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교향악단 정명훈지휘 베토벤 교향곡 제9번

글: 여 홍일(음악칼럼니스트)

교향악단도 선장을 잘 만나야 연주에 비중이 실리고, 연주가 산다. 지난 12월24일 금요일 저녁 크리스마스이브에 열린 올해 2021 KBS교향악단 정명훈 지휘 연말의 베토벤 교향곡 제9번 연주는 이런 생각을 불현듯 내게 느끼게 해주었다.

이런 생각은 올해 서울시향의 연말 베토벤 교향곡 제9번의 대타 지휘를 이끈 윌슨 응의 무대가 애초 지휘를 이끌기로 예정돼 있었던 음악감독 오스모 벤스케의 불발을 아쉽게 하며 비중이 떨어지는 느낌과 함께 애초 기대했던 기대감을 희석시키는 연주로 마감됐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비운의 작곡가가 한계를 딛고 일어서며 던진 메시지를 재현하고 있는 정명훈과 KBS교향악단.
비운의 작곡가가 한계를 딛고 일어서며 던진 메시지를 재현하고 있는 정명훈과 KBS교향악단.

공교롭게도 KBS교향악단과 서울시향의 올해 연말 베토벤 교향곡 제9번의 지휘는 KBS교향악단의 경우는 2022년부터 상임지휘자를 맡기로 예정돼 있는 핀란드 출신 피에타리 잉키넨과 역시 핀란드 출신 오스모 벤스케가 서울시향의 합창교향곡을 각각 지휘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올해 연말도 팬데믹 여파로 자가격리가 발목을 잡아 KBS교향악단의 경우는 국내에 마침 체류 중이던 정명훈이 지휘를 맡았고 서울시향은 부지휘자 윌슨 응으로 대체돼 지난 12월 17일 연주회를 가졌다.

KBS교향악단 단원들 짜임새 있고 촘촘한 연주로 연주회 이끌어

정명훈은 6~7년 전 서울시향의 음악감독 자리를 떠났어도 그의 지휘 포디움에서의 비중은 KBS교향악단의 연말 합창교향곡에서도 고스란히 내게 전해져왔다.

1악장 Allegro ma non troppo, un poco maestoso에서 흡사 과거 KBS교향악단의 음악감독으로서 이끌던 정명훈의 옛 영화(榮華)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 흡사 오버랩됐다. KBS교향악단 단원들은 짜임새 있고 촘촘한 연주로 정명훈의 지휘에 화답해 선장을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연주회의 성공과 비중이 달라진다는 것을 실감케 했다.

2악장 Molto vivace연주는 예술의 전당 로비에 그 흔한 연주회의 현수막 하나 걸리지 않았지만, 정명훈이기에 가능한 감동이 묻어나왔다. 2악장 연주가 끝나자 벌써 반이 왔나 싶을 정도로 연주회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날 4악장 Presto에서 내게 특히 인상 깊게 이목을 끌었던 것은 오케스트라의 노래가 끝나면서 시작되는 베이스, 이날은 바리톤 김기훈의 최근 합창교향곡들 연주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라 할 만한 깊고 묵직한 독창자의 성악이었다.

 

“자유의 저 함성, 정명훈의 합창” KBS교향악단 송년연주회 (사진 KBS교향악단)
“자유의 저 함성, 정명훈의 합창” KBS교향악단 송년연주회 (사진 KBS교향악단)

“오 벗들이여, 이 소리가 아니오, 더 환희에 찬 곡조를 노래합시다” 부르는 김기훈의 바리톤은 서너달전 추석 직전 BBC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 아리아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 우승 기념으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김기훈이 가졌던 독창회의 계속해서 관객의 브라보를 부르던 압권의 무대를 내게 연상시켰다. 

베토벤의 교향곡이 집대성된 제9번의 지휘, 오랜 구력(球歷)과 지휘경력 농축돼야!

정명훈의 지휘 포디움에서의 비중이나 그의 지휘 기량이 새삼 녹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무대는 지난해에도 공교롭게 올해와 같은 2020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있었던 KBS교향악단 특별연주회 IX 시리즈로 정명훈 지휘의 에스더유 협연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과 교향곡 제6번 연주로 지난해 KBS교향악단 특별연주회의 화룡점정(畵龍點睛)으로 꼽아주고 싶었다.

정명훈이 자신이 한때 상임지휘자로 있었던 KBS교향악단을 지휘하는 모습은 예전 친정댁에 온 것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KBS교향악단 단원들 연주가들에게 맡기는 넉넉함과 특히 베토벤 교향곡 제6번 ‘전원’에서의 편안함이 강조되던 연주는 2021년 단원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올해의 베토벤 교향곡 제9번 연주를 마치는 정명훈의 지휘 리더십에서도 똑같이 느낄 수 있었다.

 

베토벤의 교향곡이 집대성된 제9번의 지휘, 오랜 구력(球歷)과 지휘경력 농축돼야 한다.
베토벤의 교향곡이 집대성된 제9번의 지휘, 오랜 구력(球歷)과 지휘경력 농축돼야 한다.

필자는 올해 베토벤 합창교향곡을 지난 12월 6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있었던 심포니 송의 마스터즈 시리즈 VII 베토벤의 합창과 서울시향의 12월 17일 연말 베토벤 합창교향곡, 그리고 KBS교향악단의 베토벤 합창교향곡 제9번까지 세 번을 현장에서 들을 수 있었는데,

한때 KBS교향악단을 이끌었던 함신익이나 정명훈 등의 지휘 포디움을 지켜보며 음악을 통해 운명을 극복하고 보편적 인류애를 절창하는 베토벤의 교향곡이 집대성된 제9번의 지휘는 오랜 구력(球歷)과 지휘경력이 농축돼야 감동을 관객에게 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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