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해법 보여준 KBS교향악단
9월 8일 저녁 8시, 롯데콘서트홀

사진=KBS교향악단 제공
사진=KBS교향악단 제공

글: 여홍일 음악칼럼니스트

“끊임없는 레퍼토리의 혁신이 계속돼야 한다는 주문”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 K216과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Op. 77. 극악(極惡) 난이도의 바이올린 연주곡을 협연한 바딤 글루즈만의 협연 연주회가 지난 9월8일 열렸다. 이번 KBS교향곡 연주회는 앞으로 KBS교향악단이 생존할 수 있는 해법을 전달해주는 것 같다.

많은 클래식 고어들이 이미 인지했듯 서울시향은 올해로 임기가 만료되는 오스모 벤스케 음악감독의 후임으로 현 뉴욕 필하모닉 음악감독인 네덜란드 출신 얍 판 츠베덴(61)을 선임했다. 2024년 1월부터 시작될 5년간의 포석을 야심차게 준비하는데 벌써부터 부산하다.

이런 시점에서 국내 교향악계에서 서울시향의 대항마로 거론되는 KBS교향악단도 이미지 쇄신을 꾀하고 있다. 올해 막심 벤게로프, 오텐자머, 바딤 글루즈만 등을 무대에 세운 네 번의 마스터즈 시리즈와 전 뉴욕필 지휘자였던 앨런 길버트를 내세운 마티네 콘서트 등을 선보이고 있다. 기존의 횟수 채우기식의 정기공연 모드에서 탈피해 한 바이올리니스트의 두 개의 협연곡을 연주하는 등 파격적인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KBS교향악단이 클래식 관객들에게 사랑받고 선택받는 교향악단이 되고, 세계적인 교향악단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레퍼토리들의 혁신들이 계속돼야 한다는 주문으로 읽혀진다. 

“19, 20세기 바이올린 연주의 전통 생생하게 구현”

바딤 글루즈만의 연주를 듣고 있자면, 그가 19-20세기 찬란했던 바이올린 연주의 전통을 생생하게 구현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우선 모차르트의 돈조반니 서곡이 후반부 첫곡으로 연주되며, 극악의 난이도 두곡을 KBS교향악단과 바딤 글루즈만이 협연한 연주회를 봐도 그렇다. 

지난해 8월 20일과 21일 있었던 2021 Grand Park Music Festival에서 바딤 글루즈만이 프리 콘서트 렉쳐(pre-concert lecture)로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내게 이 내용들은 곡의 이해에 많은 단초와 도움이 되었다. 

바딤 글루즈만이 가볍게 뽑아내는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3번의 1악장은 우리가 느끼는 아름다운 감정들의 표본, 사랑과 환희같은 것을 흡사 활기차고 가볍게 불러내는 듯했다. 모차르트의 5개 ‘잘츠부르크 협주곡’들 가운데서 제3번의 1악장은 활기차고 우아하며, 독주 바이올린과 관현악의 대비와 조화가 매력적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연주라는 것을 알게 한다.

'Perfect slow movement'(완벽히 느린 움직임, 완벽한 슬로우 모션)이자 'gorgeous'(멋진)하고 서정적인 바이올린 독주가 돋보이는 2악장은 차분하며 자연속에 묻힌 듯한 평온한 느낌을 준다. "absolute beautiful melody"(절대적으로 아름다운 멜로디)라는 2021 Grand Park Music Festival 사회자의 말에 수긍하게 된다. 

3악장에서는 'fascinating stuff'(매혹적인 것)으로서, 바딤 글루즈만이 카덴차(악장이 끝날 무렵 등장하는 독주악기의 기교적인 부분) 연주를 선보인다. 바이올린이 활기차고 경쾌한 분위기를 이끌어가며, 중간의 프랑스풍 민요 가락이 인상적이다.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하는 것 같다"는 극악의 대비를 보인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Op.77. 이 연주를 통해 글루즈만은 거대한 스케일, 중후한 음악적 내용으로 진중하면서도 낭만적인 깊이를 보여줬던 것 같다. 

글루즈만은 비루투오조적인 바이올린 기교와 교향곡에 맞먹는 거대한 오케스트라 편성 및 낭만주의 특유의 화려한 선율이 다른 어떤 곡보다 잘 드러나있는 것을 보여줬다. 찬란했던 19, 20세기 바이올린 연주의 전통을 생생하게 구현해내는 연장선상의 연주를 들려줬다는 생각이다.

19, 20세기 바이올린 연주의 전통을 생생하게 구현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는 것은 바딤 글루즈만이 BIS Records와 녹음한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협주곡 1,2번 곡의 연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루체른 심포니오케스트라와 녹음한 베토벤과 슈니트케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 앨범등에서도 그런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특히 글루즈만의 베토벤과 슈니트케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 앨범은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3번에선 앨범녹음이 잘 되어있다. 예각을 세우는 듯한 글루즈만의 날카로운 바이올린 선율이 돋보인다. 반면 슈니트케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 연주는 슈니트케가 대표적 포스트 모더니즘 작곡가의 한사람인 만큼 베토벤과는 분위기가 다른 현대작곡가의 포스트 모더니즘적 글루즈만의 해석을 들려준다. 

“레퍼토리들의 변화보다 혁신적 프로그래밍들이 필요”

지난해 2021년 KBS교향악단의 추석 직전 연주회에서도 바딤 글루즈만은 요엘 레비와 함께 무대에 올라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을 협연했다. 쇼스타코비치가 살던 시절의 어두운 시대상을 반영하듯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선율을 바딤 글루즈만이 흡사 바이올린 선율로 대신 들려주는 것 같은 느낌을 나는 가졌었다. 

올해 2022년 마지막 4개월여를 남겨두고 있는 시점에서 KBS교향악단은 상임지휘자 피에타리 잉키넨이 지휘봉을 잡게 될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과 시벨리우스의 교향시 '전설', 합창교향곡 '쿨레르보', 그리고 드미트리 기타옌코가 지휘봉을 잡게 될 질버스타인 피아노협연의 프로코피예프 피아노협주곡 제3번의 무대, 잉키넨이 연말을 장식할 베토벤 교향곡 제9번 무대 등을 남겨 놓고 있다. 

10월 무대 같은 경우는 올해 잉키넨 감독이 가장 야심차게 준비한 무대로 꼽혀왔다. 하지만 어떤 시각에서는 KBS교향악단이 올해 시즌 중반에 선보인 마스터즈 시리즈 2탄 같은 의욕적 레퍼토리들의 부재도 엿보인다. 

KBS교향악단이 진정한 서울시향의 대항마로 기능하고 클래식계에서 위상을 높임은 물론, 세계적 교향악단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올해 시도한 마스터즈 시리즈의 다른 형태로의 시도나 레퍼토리 변화 등 보다 혁신적 프로그래밍들이 필요해보인다. 

 

음악칼럼니스트 여홍일

2012년부터 몇몇 매체에 본격 음악칼럼 리뷰를 게재했다. 현재는 한국소비자글로벌협의회에서 주한 대사 외교관들의 지방축제 탐방 팸투어 전문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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