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우 샤오시엔식 새로운 여성 무협장르의 탄생.

   
 
[문화뉴스] "영화가 강이라면, 혹은 급류라면 그 흐름, 속도, 우회하는 방향, 빙빙 돌거나 회오리치는 방식 등에 관심 있지 그 근원지나 바다에 닿는 지점이 어딘지 등은 덜 신경 쓰는 편이다. 급류에 휘몰아칠지 고요함을 바라볼지는 관객의 몫이다."

대만 뉴웨이브 대표감독. 아시아 대표 거장. 세계가 극찬하는 감독. 허우 샤오시엔 감독을 수식하는 말을 나열하기에는 현존하는 수식어가 모자라다. 1980년 '귀여운 소녀'로 데뷔한 허우 샤오시엔은 1989년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랑 수상작인 '비정성시', 1993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장 수상작 '희몽인생'을 비롯하여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남국재견','해상화', '밀레니엄 맘보', '쓰리 타임즈'까지 내놓는 작품마다 예술적인 성취와 더불어 세계 영화 역사를 다시 쓴 감독이다. 누군가 그에게 "이 영화는 당신의 이야기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주변엔 당신과 비슷한 사람 하나 없이 항상 혼자이지 않은가"라고 말한 것처럼,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개인사와 일상을 영화에 담아내며, 역사, 사회의 모습을 투영 및 시대적 문제의식을 조명해왔다.

그는 8년 만에 첫 무협영화 '자객 섭은낭'으로 돌아왔다. 이는 제68회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 제52회 금마장에서 작품상 포함 5개 부문 최다 수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지아장커, 짐 자무쉬, 고레에다 히로카즈, 봉준호, 허진호 감독을 비롯하여 전 세계 언론사가 이번 영화에 극찬을 보내며 다시 한 번 거장의 저력을 세계 영화계에 입증시켰다.

   
 
이번 영화는 감독이 대만 국립예술전문학교 당시에 읽었던 당나라 시대의 전기 중 가장 좋아했던 인물인 '섭은낭'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이러한 이야기를 가진다. 검보다 강한 사랑. 차마 끊을 수 없던 운명의 대결이 시작된다. 고위관료의 딸로 태어났지만, 정혼자였던 전계안과의 이별 후 부패한 관리를 살해하는 암살자로 키워진 섭은낭. 어느 날, 스승으로부터 위박 지역의 절도사이자 자신이 과거 열렬히 사랑했던 전계안을 암살하라는 명을 받는다. 자객의 정도와 사랑 앞에서 은낭은 흔들린다. 27일 건대 롯데시네마에서 영화 '자객 섭은낭'의 시사회와 함께 내한한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 배우

   
 
아시아 인기 배우 서기, 장첸, 츠마부키 사토시의 만남만으로도 '자객 섭은낭' 영화는 화제를 모았다. 자신이 원하는 배우를 미리 연상한 후 시나리오를 쓰기로 알려진 허우 샤오시엔 감독에게 '섭은낭' 역의 배우는 오직 '서기'였다. '밀레니엄 맘보'에서 감독과 첫 호흡을 맞춘 서기는 '쓰리타임즈','자객 섭은낭'까지 출연하며 감독의 뮤즈로 자리매김했다. 서기는 인터뷰에서 "역할 속에 그렇게 오래 머물러 있던 것이 처음이다. 고소공포증이 있었고, 액션에 정통한 사람이 아니므로 협객의 모습을 계속해 연구했다."며 여성 자객을 연기한 소감을 밝혔다.

 

   
 
장첸은 사랑도 권력도 완전히 쥘 수 없었던 슬픈 운명 속의 군주를 연기한다. 그는 뚜렷한 이목구비와 오랜 잔상을 남기는 연기를 선보이며, 왕가위 감독의 '해피 투게더'로 데뷔해서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 왕가위 감독의 '에로스','일대종사', 김기덕 감독의 '숨' 등의 작품으로 거장들과 호흡을 맞추며 세계적인 배우 반열에 올랐다. 비하인드 스토리로 감독은 그가 가진 깨끗한 이미지를 높게 평가했다고 언급하며 현장에 있는 모든 스태프도 배우 장첸, 인간 장첸을 좋아했다고 전한다.

   
 
상처받은 은낭을 감싸주는 운명적인 남자를 연기하는 마경소년 츠마부키 사토시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뜨거운 인기를 얻고 아시아 대표 로맨스 배우로 떠올랐다. 일본 사람인 그는 "처음으로 촬영 현장에 왔을 때, 언어를 초월하는 뭔가를 느꼈다. 대사와 움직임 등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이, 우리가 생각했던 세계를 만들어냈다"며 작품과 감독에 대한 신뢰감을 드러냈다.

 

   
 
2. 연출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들은 리얼리즘을 추구한다. 감독은 "무협영화에서 일반적으로 많이 날아다니며 액션을 하지만, 현실과 다르게 중력의 법칙에 어긋난 것은 하지 않으려 했다"며 현실에 기반을 둔 것을 중시하는 그의 연출론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판타지적인 요소 대신에 오히려 어린 나이에 어른들의 정치싸움에 이용되어 원치 않던 칼의 길을 가야 했던 섭은낭의 슬픔과 아픔을 관조적이고 정적인 그만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빠른 리듬의 기존 무협영화와 달리 이는 그녀가 지닌 아픔과 슬픔의 깊이만큼 롱숏과 롱테이크를 주로 사용하여 찬찬히 느리게 그녀를 따라간다.

이에 대해 감독은 "나는 롱 샷의 영화들을 선호해왔다. 인물들 뒤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또 주변 오브제와 배경까지 보이는 넓은 시퀀스 샷이 좋다. 넓은 시퀀스 샷은 항상 영화를 더 깊이 있게 한다. 한 샷에 진행되는 모든 것이 응축해 있다. 물리적으로 움직임을 단절시키는 방식의 과장된 연출기법으로 액션을 편집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또한, 나는 배우들의 몸과 얼굴에 가까이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연기하는 캐릭터를 소화할 때 방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일은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수용하는 것이고, 가능하다면 그중 최선의 순간을 포착하는 일이다"며 연출론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3. 화면
할리우드의 일간지 버라이어티 지(Variety)는 "숨 막히는 우아함, 아름답다!"며 영화의 미장센에 찬사를 보냈다. 아시아 촬영감독의 자존심이라고 불리는 마크 리 핑빙은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 '동년왕사', '연연풍진', '해상화', '카페 뤼미에르' 등을 통해 호흡을 맞췄고,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공기인형' 등을 통해 아시아 거장들의 작품에 다수 참여했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도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기 위해 프롤로그를 흑백으로 촬영했고,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1.37:1과 1.85:1의 화면 비율을 오가며 촬영해 독창적인 무협영화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또한, 인공조명 없이 자연 촬영을 진행하고, 롱테이크를 통해 인물의 흔적을 따라가면서 관객이 은낭의 이야기 그 자체와 그녀를 이어주는 과거와 현재를 느끼게 한다.

영화는 중국 북동쪽 후베이 지역의 몽골족 자치구에서 촬영됐다. 감독은 "이곳의 은색 자작나무 숲과 호수들을 봤을 때, 중국의 전통화 속으로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그림 같은' 풍경장면을 통해 나는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장소에 인간의 존재가 어떻게 어울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촬영 장소 선택 이유를 밝혔다.

또한, 이 후베이에는 실제 소작농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는 감독의 영화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아주 오래된 관습을 매우 평범하고 인간적으로 촬영하는 방식에 대해 내게 알려주는 것 같았다. 소작농들이 촬영과 무관하게 고기를 썰어 먹는 장면을 촬영했는데, 대본에 없는 것들이었다. 이러한 것이 내 촬영 방식이다. 난 어떤 일이든 일어나도록 놔둔다"고 전했다.

   
 
4. 장르
중국 하면 떠오르는 많은 무협영화가 있다. '황비홍', '적인걸', '와호장룡', '일대종사.' 이들 영화에는 곳곳에서 피가 튀고, 화려한 액션과 스피드한 전개를 가지며, 감정의 기복을 끌어올리는 과한 음향도 있다. 극의 끝에서는 누군가가 복수에 성공하거나, 극적인 성취를 이뤄낸다. 그러나 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이러한 일반적인 장르 규범을 깨트리며 새로운 무협 영화의 장르를 개척했다.

'자객 섭은낭'은 다른 세계의 '칼'을 이야기한다. 대사도 적고, 칼과 활에 맞아 피 흘리는 장면도 주가 아니다. 이 영화의 칼은 자연을 닮았다. '고요'와 '충만' 가운데 생과 사를 자르는 칼의 시간은 자연을 닮아 더욱 서늘하고, 엄격하다. 그리고 날카로운 칼을 쥐고 있는 자객 '은낭'은 오히려 결전에 앞서 늘 망설이고 함부로 처단하지 못한다. 그녀는 영웅이 되고자 하지도 않고, 누군가를 죽이고자 하지도 않는다. 그녀의 칼은 인품이다. 칼을 숨기고 다스릴 수 있는 궁극에 도달한 은낭은 기존의 여성 킬러와는 다른 '머뭇거림'으로 칼이 마지막으로 완성해야 하는 정중지도를 표현한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여성들의 심리는 남자들의 것보다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여성들은 고유의 감각을 지녔고 현실에 대한 사유 방식 역시 더 복잡한 데 그 점이 끌렸다. 자객인 섭은낭은 아무 생각 없이 복종해야 하는 그녀의 의무와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남자로부터 느끼는 억누를 수 없는 감정 사이에서 가슴 찢어지게 고민한다. 독립, 결심, 고독. 이 세 가지 정도가 내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에 대한 특징인 것 같다."며 영화 속 여성 자객인 '은낭'에 대해 설명했다.

여성 자객과 그녀의 스승도 역시 여성인 것에 대해 감독은 당나라 때 실제로 여성의지 위가 높았고, 당나라를 배경으로 한 소설 중 여성 자객이 많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시대적 배경에 대한 고증에 큰 힘을 쏟았다며 서구권에서 이러한 점을 높게 산 것 같다고 말하며, 차기작도 당나라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제작하고 싶다고 전했다.

   
 
영화의 절정 부분에서, 애틋한 그리움을 가진 은낭과 계안이 서로에게 칼을 겨누게 되는 장면에서도 은낭은 계안에게 머뭇거리며 말하지 못한 무언가를 결국 전하지 못한다. 오히려 "호희가 임신했습니다"라는 말로 계안을 지켜준다. 이는 죽이는 칼과 살리는 칼의 다름을 보여주고, 자객 자신의 의지 때문에 살인명령을 어기고 모두를 살리는 칼의 길을 선택하는 은낭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은낭은 새로운 길을 떠나고, 감독은 이를 관객의 몫으로 남겨둔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동안의 강렬한 흥분보다는 끝난 후의 여운이 더욱 강렬하고 가슴 한 켠에 자리 잡게 되는 허우 샤오시엔 표 영화이다.

인터뷰에서 감독은 "영화가 강이라면, 혹은 급류라면 그 흐름, 속도, 우회하는 방향, 빙빙 돌거나 회오리치는 방식 등에 관심 있지 그 근원지나 바다에 닿는 지점이 어딘지 등은 덜 신경 쓰는 편이다."고 전하며, 완결되게 짜인 스토리 구성보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펼치는 그만의 방식을 설명했다. 이어 그는 "누군가가 급류가 휘몰아치는 강의 둑에 앉아 있다면 움직임의 돌풍과 순간의 고요함을 바라보며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또한 누군가는 급류 속으로 돌진해 몸을 흠뻑 적시고 그들의 상상력과 함께 멀리 휩쓸려갈 수도 있다. 나는 그 두 가지 타입의 관객 모두가 존재하길 바란다"며 그의 영화 속 관객을 두 가지로 위치시킨다.

세계 대표 거장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첫 여성 무협영화 '자객 섭은낭'은 오는 4일 개봉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번 영화는 "영화적 성숙을 이루기 위한 긴 여정 끝에 나온 영화다." 거장의 진수를 스크린에서 직접 만나보고, 급류에 휩쓸리든 급류를 고요하게 바라보는 관객이든 그와 그의 영화를 만나보는 건 어떨까.

[글] 문화뉴스 김진영 기자 cindy@mhns.co.kr

[사진] 영화사 진진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