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해적의 아리스토파네스 작 황선택 연출의 난세에 저항하는 여인들

 

[글] 문화뉴스 박정기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pjg5134@mhns.co.kr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문화뉴스] 고대 그리스의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리시스트라테>, 일명 <여자의 평화>로 불리는 이 작품은 집안에 갇혀 남편에게 복종해야만 했던 여성들이 잠자리 거부운동을 벌여서 남자들이 벌이고 있는 전쟁을 중단시킨다는 내용의 희극이다.

작품의 배경은 기원전 400년경,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모두가 지친 상황에서 아테네의 젊은 유부녀 리시스트라테는 아네네와 적국인 스파르타의 유부녀들을 설득해 남편들이 동족간의 전쟁을 그만두지 않으면 잠자리를 거부하기로 결의한 것이다.

처음에는 비웃던 남자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성욕을 참지 못하고, 결국은 아랫도리가 괴상하게 부풀어 오른 모습으로 여자들에게 백기를 들고 만다. 이렇게 한 여성의 기지로 고대 그리스에 평화가 찾아오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리시스트라테>의 줄거리이다.

2003년 3월,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기 직전 즈음에 신문에서 매우 파격적인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는 몇몇 나라의 여성들이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는 남성과는 잠자리를 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즉, 기사 속의 그녀들은 "잠자리를 거부해 전쟁을 멈추자. 끝내자!" 했던 것이다.

또한, 2004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코미디 작가 겸 감독 지망생 미셀 콜린스라는 23세 여성이 인터넷에 '보터가즘(Votergasm)' 사이트를 만들었다. 투표자와 오르가슴의 합성어다. 콜린스는 사이트의 슬로건을 'No Vote, No Sex'로 내걸었다. 투표하지 않은 애인과는 섹스를 거부하자는 뜻이다. 캠페인은 뉴욕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같은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머그잔·냉장고 자석은 인기 상품이 됐다. 이들은 투표 안한 사람과 1주일간 섹스를 거부하면 '시민', 투표한 사람과 섹스하면 '애국자'로 구분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9년 4월 케냐 여성단체들의 모임은 남성들에게 '잠자리 파업'을 선언했다. 당 간의 불화로 정부가 위기에 처하자 정치인들이 화합하지 않을 경우 남성들과 성관계를 거부할 것을 여성들에게 요구한 것이다. 대통령과 총리 부인에게도 여기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또 성매매 여성들에게는 '섹스 파업' 참여 대가로 보상금 지급을 약속하기도 했다.

이러한 섹스스트라이크의 발상은 아리스토파네스가 쓴 희곡인 '리시스트라테'의 주인공인 리시스트라테의 발상이다. 기원전 411년의 발상이 지금의 사회에서도 쓰인다고 볼 수 있다. 위의 예에서 나온 투표를 위한 성파업은 67%의 투표율로 성공적이었다. <리시스트라테>라는 이름은 '반전'의 대명사라 하겠다.

   
 

이번 극단 해적의 공연은 원작에 등장하는 남녀의 성별을 바꿔 여성 역을 남성배우가 하고 남성역을 여배우가 하는 연극이고, 원작인 <리시스트라테>가 아닌 <난세에 저항하는 여인들>이라고 제목도 바꾼 공연이다.

무대는 배경 가까이 중앙에 두자 높이의 긴 단을 가로 깔아 얼기설기 엮은 각목 기둥과 함께 여인들이 공동칩거하는 성전건물로 설정하고, 남성 출연자들은 여성의상을, 여성 출연자는 남성의상과 무기를 들고 등장한다.

연극은 도입에 리시스트라테가 장기간 계속된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의 전쟁으로 지치고 피폐해진 상황에서 탈출해 보려는 리시스트라테의 영민한 기지가 촉발된다. 전쟁을 더 이상 계속하면 남편과 잠자리를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동료들에게 전달하고 아테네 여인들의 승낙을 받아낸다. 그 뿐 아니라 적국인 스파르타의 여인들에게도 자신들의 결정사항을 전하고 동참하도록 설득한다. 스파르타의 여인들도 호응하게 된다.

남녀의 잠자리, 그것도 전쟁을 치르는 젊은 남자들에게 계속되는 긴장감의 해소를 위해서라도, 부인과의 동침은 절대 필요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부인들의 잠자리 거부운동은 핵폭탄에 비견되는 충격이다. 남성들 물론 이 연극에서는 남장여성이지만 공룡처럼 부풀어 오른 상징물을 부착하고 등장해, 무대를 누비며, 해소책을 강구하지만, 닫혀있는 여인들의 성전건물은 열릴 기미를 보이지를 않는다. 개중에는 별의별 핑계를 대고 부인과 대면하지만, 철의 여인 같은 부인의 심경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대단원에서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정전협약이 이루어지고, 사랑하는 부인과 만나며 환호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이 연극에서는 남녀 성기의 비속어가 대사마다 등장하고, 남녀의 역할을 바뀌었지만 성행위 장면도 여러 가지 체위별로 묘사된다. 그리고 성관계를 않는 동안 여성들의 성적욕망을 가라앉도록 하는 방법으로 남성성기 모양의 자위기구를 무대 위로 휘두르고 다니며 과시를 한다.

   
 

엽기적이고 외설적인 공연은 잠시 반짝이는 모습을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영화나 연극 뿐 아니라 발레 공연에서도 관객의 시선을 잠시 끌어들일 뿐 오래가지 않는다. 그런 공연은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 그런 걸 공연하는 극단도 오래가는 법이 없다.

영화관의 경우도 양천향교 역 부근의 겸재 정선 미술관에서 상영하는 예술영화는 관객이 매회 2, 300미터씩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현재 1000만 명이 입장하는 영화중에는 엽기적이거나 외설적인 작품은 없다. 그저 엽기적이고 외설적인 작품은 DVD 영화관에서나 상영될 뿐이다.

연극도 마찬가지다. 잠시 빤짝하려고 엽기적이고 외설적인 작품을 공연하기보다는 힘들어도 원작대로 공연하거나 건전한 이성과 사고를 가지고 연출된 공연이나 극단이 관객의 인정을 받고 극단 수명도 오래 계속된다. 극단 해적도 오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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