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상우 / 사진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7월 9일 토요일. 젊은 패기가 모여 이루어진 무용단, 3김1조의 첫 단독공연 <방랑자들>이 대구 퍼팩토리소극장에서 열렸다.

3김1조는 공연 준비의 피로도나 걱정, 부담감을 춤에 대한 갈망과 기대감으로 이겨내며 무대에 올랐고, 젊은 세대의 애환뿐만 아니라 삶과 죽음, 전쟁 등의 다양한 주제를 심도 있게 짚어내며 춤 속에 담아냈다.

 

출연자 단체사진 ⓒ이재봉
출연자 단체사진 ⓒ이재봉

 

미생(未生) – 안무 이재윤

무대의 시작은 춤의 대화. 조명을 받으며 무대 위에 선 두 무용수가 한 명씩 번갈아 가며 춤을 추었다. 한 사람의 춤이 끝나면 그에 대답하듯 다른 한 사람의 춤이 이어지는 조용한 대화의 반복.

처음에는 두 사람의 춤에서 절도가 보인다고 생각했으나, 뒤로 갈수록 느껴지는 것은 쓸쓸함이었다. 방황하고, 괴로워하는 듯한 몸짓에서 느껴지는 공허함. 춤을 주고받는 시간이 끝난 뒤에는 서로의 순서를 기다리지 않고, 동시에 각자의 공허함을 내비쳤다.

잠깐의 암전이 끝난 뒤의 무대에는 네 명의 무용수가 올라와 있었고, 천천히 합을 맞춰 함께 춤을 추었다. 한 사람만 제외하고.

 

작품1-2) '미생' 안무 이재윤 ⓒ이재봉
작품1-2) '미생' 안무 이재윤 ⓒ이재봉

 

모두가 어우러지듯 춤을 추던 중에 한 무용수가 바닥에 쓰러졌다. 그것을 기점으로 네 사람의 춤이 아닌, 세 사람과 한 사람의 춤이 시작되었다. 한 사람은 필사적으로 다른 셋을 따라가려 하지만, 소외되거나, 계속해서 어긋났다.

연속된 어긋남은 사람을 의기소침하게 만들고, 끝에서는 타인에게 휘둘리게 만든다. 춤을 추고는 있지만 무기력함이 무대를 건너 전해졌다. 

결국, 무대에 덩그러니 혼자 남은 무용수. 하지만 그녀의 춤은 멈추지 않았다. 휘둘리고, 치이고, 바닥에 굴러도 그녀는 살아있기에 다시 일어나고, 다시 움직였다. 그것은 아직도 살아가야 할 많은 날을 위한 선택이자 노력이었다.

 

작품2-2) '그림자 없는 발자국' 안무 김채은 ⓒ이재봉
작품2-2) '그림자 없는 발자국' 안무 김채은 ⓒ이재봉

 

그림자 없는 발자국 – 안무 김채은

흰 천으로 눈을 가린 채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무용수들. 각자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일괄된 동작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본격적인 춤이 시작되면 저 천을 벗을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그 서툰 짐작을 꾸짖는 듯, 무용수들은 여전히 눈을 가린 채 역동적인 군무를 보여주었다.

파란빛을 쓰는 어두운 조명과 안개의 조합이 무대에 몽환적인 신비감을 더했다. 그런 무대에서 눈을 가린 무용수들의 군무는 신비로운 세계로 관객을 초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격렬함을 더해가던 무대는 차츰 사그라들었고, 어느새 모여든 무용수. 바닥에 누운 채 밀집된 그들은 손과 발만을 들어 올려 허공에 대고 허우적거렸다. 목적 없는 손짓 같기도 했고, 무언가를 갈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어진 춤도 손짓, 발짓과 다르지 않았다. 역동적이던 앞의 춤과 대비되는 느슨한 템포의 춤. 그리고 바닥에 앉아 인사하는 듯한 동작. 스스로 움직이기보다는 흐름을 따라가는 느낌도 들었다.

앞을 보는 게 두려워서인지. 아니면 앞을 볼 필요가 없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잠깐 천을 벗었던 순간을 제외하고는 천으로 눈을 가린 무대가 계속되었다. 그렇게 스스로 어둠을 선택한 그들은 천천히, 조금씩 식어갔고, 다가올 무언가를 기다리며 무대를 마쳤다.

 

작품3-1) '붉은 낙원' 안무 김민서, 김영은, 김채은, 조부송 ⓒ이재봉
작품3-1) '붉은 낙원' 안무 김민서, 김영은, 김채은, 조부송 ⓒ이재봉

 

붉은 낙원(落園) - 안무 김민서, 김영은, 김채은, 조부송

살면서 한 번쯤은 지나가듯 들어봤을 법한 주기도문으로 시작된 무대. 누군가를 업고 주기도문을 읊으며 무대에 오른 무용수는 업혀있던 상대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그 곁을 지켰다. 그리고는 미동도 없이 멈춰있는 두 사람.

이어서 등장한 또 한 사람의 무용수. 그녀는 멈춰있는 이 무대 위에서 유일하게 움직이고 있는 이였다.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는 두 사람을 대신해 그들의 고통, 그들의 애환, 그리고 그들의 안식을 춤으로 독백하고 있었다.

그녀의 독백이 끝나면서 바뀐 무대에서는 둘씩 짝을 지은 무용수들의 춤이 이어졌다. 긴장감이 감도는 음악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은 춤이 아닌 싸움처럼 보였다. 서로의 몸을 부딪치고, 쓰러지고, 끌고 가는 모습들이 무대 곳곳에서 펼쳐졌다.

한참 이어진 격렬한 전투의 끝에서 기다린 것은 황폐해진 모습. 누구 하나 승자라고 부를 수 있는 이는 없었고, 모두가 패자의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그들은 춤으로 흐느꼈고, 춤으로 울고 있었다. 중간에 들려온 인터뷰 음성과 장례를 치르는 듯한 퍼포먼스는 비극의 실체를 직접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무용수들이 모두 내려간 뒤 혼자 남은 한 사람. 그녀는 혼자서 텅 빈 무대를 채우며 춤을 추었지만, 황량함과 쓸쓸함의 잔여물은 지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모으던 그녀에게 주어진 것은 꽃. 무용수들이 한 명씩 줄을 지어 그녀에게 각기 다른 꽃을 건네주고는 그 곁에서 춤을 추었다. 건넨 것은 꽃이지만, 전해진 것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 마음은 그녀의 손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모두 퇴장한 후에 한 명씩 무대에 입장한 무용수들은 저마다 춤을 추었고, 춤이 끝나면 그녀에게 주었던 꽃을 한 송이씩 관객에게 나눠주면서 무대가 끝을 맺었다. 그들이 정말로 관객들에게 주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사랑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작품3-6) '붉은낙원' 안무 김민서, 김영은, 김채은, 조부송 ⓒ이재봉
작품3-6) '붉은낙원' 안무 김민서, 김영은, 김채은, 조부송 ⓒ이재봉

 

마치며

공연을 보는 내내 공연명인 <방랑자들>이 무슨 뜻일까, 생각해봤다. 방랑자. 정처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사람을 이르는 말.

이날 공연에서는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부딪히게 되는 풍파에 휩쓸리면서도 삶을 이어가는 이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고, 생의 끝으로 흘러가는 과정에서 겪는 허탈함이나 갈등과 전쟁 끝에 온 비극과 그를 이겨내기 위한 마음의 나눔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인생이란 여로를 방랑하면서 크든 작든 한 번쯤은 마주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멈추지 않고 자신의 다리, 혹은 어떤 흐름이나 누군가의 도움으로 인생을 방랑할 것이다.

<방랑자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렇듯 다양한 삶의 형태로 구축된 각자의 방랑을 응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아니었을까.


※ 외부 기고 및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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