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물장어의 몸짓말, 미래를 은빛 파도로 강타한다

다보 수산 김창주 대표

전라남도 장흥군은 한반도의 땅 끝이라 해도 무방하다. 시내에서 30분 동안 포장도로를 타고 들어가서야 내비게이션 안내가 종료됐다. 뱀장어 양식장이니 날것의 비린내를 상상했지만, 부촌에서나 볼 법한 브라운 컬러와 베이지색으로 채색된 세련된 주택에서 수줍게 걸어오는 청년을 만날 수 있었다.

깍듯하게 인사를 나눈 뒤 가옥의 거실에 딸린 테라스로 안내받았다. 그리고 잠시 후 김창주 대표와 민물장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도 선수, 외딴 뱀장어 수조에 뛰어들다

김창주 대표 아버지의 고향이 바로 장흥이다. 정년퇴직을 앞둔 김 대표의 아버지는 퇴직 이후의 삶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눈여겨보던 사업 중 한 가지였던 뱀장어 양식을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고향 지인들이 운영하는 양식장 사업에서 수익을 분배받는 조건으로 자본을 투자했다. 장어양식을 쉽게 생각하셨던 아버지는 투자 수익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며, 경제 칼럼을 신문에 연재하고 책과 클래식 음악을 즐기며 여유로운 여생을 보내실 생각이었다.

한데 생각지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믿었던 지인들로부터 투자 수익을 한 푼도 받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김 대표의 아버지는 타인에게 경영을 맡겨서는 원하는 수익을 얻을 수 없다는 결론을 얻고 직접 운영을 결심했다. 하지만 귀향 초기, 사료를 먹지 않는 뱀장어의 건강상태를 파악한 뒤 양식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을 깨달았다. 온종일 머릿속으로 장어의 습성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김 대표는 그런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 뱀장어 양식을 시작하게 됐다. 권유를 받아들이기까지는 쉽지 않은 부자지간의 분쟁이 있었지만, 결국 혈기왕성한 유도 선수는 아버지의 설득에 진로를 바꾸게 됐다. 뱀장어에 올인할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계속해서 애정을 갖다 보니 뱀장어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면서 사업에 대한 새로운 꿈을 꾸게 됐다.

도시, 넘어야 할 그리움

현장에서 부딪치니 이것저것 손 가는 것들이 많아 제대로 잠을 이룬 날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보다 오히려 걱정스러운 것은 아버지의 건강이었다. 양식장 일로 매일 녹초가 되는 아버지를 지켜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귀농을 결정하신 것은 아버지였지만, 고향에서도 아버지가 의지할 사람은 오로지 도시에서 머물고 있던 혈육인 김 대표였다. 그렇기에 김 대표는 귀농을 서둘렀다.

꿈이 유도 선수였기에 몸으로 무언가를 해결하는 것이 적성에 맞았다. 꿈틀거리는 뱀장어의 몸짓은 유도의 기술과는 달랐다. 유도가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라면, 뱀장어를 키우는 일은 상대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돌보는 것이었다. 김 대표는 새끼장어가 성어로 되는 과정을 보며 묘한 매력을 느꼈다.

도시 출신 젊은이가 시골인 장흥에서 양식을 하며 평생 지낼 결심을 하기란 쉽지 않다. 도시 생활이 그리울 땐 참지 않고 친구들을 찾는다. 최근엔 또래 감성을 나누기 위해 지역 배드민턴 회원들의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배드민턴 대회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다. 도시에 대한 갈증을 그런 방식으로 해결했다. 현재의 상황을 비관하지 않고 스마트하게 해결하고자 한 결과였다.

일본에서 '식탁의 미래'를 예견하다

대기업 임원이었던 김 대표의 아버지는 출장지로 도쿄에 자주 방문했다. 출장에서의 식사 때마다 식탁에 올라왔던 장어를 보며 김 대표의 아버지는 한국 식탁의 미래를 예감했다. 일본에서는 이미 소비량이 상당했던 장어를 좋은 품질로 키운다면 한국에서도 기대해 볼 만한 사업이 되리라 생각한 것이다.

"아버지께서 식품의 소비가 양식 형태로 전환될 것이라며 미래를 내다보신 거죠. 현재 국내의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이 일본을 추월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산 장어에 대한 선호도는 여전히 높은 편입니다. 그렇지만 현재 환경오염으로 인해 영양과 맛을 보장할 수 있는 시대가 얼마나 지속될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신기술을 적용한 사료를 장어에게 공급하고 있습니다. 첨가제와 비타민, 미네랄 등 자연산 장어가 섭취하기 어려운 영양소까지 제공하며 양식하는 것이죠. 그렇기에 현재 양식하고 있는 장어에 대한 자부심이 더욱 큽니다"

유통구조, 아직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김 대표의 단기 계획은 직거래를 위주로 매출을 늘려 100% 소비자에게 직접 공급을 하는 것이다. 현재는 10% 정도 소비자에게 직접 공급을 하고 있다.

"현재 인터넷 거래는 수산물 유통의 1%도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유통업자의 결제도 지연되는 경우가 빈번하죠. 그리고 유통구조의 자본 시스템도 개선돼야 합니다. 그렇기에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중요합니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다 보면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현재는 뱀장어를 양식하는 후계자 모임에서 방향을 모색 중입니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과 함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천천히 개선해 나아가다 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요?"

현재 김 대표는 미생물을 이용한 신기술 수조 양식 덕분에 양질의 뱀장어를 소비자에게 공급할 수 있다. "친환경 항생제를 사용해 뱀장어를 양식하기 때문에 중국산 저렴한 뱀장어와 품질 면에서 월등히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우수한 품질을 갖춰야 소비자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고 유통에서도 승산이 있습니다"

김 대표는 현재 산야초와 장어로 즙을 낸 제품을 출시하면서 장어 양식의 카테고리를 다양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특히 산야초 장어즙은 수산물의 비린내를 잡아 어린이도 쉽게 섭취할 수 있다.

또한 대형 어종인 무태장어는 천지연폭포에서 잡히는 천연기념물 제258호인데 새로운 양식기술을 도입해 양식 중이다. 국립수산과학원에서 개발한 신기술인 '바이오플락(Biofloc)'이란 기술이다. 바이오플락은 미생물 덩어리라는 뜻으로, 물고기가 배출하는 배설물을 미생물이 섭취하도록 하고, 이 미생물이 성장하면 다시 물고기가 섭취하게 해 사료의 양을 줄이는 양식 기술이다.

"미생물이 물고기의 배설물을 섭취하면서 불어나고, 불어난 미생물을 다시 물고기가 섭취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양식보다 사료량이 30%가량 줄어듭니다. 배설물이 쌓이지 않아 물을 하루 0.5~1% 정도만 교환하면 되기 때문에 온도를 유지하기도 쉽습니다. 또 성장이 빨라 생산량도 늘어나고 연중 출하가 가능해진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처럼 김 대표는 바이오플락 기술을 다보수산에 응용해 소비자에게 더 좋은 품질의 장어를 저렴한 가격에 판매할 수 있도록 노력 중에 있다.

일반 현황

나만의 성공노트

① 성공 노하우: 상품의 뛰어난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상품의 재구매율을 높이고 입소문을 퍼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수한 품질의 무항생제 장어'야말로 지금의 다보 수산을 있게 한 일등공신입니다

② 미래 계획: 가까운 미래에 새우양식을 생각하고 있어 새우양식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새우는 현재 갖추고 있는 시스템에서도 양식이 가능하기에 새로운 사업 아이템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배움에 대한 갈증이 자꾸만 생깁니다. 지금은 한국농수산대학 심화과정을 더 공부하고 싶은 바람이 큽니다. 경영이나 마케팅이나 가공 쪽 지식을 쌓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공부를 지속해서 자기발전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③ 경험자 조언: 대기업에서 임원을 지내 경영 마인드가 몸에 배어 있으신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 누구보다 과감한 추진력과 적응력을 지니신 아버지는 제가 넘어야 할 큰 산입니다. 그렇기에 아버지보다 더 안정되게 사업을 꾸리는 것이 제 과제입니다. 한국농수산대학의 다른 졸업생들도 저와 마찬가지로 사업을 안정시키고 싶어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업자인 가족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는 반면에 별도의 개인 시간을 조금이라도 확보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청년농업인, 그것이 알고 싶다! Q&A

Q. 진로를 바꾼 것을 가끔 후회하지는 않는지?
A. 진로를 바꾸지 않고 운동을 계속했더라도 분명 지금쯤 막연해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체대에 들어간 친구들 중엔 휴학이나 자퇴를 한 친구들이 많다. 아무래도 운동은 경쟁이 심하고 선택의 폭이 좁은 분야인지라 지금도 운동을 하고 있는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한다. 20대 초반에 평생의 진로를 결정한다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회의가 들 때가 솔직히 많았다. 그래서 방황하던 시절도 꽤 길었지만, 지금은 내 선택에 만족도가 높다. 30대에는 지금보다 더 만족하게 될 거라는 기대감도 든다.

Q. 미래에는 양식장의 모습을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
A. 외국에서는 양식장에 자동화 장비가 많이 보급돼 있다. 일본이나 유럽 쪽처럼 스마트폰이나 AI 시스템을 이용해 작업복을 입지 않고도 양식장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물량이 늘어나면 충분히 고려해 볼 수 있겠지만 아직은 사업을 안정시키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꼭 자동화 시스템을 갖춰 보고 싶다. 제시간에 출퇴근을 하면 직원들도 업무에 대한 만족도가 더 높아질 거라 생각한다.

Q. 현재 한국의 수산업 실습 현장이 어느 수준이라고 생각하는지?
A. 내 경우에는 해외로 나갈 수도 있었지만, 국내에서도 최고의 기술을 배울 수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한국에서 실습을 했다. 지금도 여전히 한국에서 최고의 기술을 배울 수 있다고 여긴다. 아직은 국내 수산물 소비량이 외국의 설비 시스템을 배울 정도로 많지는 않기에 굳이 해외로 실습을 가지 않아도 된다. 실습할 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배운 게 많다. 양식에 대한 배움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배움도 많이 얻었다. 좋았거나 불만족스러웠던 점을 되새기는 작업을 통해 시야도 많이 확장했다고 생각한다.

이 인터뷰는 문화뉴스와 내일날씨가 공동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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