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락킹팀 락앤롤(LOCK N LOL)

힙합 인터내셔널(Hip Hop International) 우승으로 대한민국 락킹을 세계에 알린 '락앤롤'과의 인터뷰

2015-11-29     문화뉴스 신준현
   
 

S: 만나서 반갑습니다. 우선 독자 분들에게 락앤롤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L: 안녕하세요. 저희는 '락앤롤(LOCK N LOL, 이하 L)'이구요. 락앤롤이란 이름처럼 락킹을 하고 있고, 내년에 10주년을 맞게 되는 여성 3인조 락킹팀입니다.

S: 스트릿 트라이브에서 하는 첫 여성 팀 인터뷰인데, '락앤롤'이라는 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요?
L: '락앤롤'이라는 팀은 2006년에 만들어졌습니다. 2005년에 송유리(Young Green)양 이랑은 2:2 배틀인 'Pop Lock 2 on 2'라는 대회를 참가하기 위하여 'Lucky Locky'라는 팀으로 만나게 되었고요. 2006년에 '스트릿잼'이라는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팀을 만들어서 출전을 해야겠다. 라고 생각을 하던 차에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의 '락킹 웅(Locking Woong)'이 한지혜(Lil Star)라는 친구와 함께 여성 3인조로 팀을 만들어 출전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라고 제안을 하였고 스트릿잼을 위해서 만든 팀이 '락앤롤'이었습니다.

   
 

S: 언제부터 춤을 추게 되었고 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지혜(이하 Lil Star): 어렸을 때 그 당시에 인기 많던 가수들의 안무를 보고 시작하게 되었고 학교에서 장기자랑을 나가려고 친구들과 재미로 춤을 추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스위티 부기(Sweety Boogie)'의 '여린'이라는 친구와 같이 백제 예술 대학을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故전나마 교수님'에게 락킹을 처음 배우게 되었고 그 이후로 계속 락킹을 해오고 있습니다.

유리(이하 Young Green): 저도 TV에서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안무를 따라 추다 중학교 때 지금 '퍼플로우(Purplow)'의 리더인 '허니제이(Honey J)'와 '더비(The B)'멤버인 안지현양이랑 동아리 활동을 하며 걸스힙합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고등학생이 될 무렵에 청주에 '오메가 포스 크루(Omega Force Crew)'에게서 같이 공연을 하자고 제의를 받고 팀 단원이 되어서 활동을 하다 보니 스트릿 댄스란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던 중에 가장 눈에 띄고 관심이 가던 장르가 락킹이었습니다.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은 수원에서 했던 '소울파티(Soul Party)'라는 솔로 퍼포먼스 대회에서 우승했던 '락킹 웅' 오빠의 춤을 보면서 감명을 받았고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가지게 되어서 지금까지 락킹을 해오고 있습니다.

정은(이하 First Lady): 처음 시작은 다들 비슷한 것 같습니다. 스트릿 댄스라는 개념자체가 없던 시절부터 그저 마냥 춤추는 게 좋아서 연예인이나 가수들의 안무를 따라 추고 대학교 들어와서는 클럽도 가고 방송안무 위주로 춤을 추다가 지금의 남편인 '오리지널리티'의 '락킹 웅'을 만나서 스트릿 댄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 '이런 전문적인 춤이 있구나'라고깨닫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걸스힙합으로 시작을 했고 그렇게 활동을 잠시 하기도 했지만 스스로 여자다움이 없다. 라는 것을 깨닫고 함께 배우기 시작했던 락킹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여자들도 힘있게 할 수 있는 춤이구나!'라고 느꼈고 그이후로 지금까지 락킹을 하고 있습니다.

S: 각자가 춤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롤 모델'이 있었다면 
First Lady: 저 같은 경우엔 처음에는 '더 락커스(The Lockers)'를 먼저 알고 시작했던 것도 아니었고 주변에서 락킹을 하고 있던 '오리지널리티' 팀이 당시에는 활동도 많이 했고 락킹씬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자연스레 그 친구들처럼 되고 싶다는 게 처음이었습니다. 당시의 락킹 씬에는 선배님이라고 할 만한 여성 댄서들이 거의 없었는데, 이후에 '더 락커스'를 보게 되었고, 또 미국에 다녀오면서 '토니베실(Toni Basil)' 선생님이 70이 넘은 나이로도 댄서로 활동을 하고 제자 양성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언제까지 내가 춤을 출수 있을까 고민했던 부분들이 토니베실 선생님을 만나면서 많은 부분이 풀리게 되었고, 지금은 그분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Lil Star: 어렸을 때 처음 락킹을 시작할 즈음에는 '더 락커스'를 잘 몰랐었고, 당시엔 '오리지널리티'의 영상을 더 자주 봤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락킹 웅'오빠와 지웅 오빠를 반반 섞어놓은 댄서가 되고 싶다고 항상 생각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생각은 그 당시에만 할 수 있었던 생각이었고 지금은 딱히 롤 모델은 없는 것 같습니다.

Young Green: 저는 처음 락킹을 시작할 때 실제로 본 사람이 '락킹 웅' 오빠였고, 지금도 저의 선생님이라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웅이 오빠가 제 롤 모델이었던 것 같습니다. 교육자적인측면에서도 그랬고 댄서로서도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찾아보자면 지금은 돌아가신 '그렉 켐벨락 주니어(Greg Campbellock Junior)'처럼 많은 제자양성이나, 후배 양성에 도움이 되는 댄서가 되고 싶고, 한분 더 꼽자면 '토니고고(Tony Gogo)'를 꼽고 싶습니다. 여자가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음세대에 그런 영향과 가르침을 줄 수 있는 댄서가 되고 싶습니다.

   
 

S: 이번 '힙합 인터내셔널(Hip Hop International)'의 우승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이번 대회의 힙합 인터내셔널 '메가크루(Mega Crew)' 부분 우승은 지상파의 뉴스와 월스트리트 저널에도 소개될 만큼 큰 이슈였는데요. 처음 참가해서 우승을 하신 걸로 아는데 최초에 참가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L: 처음 시작은 저희 팀이 쇼도 좋아하고, 퍼포먼스도 좋아하는 팀이라서 한국에서도 뮤지컬 같은 쇼 관람을 즐겼습니다. 태양의 서커스 같은 라스베가스의 유명 쇼들도 많았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라스베가스에 가서 다양한 쇼를 보고 오자. 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미국현지에 지내던 '문행'이라는 친구가 라스베가스에 힙합 인터내셔널이라는 대회가 있다는 걸알려주었고 그 대회에는 스트릿 댄스 배틀과 함께 퍼포먼스 부분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것이 작년이었는데 그 소식을 듣자마자 그 해에는 바로 참가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힙합 인터내셔널이라는 대회는 라스베가스에서 열렸고 대회를 참가도 할 겸 라스베가스 여행도 할 겸 해서 참가를 하자고 결정을 했습니다. 저희 '락앤롤'과 '립스티컬펑크', '락킹스테이션', '킥키밤스', 롤스키즈' 친구들과 정상현, 이해성, 임성묵, 이용욱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모여서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메가크루 부분의 경우에는 최소 퍼포먼스 참가 인원이 15명일만 큼 많은 인원수가 함께 퍼포먼스를 하는 부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많은 인원이 단일 퍼포먼스에 이렇게 참가하는 경우가 드물다 보니 갈 수 있는 인원들을 모으고 대회에 필요한 경비에 관한 설명도 했고, 1년이나 되는 퍼포먼스 준비 기간에도 다들 이해를 해주었습니다. 물론 중간에 비용 문제로 인하여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한 명의 낙오도 없이 모두 다 함께 미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S: 듣기로는 멤버들 모두가 사비로 1억 이상의 경비를 충당하여서 참가한 것으로 아는데 최초 참가를 할 때 우승을 예상했다거나 순위 목표가 있었는지 
L: 경비자체가 많이 들다 보니 1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서서히 준비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고 다른 나라의 경우 이 대회가 예선이 진행되고 우승자를 뽑아서 경비의 일정부분을 대회 주최 측에서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는 힙합 인터내셔널 대표선발전이 없었고 저희의 사비로 가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대회장이 위치한 곳이 큰 리조트 내부라서 그 리조트에서 묵어야 유리하단 것 또한 알게 되었고, 그 리조트가 조금 비싸다고 하더라도 그 리조트에 묵어야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문의 메일을 보내면 일주일이 지나도록 답변도 없었고, 저희가 개별적으로 호텔스 닷컴에 알아보고 예약을 하고 하기도 했고,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이런 부분을 컨설팅을 해주고 저희는 돈만 내면 되는 상황이었다면 좀 더 수월하게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겠지만, 사소한 것 하나부터 모두 저희가 알아보고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터라 더욱 더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최초에 대회에 참가할 때부터 참가하는 것에 의미를 두자고 생각하고 대회에 참가를 했습니다. 퍼포먼스 참가만 있었다면 조금 고민을 했을 텐데, 장르별 1:1배틀도 있었고 심사위원 분들이 항상 OG댄서 분들이 오신다는 것도 있었고 힙합 인터내셔널이 끝나고 일주일 뒤에는 항상 락킹 캠프가 진행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비슷한 시기에 진행되다 보니 '대회에 참가해야겠다'라는 생각에 더욱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준비를 시작할 때부터 두 개의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의 예선을 통과해야 파이널에 올라가는 상황이었고 예선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어렵게 준비한 두 번째 퍼포먼스는 보여주지도 못한 체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예선만 통과하고 올라가서 두 번째 퍼포먼스만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라는 것이 저희 모두의 바램이었습니다. 파이널에 올라간다든가, 우승을 한다든가, 하는 건 전혀 생각이 없었습니다. 또한, 출발 전부터 가장 많이 고민을 했던 부분이 두 가지의 퍼포먼스 중에서 어떤 퍼모먼스로 예선에 참가할 것 인가하는 부분이었습니다.

하나만 보여주고 떨어 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셋이서 회의도 많이 했고, 현지의 분위기나 관객들의 반응을 예상할 수도 없었고. 지금까지의 대회영상을 보면 안무를 하는 친구들이 강세였던 대회라서 스트릿 댄스로 준비한 저희의 퍼포먼스가 과연 어떤 느낌으로 그들에게 보여 질지 몰랐기에 전혀 감이 없는 상태에서 퍼포먼스의 순서를 정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메가 크루를 기준으로 50개의 팀이 참가를 하여 예선을 통과한 25팀이 본선에 올라가고 그 25팀 중에 4팀이 작년도 디펜딩 챔피언과 함께 총 5개의 팀이 파이널로 올라가는 시스템이었습니다.

S: 많은 분이 보고 놀란 그 퍼포먼스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것인가요?
ㄴ L: 저희 셋이 주축이 되어서 지금까지 해왔던 많은 퍼포먼스의 장점을 최대한 모으고 살려서 기존의 퍼포먼스보다 조금 더 버라이어티한 퍼포먼스를 짜보기로 했습니다. 어떤 부분은 어떻게 살리고, 어떤 부분에서는 어떤 구성을 넣을지에 대한 회의 자체도 상당히 오래 했었습니다.

S: 많은 인원이 퍼포먼스 준비를 위하여 모이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준비를 하셨는지요?
ㄴ L
: 우선 다들 하는 일들이 있었던 친구들이라서 모일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다들 새벽시간 밖에는 모일 수 있는 시간이 없었고, 모여서 연습을 하더라도 다음날 바로 출근해야 하는 친구들이나 학교에 가야 하는 멤버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미리 미리 준비를 하기 위해서 1년이라는 시간을 들여서 조금씩 준비를 했던 것이고요. 초반에는 안무가 정해진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퍼포먼스에 포함될 스트릿 댄스 각 장르별 선생님을 새벽에 초빙하여 대회준비를 하는 인원들이 모여서 레슨을 받았습니다.

대회의 규칙 자체가 한 장르로만 참여를 하지 못하고 퍼포먼스자체에 3가지의 장르가 섞여있어야 한다는 룰이 있었기 때문에 락킹을 주로 하는 저희였지만 다른 장르를 위해서 초반엔 레슨을 많이 받았고, 후반부에 가서는 때마침 방학시즌이랑 기간이 겹쳐서 모두들 개인의 스케줄을 빼고 대회준비에 전념하였고 새벽연습을 일주일에 두 번에서 세 번은 필수로 했습니다.

물론 방학기간이라도 직장인 친구들이나 강의를 하거나 수업을 해야 하는 친구들은 연습 다음날은 밤을 꼬박 샌 상태에서 바로 출근을 하고 강의를 나가고 하는 일정의 연속이었습니다. 체력적으로도 많이 힘들었고, 준비하면서 눈물을 흘릴 만큼 어려운 점들도 많았습니다. 두 번째 퍼포먼스를 포기할까도 고민을 했었지만, 모두가 하나 되어 최선을 다해 준비해주었고, 그런 부분들이 멤버들 모두에게 정말 고마웠습니다.

S: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퍼포먼스로 우승을 하였을 때 감동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요. 우승할 때 당시의 기분이 어떠셨는지요?
L: 준비를 하면서 고생을 정말 많이 했던 터라 눈물을 흘리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처음에 도착을 했었을 때 아무런 정보 없이 미국 땅에 도착해서 대회장에 가보니 참가를 한 다른 친구들은 저희가 연습을 한 것보다 더 많은 연습을 했을 것 같았고, 그 전부터 그 대회에 참여하는 스타 안무가들이 많았기에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열린 대회에서 첫 번째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을 때 관객들의 반응과 심사위원들의 반응이 예상보다 좋았고, 결과표를 받아보니 예선 순위 15위로 첫 예선을 통과했었습니다. 그 순위의 의미보다는 두 번째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도 들었습니다. 물론 관객들의 반응에 비하여 순위는 낮아서 정말 어려운 대회구나라고 다들 느낄 때 세분화된 점수채점 중 감점 부분이 저희가 가장 높은 것을 보고 감점된 점수를 더해서 계산해 보니 예선순위는 3등이었습니다.

대회의 룰 자체에 등장할 때의 30초와 퇴장할 때 의 30초는 모든 멤버가 무대 위에 있어야 한다는 룰을 분명 사전에 전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룰을 잊은 체 퍼포먼스를 짰었고 그 부분에서 다른 팀들은 없거나 0.01~0.03단위로 받은 부분에서 -1점의 감점을 받았습니다. 그 순간 우리가 정말 감점 없이 퍼포먼스를 했다면 좀 더 높은 점수로 예선을 통과할 수 있었구나. 라고 다들 느끼게 되었고, 직후부터 열띤 회의와 함께 바느질의 연속이었습니다. 사실 옷에 적혀있는 글씨를 이용한 퍼포먼스에 저희가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려고 했었습니다. 최초에는 'To be Continued'라고 보여줌으로써 두 번째 퍼포먼스에 대한 암시를 전달하려고 했었고 그 글씨를 보여주는 부분에서 '관객이나 심사위원의 호응이 정말 좋았다'라는 것을 퍼포먼스 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숙소에 들어가서 두 번째 날 보여줬던 'Lock N Lol'도 그렇고 첫날의 To be Continued 글씨를 바꿔 보자고 결단을 하였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행사장에 티셔츠를 현장에서 찍어주는 부스에서 티셔츠에 'Go To Final'이라는 글씨를 찍고 그 글씨 부분만 오려서 저희가 준비했던 의상에 다들 손바느질로 글씨를 옮겨서 전체적인 메시지를 다르게 바꾸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Go To Final이라고 적혀있는 티셔츠를 보여줬던 퍼포먼스로 세미파이널 2위로 결승진출이 결정이 되었습니다. 전날 새벽까지 이어진 바느질과 지금까지의 노력이 생각났고 많은 우여곡절이 겹쳐서 진출하게 된 결승발표 순간이 오히려 우승을 할 때보다 더 감격이었고 기뻤습니다. 티셔츠 글씨에 대하여 잠시 이야기를 하자면 저희가 'Lock N Lol'을 처음에 보여주고 그 다음에 'LOCK/POP/B-BOY'를 보여주었고 공개된 영상에서 보면 'We Will Be Back HHI'되어있는데 예선에서는 To be Continued였고 세미파이널에서는 Go To Final로 메시지를 바꿨었습니다.

그 티셔츠 메시지를 전달하는 부분에서는 기립박수가 나올 정도의 호응이 나왔고 'We Will Be Back HHI' 이라는 메시지처럼 우승을 하여서 다시금 HHI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퍼포먼스를 바꾸고 연습했던 시간만큼 바뀌는 글씨를 바느질하는 데 쏟아 부은 시간도 많았었습니다. 그랬던 일들이 우승할 때 많이 생각이 났었습니다.

S: 대회를 준비하며 많은 일이 있었을 텐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어떤 부분이었나요.
L: 준비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잘하고 싶다는 욕심과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걸고 나가게 되다 보니 그 부분에 대한 압박감이 뒤따랐습니다. 초청을 받을 수 있게끔 여러 가지를 제시하고 그쪽에서 원하는 프로필과 기존의 활동에 대한자료를 보낸 뒤에야 참가 허가가 났었고 그렇게 참가하게 된 대회였기에 '대한민국이라는 이름만큼이나 잘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퍼포먼스를 짜는 것이 가장 어려웠고 힘들었습니다. 각자의 생각도 다 달랐고 24명이 함께하는 퍼포먼스는 처음이었고, '저희 스스로 만족하는 퍼포먼스가 나와야 그들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존의 활동을 해오며 각자가 느낀 노하우와 장기들을 살려가며 24인 각자의 의견을 모아서 그 부분을 정리하고 답을 만들어 가는 과정까지가 어려운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퍼포먼스 곡을 두 개를 할 것이냐 한 곡을 더 완성도 있게 할 것이냐 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많은 회의를 했었고, 그런 부분을 결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결국 저희 3명이 해야 하는 부분이고 그 결정에 따라서 함께 가는 24명의 모두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던 결정들이기에 그 부분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또한, 스포츠 경기처럼 후보가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다들 체력이나 부상을 조심하는 부분도 어려웠습니다. 출국 직전 멤버 한명이 부상을 당했을 때 전체퍼포먼스를 수정을 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도 했었고 암울한 분위기였었습니다. 쉬운 점은 없었고 어려운 점은 한없이 많았었습니다.

S: 이번 힙합 인터내셔널 우승을 통하여 달라진 부분이나 느낀 점이 있으신가요?
Young Green: 다른 댄서들도 똑같이 느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기분이 좋은 점은 예전에 잠깐이라도 락킹을 배웠거나 락킹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이 락킹을 더 배우고 싶어 하고 더 추고 싶어 하는 것과 락킹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게 가장 기뻤습니다. 저희가 스트릿 댄스씬에서 락킹으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것이 가장 기분이 좋았습니다.

Lil Star: 가기 전의 저희의 예상보다 좋은 결과로 돌아오다 보니 락앤롤 크루 24명 멤버의 팀워크도 좋아졌고 각자의 팀이 있지만 그 멤버들 모두가 '락앤롤'이라는 팀에 대한 애착이 커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듭니다. 저희 안에서 무언가 돈독해지고 다들 함께 고생을 했고 그 과정을 거치면서 돌아올 땐 다함께 가족이 되어서 돌아온 것 같아서 너무나 좋습니다.

First Lady: 다들 똑같이 느끼겠지만 심사위원으로 계셨던 분들이 거의 스트릿 댄스씬의 OG 마스터 분들이었습니다. 스트릿 댄스를 하는 팀들이 자주 안 나오던 대회에서 스트릿 댄스로 참가하고 우승을 하였다는 것에 그분들이 저희보다 더 기뻐하고 자랑스러워 하셨습니다. 저희가 평소 찾아가서 인사를 드려도 뵙기 어려웠던 분들이 대회가 끝난 후 직접 찾아와 축하해주시고 인사해주셨고 '토니 바실' 선생님은 직접 집으로 초대까지 해서 식사도 대접해주시고 수업도 무료로 해주시고 하셨습니다. OG 댄서 분들에게 인정받았다는 느낌과 그분들에게 조금의 기쁨이 되었다는 생각이 저희에겐 정말 보람찬 부분이었고 기뻤던 부분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락앤롤 크루의 소속감을 느끼고 서로가 친해진 것도 좋고 고맙지만 저희 락.앤.롤 3명의 의미가 더 커지고 셋이서 힘을 합치면 또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S: 또 도전해보고 싶은 대회나 행사가 있으신가요?
L: 앞으로 다가올 KOD World Cup이 있겠네요. 준비기간이 짧아서 어렵겠지만 열심히 준비해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입니다.

S: 국내행사 이야기로 넘어와서 지금까지 참 많은 대회에 참가를 하신 걸로 아는데, 국내 대회 중 기억에 남는 행사는 무엇이었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L: '락 스테이디 파티(Lock Steady Party)'가 있겠네요. 저희가 기획을 해서 그런 것보다는 락킹이라는 춤 하나만으로 기획부터 그 행사에 진행되는 쇼와 퍼포먼스 모든 것들이 락킹으로 진행이 되고, 락킹을 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함께 와서 락킹을 하며 함께 놀고 즐길 수 있는 행사입니다. 행사의 디테일은 조금씩 바뀌기도 하지만 루키부분 이라던가, 타 장르 락킹 배틀, 타 장르 락킹 퍼포먼스, 락앤롤의 또 다른 변신이라던가 하는 다양한 이벤트들과 함께 꾸준히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일반인 관객 분들과 타 장르 댄서 분들도 즐겁게 락킹을 하며 즐겁게 놀 수 있도록 앞으로도 열심히 만들겠습니다.

S: 최근 들어 행사의 숫자들 또한 많아지고, 다양한 대회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이러한 부분에 대하여 어떻게 느끼시나요?
L: 예전에 일본에 갔을 때는 주말마다 행사가 있다는 말에 놀라기도 했고 부럽기도 했고 우리나라는 언제 저렇게 되나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정해진
행사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설렘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행사 기획자들도 많아지며 하루에 5개~6개씩 행사가 열리기도 하고 그렇게 행사가 많아져서 댄서들이 설 무대가 많아지는 건 좋은 반면에 지속적으로 열리며 차별성 있는 대회의 필요성 또한 느끼고 있습니다. 그 행사만의 색과 그 행사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댄서들 같은 느낌이 아니라 획일화된 행사 내용과 멤버 구성이 이루어지면서 결과적으로 댄서들 스스로 관객들에게 소외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댄서들과 기획자 모두가 무조건 행사의 횟수를 늘리기보다는 행사의 질을 높이고 관객과 댄서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행사를 만드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S: 각자가 느끼는 락킹이라는 춤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First Lady: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은 군무를 할 때 가장 멋지다는 느낌이 듭니다. 또한, 기본이 너무나 정리가 잘되어 있어서 전 세계 어딜 가든 동작이름 몇 번에 다음번 동작은 무엇이다. 라고 하면 모두가 함께 즉석에서 다 똑같이 할 수 있을 만큼 정리도 잘되어 있고, 정말 신나는 춤인 것 같습니다. 파티댄스에서 나온 춤이다 보니 혼자 할 때보다 둘이 재미있고, 둘일 때보다 넷일 때가 더 즐거운 춤인 것 같습니다. 서로 교감하고 함께하는 부분이 더 중시되는 춤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군무를 할 때 그런 느낌들이 더 배가 되고, 커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Young Green: 저도 정은언니 말씀처럼 혼자서 출 때의 즐거움보다 여럿이서 함께 출 때가 더욱 즐겁고 공감대를 나누며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른 춤과 비교했을 때 가장 장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춤에 뿌리가 되는 기본적인 요소들이 락킹에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고 느끼기도 하고 락킹이라는 장르가 요즘 나오는 노래이던 예전부터 들어왔던 노래이던 힙합이던 디스코이던 어느 음악에나 잘 흡수되고 놀기 편한 춤이라는 것이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S: 지금 락앤롤 역시 락킹을 시작하는 댄서들에게 선망에 대상일 텐데, 락킹이라는 춤을 잘 추고 즐겁게 추기 위해서 조언해주고 싶은 것들이 있나요?
First Lady: 워낙 스쿨들도 많고 영상들도 많아서 습득하는 능력이 저희에 비하여 정말 빠른 것 같습니다. 또한, 수업을 하시는 선생님들도 잘 정리를 하고 수업을 해서 수업을 하고 있고요. 하지만, 중도에 여러 사정으로 인하여 춤을 그만 두는 친구들을 보며 재능도 있고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친구들인데, 그만두는 이유가 배틀의 순위나 결과라던가 하는 것 때문에 그만두는 것을 보며 참 많이 아쉬웠습니다. 지금까지의 이 씬을 보면 짧게 잠시 하기보다는 오랜 시간동안 춤을 즐기고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 결국 나중에 잘되는 것 들을 보며 당장 결과 때문에 그만두거나 무언가를 섣불리 판단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락킹이라는 춤은 하면 할수록 즐겁고 그 즐거움은 무궁 무진 하기에 본인이 락킹을 했던 만큼 남에게 자신 있게 락킹이 무엇인가 전달할 수 있을 정도로 깊게 알아가고 매진하는 친구들이 더욱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Young Green: 락킹을 추는 여자 친구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남자댄서와 굳이 비교를 해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처음 시작했을 때 여자 락킹 댄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사실 똑같은 댄서이고 성별만 다를 뿐 성별로 인해서 춤이 달라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스스로를 좀 더 파악을 해서 성별의 구분 없이 자기만의 춤을 췄으면 좋겠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여자 락킹 댄서가 많이 없는 현실이라 남자 락킹 댄서들에 비하여 스타일이 다양하지 못하다고 느껴지는데요. 볼 수 있는 선배가 많이 없어서 그렇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다들 조금 더 고민하고 노력해서 다양한 스타일도 도전해보고 자신만의 춤을 추는 것 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Lil Star: 이하동문입니다.

S: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준비하고 계신 계획들이나 목표가 있으신가요?
ㄴ First Lady: 우선은 지금 다가올 대회들과 행사들이 많기 때문에 크루로 활동할 수 있는 부분에서 활동을 하고 각자의 활동을 열심히 하고 내년에 갈 미국을 슬슬 생각을 하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디펜딩 챔피언으로 가는 힙합 인터내셔널 준비를 하며, 제자 양성도 하고 수업도 해가며 지금처럼 댄서로서의 활동은 꾸준히 해가며 쇼 케이스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 만큼 쇼 케이스 쪽으로 조금 더 눈을 많이 돌릴 것 같긴 합니다.

Lil Star: '트라이앵글(TRYANGLE)'이라는 이름으로 10월 첫 주에 진행하는 '브라운클래식(Brown Classic)'과 그 다 음 주에 열리는 'KOD World Cup' 대회 참가와 이어서 스트릿잼, 펑크 스타일러스 퍼포먼스 등에 참가하고 11월에 있을 Lock Steady Party가 올해를 마무리하는 가장 큰 행사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Young Green: 저희 3명이서 팀을 만들고 처음으로 했던 스쿨 이름이 '롤팸(LOL FAM)'인데요. 2년 정도 '롤팸'이라는 이름으로 진행이 되었지만 3명의 멤버가 동시에 수업을 진행했던 적은 없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새로이 부활하는 '더 롤팸'은 함께 퍼포먼스도 만들어 연습하면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끼리 '롤팸'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예전 롤팸 1기가 '립스틱컬 펑크'로 활동을 하고 그다음 세대가 '락키스테이션'에서 활동을 하고 '킥키밤스'나 '롤스키즈'도 다 롤팸 출신들이라 또 다른 제5, 제6의 롤팸을 만들어 락킹을 하고 싶어 하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과 함께 춤을 추고 무대 위로 그 친구들을 올려줄 수 있는 선생님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여성최초', '한국최초'라는 타이틀을 많이 했던 만큼 이번 KOD World Cup도 아직 저희가 목표하고자 하는 것들 중 하나이기에 여성 팀 최초로 KOD World Cup에서 우승할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할 것 같습니다.

S: 내년이 '락앤롤' 창단 10주년인데 특별하게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나요?
L:  락앤롤 창단 10주년과 함께 Lock Steady Party역시 10주년이 되는 해라서 저희가 준비하는 Lock Steady Party를 조금 더 특별하게 준비해볼까 합니다. 기대해주세요.

S: 스트릿 트라이브와 스트릿 트라이브 독자 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L: 우선 잡지를 만들고 계신 스트릿 트라이브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수익이 나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스트릿 댄스 씬에 대한 열정이나 관심이 없다면 하기 힘든 일이고 잡지를 만든다고 하여서 어떤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님에도 댄서들과 이 씬을 위해서 이렇게 지속적으로 잡지를 만들어 주고 있다는 부분에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짧게 만들어지다 사라질 줄 알았는데 이렇게 오래도록 제작이 되면서 스트릿 트라이브 역시 우리나라 댄스 씬에 역사를 기록하며 나간다는 부분처럼 저희 역시 처음, 최초라는 타이틀이 지속적으로 저희 팀 이름 앞에 붙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락앤롤'이 되겠습니다.

S: 마지막으로 자유롭게 하시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다면 해주시기 바랍니다.
L: 우선 '락앤롤 크루' 사랑 하구요. 저희가 'HHI'에 다녀오며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영상 찍어주신 '뱀 댄스(Vam Dance)' 김진수 감독님과 락킹이라는 춤을 소개하는 공연에 가서 인연이 되어 미국 대회장까지 오셔서 응원해주시고 금전적으로 도움도 주시고 우승 기념으로 한식이 비싼 LA에서 소고기까지 사주신 부회장님과 샌디에고에 가면서 전세한 버스의 기사님이 한국분이셨는데 우승을 해서가 아니라 대회 참가한다는 것만 아셨을 때부터 저희에게 도움 주시기 위해서 알아봐 주시고 응원해주시고 예선부터 찾아오셔서 결과 발표까지 기다려주시며 간식과 한식까지 제공해주시며 단지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도움 주신 기사님 감사했고, 현지까지 응원와준 '와일디 모션(Wildly Motion)', 안무 도와주며 밤늦은 시간에 대회준비를 위한 레슨을 도와주던 와일디 모션의 우태(Wootae), 스위티 부기(Sweety Boogie)의 나라(Nara), 크랙 키즈(Crack Kids)에 라울(Raul) 이렇게 세분의 강사님들께도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희 팀을 만들어준 락킹 웅 오빠와 저희의 스승님인 오리지널리티 오빠들에게도 감사하고 레벨6 가족들과 팝군(Popkun) 원장님. 마지막으로 멀리서 스트리밍으로 영상을 보여 응원해주고 자기 일처럼 기뻐해 준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글] 스트릿트라이브 & 문화뉴스 신준현기자 streettribetaz@mhns.co.kr
[사진] Street Tribe Vol.3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