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기의 공연산책] 극단 산울림의 극 페스티벌 채움 토바코 레이디와 살아남은 자의 슬픔

2017-10-23     박정기
 
[글] 아티스트에디터 박정기(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pjg5134@mhns.co.kr

▶공연메모
극단 산울림의 극 페스티벌 채움 토바코 레이디와 살아남은 자의 슬픔
- 공연명 1, 토바코 레이디 2, 살아남은 자의 슬픔
- 공연단체 1, 에픽 컨템퍼러리(Epic Contemporary) 
2, 공동창작집단 가온
- 작가 1, 베르톨트 브레히트 2, 브레히트 시
- 연출 1, 송 운 2, 서현우
- 공연기간 2017년 10월 11일~15일
- 공연장소 산울림 소극장
- 관람일시 10월 11일 오후 8시

[문화뉴스 아띠에터 박정기] 산울림소극장에서 에픽 컨템퍼러리(Epic Contemporary)의 브레히트 작, 송운 공동각색 연출의 <토바코 레이디>와 공동창작집단 가온의 브레히트의 시, 서현우 구성 연출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관람했다.

 

1, 에픽 컨템퍼러리(Epic Contemporary)의 브레히트 작, 송운 공동각색 연출의 <토바코 레이디>

<토바코 레이디>는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의 <사천의 선인>을 소리 극으로 재구성한 공연이다. 중국을 배경으로 한 역사화 된 우화로써, 작가는 주인공을 선인과 악인이라는 대립적인 두 존재로 분열시켰다. 노래들은 사건 진행을 해설하는 기능 외에 비유적 성격을 띤다.

신의 계명을 지키는 선인을 찾기 위해 여행하는 세 명의 신들에게 물장수 왕은 숙소를 구해주려고 애쓰지만 가는 집마다 거절당한다. 마침내 그들은 창녀인 셴테의 집에 묵 게 된다. 신들은 선한 여인을 발견했다고 안심하며 떠난다.

신들이 준 돈으로 셴테는 작은 담배 가게를 마련하려고 하자 몰려드는 빈민들의 요구 에 할 수 없이 셴테는 교활한 사촌 오빠 슈이타로 변장하여 위기를 피한다.

셴테는 직장이 없는 비행사 양순과 사랑에 빠져서 그를 돕지만 양순의 애정 없는 계산으로 결혼이 좌절된다. 임신한 그녀는 태어날 아이를 구하려는 생각에 다시 슈이타로 담배 공장을 차린다. 셴테가 오랫동안 보이지 않자 슈이타는 공장을 빼앗으려고 셴테를 죽였다는 혐의를 받고 고발당한다.

신들이 재판관으로 나온 법정에서 슈이타는 자신이 셴테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 을 고백한다. 착하게 살아나가기가 힘들다는 그녀의 호소에 신들은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고 다시 승천한다.

무대 하수 쪽 객석 가까이에 북과 고수가 자리를 하고 소리로 해설자 역할을 한다. 상수 쪽에는 가야금 연주자와 전자건반악기 연주자가 자리한다.

연극은 원작의 줄거리를 따랐으나 축약시키고 소리 극으로 재현시켜 음악과 연주는 물론 소리로 관객을 극 속으로 이끌어 들이고 출연자들의 열연과 호연 또한 관객의 갈채를 이끌어 낸다.

김예은, 김채홍, 박재현, 윤건일, 이근범, 이연빈 등 출연자들의 혼연일체 된 기량이 무대 위에 드러나 공연시간이 짧게 느껴진다.

음악감독 남궁진영, 가야금 김다은, 고수 소리 임지은, 조명 김광훈의 열정과 노력이 조화를 이루어 에픽 컨템퍼러리(Epic Contemporary)의 브레히트 작, 송운 공동각색 연출의 <토바코 레이디>를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2, 공동창작집단 가온의 브레히트의 시, 서현우 구성 연출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시의 원제는 <Ich, der Ueberlebende>, 직역하면 <나, 살아남은 자>이다. 아마 번역자가 시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섞어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의역한 것 같은데, 그 덕에 이 제목은 두고두고 사용될 만한 정서적 융통성을 얻긴 했지만, 원제에 담긴 단호한 자의식은 묻힌 듯해 못내 아쉽다.

시의 본문은, 자신이 그저 운이 좋아 살아남았을 뿐이라는 자조로 시작해, 자신에 대한 미움으로 끝을 맺는다. 물론 살아남은 자로서, 죽은 이들에 대한 부채 의식이 죄책감으로 이어져 자신에 대한 미움으로까지 표현된 것이라고 쉽게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브레히트는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해 제 한 몸 지킨 것도, 또 자신이 탁월한 능력이나 막중한 책무를 지녔기에 의당 살아남을 만하다고 자부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임을 명백한 사실로서 스스로 의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부끄러움이나 미안함은 느낄지언정 자신을 증오한 것은 왜일까?

열쇠는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에 있다. 이것은 아마도 브레히트가 현실에서의 자기의식과 대비시켜, 꿈이라는 무의식의 세계에서 타자의 입을 빌려 드러낸 자기 성찰의 또 다른 잣대라 할 수 있다. 즉 ‘자신이 과연 강자인가, 정말 강자여서 살아남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 것이다.

답이 어느 쪽이든, 그는 심한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강자가 아닌데도 살아남은 것이라면 싸움을 이어나가야 하는 책임을 다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자신이 미워질 것이고, 강자여서 살아남은 것이라면, 즉 더 약한 누군가를 짓밟고 살아남은 것이라면, 그 가혹한 현실 논리에 충실했던 자신이 미워질 것이다.

무대는 여러 개의 사각의 나무의자를 출연자들이 이동시켜 장면변화에 대처한다. 전쟁의 포화소리, 기관차나 기선의 경적소리와 달리는 소리, 우레 소리 등이 극적분위기를 조성한다. 6 25사변당시 마치 흥남부두에서 군함을 타려고 애쓰던 피란민의 모습이 연상되고, 열차를 타기 위해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다가 정차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것에 절망하는 피란민의 모습이 연상되는 장면이 무언극으로 연출된다.

주인공의 꿈속에서는 색색갈의 잠옷을 입고 고깔을 쓴 출연자들의 유희로 연출되고, 간혹 출연자들이 대사를 읊조리지만 특별한 의미는 없다. 대단원에서 죽은 듯 움직이지 않는 주인공을 마치 인체조형물처럼 고정시키고 장례를 치르듯 출연자들이 주위를 맴 돌지만 결국 죽지 않고 깨어나 홀로 남은 모습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표현한다.

박민정, 송재열, 이현제, 임근혁, 조성우 등 출연자 전원의 혼신을 다한 무언극 연기와 열연은 갈채를 받는다.

 

프로듀서 김미형, 조명 김광훈, 조명오퍼 김영윤, 소품 소장호 등 스텝진의 노력과 기량이 드러나, 공동창작집단 가온의 서현우 구성 연출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관객의 기억에 남는 성공작으로 만들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