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옥자', '곡성', '우리들'을 중심으로

     
   
▲ 왼쪽 위부터 봉준호, 박찬욱왼쪽 아래부터 이창동, 나홍진 감독ⓒ네이버프로필
[문화뉴스] 한국 영화계 어디로 가고 있는가?

 

대한민국 영화계는 2000년대 르네상스 시기를 맞이했다. 박찬욱, 이창동, 봉준호, 홍상수, 김기덕과 같은 감독들을 중심으로 국제적인 유수의 영화제들로부터 한국의 현대 영화를 알리기 시작했으며, 뛰어난 성과를 이루었다. 
 
이와 동시에 1990년대 후반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의 등장과 함께 한국 영화계는 산업적으로도 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 영화의 뛰어난 예술적 요소와 성장하는 영화 산업이 잘 맞아떨어져서 영화계에는 수많은 자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수많은 자본은 돈을 좇아 영화계를 움직이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도 회자하고 곱씹을수록 다른 맛이 나는 영화가 아닌, 상업적 요소가 다분한 영화들이 영화관에 가득 채워지면서 이내 한국 영화계는 다시 침체할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위기는 위험과 기회를 동반한다. 산업적 성공은 예술적 맥락을 동시에 바라보기 시작했으며, 다양성 영화에도 투자하여 계속해서 새로운 흐름이 영화계에 흐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이와 동시에 훌륭한 콘텐츠를 가진 사람들이 우위에 있는 상황이 되면서 뛰어난 창작자라면 돈이 없어서 영화를 못 만드는 상황에 부닥치지는 않게 되었다. 아직 한국 영화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많지만, 2016년 한국영화계는 산업과 예술의 중간지점에 서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2015년 영화계 전체 수입은 2조 원을 돌파하는 시장이 되었다. 천만 영화가 이제 놀랍지 않으며, 2천만 영화를 기대하고 있다. 극장 이외에도 IPTV나 VOD와 같은 다른 윈도우들도 영화계의 흐름을 신선하게 유도해가고 있다.
 
이러한 산업적 호조와 함께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대한민국 영화계 거장들이 다시 움직이고 있다. 현재 상영하고 있는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나홍진 감독의 <곡성>, 제작 중인 봉준호 감독의 <옥자>와 이창동 감독이 기획하고 그의 영상원 제자인 윤가은 감독이 연출한 <우리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1. 박찬욱 <아가씨>
철학과 출신인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그가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부터 '인간'이 중심이었다. 그의 영화를 한 꺼풀 벗겨보면 인문학적 요소들이 함축적으로 나온다. 예를 들어, <올드보이>의 오대수는 '오디세우스'를, 유지태의 펜트하우스에 물은 '오디세우스'에서 그를 집에 못 돌아가게 하는 장애물인 물과 같은 맥락에 있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모호함과 그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의 매력 덕분에 사랑을 받아왔다. 그리고 이번에 그는 김민희, 김태리, 하정우, 조진웅 주연의 <아가씨>로 돌아왔다. 이번 영화는 대체로 스토리가 따라가기 쉽고, 결말도 대체로 닫혀있으며, 미장셴의 수위도 거부감 없이 이전의 깐느박과 다르게 친절해졌다는 평을 받는다.
 
   
 
스토리는 비교적 따라가기 쉽다. 역으로 말하면, 그는 스토리로 승부하지 않으려 했을 수 있다. 시나리오의 강자 로버트 맥기에 의하면 이제 세상에 새로운 이야기란 존재하지 않는다. 박찬욱 감독은 구조와 캐릭터로 승부를 건 것이 아닐까?
 
현대예술 중 하나의 흐름인 구조주의와 같은 맥락에서 쿠엔틴 타란티노는 하나의 서사를 쪼개고 다르게 배치하여 새로운 구조로 관객에게 보여주었다. 유럽에서 사랑을 받는 홍상수 감독도 반복과 변조라는 구조를 통해서 인간을 보여주었다. 이번 영화에서 박찬욱 감독은 영화의 장을 나누면서 구조를 형성하고 구조마다 관객들은 같은 사건을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모든 구조를 보았을 때 전체를 관통할 수 있게 된다.
 
프랑스 누벨바그는 감독이 저마다 독자적인 스타일을 가져야 한다며 할리우드의 히치콕을 작가로 포함했다. 즉, 스타일은 감독에게 중요한 것이다. 이번 <아가씨>는 박찬욱 감독의 유미주의, 탐미주의의 종점이 아닌가 평가받고 있다.
 
   
▲ 박찬욱 감독 <아가씨> 스틸컷
이전 영화들에서도 <올드보이>의 롱테이크 싸움 장면이나, 친절한 금자씨의 케이크 장면이나, <박쥐>의 무한한 띠를 이루는 흡혈 장면들을 통해 그만의 독보적인 미쟝셴을 구축했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고전 미학적으로 아름답고, 함축적이다. 이번 작품 역시 세트와 분장, 의상, 촬영기법 등을 사용하여 영화의 미를 과시했다.
 
이는 오늘날 텔레비전과 컴퓨터, 심지어 작은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영화를 감상하는 이들에게 '극장'이 제1의 윈도우인 이유를 제시한다. 그리고 상업성이 가득한 오늘날 한국 영화계에 그런데도 영화는 여전히 예술이라는 것을 증명해준다.
 
   
▲ 설국열차 봉준호 감독 스틸컷
2. 봉준호 <옥자>
넷플릭스는 한국 상륙과 더불어 오리지널 콘텐츠 자체 제작으로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 576억 원을 투자했다. 이전에 <설국열차>를 통해 외국 배우들과 스태프들과 작업한 경험이 있는 봉준호는 이번에도 국내 스태프들과 외국 스태프들이 함께 작업하는 범국가적인 영화 제작에 참여한다. <옥자>는 아직 제작 중이며, 비밀리에 촬영되고 있어서 작품 자체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옥자>에서 주목할 점은 봉준호 감독이 한국의 기존 영화사가 아닌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고 작업한다는 점이다. 넷플릭스는 미국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자체 제작하여 본인들만의 독점 유통을 통해 배급한 적이 있다.
 
이러한 OTT(Over The Top) 산업은 영화 매체 자체를 흔드는 새로운 움직임이다. 영화를 꼭 영화관에서 보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2시간짜리 동영상과 영화의 차이는 무엇인가? 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져볼 수 있다.
 
   
▲ 옥자를 제작한 넷플릭스
또한, 한국 극장들은 CJ E&M-CGV, Lotte Entertainment-Lotte Cinema, Megabox 와 같은 멀티플렉스 독점 구조를 가지면서 종종 월권을 행사한 적이 있다. <명량>이 천팔백만 관객을 동원한 것은 작품 덕도 있겠지만, CJ와 CGV의 스크린 점령 덕분이기도 하다. 이는 올해 초 <검사외전>을 통해 논란이 된 바 있다.
 
그러나 넷플릭스가 좋은 영화를 자체적으로 유통한다면, 유통망의 기존 순서인 극장-IPTV-VOD-CABLE TV 등과 같은 순서를 파괴하고, 윈도우 간 홀드 백 기간들을 파격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이는 두고볼 일이겠다. 한국의 상황상 넷플릭스도 극장 개봉을 할 것이라고 하지만, 이는 한국 영화계에 대한 봉준호의 일침으로 해석해볼 수도 있겠다. 
 
   
▲ <곡성> 중 곽도원
3. 나홍진 <곡성>
<곡성>은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명확한 결과와 답을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관객들이 이를 떠올리고, 떠들게 하였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노이즈 마케팅의 표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칸에서 높은 평점을 받았다는 <곡성>은 이야기와 주제가 특징적이다. 
 
철학의 주제는 인간이자, 진실을 탐구하는 것이다. <곡성>의 주제는 그래서 "뭣이 중헌디"의 대사가 말하듯, 그래서 진실은 무엇인지 우리에게 숙제를 남기는 것이 아닐까. 감독은 관객들에게 정보를 하나씩 던지면서, 게임을 하고 있다.
 
관객들에게 말로 제시한 소문을 눈으로 보여줌으로써 믿게 했다가, 이내 뒤집어버리고 혼란스럽게 만든다. 영화의 결말에서 우리는 극도의 혼란상태에 오게 되고, 혼란이 정점에 치달았을 때 영화는 답을 보여주지 않은 채 끝난다. 이제 남은 것은 관객들의 몫이다.
 
   
▲ 곡성 스틸컷 나홍진 감독
감독은 감독 나름대로 자신의 결론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범인도 있을 것이다. 관객들도 영화를 보고, 인터넷에 떠도는 해석들을 보다 보면 생각보다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감독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스토리 자체가 아닐 수 있다. A를 통해 오묘하게 B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어떠한 것을 믿게 되는 과정을 이야기 속에서 보여주면서, 감독은 "우리가 감각하면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이내 감각한 것을 자연스레 믿었더니, 머릿속에 있는 개념과 충돌을 발생시킨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관객들은 2시간 동안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을 곧이곧대로 믿을 것인가? 미디어가 보여주는 것을 그대로 믿을 것인가? 직접 느끼지 못하는 신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등의 근본적인 물음들을 던진다.
 
이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던지는 이야기이자, 인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오늘날 쉽고, 일회적이고, 단순한 영화들이 생산되는 가운데, 영화 매체와 관객의 본질적 역할에 대해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4. 이창동 기획, 윤가은 감독 <우리들>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 등 주옥같은 작품을 남긴 이창동 감독은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영상원에서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감독이 아닌 영화 기획자로 몇 작품을 남긴 바 있다. 이번 작품도 기획자로 참여한 작품이다. 그래서 그가 감독한 것이 아니더라도 그의 정서가 영화 속에 잠재워져 있다. 
 
윤가은 감독은 <손님>, <콩나물> 등으로 독립 영화계의 떠오르는 유망주다. 이번에 작업한 첫 장편부터 세계 영화제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영화 산업의 강자인 CJ E&M과 함께 작업했다. 독립 영화계에서 인정받는 감독이 장편 영화계로 들어오면서 실망하게 하는 경우를 여러 번 보았다. 그러나 이번 작품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
 
   
▲ 이창동 감독 <시> 스틸컷
윤가은 감독의 색깔과 정서가 영화 전체에 잘 묻어나고 있으며, 누군가 "아역 배우들의 연기에 무슨 짓을 한 걸까"라고 말한 바와 같이 배우들의 연기 역시 탁월하다. 아이들의 이야기에서 시작했다가, 이내 보는 관객들의 보편적 공감을 얻고 우리들을 웃음 짓게 하기도 감정이 복받쳐 오르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극 전반적으로 드러나는 따뜻하지만, 사회 비판적인 색채는 이창동 감독의 색깔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윤가은 감독의 전작들에서 가진 자신의 차분한 정서와 색을 잃지 않고 있다. 다양성 영화계에 기대해봄 직한 영화다.
 
   
▲ 베를린 영화제 윤가은 감독과 최수인 배우
 
상반기 침체되었던 한국 영화 시장에 거장들의 움직임은 신선하고 묵직한 울림을 남겨서 반갑다.
 
문화뉴스 김진영 기자 cindy@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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