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화현장, 9.19] "관객들이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수 있도록"...배우 장석환

2015-09-19     문화뉴스 장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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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극단의 연수단원이자, 연극 '나는 형제다'에서 '동생' 역할을 맡고 있는 배우 장석환을 만났다. 수줍은 목소리와 맑은 눈빛. 첫 인사를 나누고는, 도대체 어떤 에너지로 이 강렬하고도 비극적인 연극 '나는 형제다'를 감당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인터뷰가 시작되자, 이내 수줍었던 소년의 이미지는 사라졌고, 꽤나 무겁고도 진지한 대화를 통해 그만의 확고한 생각과 신념을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 장석환 배우 소개 및 인사

제목이 '나는 형제다'다. 형은 '형제'일 때, 비로소 자신의 존재의 온전함을 느끼는 것 같다. 형에게 있어 동생이란 자신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반쪽'처럼 느껴진다. 동생도 이와 비슷한 듯했지만, 결국은 형에게서 벗어나고자 하는데, 비로소 자신의 오롯한 존재성을 회복하기 위함으로 봐도 되겠는가?
ㄴ 형과 동생은 서로 '형제'로서 존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형과 동생의 생각이나 입장은 달랐다. 연극 마지막 즈음에 동생이 말하는 대로, 동생은 형을 좋아하지만, 완전히 믿지 않던 상태였던 것이다. 좋아해서 같이 있고 싶고, 서로에게 서로가 필요한 존재라 생각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각자 사회 속에서 도태됐고, 떨어졌다가 다시 만났을 때, 동생이 느끼기에 형은 이미 너무 변해버렸다.

동생은 "이건 아니구나" 싶었을 것이다. 둘 다 착하게 살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고, 세상에서 소외되고 있는 '선(善)'을 회복하기 위해 열심을 다했지만, 연극의 끝에 가서 보니, 동생이 생각한 것과 형이 생각한 것에는 너무 큰 괴리가 있었다. 형제는 궁극적인 목적은 같았지만 방식이 너무 달랐다. 동생이 형에게서 벗어나고자 하는 순간은, 위험하게 변해버린 형을 말리기 위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 때였다.

   

 

본인에게도 '형제'가 있는가. 형제란 어떤 의미인가.
ㄴ 외동이다. 그러다보니 어린 시절에 많이 외로웠다. 친구들과 관계를 많이 맺으려고 노력해서 주변에 친구들은 많았다. 그래도 가끔은 한 번씩 '형제'에 대해 생각을 해봤었다. '나에게도 형제나 자매가 있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들 말이다. 직접 경험해보지는 못한 관계지만, 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해보니 너무 좋았다. '형' 역할의 이승주 선배님께서 정말 잘 대해주셨다. 극중에서처럼 실제로 선배님을 형처럼 많이 따랐다.

    벌써 김광보 연출과의 두 번째 작업이다. 김광보 연출가는 본인에게 어떤 분인가.
ㄴ 연극 '여우인간'에 참여했을 때, 김광보 연출님을 처음 뵀다. 당시 나는 서울시극단 연수단원 소속이었고, (김광보) 연출님께서는 외부 연출님이셨다. 워낙 유명하신 분이시기에, 따로 검색도 해보고, 다른 선배님들께도 그분에 대해 들어온 것들이 있었는데, 연극으로 '외길인생'을 사신 분이었다. 직접 경험해보고 나서는, 굉장히 치열하게 작업에 임하시는 분임을 알게 됐다. 존경스러웠다.

'여우인간'이 끝나고 김광보 연출님의 '엠 버터플라이'를 두 번 보고, '프로즌'도 직접 봤었다. 작품 한 편 한 편이 정말 재밌고 좋았다. 이번에 서울시극단 단장님으로 새로 취임하신다는 소식을 듣고는 굉장히 기뻤다. 다시 한 번 뵐 기회가 생겼으니 말이다.

연극 '나는 형제다' 작품에 들어가면서 '동생' 역으로 캐스팅되는, 매우 기쁘고 감사한 기회가 주어졌다. 개인적으로, 연출님께 이번 캐스팅은 굉장한 모험적인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봤다. 나는 큰 극장에 서보는 것도 처음이고, 큰 역할도 처음 맡아본 연수 단원이었으니 말이다. 연출님께서 굉장히 힘드셨을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믿어주셨고, 더구나 신경도 많이 써주셨다.

큰 기회도 기회이거니와, 치열하게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시고, 훌륭한 작품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영광이고, 연출님께 참 감사하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지금도 여전히 감사함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다.

김광보 연출가는 '치열하게' 작업을 하는 분이라고 표현하셨다. 어떤 치열함인가. 
ㄴ 치열하다고 해서, 날카로운 신경을 가지고 엄청 엄하거나 강압적인 태도로 배우들을 대하시지는 않는다. 그때그때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 날카롭게 말씀해주시는 꼼꼼함을 가지셨다. 연습 때도 매번 빠지지 않고 같이 계셨다. 대단한 열정을 가지신 분이다.

    '동생' 역할을 맡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나, 집중해서 연습했던 부분이 있는가.
ㄴ 나름대로 모든 부분에 있어서 즐겁게 임하려고 했다. 내가 힘들었다기보다는, 아무래도 연기 경험이 부족한 후배 배우와 함께 호흡을 맞추다 보니, 많은 선배, 동료 배우 분들이 힘드시지 않았을까 싶다. 내게는 연습했던 시간 자체가 모두 굉장히 값진 시간들이었고, 매순간 집중하고자 노력했다. 그래도 굳이 집중했던 장면을 꼽자면, 형과의 작별을 선언하고, 형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마지막 장면이 가장 신경을 썼던 장면이었다.

사각형의 무대에서 여러 장면이 겹쳐진다. 한쪽이 현재 관객들에게 공연되는 장면이라면, 무대 한 켠에는 바로 다음 장면에 나올 배우들이 이미 나와 대기하며 컷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 세트장처럼 말이다. 그리고 계속 언급되고 형이 좋아하던 '영화' 또한, 결국은 우리 삶이 "짜여진 각본"과 다르지 않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극중에서 형도 "우린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했다"고 고백한다. 장석환 배우가 겪어온 인생은 어떤가. 인생은 '짜여진 각본'이었나, 아님 여전히 가능성이 존재하는 미개척지였는가.
ㄴ 고연옥 작가님께서 작품을 쓰실 때, 스크린의 안과 밖을 구분해서 쓰셨다. 연출님도 그 부분을 많이 고민하셨던 것 같다. 비단 이 작품뿐만 아니라, 세상 자체가 '짜여진 각본'처럼 여겨지는 데에는 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학생 때는 잘 몰랐지만, 졸업하고 사회와 피부가 맞닿으면서 여실히 느끼고 있다. 점점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은 자수성가하기 힘든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렇게 어떤 운명론처럼 받아들여지는 것, 즉, 어차피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한다는 식으로 규정해버리면, 정말로 세상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각박해질 것만 같다.

그런 세상에 대해서 돌아보고자 이런 작품이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공연을 본 관객들이 개별적으로 스스로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라는 식의, 나와 내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지는 것. 그런 순간이 개개에게 모두 허락됐으면 좋겠다. 아무리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 희망이나 가능성이 차단된 것처럼 보일지라도, 생각을 조금 바꾸고 노력하다 보면 그래도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은 어떨까. "열심히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사는 게 너무 재미가 없지 않나.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을 것 같다
ㄴ "남을 돕고 싶어요."라는 대사가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남을 돕고 싶어요."라는 대사 뒤에, 동생은 "부자들이 하지 않은 일을 하고 싶어요."라는 대사를 덧붙인다.
ㄴ 개인적으로 동생 역에 대해 비겁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부자들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남을 돕고 싶다고 하는 말을 하면서, 부자들과 엮이고 싶지도 않고, 성공도 실패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사회 속에서 일컫는 '성공'은 많은 돈을 벌고 윤택한 삶을 유지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실패'는 현 상황보다 가난해지는 것이고 말이다. 동생은 그 두 상황을 모두 회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모든 이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을 피해 자신만의 답을 내리는 것이다. 이 양자택일의 선택은 이미 내 존재 자체가 규정되어 버린 느낌을 갖게 해주니까 말이다. 동생은 양자택일의 문제에서 두 선택지가 아닌 제 3의 선택지를 택한 것이다.

이후 작품 활동 계획은?
ㄴ 현재 서울시극단 연수단원에 소속되어있기 때문에, 올해 겨울도 서울시극단 작품을 하게 됐다. 다음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와 관련된 공연이 예정돼 있다.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린다.

     
'장석환'이라는 배우는 사진이 실물을 다 담아내지 못하는 배우에 속했다. 그리고 인터뷰 또한 그랬다. 짧은 인터뷰라는 형식은 '장석환'이라는 배우의 매력과 깊이, 그리고 사유를 담기에는 부족한 그릇이었다. 그러나 이 한 마디로, 그의 전체를 아울러 표현할 수 있다.

"다들 그래. 동생은 사람들이 모두 좋아해."

극중에서 형은 동생을 저렇게 소개한다. "나는 가만히 있으면 화난 줄 아는데"라는 대사에 대비되고, 형이라는 존재와 대조되는 인물로 표현하기 위해 나온 대사인지는 몰라도, 장석환이라는 배우는 저런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모든 사람이 좋아할 수 있는 따뜻하고 안정된 배우 말이다.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