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경운기 몰던 꼬마, 천진한 농사꾼으로 돌아오다

황토유기농원 한기백 대표

해풍을 맞은 고구마잎이 때마침 내린 비로 논 위에 푸르게 요동치고 있었다. 시간을 잊어버린 채 한참 주저앉아 김을 매던 한기백 대표의 코끝이 햇살에 빨갛게 익어 있었다. 허리를 펴기 위해 일어선 한 대표의 맞은편엔 잔잔한 바다가 보였다.

한 대표는 꾸밈이 없었다. 푸른 잎 사이에 피어난 고구마꽃을 가리키며 “귀한 구경하시라”며 천진하게 웃었다. 그는 최신식 설비보다 순수한 마음을 농사에 접목한 농부였다. 그만큼 친환경이라는 시대적 질문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고, 보란 듯이 성과를 얻고 있다.

가족의 건강을 고민하며 얻은 한 대표의 비법은 논과 밭 여기저기 켜켜이 쌓여 있었다. 한때 카메라 감독을 꿈꾸기도 했지만 지금 그의 모습은 천상 농부였다. 그런 그에게 삶의 원동력은 무엇인지 들어봤다.

가족의 건강, 정답은 친환경

한 대표는 친환경농업에 주력하고 있다. 멸종위기야생동물 2급으로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불리는 긴꼬리투구새우는 깨끗한 환경에서만 서식할 수 있는 생물이다. 그 새우가 한 대표 농장의 논에서 자라고 있다.

긴꼬리투구새우는 친환경농법을 시작하자마자 모습을 드러냈다. 포식성이 강하고 논바닥을 휘젓는 습성 덕에 햇빛을 차단하고 수중 잡초의 발아를 막아 준다. 또한 해충의 유충도 잡아먹는다.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니 그 이상의 보답을 해 주고 있다. 긴꼬리투구새우 이야기는 일례에 지나지 않는다. 한 대표가 이토록 친환경적인 농장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어릴 때 가족이 함께 농사를 짓다가 농약으로 고생했던 일 때문이다. 그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전력을 다하고 있다.

친환경농업에 대한 열망은 고구마에도 당연하게 녹아 있다. 한 대표는 고구마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하고, 비타민과 영양제를 밭에 살포하며, 씨고구마를 병들지 않게 잘 보관하는 데도 힘쓴다. 그의 이런 정성과 함께 무안의 붉은 땅이 지닌 힘이 좋은 품질의 유기농 고구마를 기르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꿈 많던 PD, 아버지의 땅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다

"부모님은 제가 여덟 살 때부터 경운기를 몰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경운기 브레이크를 잡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고 한 대표는 말했다. 그만큼 농업에 친숙한 환경에서 농사를 생활로 하며 자랐다.

"젊은 시절을 온전히 농사에 투자할 생각은 없었죠" 언젠가는 농사를 해 보겠다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고향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다. 한 대표의 꿈은 카메라 감독이었고, 이를 위해 모 대학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방송 관련 일을 하면서 모 영상제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13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는 큰 사고를 당했다. 젊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다리에 후유증이 생겼고 이상하게 불안감이 가중됐다. 그러자 건강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마음 밑바닥에서 술렁거렸다. 그래서 조금 더 서둘러 농업으로 복귀했다. 미디어 분야 경쟁이 심했던 이유도 있었다. 시련이 한 대표를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도록 이끌었던 것이다.

“내 후계자네”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는 순간

한 대표가 고향으로 내려와서 부모님께 농사를 짓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부모님은 반신반의하셨다. 허드렛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라며 혀를 차셨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지역 농업인들이 모인 자리에 한 대표를 데려가셔서 후계자로 소개하셨다. 한 대표가 말하길 이때가 영상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을 때보다 기분이 훨씬 더 좋았다고 한다. 한 대표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해 보겠다고 한국농수산대학 진학 의사를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그리고 한국농수산대학에 입학해 열심히 공부했다.

아버지의 노하우에는 대학에서 배운 내용과는 달리 온도와 기후에 따른 변수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 한 대표는 학교에서 배운 것은 기본적인 원리이며, 본인의 농업 환경에 따라 어떻게 응용을 하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을 졸업 후 현장에서 깊이 깨달았다. 그래서인지 부모님께 영농을 승계받을 때는 땅 이외에 환경에 대한 이해도 함께 물려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작물은 주인의 발소리를 안다고 합니다. 얼마나 자주 찾아가서 돌보느냐에 따라 수량이나 맛이 달라지죠. 그렇기에 농작물도 사랑을 느끼며 스트레스도 받는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저는 고구마가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노력을 많이 기울입니다. 고구마는 가뭄이 올 때면 수분을 찾아 땅속으로 깊이 들어갑니다. 이때 고구마가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물을 지속적으로 공급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하죠. 그러면 저장성도 높아지고 맛도 좋아집니다"

한 대표 농장의 고구마는 가물어도 크게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다. 스프링클러를 설치해 수분을 지속적으로 공급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고구마는 호흡 중에 수분을 빨아들였다가 뱉어 내는데, 물이 적으면 수분을 흡수하지 못하고 계속 내보내기만 해서 말라 버린다. 봄철에 기온이 올라 수분과 온도 유지에 실패하게 되면 바람이 들기도 한다. 고구마는 저장·유통 과정도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신선도 높은 고구마를 배송하기 위해서 오전에 주문을 받아 오후에 배송하고 있다.

유기농인증기관보다 까다로운 엄격한 '한살림' 기준을 통과하다

"판매 채널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경영과 직결이 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온라인 판매의 경우엔 소비자 과실에도 악플을 감수하거나 반품받는 경우가 있어요. 겨울철 베란다에 보관한 뒤 썩어 버린 것도 판매자의 책임으로 돌리죠. 애써 키운 농작물이 스트레스로 다가오니 온라인 판매는 이제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행히 한 대표는 친환경 제품을 취급하는 ‘자연 유기농’이라는 업체와 생협의 '한살림'을 통해 농작물을 급식자재로 납품하고 있다. 한살림은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기준과 심사가 유기농인증기관보다도 까다롭다. 그래서 소비자들이 믿고 구매하는 것일 터이다. 가격이 한 번 정해지면 변동이 없다. 판매처가 정확한 가격을 제시하면 아무래도 고정적인 판매와 매출에 대해 기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걱정이 줄어든다.

현재 재배하는 고구마 품종은 ‘베니하루카’라는 일본 품종이다. 일본은 화산 토양이라 당도가 낮다. 오히려 무안 황토에서 키워 낸 고구마의 당도가 더 높다. 본토에서 키워 낸 것보다 더 풍미가 높다고 할 수 있다. 한 대표는 고구마를 재배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아이스 군고구마를 가공하는 쪽으로도 사업을 확장해 나가려고 한다.

"신뢰가 기본입니다. 기술력과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걱정하는 시간보다 즐거운 시간이 많겠죠"

일반 현황

나만의 성공노트

① 성공 노하우: 제가 어릴 적에 부모님이 초롱무를 키우셨습니다. 초롱무는 벌레가 많아 비가 온 뒤에는 약을 쳐야 했어요. 누나들이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도와 약을 쳤는데, 어지럼증을 겪거나 호흡기에 무리가 왔죠. 이 아찔했던 경험이 친환경농업에 주력하게 된 동기가 됐습니다. 저와 부모님은 건강한 농산물을 친환경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벌레들이 싫어하는 나무를 끓여 보조제를 만들거나 그 보조제를 알코올에 담가 사용하는 것까지 시도했어요. 고품질의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항상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며 연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② 미래 계획: 고구마는 부모님이 은퇴하셔도 계속 재배할 예정입니다. 친환경 아이스 군고구마 사업도 준비 중입니다. 1~2년 안에 시설을 갖추고 판매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고구마 재배를 경험 삼아 고구마의 조상인 야콘도 재배할 계획입니다.

③ 경험자 조언: 우선 자신이 농사를 짓고 있는 땅과 자연에 대한 이해가 가장 중요하죠. 수업 과정에서 다룬다고 해도 지역마다 특색이 천차만별하기 때문이죠. 승계를 한 2세대의 경우는 현재에 안주하는 경향이 높은데, 이것저것 시도해 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시작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여러 가지 경험을 쌓고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청년농업인, 그것이 알고 싶다! Q&A

Q. 한국농수산대학에서 나갔던 실습은 어땠는지요?
A. 실습장 선택 당시 일단 규모가 큰 농장을 찾았다. 작은 농장에서는 재배할 수 있는 작물이 한정적이고 넓은 시야를 갖기엔 부족함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알아본 결과 김제에 있는 고구마 농장을 발견했다. 그 고구마 농장은 내가 찾고 있던 고구마와 단무지 무를 재배하던 농장이었다. 우리 농장과 비슷한 체계이기에 지원했다.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실습을 진행했다. 부족한 부분을 많이 배웠다. 실습 기간은 한국농수산대학에서 배운 지식을 현장에 접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한국농수산대학을 졸업한 학생들 모두 한결같이 실습은 정말 힘들었지만 그만큼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말을 할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Q. 한국농수산대학을 다니던 시절은 어땠나요?
A. 2016년 전공심화과정을 마칠 당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을 받았다. 그만큼 열심히 대학생활을 했다. 전공 분야를 좀 더 깊게 파기 위해 전공심화과정에 누구보다 열심히 임했다. 앞으로도 농업에 종사하면서 경영비 절감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경영 관련 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이다. 끊임없는 배움만이 앞으로의 방향을 결정할 거라 믿는다.

Q. 현재 참여하고 있는 커뮤니티나 조력자가 있는지?
A. 4H와 한국농수산대학 동문회 활동을 하고 있다. 대부분 졸업 후엔 교수님들과의 유대관계가 많이 소원해지는 편인데, 자주 찾아뵙기 위해 노력한다.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품종에 관한 정보와 지식을 많이 들을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모임에 참여하면서 정보와 지식을 얻고자 부단히 노력 중이다. 지속적인 노력으로 얻는 성실함에서 성공이라는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이 인터뷰는 문화뉴스와 내일날씨가 공동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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