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현의 컬쳐앤더시티] 나영석표 로드무비, 윤식당과 비빔밥

2018-01-24     김가현

[문화뉴스 MHN 아띠에터 김가현] 나는 로드무비를 참 좋아한다.

원체 여행을 좋아하는 필자의 성향도 관련이 있겠지만, 영화가 진행되며 보여지는 수많은 풍경, 장소를 이동하며 만나는 사람들과의 이야기 그리고 로드무비에서만 볼 수 있는 특유의 잔잔한 여백의 시간. 그 중에서도 러닝타임을 1분 1초까지도 허투루 쓰지 않고, 빡빡하게 채우려는 여느 영화들과는 달리 조용하게 이동하는 풍경, 모습을 담은 여백은 로드무비의 백미라고도 할 수 있겠다. 

▲ 스페인 youn’s kitchen 앞에 있는 윤식당 주인공 네명

윤식당은 로드무비를 품은 예능의 모습으로 브라운관에 나타났다.

5000여 명의 주민이 사는 스페인 남부 테네리페 섬의 작은 마을 가라치코, 이 작은 마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네 명의 이야기. 처음 들어봄직한 이 마을의 풍경을 윤식당은 때로는 동화처럼, 때로는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여주곤 한다. 식당과 손님이라는 그림 속에서, 윤식당을 운영하는 4명의 출연진(윤여정, 이서진, 정유미, 박서준)과 손님의 만남은 억지스럽지도, 인위적이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또 손님이 북적북적하고, 대화가 끊이지 않는 장면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손님이 없으면 없는 대로, 대화가 없으면 없는 대로 한적하게 보이는 윤식당의 풍경에서 로드무비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특유의 여백의 미도 느낄 수 있다.

로드무비를 볼 때 재밌는 점은 길에서 만나는 우연한 만남에 있다.

윤식당에서의 손님들도 마찬가지다. 그 작은 마을의 주민들도 있지만, 마침 그 당시에 가라치코로 여행을 왔다가 윤식당에 들른 다양한 국가의 여행객들.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김치전을 스테이크처럼 포크와 칼로 잘라서 먹는 모습, 잡채를 파스타처럼 돌돌 말아서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스페인 가라키초 마을의 풍경
▲ 스페인 가라키초 마을의 해변

'김치전은 비 오는 날 대충 부쳐서 젓가락이나 손으로 뜯어 먹는 것 아닌가? 김치전의 저렇게 고급스러운 자태라니!'

예상치 못했던 신선한 충격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게 한다. 

우연히 들른 손님들은 다양하다. 덴마크 전 장관, 우크라이나 푸드 블로거, 노르웨이의 영화감독, 윤여정을 스카우트 했던 스위스 호텔 관계자 등. 작정하고 한 자리에 섭외하려고 했으면 불가능할 법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윤식당이기에, 그리고 그 안의 여백과 우연함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 윤식당 대표메뉴 김치전

로드무비와 윤식당의 여백의 미는 아이러니하게도 윤식당의 대표메뉴인 비빔밥에서도 보여진다.

비빔밥은 참 정갈하다. 각 재료의 맛도 있지만 그것들이 어우러졌을 때, 그 맛은 시너지를 낸다. 이유를 곰곰 생각해보면, 재료들이 무엇 하나 자극적이지 않고 다른 재료에게 충분히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 넉넉한 여백을 지니고 있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보여주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한꺼번에 다 집어넣으면 자칫 잘못하면 잡탕이 돼버릴 수 있다.

▲ 윤식당 대표메뉴 비빔밥

윤식당에는 꽃보다 시리즈도 삼시세끼도 다 있다. 그 모든 것이 있지만 절대 번잡스럽지 않다. 윤식당은 중간 중간 적당한 여백을 섞어, 여행과 요리, 그리고 사람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으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비빔밥같이 정갈한 재미를 만들어낸다. 

 쉴 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한 번쯤은 걸음을 멈추고 있는 그대로의 시간과 풍경, 향기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분홍빛 석양이 지는 이국적인 섬, 보라색으로 물든 바다, 스페인의 작은 마을 가라치코 섬을 한 번 쯤 떠올려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