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기사는 '더 시그널'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문화뉴스=아띠에터 칼럼그룹] MIT 학생 닉(브렌튼 스웨이츠 분)은 연인 헤일리(올리비아 쿠크 분)를 캘리포니아로 데려다 주기 위해 친구 조나(뷰 크냅 분)까지 동행합니다. 차량으로 이동 중 닉과 조나는 평소 대립해오던 해커 노매드의 IP 주소를 추적해 그의 네바다 은신처를 찾아냅니다. 하지만, 닉은 갑자기 정신을 잃은 뒤 깨어나 데이먼 박사(로렌스 피시번 분)가 책임자인 지하연구시설에 갇혀있음을 알게 됩니다.

'환상특급'과 '엑스파일' 그리고…

윌리엄 유뱅크 감독이 연출은 물론 각본에도 참여한 '더 시그널'은 해커의 신호(The Signal)를 추적한 두 공대생이 갑자기 감금되어 탈출을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을 묘사하는 SF 스릴러입니다. 저예산 SF 영화라 스케일이 작으며 액션도 많지 않고 등장인물도 적습니다. 낯익은 배우는 데이먼 역의 로렌스 피시번 정도입니다. 주연을 맡은 브렌튼 스웨이치는 망가지기 전 젊은 시절의 에단 호크와 유사한 외모입니다.

'더 시그널'은 다양한 문학 작품 및 영화들을 연상시키는 요소로 가득합니다. 닉과 함께 감금되는 친구 조나(Jonah Breck)은 구약성서에서 고래 뱃속에 갇혔다 살아나온 예언자 요나(Jonah)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입니다. '설국열차'에서 고아성이 분한 등장인물의 이름이 요나이기도 했습니다. 조나는 닉과 헤일리를 탈출시키며 장애물을 부수는데(Break) 그의 성 브렉(Breck)과 발음이 유사합니다.

데이먼(Damon)의 정체는 외계인이자 정체를 숨긴 해커 노매드(Nomad)임이 결말에서 밝혀집니다. 이름을 역순으로 읽은 것입니다. 동시에 데이먼이라는 이름은 악마, 혹은 악령을 의미하는 'Demon'과도 발음이 유사합니다.

초반부 닉과 조나가 노매드와 메일을 주고받는 장면에서는 SF 걸작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필립 K. 딕의 원작 소설 제목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의 패러디도 제시됩니다. 닉과 조나가 발견한 노매드의 오두막을 오밤중에 캠코더로 촬영하는 장면은 1999년 작으로 당시 화제가 되었던 저예산 호러 영화 '블레어 윗치'에 대한 오마주로 보입니다.

자신들이 감금된 공간의 정체를 알지 못한 채 필사적으로 탈출하기 위해 애쓰는 서사와 개운치 않은 결말은 '큐브', 주인공이 연인과 통제된 공간에 구별되어 감금된다는 설정은 'THX1138', 감금된 자를 숨어 엿보는 소재는 '트루먼쇼' 등을 연상시킵니다. 인간과 기계의 융합은 일본 애니메이션 '아키라'나 '공각기동대'를 연상시키는데 특히 양 팔이 기계로 바뀌어 괴력을 발휘하는 조나는 '아키라'의 테츠오를 떠올리게 합니다. 조나와 테츠오는 주인공의 절친한 친구이자 조연 캐릭터라는 점에서도 동일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 시그널'과 가장 가까운 것은 SF 드라마 '환상특급'과 '엑스파일'입니다. 미니멀리즘에 입각해 철저히 주인공의 1인칭 시점에서 기묘한 상황의 연속을 제시하는 측면은 '환상특급'을, 로스웰사건의 51구역을 소재로 하며 외계인 납치로 귀결되는 결말은 '엑스파일'을 연상시킵니다.

결말을 비롯한 약점들

고어 장면은 거의 없지만 미스터리 호러의 요소는 강합니다. 대중적 영화는 아니며 상당수 관객에게는 지루하거나 짜증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20대 초반인 주인공과 친구들의 연령대까지 감안하면 10대 관객을 위한 SF 영화로 분류해도 무방할듯합니다.

'더 시그널'의 최대 약점은 결말입니다. 이것저것 꽁꽁 숨겨두며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한껏 증폭시키지만 결과적으로 외계인 납치 하나로 모든 궁금증을 한 방에 해소하려 합니다. 잔뜩 숨겨둔 것치고는 너무나 썰렁한 결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예산 SF 영화라면 설정의 참신함이나 철학적 고찰, 혹은 인상적인 비주얼 셋 중 하나라도 갖춰야 하지만 '더 시그널'은 셋 중 어느 것도 갖추지 못한 썰렁한 영화입니다. 닉의 팔목에 새겨진 숫자 4개의 비밀이 고작 '합계 51'로 로스웰사건의 51구역을 상징한다는 트릭은 상상력의 빈곤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부 설정에도 의문이 남습니다. 닉과 헤일리의 탈출을 돕는 노파를 비롯한 일부 인물들은 데이먼과 같은 외계인으로 보이지만 데이먼에 소극적으로 반기를 듭니다. 하지만 그들이 반기를 드는 이유는 전혀 설명하지 않습니다. 헬멧을 벗으면 목뒤에 기계 부품이 노출되는 데이먼과 헬멧을 착용하지 않아도 목뒤가 인간과 동일한 노파는 설정 상 무엇이 차별화되는지도 설명이 없습니다.

외계인은 거대 UFO를 보유하고 지구의 풍경을 고스란히 UFO에 재현하며 인간에 기계를 융합할 정도로 엄청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정작 데이먼이 슈트케이스 속에 꽁꽁 숨겨두다 노파를 살해할 때 사용하는 비장의 무기는 인간의 권총이라는 설정도 실소를 자아냅니다. 닉을 비롯한 지구인들이 지켜보고 있지 않으니 자신들의 종족을 살해할 때는 자신들의 기술 수준에 어울리는 최첨단 무기를 사용하는 편이 설득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조나와 톨게이트에서 교전을 벌이는 외계인들 또한 기관총과 수류탄 수준이 전부라 위력적인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더 시그널'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자신의 두 다리가 기계로 바뀐 것을 알게 된 닉이 자신의 남근이 정상적으로 남아 있는지 확인하는 장면입니다. 유머 감각이 '더 시그널' 전체를 통틀어 이 장면에만 국한되어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글] 아띠에터 이용선 artieto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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