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문화창작소 무의환향 시리즈 2 – 예고예인
지난 8월 28일 오후 5시, 퍼팩토리소극장서 개최

지난 8월 28일 대구문화창작소가 기획하는 무의환향(舞衣還鄕) 시리즈2 ‘예고예인’ 공연이 대구 퍼팩토리소극장에서 열렸다. 이번 공연은 대구예술의 싹을 틔우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경북예술고등학교 출신 여섯 명의 춤꾼(현재 서울 소재 대학교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전통춤을 고향 무대에서 선보이는 자리였다.

사진=예고예인-백은애 '춘앵전'/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사진=예고예인-백은애 '춘앵전'/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1. 춘앵전 / 출연 백은애

공연의 설렘을 담당하는 첫무대는 화문석 위에 자리 잡은 춘앵전으로 시작되었다.

노란색의 앵삼, 오색의 한삼, 화관 등 복식의 화려함과 더불어 무용수의 곱디고운 미소와 여유로운 자태는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여섯 자의 제한된 화문석 안에서 조심스레 보여주는 발디딤과 한삼의 날림에도, 흐트러짐 없는 정갈한 몸짓.

본래 춘앵전의 ‘회란(廻鸞)’이라는 춤사위(두 팔을 어깨높이로 나란히 벌리고 좌우로 크게 한 바퀴씩 도는 동작)는 새가 두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움직임을 묘사하고 있으나 필자는 그 안에서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춤사위를 보았으며 그것은 물 위에 떠 있어도 중심을 잃지 않는 우아한 연꽃을 닮았다.

사진=예고예인-변서연 '부채산조'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사진=예고예인-변서연 '부채산조'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2. 부채산조 / 출연 변서연

담장 너머로 얼굴을 내비친 도화(복사꽃)를 본 적이 있는가?

산조 가락에 맞춰 여인의 아름다운 마음과 자태를 표현하는 산조춤. 산조춤을 감상하는 동안 드는 생각은 “가야금 소리는 봄을 알리는 소리요, 얼굴을 가린 부채는 담장이라, 그 안에 숨어있는 도화를 닮은 그녀의 얼굴이 몹시 궁금하구나.”

부채 사이로 보일 듯 말 듯한 눈과 미소는 영락없이 담장 너머로 세상 구경을 나온 도화와 같았다. 분홍의 수줍음과 화사함을 지닌 도화. 부드러운 곡선을 표현하는 몸짓, 섬세한 손끝의 움직임, 순간의 표정과 시선 변화가 조화를 이룬 무대였다. 마지막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을 닮은 무용수의 어여쁜 손 떨림이 여운으로 남았다.

사진=예고예인-권재리 '이매방류 살풀이춤'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사진=예고예인-권재리 '이매방류 살풀이춤'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3. 이매방류 살풀이춤 / 출연 권재리

조명이 켜지고 흰색 치마, 저고리에 명주 수건 그리고 창백하리만큼 투명한 무용수의 얼굴과 몸이 보였다. 분명한 존재감과 성격을 드러내지 않는 흰색과 닮아있는 무용수는 춤의 도입부터 선입견에 물들어있는 나의 예상을 깨트렸다. 그것은 여성스러움과 연약함 속에 단단함이 공존하는 매화의 모습을 한 살풀이춤이었다.

매화는 서리와 눈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 땅 위에서도 고운 꽃을 피워낸다. 무용수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지만 한(恨)의 감정을 수용해야 하는 슬픔이 아닌 맥과 힘이 있는 호흡으로, 무엇보다도 슬픔이라는 감정에 매몰되지 않겠다는 눈빛으로 담대하게 풀어내려는 의지를 표현하는 듯했다. 

20대라는 나이와 어여쁜 외모와 달리 나름의 주관과 생각이 묻어나는 신선한 살풀이춤이었다. 강산이 두 번 바뀌었을 그녀의 짧은 인생에서도 삶의 마디마디 한(恨)이 있었기에.

사진=예고예인-강민선 '부채춤'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사진=예고예인-강민선 '부채춤'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4. 부채춤 / 출연 강민선

홍염(붉을 홍, 고울 염)을 닮은 꽃 중의 꽃, 부채춤.

“붉은 목단꽃이 피었습니다.” 

무용수의 의상에서 느껴지듯이 노랑 저고리에 붉은색 치마는 큰 꽃봉오리 안에 꽃턱이 주머니처럼 되어 노란색 수술을 받쳐주고 있는 목단의 모습 그대로였다. 

부채춤은 꽃의 만개한 모양처럼 화려함과 탐스러움을 가진 춤이다. 군무의 부채춤은 무용수의 섬세한 움직임보다 부채의 모양과 정교한 대형을 즐기는 반면 이날 선보인 독무에서는 춤의 주체인 무용수의 움직임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춤사위의 유연함과 탄력성이 돋보였다.

양손에 들고 있는 부채는 목단꽃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으나 바람을 가르며 빙글빙글 휘돌아가는 부채로 매 순간 꽃을 표현하는 무용수를 거들 뿐이었다. 특히 악기나 도구를 사용하는 춤은 무용수와 도구가 혼연일체가 되어야 하므로 표현력과 기량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부채로 표현하는 직선과 곡선, 대칭과 비대칭, 포물선과 태극선은 화려한 목단꽃을 표현하기에 충분했으며 무대 전체를 붉은색 꽃밭으로 물들였다.

사진=예고예인-백슬빈 '소고춤'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사진=예고예인-백슬빈 '소고춤'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5. 소고춤 / 출연 백슬빈

소고와 태평소의 흥겨운 가락이 전하는 기쁜 소식, 소고춤. 

태평소의 흥겨운 가락이 무용수의 등장을 알린다. 소리로 분위기를 돋운 후 연분홍 치마에 보랏빛 쾌자를 입은 아담한 무용수가 소고로 얼굴을 가린 채 무대를 지르밟는다. 경쾌한 태평소 가락과 꽹과리 장단이 적절하게 양념처럼 뿌려진 가운데 무용수는 소고를 야무지게 두드리며 흥과 멋을 돋운다.

흥을 간직한 대표적인 춤, 소고춤. 소고로 땅을 다지고 무대를 원형으로 돌며 신명으로 풀어내는 무용수의 모습은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말하려는 나팔꽃처럼 경쾌했다. 나팔을 닮은 나팔꽃, 나팔꽃을 닮은 무용수. 살포시 고개 내민 무용수의 아기자기함은 이 작품의 큰 매력이었으며 무엇보다 전통무용 공연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는 무대로 박수를 받았다.

사진=예고예인-황윤지 '한영숙류 태평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사진=예고예인-황윤지 '한영숙류 태평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6. 한영숙류 태평무 / 출연 황윤지

섬세한 아름다움과 춤에 대한 일편단심이 보이는 태평무.

필자는 태평무를 춘 황윤지를 모른다. 그러나 무용수의 춤에 대한 열정과 무대에 대한 겸손한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분명 그녀는 ‘태평무’라는 춤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뿌리를 내리기로 마음을 먹었을 것이다. 꼭 다문 입술, 다양한 장단에 맞춘 세밀한 발놀림, 단아하면서도 기개와 품격이 있는 춤사위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서두르지 않고 절제하듯 움직이는 춤사위를 완성하기 위해 수만 번의 발을 내딛고 인내하며 땀을 흘렸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황윤지의 태평무’를 목근화(무궁화)에 비유하고 싶다.

인내와 끈기라는 꽃말처럼 영원히 피고 또 피어 지지 않는 무궁화를 닮은 단단한 그녀의 태평무를 자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사진=예고예인-커튼콜, 여섯 명의 예고예인/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사진=예고예인-커튼콜, 여섯 명의 예고예인/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맺으며

춤은 꽃을 닮아있다. 그것은 춤에 대한 열정과 고민이 마치 꽃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새싹이 돋아나와 결국엔 꽃을 피우듯 손끝과 발끝으로 터져 나와 주어야 하나의 춤이 되기 때문이다.

각자의 길에서 꿈과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서 고향인 대구에서 춤으로 하나가 되는 모습은 20대라는 나이처럼 어여쁘면서도 춤을 대하는 모습에서 진지함이 묻어났다.

여섯 명의 ‘예고예인’ 덕분에 일상을 가로막은 세상의 무게를 잠시나마 덜어낼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 산야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빛깔을 품은 꽃을 닮은 그들의 춤이 앞으로 많은 이들의 가슴을 두드릴 것이라 기대해 본다.

글=김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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