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 9년 만에 3개의 선율이 하나로, 느리지만 분명하게 나아가는 '좋아서 하는 밴드'
2016-01-27 문화뉴스 김소이
▲ (왼쪽부터) 손현(기타), 안복진(아코디언), 조준호(퍼커션, 우쿨렐레). |
ㄴ복진: 고등학교 때 직업적성검사를 했다. 그때 막연한 꿈을 넘어, 돈을 버는 직업으로 뭘 하고 싶은지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해봤다. 내 적성 중에서 가장 내세울 만한 게 피아노였다. 클래식은 하기 싫어서 가요를 치다가, 자연스럽게 전공도 이쪽으로 가고(추계예술대학교 음악학 전공) 음악을 계속하게 됐다. 처음부터 음악을 전업으로 삼고자 한 건 아니다.ㄴ준호: 고등학교 때는 힙합 동아리, 대학교 때 미디 동아리에서 취미로 음악을 시작했다. 음악을 직업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은 군대에서 했다. '내가 음악을 해도 될까, 할 수 있을까'하는 불안과 궁금증 때문에 전역한 이후에는 대학가요제에 집중했다. 대학가요제에서 좋은 결과를 얻으면서 자신감을 얻고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했다.ㄴ현: 중, 고등학교 때 같이 기타치고 놀던 친구들이 다 음악을 하고 있다. 그 친구들이 다 힘들어 보여서 음악을 전업으로 할 생각은 별로 없었는데, 2008년에 준호가 공연 도와달라는 제의를 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ㄴ준호: 처음 이렇게 셋이 모였고, 첫 번째 베이스 멤버까지 총 네 명이 다 같이 모인 게 2008년이다. 첫 앨범이 이듬해 8월에 나왔으니 모인 것치곤 앨범이 빨리 나왔다.좋아밴하면 '버스킹'을 많이 생각한다. 좋아밴에게 버스킹이란?
ㄴ복진: 처음에 버스킹으로 이미지가 잡혀서 이어진 것까지는 좋지만, 이제는 9년 차 밴드인 만큼 좀 더 정교하고 공연 잘하는 밴드로 남고 싶다. 물론 버스킹만의 생동감도 좋다. 하지만 이제 음악적 고민을 바탕으로 다듬어진 모습을 보이고 싶다.ㄴ준호: 컨셉이 확실한 우리만의 공연에 공을 들이는 편이다. 여름엔 보신음악회, 겨울엔 크리스마스 공연. 공연 컨셉이 탄탄하게 잡혀있는 것이 큰 재산이다. 덕분에 소속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공연 기획사와의 협업을 통해 여러 공연을 진행할 수 있었다.
▲ 좋아서 하는 밴드가 2011년부터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여름 공연 '보신음악회'. |
ㄴ복진: 앨범 작업이 끝났을 때가 가장 뿌듯하고 인상 깊다. 그래서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번 정규앨범이 나왔을 때다. 공연보다는 앨범작업이 끝났을 때의 해방감이 더 크다. 공연 횟수보단 앨범 수가 적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웃음)ㄴ준호: 다른 뮤지션들은 앨범 내고나서 공연하는 방식으로 활동한다면, 우리는 그 외의 다양한 활동들이 많다. 엠티, 팬들과의 기획 모임, 거리공연, 영화촬영 등 추억할 일들이 많다.ㄴ현: 동감한다. 아니면 서울광장에서 버스킹하다가 '좋아서 하는 밴드'라는 이름을 지었던 순간? (웃음)새 멤버를 영입할 계획은 없는지.
ㄴ복진: 전혀 없다. 지금까지 9년 동안의 시간을 설명하기 어렵다. 들어오는 사람도 부담스러울 것 같다.요즘 즐겨 듣거나 추천하고 싶은 음악이 있다면?
ㄴ복진: OST를 많이 듣는 편이다. 요즘에는 영화 '러브 어페어(Love Affair)' OST를 듣고 있다.ㄴ준호: 즐겨듣는 팀이 있는데 추천은 안 할 거다. 나만 알고 싶은 밴드다. 지금 CD랑 LP가 배를 타고 오고 있는데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ㄴ현: 저는 음악을 잘 안 듣는다. 일단 준호가 좋아하는 월드뮤직이랑 컨트리음악은 안 좋아한다.(웃음)
ㄴ현: 우리는 세 명 모두 곡을 쓴다. 그 곡들을 모아서 작업하려면 서로 설득해서 포기시켜야 하는 부분이 생긴다. 하지만 음악적 성향을 기반으로 한 이견을 조율하기가 어려웠다. 세 명을 이겨낼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프로듀서를 영입해서 믿고 따르며 이번 앨범을 작업했다. 원하는 부분을 프로듀서하고만 얘기하면 되니까 싸울 일이 없고 작업속도도 빨라졌다.ㄴ복진: 편곡자의 역할도 컸다. 자신감이 없었는데 살아난 곡, 방향이 더 확실해진 곡들이 많다. 피아노 한 대, 기타 한 대, 우쿨렐레 한 대로 만들어졌던 곡들이 옷을 입었다. 우리끼리 편곡할 때는 투박하고 아마추어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 앨범은 좀 더 대중음악에 가까워졌다. 매끈하게 다듬어져서 많은 사람이 부담 없이 들을 가능성이 늘어난 것 같다. 앞으로도 편곡자만큼은 꼭 있었으면 좋겠다.ㄴ현: 좋아밴은 처음부터 앨범을 우리끼리만 제작해왔다. 우리만의 색깔이 생기긴 했지만, 편곡, 제작 등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하다 보니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이번에 다른 선배 뮤지션과 작업하면서 수업을 받는 기분이었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ㄴ복진: 그동안 조금씩 성장해왔다면 이번엔 큰 계단 하나를 올라갔다. 앨범을 작업하기 전, 곡을 만드는 것을 비롯한 밴드의 미래에 대해 고민이 많고 자신감도 없었다. 하지만 앨범을 만들면서 밴드 전체적인 면에서 많이 배웠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볼 수 있게 됐다.이번 앨범에서 일렉기타, 현악기, 플롯 등 다양한 악기들을 사용했다. 라이브에서는 어떤 식으로 연주할 계획인지.
ㄴ준호: 이번 앨범은 작년 크리스마스 콘서트 때 첫 라이브를 시도했는데, 3, 4년 전부터 함께한 세션 연주자를 통해 충분히 구현할 수 있었다. 그들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곡이 앨범에서부터 미리 완성되어 있다는 점이 반가웠다. 그동안은 소담한 편곡으로 앨범에 담겨있던 곡을 라이브 공연에서 좀 더 화려하게 보여줬다면, 이제는 앨범과 공연 모두에서 완성된 음악을 만들 수 있어서 좋았다.사운드도 다채로워졌지만 세 명의 보컬이 많이 변했더라. 밝은 곡에서는 끼가 늘고, 조용한 곡에서는 더 묵직해지고.
ㄴ현: 자기가 쓴 곡은 본인이 가장 잘 표현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예전에는 하고 싶은 대로 부르는 경향이 있었다. 이번엔 각자 보컬트레이너가 한 명씩 붙었다. 창법, 감정표현 등 기술적인 면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가령 나는 록커에 대한 꿈이 있던지라 내 음역에 비해 높게 부르는 경향이 있었다. 이번 앨범에서는 음역을 확 낮췄다. 그래서 묵직해졌다는 느낌이 드는 걸 거다.ㄴ복진: 개인적으로 공들여서 불러야겠다는 별로 안 했다. 싱어송라이터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다.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는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멋진 목소리를 통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포인트를 끌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악기보다 보컬 녹음에 집중했다.사실 예전엔 '이런 생각으로 곡을 썼구나.' 하며 듣는 재미가 있었는데, 그런 면에선 좀 아쉬운 것 같다.ㄴ준호: 각자가 쓴 노래를 스스로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곡이 바뀔 가능성을 없앨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각의 곡에 어울리는 보컬을 찾기 위해 거의 모든 곡을 세 명이 다 불렀다. 비율로 따지면 곡을 만든 사람과 부른 사람이 다른 곡이 더 많다. 창작자와 보컬이 다른 것에서 오는 아쉬움에 비해 얻을 수 있는 게 더 컸다.ㄴ복진: 가사만 보면 남녀 사랑 이야기인데, 남자 둘이서 부른 곡도 있다. 재밌게 해석할 여지가 많아지는 것 같다.
ㄴ복진: 앞서 얘기한 것처럼 이 곡도 세 명이 다 불렀다. 부르던 와중에 재밌는 얘기가 나올 것 같아서 세 명 다 부르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세 가지 버전의 명왕성이 있다.ㄴ현: 가장 먼저 나온 것이 복진 버전이다. 곡을 들으면 딱 떠오를 만한 스트링 느낌. 내 버전은 담담한 피아노에 낮은 음역으로 부른 것이다. 준호 버전은 편곡이 특이해서 따로 뺐다. 2월 26일에 싱글로 발매될 예정이다.
ㄴ복진: 곡 순서를 짜는 데 되게 오래 걸렸다. 처지는 앨범이 되지 않도록 고민하기도 했고, 5번 트랙인 '사랑의 베테랑' 같은 경우 워낙 튀는 노래라서 어디에 넣을까도 많이 고민했다.
ㄴ현: 처음에 30곡에서 10곡 추리는 것도 오래 걸렸다.ㄴ복진: 본격적인 앨범 작업 기간은 2달 정도인데, 그 전에 곡을 추리는 데 7개월이 걸렸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이 있다면?
ㄴ복진: 쓰는 데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린 '명왕성'. 고생을 많이 해서 기억에 오래 남는다.ㄴ현: '우린 서로를 모른 채'. 세 명이 함께 조율하던 시기에 이 곡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주위 반응은 좋은데 멤버들은 싫다고 했다. 그래서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앨범 작업을 통해 결과물이 잘 나와서 기분이 좋다.ㄴ준호: 맘에 드는 곡이 정말 많다. 그중에서도 '왜 그렇게 예뻐요'가 반응이 굉장히 좋더라. 좋아할 만한 노래를 통해 팬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이 드는 노래다.이번 앨범을 들을 때 유념했으면 하는 부분은?
ㄴ준호: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하는 얘기지만 어떻게든 일단 들어줬으면 좋겠다. 능동적으로 찾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ㄴ현: 보통 사람들이 타이틀곡만 듣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타이틀곡은 가장 좋은 곡이 아니라 앨범의 이미지를 가장 잘 대변해주는 곡이다. 순서대로 들어야 타이틀곡도 더 빛이 난다. 그냥 1번 트랙부터 순서대로 들어줬으면 좋겠다.
ㄴ현: 좋아서 하는 밴드의 2015년은 가난하고 바빴다.ㄴ준호: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는 시간보다 우리끼리 앨범을 만드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들어오는 공연은 다 하긴 했지만. 기획공연이 안 끊긴 것만으로도 다행이다.ㄴ복진: 곡을 가장 많이 썼고 앨범을 작업하는 데 있어 가장 많이 고민했던 해다. 그동안은 합주를 통해 어느 정도 곡이 만들어져 있는 상태에서 녹음했다면, 이번 앨범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만들기 시작했다. 앨범에 모든 걸 쏟아내면서 고민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았다. 휴가도 못 다녀왔다. 올해는 열심히 놀아서 쏟아낸 에너지를 다시 회복할 거다.앞으로의 좋아밴은 어떤 밴드였으면 하는지.
ㄴ준호: 올해도 벌써 6월까지 공연이 잡혀있다. 회사가 없어서 그런지 오히려 여기저기서 많이 찾아준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사람들이 계속 찾아주는 매력이 있는 밴드였으면 좋겠다.ㄴ복진: 잊히지 않는 밴드가 되고 싶다. 이름이 특이해서이든 음악이 별로여서든 좋아서든 어떤 방식으로든 대중의 기억에 남아있고 싶다.ㄴ현: 월드투어를 다닐 수 있는 밴드. 조영남 같은 분이 한인회 다니면서 공연하는 거 너무 멋지다.ㄴ준호: 나는 월드뮤직은 좋아하지만 월드투어는 별로다. 내 악기가 제일 무겁다.(웃음)문화뉴스 독자들에게 한마디.
ㄴ현: 2월 13일에 '따끈따끈 발렌타인'이라는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현재 우리를 가장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공연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ㄴ복진: 준호 버전의 '명왕성'이 실린 새 앨범엔 총 두 곡이 실릴 예정이다. 많이 기대해주셨으면 한다.[글] 문화뉴스 김소이 기자 lemipasolla@mhns.co.kr
[사진] 소니뮤직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