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굴비가 녹차에 젖어 옥굴비가 된듯

늦은 점심 가능해 뜬금 없이... 늦은 점심은 몇 시일까 잠시 생각하다... 네 몇시요 ? 그래 같이 하는 것으로 하고 내일 아침에 연락하자. 누님과 나는 이런 식의 약속이 익숙하다. 수서에 가자고 하니 누님 사무실 근처 맛집일 것이다. 다음날 전철을 두 번 갈아타고 수서역에서 내려 역사를 나와 5분 정도 걸으니 테이블 여섯 개 있는 작은 식당에 도착했다.

게절밥상
게절밥상

 

시장기가 돌아 참을 수 없는 상황, 계절집이란 상호의 선술집 젊은 여사장님이 반갑게 맞이하고 밑반찬을 내주는데 어리굴젓에 궁 채 나물이 눈에 들어온다. 짜다 동생아 좀 있다 밥하고 먹어라 누님의 만류가 있었지만 나는 그런 참을성은 없다. 시원한 막걸리와 어리굴젓을 김에 싸서 먹고 나니 갈증과 욕구(?)불만이 동시에 해결됐다.

보리굴비정식
보리굴비정식

풀렸던 눈동자에 힘이 실리면서 메뉴를 천천히 다시 보니 맛에 진심인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거의 오마카세 (손님이 요리사에게 메뉴를 맡기고 주는대로 먹는다는 일본어) 수준이다. 보리굴비 정식, 매생이국, 계절 세꼬시 막회, 간장게장, 멍게 비빔밥 등 철 따라 달라지는 듯하다. 식사 중에도 예약 전화는 끊이지 않고 주변 농장 하는 지인이 청경채 채소를 거의 김장 배추만큼 내려주고 간다.

청경채
청경채

얼갈이, 배추 등 농사지은 걸 나눠 먹는다는데 그 양이 도매시장 수준이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계절집 젊은 여사장님은 재료를 아끼지 않는 듯 음식도 푸짐하다. 허기진 배를 달래고 잠시 앉아있으니 보리굴비 고등어 생선구이와 함께 낙지 비빔밥과 매운탕이 나온다. 낙지 비빔밥을 비벼주면서 날 김에 싸서 먹어보란다.

낙지비빔밥
낙지비빔밥

단 짠 양념에 탱글탱글한 낙지가 양배추와 어울려 입안에서 터지는 식감이 좋다. 다소 부담스러운 비주얼인 매운탕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지리처럼 단백 하고 짜지 않아 좋다.

낙지볶음
낙지볶음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낙지 비빔밥을 먹고 나니 잠시 찬밥 신세였던 잡곡밥이 눈에 들어왔다. 녹찻물에 제대로 말아 먹기 위해 보리굴비를 추가하고 오징어 숙회 안주와 함께 산삼 배양 주 한잔 쭈 욱 들이키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제철밥상
제철밥상

추가한 보리 굴비와 함께 녹찻물이 투명한 텀블러에 담겨 나오는데 그 색이 영롱한 옥빛이다. 녹차 티백을 녹찻물과 구분 못 하는 황당한 보리굴비 집과는 비교할 수 없다. 거의 일본 말 차 수준이다.

녹 찻물과 보리굴비
녹 찻물과 보리굴비(사진,낭궁은)

굴비는 법성포 산으로 6시간 소금 간수 작업 후 내놓아서 비린내도 없고 짜지도 않다. 한라산 21도 소주와 함께 녹찻물을 두 번 세 번 리필 하며 아쉬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더 이상은 배불러서 못 먹겠다. 시장이 반찬 (hunger is the best sauce) 배고프면 다 맛있다 아니다. 배불러도 맛있다. 농담처럼 이야기했는데 그 농담은 이렇다 먹고 뒤돌아서면 또 생각날 겁니다. 먹느라 못 찍은 사진이 아쉽다 작정하고 다시 한번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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