막내 벗어나려면 '김히어라' 만나야 한다'고 할 정도였다(웃음).

   
 

그럼 선배들에게 귀여움도 많이 받았겠다.

ㄴ '잭더리퍼'에서 앙상블이 창녀 역이지 않나. 그런데 제가 워낙 어리니까 다들 딸이라고 하고 조카라고 부르라고 하셨다(웃음). (유)준상 삼촌이나 (엄)기준 오빠도 내 조카, 내 딸하며 절 애지중지하셨다. '너 이런 작품 관심 있니? 열심히 할 수 있어?' 하고 연락도 해주시고. 학전에 들어갔을 때도 학전 출신 선배님들이 많이들 축하해주셨다. 그렇지만 정작 배역을 맡을 때가 되면 '이번에는 커버지만 나중에 다른 걸 하자. 네가 너무 어려서 아직 메인을 하기에는 인지도나 그런 면에서 약하다'라고 해서 앙상블로 쓰임을 받았다. 물론 그때는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렇게 앙상블과 배역을 오가던 중 '앙상블 하던 친구야', '앙상블 하는 친구야' 란 소개를 듣지 않게 된 것이 2년 정도 됐다.

'앙상블 하는 친구'란 소개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뉘앙스다.

ㄴ '앙상블 하는 친구'라는 말을 벗어나고 싶어서 굉장히 많이 노력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데뷔를 일찍 해서 개념은 없고 자신감은 넘쳐서(웃음) 보통 어디 모임에 가서 소개할 때도 다른 분들이 '앙상블을 맡은 누구누구입니다'라고 소개를 하는데 저는 꼭 '배우 김히어라입니다'라고 했었다. 누가 '앙상블 하는 친구야' 하면 '저는 김히어라라는 이름이 있다'고 정정했다(웃음). '앙상블'도 배역이 있고 캐릭터와 이름이 있지 않나. 자존심에 혼자 '나도 소개받을 때 어떤 배역의 누구라고 소개받아야지'란 생각을 많이했다.

앙상블을 싫어한다고 오해받을 수 있겠다.

ㄴ 앙상블이 싫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물이 아닌 '앙상블 중 한 명'으로 존재감이 남는 것이 싫었다. 너무 속상했다. 사람들도 '앙상블이구나' 생각하지 '김히어라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어릴 적엔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서 욕심 많다고 언니 오빠들에게 혼도 많이 났다(웃음).

   
 

그렇다면 본인이 하고 싶던 자기소개 부탁한다(웃음).

ㄴ 28살이고 뮤지컬을 하는 배우 김히어라다. 뮤지컬 '팬레터'에서 '히카루' 역을 맡았다.

이름은 예명인지.

ㄴ 순 우리말로 아버지가 지어주신 본명이다. '하얗고 깨끗하게 살아라' 이런 뜻이다. '희어라' 이렇게. '팬레터'에서도 히카루 역을 받았는데 이름의 뜻을 찾아보니 빛줄기, 환하게 빛난다. 이런 뜻이더라. 대표님도 히카루와 이름부터 비슷해서 놀랐다고 하셨다.

데뷔작이 '살인마 잭'이라 했는데 프로필 보면 '제4회 CJ영페스티벌 수상작 공연 - 뮤직박스'란 작품이 있다.

ㄴ 2009년에 '살인마 잭' 앙상블로 데뷔했었다. '뮤직박스'는 성재준 연출님이 제 학교 교수님이셨다. '뮤직박스' 본 공연이 올라가기 전에 했던 쇼케이스였는데 저를 좋게 봐주셔서 저와 친한 학교 선배인 문성일 배우와 학교 동기들이 멀티를 맡아서 선보였었다. 본 공연 때는 저희가 하지 않고 리딩만 한 셈이다. 이렇게 나와 있을 줄 몰랐다(웃음).

   
 

'팬레터'도 2015년에 리딩에 참여했다.

ㄴ 쇼케이스 말고 맨 처음 했던 리딩을 했었다. 많이 하는 배우들을 기준으로 삼으면 많은 것은 아니지만(웃음), 최근 1, 2년 동안 많이 했다. 보통 소개로 참여하게 된 경우가 많다.

창작 작품의 제작에 참여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지.

ㄴ 맞다. 좋아한다. 그런 제작 과정은 창작이고 초연이고 실험이지 않나. 그런 작품들은 보통 배우 인지도를 많이 보지 않는다. 제가 어릴 때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인지도 부족'이지 않나. 그런데 이런 작품들은 감사하게도 대부분 연출님도 신인 배우를 데려와서 같이 만들어보자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더라. 그래서 이렇게 작은 창작은 인지도보다는 배우 이미지가 연출님 생각과 맞으면 많이 쓰셔서 제게 기회가 됐다.

연극 '천사여, 고향을 보라'에도 출연했다. '뮤지컬 배우 김히어라'보다는 '배우 김히어라'에 방점이 있는지.

ㄴ 반드시 뮤지컬만 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연기'를 하고 싶다. 영화도 그렇고 이쪽저쪽에 관심이 많다(웃음). 연극은 기회가 되면 많이 하고 싶어서 두드리는 편인데 뮤지컬과 비교하면 제겐 길이 많이 없더라. 우연한 기회로 작품에 참여하게 됐는데 너무 좋았다.

데뷔가 무척 빨랐는데 학창시절부터 배우의 꿈을 키워온 것인지.

ㄴ 사실 전 강원도 사람이라 뮤지컬을 많이 접하지 못했다. 그래서 뮤지컬을 생각한 건 대학교를 결정할 때 뮤지컬을 해볼까 생각한거라서 입시 준비도 따로 못했었다. 북원여고를 나왔는데 세 개 반 정도만 따로 예체능계 실기 수업을 하는 반이 있었다. 어머니가 접해보지 못한 걸 해보라고 해서 학원이 있는 미술 대신 연기나 연출을 가르치던 반에 들어갔다. 발레도 그때 처음 배워봤다. 그래서 연기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 연기로 대학을 가야겠다. 이런 생각보다는 공부에 지친 인문계 학교에서 우리 반 친구들만 재밌고 생기있게 학교에 다니는 우쭐함을 느꼈다(웃음). 그때 학교 담임선생님이 동국대 연영과 나오셨던 분이었다. 그분이 엄청 예쁘고 우아했다(웃음). 그래서 그 선생님 보면서 '나도 서울에서 저런 대학 나오면 저런 느낌일까' 했다. 막 '선생님 어디 갔다 오세요' 하면 '어. 나 서울 갔다 와' 하시고(웃음). 그 선생님이 한 번은 저희 다 데리고 충무아트센터로 관광버스 타고 놀러 가서 '그리스'도 함께 봤다. 그 작품이 너무 재밌어서 고2 무렵에 진로를 연기 쪽으로 해야겠다 생각했다.

   
 

굉장히 상세하다(웃음). 그 뒤엔 어떻게 됐는지.

ㄴ 바로 입시를 준비하진 않았다. 서울에 왔다 갔다 해야 해서 일단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 대학교마다 실기 대회 같은 게 있는 시즌이었다. 굉장히 연기를 열심히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인덕대학에서 하는 연극, 뮤지컬 대회에 나가겠다고 했다. 선생님이 어딜 혼자 가느냐고 안된다고 말리고 있는데 대회 요강을 보니 우승 상금이 300만 원이었다. 그래서 저도 하겠다고 하고 친구들 몇 명이 모여 가기로 했다(웃음). 저는 혼자 뮤지컬 분야를 하려고 검색창에 '뮤지컬 여자 독백'을 쳤다. 그런데 그때 제일 먼저 나온 동영상이 조정은 선배님이 하신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이었다. '로미오'가 죽고 나서 '줄리엣'이 노래 부르는 영상. 너무 감동적이라 눈물 흘리면서 봤다. 생애 두 번째 본 뮤지컬(웃음). 그래서 연습해서 학교에서 선생님 앞에서 보여드렸는데 친구들이 제가 하는 걸 보고 울었다.

전형적인 느낌으로 흘러간다(웃음).

ㄴ 선생님도 너무 잘한다고 하시면서 그냥 가지 말고 풀치마 같은 거라도 하나 입고 가라고 해서 친구한테 빌려 입고 대회에 나갔다.

설마….

ㄴ 진짜 말도 안 되지만 제가 1등을 했다(웃음). 강원도 여학생이 혼자 대상을 받은 적이 역대 처음이었다고 했다. 칭찬을 엄청 들어서 제가 정말 잘하는 줄 알았다. 그 상금 300만 원으로 서울에 올라와서 처음으로 그룹으로 연기 레슨을 받았다. 그때 선생님이 제가 노래 부르고 연기하는 것에 관심 있어 하니까 뮤지컬 하는 선생님을 소개해주셨다. 그 선생님이 입시 선생님은 아니셨지만, 러시아에서 공부하셨던 분이라 연기의 기초를 많이 배웠다. 그런데 제가 자꾸 수시에 떨어지니까 그분이 자기가 너무 오래 붙잡아 둔 것 같다면서 제가 뮤지컬에 관심 있으니 뮤지컬 쪽 선생님을 소개해주셨다.

어쩐지 무협 소설 스토리 같다. 이번에는 어떤 분이셨는지.

ㄴ 바로 구소영 선생님이셨다. 그런데 정작 그땐 입시 거의 안 하시고 지금처럼 배우들 레슨 위주로 하시던 때라 그냥 청강하러 갔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배우나 선생님들이 많으셨는데 그땐 뮤지컬을 하나도 모르니까 그냥 오빠들이었다. 연예인들도 왔다 갔다 많이 했는데 누군질 몰랐다. 그래서 선생님이 절 예뻐하셨다. 제가 아는 게 없으니 제 것만 하고 다른 데 관심이 없었다. 창피해하는 것도 없고 '울어!'하면 울고, '웃어!'하면 웃고(웃음). 마음이 건강하게 자란 아이 같다고 해서 좋게 봐주셨다. 게다가 원주에서 왔다 갔다 하니까 안쓰럽다고 집에 같이 살게 해주셨다. 지금 같이 살자고 하시면 선생님의 존재를 알고 있으니 무서워서 못 살 거다. 그땐 아무것도 모르니까 가능했다. 선생님이 나중에 한마디 하셨다. 그땐 '또라이'인줄 알았다고(웃음).

   
 

어째서인가.

ㄴ 보통 선생님 집에 있으면 잘 보이려고 하고 눈치 보고 연습하고 그러는데 전 방에 틀어박혀 만화책 보고(웃음). 구소영 선생님이 책에 관심이 많으시다. 그래서 책장에 여행, 연기, 만화책 등 각종 책이 엄청나게 많았다. 제가 그 책방에서 살았는데 선생님이 보시면 정말 어이 없으셨을 거다. '얜 우리 집에 왜 사는 거야?' 하고. '밥 먹을래?' 하고 물어보시는데 '전 괜찮습니다.' 하고(웃음).

그때 인상 깊게 본 만화책이 있는지.

ㄴ 제가 그때 '유리가면'에 꽂혔다. 처음에 선생님이 연습 좀 하시라는 식으로 여기 연기 이야기도 많이 있으니까 한 번 보라고 하셨다. 근데 그 두꺼운 걸 맨날 봤다. 선생님은 본인이 추천하신 거라 뭐라 하시지도 못하고 거실에서 '다 봤니?' 하시는데 대답도 없이 계속 보고. 너무 재밌어서 지금도 집에 사뒀다.

'유리가면'으로 시작된 연기 인생인 셈이다.

ㄴ 그때 여자주인공처럼 되겠다고 생각하고 그랬다. 그런 장면이 나온다. 연기 레슨을 하는 데 집중하는 장면인데 건물에 불이 나서 사람들이 막 도망치는데 주인공이랑 라이벌 둘만 연기에 집중해서 가만히 있는 거다. 그게 너무 멋있었다(웃음). 뭘 할 때 나도 꼭 저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입시 때 선생님 추천으로 명성황후의 무당 역을 준비했다. '나는 유리가면의 주인공이다' 하고 선생님이 기다리시는 것도 잊고 연습실에서 밤 열두시에 막 신 내림 받으려고 굿 춤 추고 그랬다. 확 뭔가에 미쳐서 그 배역으로 착각하게끔 밤에 불 끄고 연습하고, 집에 돌아가서 선생님께 걱정시켰다고 혼나고(웃음).

그렇게 해서 대학에 합격했는지.

ㄴ 구소영 선생님이 추천해주셔서 청강대 뮤지컬 스쿨에 진학했다. 이유리 교수님이란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셋업을 맡아 당시 '핫'하던 연출가들을 모으셨다. 그곳에서 왕용범 연출님을 만나서 '살인마 잭' 오디션을 보기도 했다. 최성신 연출님 등이 계셨고 구소영 선생님도 초대받아서 둘러봤는데 뮤지컬만 가르칠 수 있는 곳이겠다면서 제게 추천해주셨다. 구소영 선생님이 제게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다'라고 하시길래 면접 보러 가서 "기적이 일어날 것 같다고 해서 왔습니다!" 했다. 그랬더니 이유리 교수님 반응이 엄청 좋았다.

그건 또 어째서인가.

ㄴ 이유리 교수님이 평소에 자주하시는 말이 '기적'이었다. 어디 강의하러 가시면 '여러분은 기적을 믿으시나요' 하시던 분인데 제가 가서 대뜸 '기적'을 말하니까 '얜 됐다' 싶었다고 하셨다. 또 단국대 수시 때 제 무당 연기를 보셨다고 하시는 거다. 너무 좋게 보셔서 점수를 높이 주셨는데 같이 심사 보시던 윤호진 연출님이 자기 작품이라서 점수를 낮게 주셨다고 하더라. '너 굿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네, 맞습니다' 하니까 이유리 교수님이 '우린 인연이다' 하시고 이후로도 많이 도와주셨다. 지금도 제가 어머니라고 부르며 따라다니는 분이다. 남들은 잘 모르지만 저는 선생님들께 항상 감사해 하며 살고 있다.

   
 

그렇게 학교를 졸업하고 '살인마 잭'의 앙상블 데뷔까지 이어졌다. 소개를 받아 오디션을 봤으니 뭔가 혜택이 있었나.

ㄴ 그런 거 전혀 없이 오디션은 똑같이 참가했다. 말 그대로 소개만 받는다. '팬레터'의 경우 연출님이 2년 전 다른 작품 비공개 오디션 때 합격하진 않았지만, 오디션과 별도로 제게 조언을 주셨던 인연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저를 '루시'와 '엠마'로 따지자면 '엠마'로 가야 한다는 분들도 있고, 제 본래 성격을 아시는 분들은 '루시'를 하면 진짜 매력적일 거라고도 하셨다. 저 자신도 제 캐릭터를 확립하지 못했었다. '히어라'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뭔지를 모르고. 그런데 연출님이 그때 제 보이스나 캐릭터를 만드는 것에 대한 조언을 해주시면서 지금은 인연이 아닐 수도 있지만 언젠간 우린 만날 것이라고 하셨다. 너무 멋있어서 제가 반했었다(웃음). 그랬는데 '천사여, 고향을 보라' 공연을 하고 공연장을 나오던 중 그냥 길에서 우연히 연출님을 만났다. 제가 인사를 드렸는데 잠시 뒤 전화가 걸려오더라. '팬레터' 리딩 때부터 '히카루' 역을 맡기고 싶으셨는데 제가 번호가 바뀌어서 연락을 못 하던 중 절 만나신 거다. '히카루'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기 전날이었다. 그래서 '천사여, 고향을 보라' 쫑파티 때 40여 명의 응원을 받으며 오디션을 보러 갔다(웃음). 인연이란 게 참 신기하다. 다시 오디션 이야기를 하자면 지금은 제가 찾아보기보단 주로 연락을 받아 가긴 하지만, 아직도 오디션 많이 보러 다니고 많이 떨어진다.

기억에 남는 '떨어진 오디션'이 있는지.

ㄴ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카포네 트릴로지' 오디션을 보러 갔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소개를 받아 갔는데 세 가지 작품을 한다는 이해가 전혀 없이 갔었다. 이름도 '빈디치' 이런 이름이고(웃음). 일단 그중 한 장의 대본을 받아서 전 그것만 하는 줄 알았다. 전 오디션을 보러 갈 때 의상이나 메이크업을 다 맞추고 가는 편이라 쇼걸에 맞춰 스타킹에 진한 화장도 하고 했는데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김태형 연출님과 함께하고 싶어서 대본에 쇼걸, 위스키 이런 이야기가 나와서 바에 가서 혼자 위스키를 마셨다. '아 너무 떨린다. 하지만 난 쇼걸이야' 하면서(웃음). 옆에 대사 맞춰주던 윤나무 배우가 있었는데 그날 절 처음 봤는데 술 마시다 온줄 오해하셨을까 봐 너무 미안해서 계속 생각이 난다. 전체 대본이 아니라 쪽대본만 받은 채라 따로 분석할 건 없고 메소드 연기는 하고 싶고. 오디션을 보는데 쇼걸 역이 끝나니까 연출님이 '다음 거' 하셨는데 완전히 청순한 캐릭터였다. 제가 당황하니까 작가님이 오셔서 대본을 다시 설명해주셨다. 그때부터 너무 당황했다. 너무 쇼걸로만 오디션 보러 온 복장이었는데(웃음). 다 기억에 남아 하셨다더라. 잘하진 못하지만, 열심히 한다고. 제가 (임)강희 언니를 무척 좋아하고 친하게 지낸다. 지금 '카포네 트릴로지' 하는 배우인데 제가 대본을 너무 열심히 보고 있으니까 인사를 못 하고 그냥 들어갔는데 제가 그렇게 하는걸 다 봤다더라.

   
 

아까도 본인 스스로 언급했지만, 외모와 상반된 성격이다. 눈동자 색깔도 갈색이다.

ㄴ 외모랑 다르단 이야기 많이 듣는다. 머리도 약간 갈색에, 서구적으로 생겼고 해서 혼혈인지 많이들 물어봤다.

배우로서 장점이자 단점이겠다.

ㄴ 요즘 들어 김고은 배우나 박소담 배우처럼 깨끗한 이미지가 인기지 않나. 작년엔 제가 영화 쪽도 해보고 싶어서 많이 알아보러 다녔는데 예전에는 제게 여리고 아프고 이런 캐릭터가 많이 들어왔었다. 그런데 영화 쪽 오디션을 보러 다니니까 늦은 나이에 영화배우가 되고 싶다면 외모도 센 편이니까 아예 강한 캐릭터로 가야 한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감독님들께 성격을 바꾸거나 하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제 외모가 독특해서 조연 쪽으로 좋은 캐릭터를 많이 제안받았는데, 마지막에 감독님과 미팅해보면 완전 막 '안녕하세요~!' 하면서 강원도 촌사람이니까 쓰기가 어렵단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리틀잭'의 '줄리'도 굉장히 오랜만에 들어온 청순가련형 캐릭터였다. 대부분 세고 혼혈, 끼 있는 캐릭터가 많이 들어오는데 요새는 제 장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예전에는 워낙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선배 배우들이 있어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청순한 여주인공보다 이런 역이 더 매력적인 것 같기도 하고, 둘 다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인 것 같다. 예전에는 '김히어라' 하면 떠오르는 캐릭터가 없다는 것이 슬펐다. 노래도 연기도 애매한 것 같고, 대부분 오디션도 최종에서 떨어졌다. 그래서 갈 길을 잃었는데 지금은 이것저것 가능하다 생각한다. '히카루' 역도 막 강하게, 욕망 있게 할 때도 있지만 부드럽게 풀 때도 있다. 여러 가지 색깔이 나온다는 게 이제는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말 나온 김에 이제 '팬레터' 이야기로 넘어가야겠다. 연습하면서 느낀 '히카루'는 어떤 캐릭터인가.

ㄴ '히카루'가 '세훈' 안에 있는 아이기 때문에 굉장히 순수하고 정말 아무것도 없이 글을 잘 쓰고 싶은, 세상에 가장 좋은 문학을 남기고 싶은 사람. 이것인 것 같다. 어떤 욕심이 있다기보단 모든 것이 문학을 만들어가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에 제가 잡은 것이 씬마다 어떻게 한다기보단 그냥 계속 글을 쓰고 싶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하정우 선배님이 살인마 역의 비결을 묻는 말에 언제나 밥 먹듯이 살인한다 생각했다는 대답이랑 비슷한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든 말든 나는 그저 밥 먹듯이 좋은 문학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하는 순수한 아이인 것 같다. 순수하므로 생기는 그런 문제들도 히카루의 성격인데 어쨌든 글을 쓸 때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한다.

뮤지컬 '팬레터'에 대해 기대를 할만한 이야기를 한마디 한다면.

ㄴ 전 작품을 보면서 마음이 좀 힐링 되는 느낌이다. 대사들도 문학적으로 너무 좋고,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너무 바쁘지 않나. 그래서 오히려 뮤지컬도 많이 보러 오신다고 생각하는데 '팬레터'의 배경인 경성시대에도 똑같았던 것 같다. 그때는 그때대로 암울한 식민지 시대인데도 순수문학을 외치는 사람이 있지 않나. 저는 여기서 엄청나게 공감했다. 나만 이기적인 게 아니구나. 돈을 포기하고 부모님의 바람을 등지며 배우를 하겠다 생각했다. 더 암울하고 힘든 시대일수록 개인의 정체성이나 순수함을 찾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다. 전작인 '리틀잭'도 2차대전 이후고, '천사여, 고향을 보라'도 1차대전 때가 배경이다. 일제 치하의 시대인 '팬레터'에서도 다들 하는 말은 똑같다. 그래도 사랑은 있고, 내가 하고 싶은 말과 꿈이 있다는 것이다. 요즘도 사회적인 문제들이 많이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언제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든 있는 일이기에 그 안에 있는 나 자신에게 가장 포커스를 맞추고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에 집중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집중한다.

ㄴ 김해진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를 보면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싶다. 그렇기에 김유정 소설이나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이런 '팬레터'에 관계된 옛날 문학들을 찾아보면서 너무 대단하다 생각했다. 오히려 우리가 너무 타협하고 내 것을 숨기고 남의 눈치를 보며 살지 않았나 싶어졌다. 저도 요즘엔 나에게 확신을 하고 나를 위해서 날 사랑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 뮤지컬 '리틀잭'에서 '줄리' 역을 맡은 김히어라 배우.

그렇다면 배우가 아닌 '김히어라'의 꿈은 무엇인지.

ㄴ 저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베풀고 이런 공유하는 삶을 살고 싶다. 예전에는 늘 레드카펫을 밟는 멋있는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겠다 생각했는데 그것도 결국 제 인생의 일부고, 그림을 그려보자면 큰 나무 밑에서 어렵고 힘든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봉사하는 삶, 제가 가진 감사한 생각과 마음을 베풀며 자선공연도 하고. 저는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성공하고 싶다. 내가 베풀고 사람들에게 해주기 위해선 내가 뭘 가지고 있어야 하더라. 연애할 때나 혹은 누군가가 '넌 신혼여행 어디 가고 싶어?'하고 물어보면 '난 봉사활동 가고 싶어'라고 대답했다. 저도 많이 도움을 받고 감사하게 살았기 때문에.

배우로서의 과정 자체가 다 누군가로부터의 도움의 연속이었다.

ㄴ 정말 그렇다. 제가 돈 없고 그럴 때도 힘들게 돈 번 선배들이 맛있는 것도 사주시고. 그래서 저도 베풀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죽으면 다 썩을 돈, 썩을 육체, 다 불태우고 가리라 하고(웃음).

인터뷰 하다 보면 그런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ㄴ 배우들이 다른 직업에 비해 감수성이나 공감대가 넓어서 그런 것 같다. 예를 들어 어떤 어려운 사람을 만난다면 어렵겠구나가 아니라 '저 사람이 어째서 저렇게 됐을까?' 부터 생각한다(웃음). 밥 먹으러 가다 고양이 한 마리를 봐도 이야기하면서 고양이에 어느새 감정이입된다.

'리틀잭'과 '천사여, 고향을 보라'를 봐준 팬들에게 공연한 소감을 남긴다면.

ㄴ 너무 감사했다. 처음 '리틀잭' 할 때는 공포가 좀 있었다. 사람들이 날 반기지 않으면 어쩌지? 아직도 나를 앙상블로만 기억하면 어쩌지? 그런 초조함이 있었다. 하지만 너무 잘 봐주시고 오히려 앙상블 때부터 봐주신 팬들도 있더라. '그때부터 너무 좋아해서 잘될 줄 알았다'고. '살리에르' 때도 카트리나 커버라서 본 공연 때 올랐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해주시니 너무 감사하고 자신감을 얻었다. '리틀잭'이나 '천사여, 고향을 보라'도 자기 삶을 돌아보고 힐링하는 작품이라서 오히려 많이들 얻어가시면서 저희에게도 응원을 주신 것 같다. 정말 힘이 많이 됐고 감사했다. 한 공연 한 공연이 소중하고 지나가는 것이 아쉬웠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도록 더 열심히 해야겠다. 더는 물러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뮤지컬 '팬레터'를 기대하는 분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ㄴ 이미 '팬레터'를 쇼케이스 때부터 봐주신 분들의 반응이 좋더라. 그런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더 좋은 작품 만들 수 있도록 모든 사람이 함께 고민 중이다. 저희가 다 같이 엠티를 다녀왔는데 엠티에서도 (이)규형 오빠나 모든 분이 계속 작품 이야기에 몰두했다. 기대해주시면 그것에 맞게 잘 부응하고, 가사 하나, 대사 한마디에도 힘이 있는 작품이기에 많이 봐주시면 좋겠다.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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