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빠진 오디오 가이, 젖소의 아버지로 귀환

마른 체구에 강단이 느껴지는 외모, 세 자녀의 아버지인 김원섭 대표의 첫인상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 같았다. 김 대표의 아내가 인터뷰를 거들기 위해 사무실로 들어와 반갑게 인사했다.

김 대표는 아내를 소개할 때 젖소의 분만을 자신보다 더 잘 돕는다며 사업의 중요한 파트너임을 귀띔했다. 부부는 인터뷰 내내 서로를 바라보며 농을 던졌다. 냉철해 보였던 김 대표는 아내 앞에서 한없이 자상한 남편이었다. 김 대표는 아내의 헌신으로 젊은 나이임에도 적잖은 규모의 사업을 이끌며 성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부부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마주하니 인터뷰하러 온 것이 아니라, 애정을 일구는 공장에 견학 온 느낌이 들었다.

10년간의 외도, 전공을 다시 살리다

김 대표는 축산학과를 졸업하고 친형과 함께 낙농업에 종사했다. 하지만 함께 사업을 시작했던 친형과의 의견 충돌 때문에 다른 돌파구가 필요했다. 김 대표의 눈에는 평소 자신이 좋아하던 오디오가 제일 먼저 띄었다. 그래서 오디오 가게를 시작해 10년간 운영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어느 날, 아내가 젖소를 다시 키워 보자고 제안했다. 아내의 의견에 갈등이 일었지만 고민은 잠시였다. 오디오 가게를 하는 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켜 주던 아내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아이들이 점점 커 가는 것도 방향을 전환하게 된 중요한 이유였다. 남아 있던 15마리의 황소를 판 금액으로 다시 낙농으로 돌아왔다.

"처음 낙농을 시작했을 때나 지금이나, 동물이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운영의 가장 큰 난제입니다. 10년 전과 바뀐 유대값도 한몫했습니다. 하지만 고정가격을 받았기 때문에 유대값의 가격변동은 운영에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가격이 하락했지만, 예상 매출을 잡을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죠. 다시 시작할 때 어려움이 많았지만, 하나하나 새로 배우는 마음으로 임해 왔고 자금 운용 상태도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2세대 아들이 방랑자 아버지에게 묻다

김 대표의 아버지는 1세대 낙농업자로 젖소가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 4마리를 분양받으셨다. 그러고는 딱 이틀 젖을 짜셨다. "온도를 맞춰야 하는 게 낙농업의 관건인데, 당시 여건에서는 시원하게 보관할 곳이 오로지 우물뿐이었습니다. 우물에 넣었다가 다시 꺼내어 온도를 맞추는 일이 수월하지 않아 그만두셨죠. 낙농은 방랑자 기질이 있던 아버지의 적성에는 맞지 않았어요"
 
낙농이라는 직업은 생명을 키우는 일이기 때문에 여행을 하거나 여가를 마음껏 누리기가 어렵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젖소를 꾸준히 잘 먹여야 젖을 잘 짤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도 처음에 시작할 때는 얼마 하지 못할 것 같다는 평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2년 전부터 주변 평가가 바뀌었다. 다시 젖소를키우기 시작한 5년 전에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하기로 다짐한 덕분이다. 부모님이 낙농업을 계속하신 건 아니었지만 아버지의 말씀에도 귀 기울였다. 분명 연륜에서 나오는 철학과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계약이나 큰 결정을 해야 할 때는 아버지의 고언을 기반으로 다시 생각한다. 아버지가 하시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서두르지 말라"는 말씀이다.

탄탄대로만은 아니었다. 사업은 간혹 롤러코스터

김 대표는 고3 입시를 준비할 때 이미 다른 학교 건축과 입학이 확정돼 있었다. 하지만 형이 한국농수산대학에서 먼저 축산을 전공한 뒤 농장을 운영 중이어서 '함께 해 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한국농수산대학에 진학했다. 사실 한국농수산대학에 입학하면 산업기능요원으로 군복무를 대체할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예비 1순위여서 다른 합격생이 포기하는 바람에 입학할 수 있었다.

"친형과의 불화로 축산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지금쯤 훨씬 안정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내가 오디오 사업을 접고 낙농으로 전향하자 했던 이유는 경제적인 면이 컸습니다. 낙농은 고된 만큼 자금 결제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죠. 이왕 다시 시작한 일이니 마음먹은 대로 진행이 됐으면 좋았겠지만, 업종을 변경하자마자 질병으로 젖소 5마리를 묻었어요. 마리당 400만~500만 원이나 했기 때문에 타격이 컸습니다. 신고식을 톡톡히 치른 것이죠"

젖소의 젖은 사람의 모유와 아주 다르다. 젖이 많이 나오면 건강 상태가 나쁘다는 신호다.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젖소의 건강이 악화된 원인을 분석해 보니 새롭게 도입한 착유 시스템이 문제였다. "자동화 시설을 갖추면 일이 조금 편해집니다. 하지만 정보가 많이 없기 때문에 기계 성능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발품을 팔아서라도 반드시 잘 알아보고 구매해야 합니다. 해외의 신기술을 도입하려는 경우 국내 총판에서 향후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는 점도 반드시 인지해야 합니다"

젖소 180마리, 오토템덤 착유 시스템과 로봇 착유기 등 신기술 도입

김 대표는 젖을 자동으로 짜 주는 오토텐덤 착유시스템과 로봇 착유기 등 신기술을 접목하고 있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로 인해 문제가 많았지만, 새로운 기술을 점차 안정화시키면서 현재 젖소 총 180마리에 쿼터량 3,400ℓ를 생산해 전량을 빙그레에 납품하고 있다.

"신기술을 적용하기 전에는 제 스케줄에 맞춰 젖을 짜다 보니 젖소들이 원하지 않을 때도 젖을 짜야만 했어요. 지금은 젖소가 스스로 원하는 시간에 기계에 들어가 젖을 짭니다. 로봇착유기 안에 젖소가 들어갔더라도 갑자기 젖을 짜고 싶지 않아지면 그냥 나가면 되죠. 젖소가 스트레스를 덜 받다 보니 우유 질도 높아지고 생산량도 오히려 늘었습니다"

이처럼 앞으로 국내 낙농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동물복지를 강조한 사육환경이 더 넓게 보급되고 목장 운영에 ICT기술이 접목돼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에게 사업의 미래에 관해 조망해 달라고 물었다. "일본의 경우 우유 단가가 가장 비쌉니다. 그다음이 우리나라죠. 우유의 경우 부피 문제와 소비 패턴 때문에 항공기로 수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유가공의 경우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우유 자체로는 수입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농장을 잘 운영하는 것에만 신경 쓴다면, 현재로서 크게 불안한 요소는 없습니다"

장기적으로 특별한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김 대표는 안정적인 미래를 예견할 수 있을 것이다. 김 대표는 당분간 현재의 ICT 설비를 더욱 효율적으로 가동해 목장경영을 궤도에 올리는 데 집중할 생각이다.

일반 현황

나만의 성공노트

① 성공 노하우: 젖소들의 수명 연장, 노동시간 절약 등을 모토로 삼으며 농장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주변 농가의 경우 젖소 치료를 위해 단순히 유방염 치료제를 쓰는데, 몸에 염증이 있다면 전체적인 건강상태를 우선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항생제 처방을 하지 않고 젖소의 건강을 끌어올릴 방안을 고민합니다. 단순히 병을 치료하기보다 젖소의 전반적인 컨디션에 신경을 쓰고 있으며 그로 인해 젖소들의 건강상태도 향상됐고 수명도 조금 연장됐습니다.

② 미래 계획: 현대화 사업도 좋지만 일단은 더 이상의 투자는 보류 중입니다. 2021년엔 갚아야 할 대출이 모두 끝납니다. 안정화 기간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시설투자를 하지 않으려 합니다. 2021년을 기점으로 축사를 늘리고 유량을 늘리는 계획도 세우고 있지만 일단 대출금을 모두 상환할 때까지 현 상태를 잘 유지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③ 경험자 조언: 실습을 나갈 때 이왕이면 규모가 큰 실습장으로 가길 권유하고 싶습니다. 저는 실습할 때 새벽 4시에 나가 밤늦은 시간까지 일했기 때문에 기술도 기술이지만 인내심도 많이 배웠습니다. 유량이 많은 곳으로 가야 일을 잘 배운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곳이라고 해서 학생들에게 일을 심하게 시키지는 않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실습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껏 버티는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청년농업인, 그것이 알고 싶다! Q&A

Q. 현재 참여하고 있는 낙농업 종사자 모임이 있는지?
A. 최고 경영자 과정 모임이 있다. 모두 선배들이고 1세대다. 매달 첫째 주 금요일에 모여 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논의를 많이 나눈다. 1세대는 아무래도 실험정신이 있다. 연세가 있으시더라도 추진력이나 정보력에 대해서는 감탄이 자주 나올 정도다. 아무래도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 1세대 선배들에게 자문했을 때 얻는 답이 식견을 넓혀 준다.

Q. 운영에 도움을 주는 조력자가 있는지?
A. 땅이라는 것의 습성은 대물림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아버지의 조언을 많이 받는 편이다. 존경하는 사람도 아버지다. 물론 아버지의 사업운영 방향과 앞으로 내가 끌어갈 방향은 다르다. 신중하시지만 합리적인 아버지 말씀 앞에서 사업을 어떻게 이끌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재고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Q. 오디오 가게를 운영하다가 다시 낙농을 선택한 이유는?
A. 굳이 낙농이 아니라도 고민했던 사업 아이템은 많았다. 순수익에 대한 예상이 가능했기 때문에 선택했다. ‘빙그레’와 직거래를 하므로 판매에 대한 부담은 다른 농가에 비해 적다. 물량을 맞추는 것이 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 납품할 물량이 많으면 그만큼 많은 양을 생산해야 해서 힘들고, 물량이 적으면 나름대로 또 신선도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경험으로 충분히 보완할 수 있으며 현재 잘 운영해 나가고 있다.

Q. 완전 자동화 시스템을 향후 도입할 예정이 있는지?
A. 자동화 기기에 대해 고민을 하는 편인데, 3년 전에 설치를 해 보려고 시도했다. 현재 2대의 자동화 기기에 문제가 발생해 작동을 중지한 상태지만, 새롭게 재정비한 다음 효율적으로 가동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현재 시스템을 정립하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에 완전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은 아직 없다.

이 인터뷰는 문화뉴스와 내일날씨가 공동 취재했습니다.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