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랑 연출 탄생 100주년 기념 공연 연극 '햄릿' 기자간담회 현장

   
 

[문화뉴스] 우리 시대 최고의 '햄릿'이 찾아온다.

故 이해랑 연출 탄생 100주년 기념공연 연극 '햄릿'이 7월 12일부터 8월 7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공연된다. 1950년 국립극장 개관 후부터 연출을 겸업하면서 뛰어난 연출력을 발휘해 그의 사후 이해랑 연출의 이름을 딴 '이해랑 연극상'이 만들어졌다.

이해랑 연출이 1951년 국내 최초 전막 공연을 하기도 한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이해랑 탄생 100주년과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24회 수상자 박명성 프로듀서와 함께 '이해랑 연극상' 수상자가 모였다. 13회 손진책 연출, 16회 박동우 무대 디자이너를 비롯한 최고의 스태프들이 모여 새롭게 만들고 배우 역시 마찬가지로 12회 권성덕, 15회 전무송, 6회 박정자, 7회 손숙, 19회 정동환, 20회 김성녀, 10회 유인촌, 8회 윤석화, 18회 손봉숙으로 구성됐다.

7일 국립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좌측부터)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안호상 국립극장 극장장, 전무송 배우

우선 이번 '햄릿' 작품에 참여한 소감을 들려주신다면.

ㄴ 박명성 연출: '햄릿'을 작년부터 손진책 연출과 많은 컨셉과 형식에 대해 고민하며 만들어서 공연까지 임박하게 됐다. 모처럼 훌륭한 어르신들을 모시고 '햄릿'을 프로듀싱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너무 행복하고 가슴이 설레고 큰 기대가 된다. 어르신들이 정말 행복하게 연습하시는 것을 보고 앞으로도 이런 자리를 자주 만들어야겠다는 책임감을 무한히 느끼는 작품이다. 햄릿 하게 돼서 행복하고 이런 일을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ㄴ 안호상 국립극장장: 지금까지 국립극장에서 카메라랑 기자가 제일 많이 온 것 같다. 참여하신 분들 위상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 훌륭한 분들 모시고 국립극장에서 '햄릿'해서 영광이고 박명성 대표님 이하 출연자분들께 감사드린다. 극장장으로 와서 새삼스레 느끼지만, 연극계 어르신들이 국립극장을 진정 아끼고 마음의 고향으로 여긴다는 것이 느껴져서 숙연해지고 책임을 느낀다. 작년 봄에 박명성 대표가 작년 연말부터 이해랑 선생님 백 주년이니까 '이해랑 연극상' 받으신 분들이랑 공연하고 싶다고 달오름 극장 대관을 이야기했는데 일정 때문에 거절했었다. 그러다 올해 돼서 극장 몇 곳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하셔서 해오름 극장에서 하면 어떻겠냐 했다. 이해랑 선생님의 상징적인 '햄릿' 같은 거 하면 어떻겠냐. 이해랑 선생님은 국립극장과 인연이 깊다. 여기 오신 분들이 단원으로, 작품으로 국립극장에서 작품 만들어가셨다. 연극의 역사를 책임지신 분들과 국립극장을 다시 만드는 계기가 되는 것이 햄릿이 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정말 영광이다.

ㄴ 전무송: 저는 배우로서 1962년에 드라마 센터에서 태어났는데 그때 당시 이해랑 선생님께 말을 배우고 걸음걸이를 배우고 그렇게 해서 무대에 섰다. 선생님 탄생 백 주년 기념 공연을 항상 마음속에 담아뒀던 이야기인 '햄릿'으로, 선생님을 추모하며 무대에 설 수 있어 굉장히 기쁘다.

ㄴ 박정자: 요즘 많이 행복한 박정자다. 앞서 소개를 '한국 연극계 거장들'이라 해서, 이 말은 좀 많이 짐스럽고, 거장. 참 짐스럽다(웃음). 햄릿에는 여자가 딱 둘이다. 왕비와 오필리어. 제가 무슨 역을 해야 하겠는가(웃음). 오필리어의 아버지 '플로니어스' 역이다. 연기가 보통 어렵지 않고 '셰익스피어'가, '햄릿'이 이렇게 어렵구나 하는 것을 연습하며 절감하고 있다.

ㄴ 손숙: 운 좋게 왕비역을 맡은 손숙이다. 계속 어르신, 어르신 하는 데 불편하다. 우린 그냥 배우다. 여기 오니 감회가 새롭다. 국립극장 개관공연을 내가 했었다. 여기서 이해랑 선생님 모시고 연습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열심히 하고 있으니 잘 부탁한다.

ㄴ 정동환: 이번에 선악을 동시에 맡았다. 무지하게 힘든 건 손진책 연출이 요구하길 "여러분들 연기는 많이 했으니 이제 연기 좀 하지 맙시다"라고 하는데 어떡해야 되는지 알 수가 없어 머리가 하얗다. 그러면서 명언을 하는데 '고효율 저비용'이라고. 연기에 힘 안 들이고 하는 거니까 쉬운 연극이 될 거라더라. 과연 그게 저비용일까, 쉬울까 싶다. 이번 연극은 보통 우리나라에서 '셰익스피어'를 만나는 거랑 좀 다른 형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언제 셰익스피어를 만났다 했더니 40년 전 서른이 채 되기 전 클로디어스를 했더라. 근데 시간이 지나서 이제 배역에 걸맞은 나이가 됐는데 어떨까 싶다.

ㄴ 김성녀: 호레이쇼 역을 맡고 있다. 냉정하고 이성적인 역할인데 연습장에서 늘 감성에 젖어있다. 선배님, 동료들이 열심히 책보며 리딩할 때 평생 무대를 지켜온 분들의 열정과 연극을 사랑하는 모습이 감성으로 다가와서 이성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데 자꾸만 눈물이 찔끔 나고 묘한 전우애가 느껴지는 연습이 되고 있다. 저한텐 참 귀하고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매일 교차한다. 선배들이 "한번 더해볼게" 하고 이렇게 저렇게 고민하는 모습에 후배 배우나 스텝들이 막 박수를 친다. 선배들은 고민 없이 하는 줄 알았나 보다(웃음). 제가 느끼는 전우애나 동지애 이런 마음 갖고 연습하는 건 아마 일생에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사랑스럽다. 같이 방을 쓰는 사람이 연출을 하므로 배우들 힘들게 하면 괜히 내가 미안해진다(웃음). 그런데 워낙 이번 공연에 사랑이 샘솟기 때문에 연출에게도 공연 끝날 때까진 잘해주려 한다(웃음). 모두 최선의 좋은 연극 만들려고 의기투합했다

ㄴ 유인촌: 개인적으로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 '햄릿'이 여섯 번째다. 마지막이 99년이니 16년 전 이긴 하지만 그전에 몇 차례 한 게 부담이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지금 나이에 과연 이런 역을 해도 되는가'라는 부담도 어쩔 수 없다. 근데 이해랑 선생님 백주기 기념이라는 게 특별하다. 선생님 돌아가실 때 '햄릿'하다가 개막 일주일 전 돌아가셨다. 그 마지막 작품 참여했던 기억도 있고 해서 부담감을 떨치고, 많은 선생님 선배님들과 작품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연극을 오랫동안 했지만 한 무대에 서본 적 없는 분들도 계셔서 그런 것에 대한 흥분도 있고 그런 여러 가지가 합쳐져서 오히려 처음 연극을 하는 기분으로 연습하고 있다. 결과는 작품이 나와서 선보여야겠지만 프로덕션 전체가 좋은 답안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열심히 하고 있다 말씀드리고 싶다.

ㄴ 윤석화: 이해랑 선생님 탄생 백 주년, 늘 함께 작업하고 싶던 손진책 연출을 비롯해 제가 사랑하는 선배, 선생님들과 같은 무대에 선다는 것은 너무 살 떨리게 기쁜 일이지만 오필리어만큼은 안되길 바랐다. 처음 손진책 연출에게 제의가 왔을 때 "할 수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하고 싶다. 그러니 '무덤지기' 같이 작은 역으로 안배해달라"고 했는데 오필리어가 됐다. 마치 이제 다시 데뷔하는 느낌이다. 처음 데뷔할 때도 이렇게까지 고민하고 힘들진 않았다. 이 나이에 울면서 그렇게 고민한 적 없는 거 같다. 데뷔할 땐 멋모르고 했는데 이 나이에 오필리어 한다는 것이 그렇다. 연기는 하지 말라고 하지. 가장 순수한 영혼을 보여야 하는데 밤새 스스로 '나는 맑은 사람이다' 하고 나가도 손진책 연출에겐 흡족지 않다. 정말 데뷔할 때 느낌, 다시 태어나는 기분으로 지금 어렵게 오필리어를 감당하고 있지만 오빠 역을 맡은 전무성 선생님이나 자리에 못 오신 권성덕 선생님 등등. 이 모든 분과 함께하는 사랑의 열기만큼, 관객을 만나기 위해서 서로가 다 살 떨리고 두렵지만, 연출의 정확한 신념, 디렉션을 보며 좋은 작품으로 보답할 수 있기를. 연극의 '진실한 힘' 이런 것이 이번 무대를 통해 잘 전달되길 기도하고 있다.

ㄴ 손봉숙: 우선 이해랑 선생님 탄생 백 주년 기념 공연에, 잠시 몸담았던 국립극장에 다시 오게 돼서 기쁘다. 연구생이 된 기분이다. 대학 때 처음 연극을 할 때 뵌 하늘 같은 박정자 선생님과 다시 뵙게 됐다. 제가 어디 가면 선배님 소리 듣지만 '햄릿' 오면 막내뻘이라서 연극 다시 하고 싶은 신선한 마음이 드는 연습실이다.

ㄴ 손진책 연출: 연출로서 연기자의 선생 역할을 하는 것만 쭉 하다가 이렇게 든든한 배우들을 만나서, 이 자체로 저 스스로에 대한 다짐도 많이 하고, 이런 좋은 기회가 쉽지 않을 거 같아서 나름대로 욕심도 내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배우에게 욕심내지 말라고 한다(웃음). 어쨌든 이만큼 든든한 가족이 있는 데도 좋은 연극 만들지 못하면 '정말 한국 연극 문제가 있구나' 하는 부담도 있어서 책임이 크다. 연습실에서 열기가 좋은 작품 만들 거란 생각을 한다. 이해랑 선생님 말씀이 "열심히 한다고 좋은 연극이 되진 않는다. 하지만 열심히 하려는 마음 없이는 좋은 연극이 안 만들어진다" 하셨다. 그 마음가짐 잘 가져 열심히 하겠다.

ㄴ 박동우 무대 디자이너: 제 오른쪽에 계신 한국 연극의 살아있는 전설분들과 함께 한편 이상은 다 공연을 해봤다. 그런데 이분들이 모두 한 번에 나오시는 건 처음이다. 제 연극 인생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하고 있다.

   
▲ (좌측부터) 박정자 배우, 손숙 배우, 정동환 배우

어떻게 이번 작품을 만들게 되었나.

ㄴ 안호상 국립극장장: 다시 마이크가 안 올 거 같아서 미리 다 말씀드렸는데 또 왔다(웃음). 했던 이야기 또 하는 수밖에 없다. 말씀 듣다 보니 제일 부담되시는 분은 손진책 연출 같다. 잘되면 다 연기자 덕이고 안되면 연출 탓이다(웃음). 그런데 그중의 하나가 극장이 안 좋아서라는 문제가 생길 수 있겠다. 연극하기에 해오름이 좋은 극장은 아닌데 이런 기회가 또 올 거 같지 않아서 기꺼이 했다. 앞으로 국립극장이 잘 고쳐져서 또 한번 모시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맘대로 되지 않기에 마지막 기회다 하고 한 거다. 어떤 배우나 스텝, 작품의 합 이상으로 좋은 작품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희망이 있다. 그렇게 되는데 제가 할 역할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기꺼이 하겠다.

ㄴ 박명성 프로듀서: 후배 프로듀서들이 그런다. '그분들 다 모셔서 어떻게 비율 맞춰가며 연극을 하나'. 요즘 전문 프로듀서들은 선배님들 잘 안모시고 자기들끼리 하려는 경향이 갈수록 커지는데 여기서 윤석화 선생님이랑 손진책 선생님 빼고는 다 작업해보신 분들이라 "장인들이셔서 알아서 연습하고 알아서 잘 노신다"고 했다. 요즘 연극계가 침체했는데 선생님들이 정말 바쁜 시간 내 모이셨다. '햄릿'을 통해 연극계가 활기 넘치고 강한 에너지 느끼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ㄴ 손진책: 올해가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이다. 올해는 그래서 특히 많이 공연되고 있는데 그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햄릿'을 거론할 수밖에 없다. 다른 곳에서도 여러 차례 '햄릿' 공연이 있는 것으로 안다. '햄릿'은 어려운 작품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하는 작품이다. 그런 '햄릿'에 포커스를 ‘죽음’에 뒀다. 죽음으로 시작해 죽음으로 끝나는 작품이다. 죽음을 따라다니게 하는 그런 역할이다. 그게 삶에서 죽음이란 게 뭔가, 삶이 얼마나 죽음에 물들어 있는가. 태어나면서부터 죽어간다고 한다. 햄릿은 죽음을 응시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분명히 해보겠단 의지를 갖추고 달려든다. 하지만 햄릿은 결국 마지막 씬에서 삶과 죽음이 결국 하나일 수 있다는 현자의 깨달음을, 얼치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나는 광대놀음으로서 깨우치겠다 결심하고 마지막에 본인이 그 경계를 확실히 하기 위해 죽음으로 자기를 몰아서는 쪽으로 가고 있다. 인간의 근원적인 질문을 죽음이라는 것에 투영시켜서 다뤄보는 작품이다. 형식은 서사적이고 한국을 대표하는 이 배우들의 존재 자체, 존재감, 타고난 연극성으로 연기만 갖고 승부를 겨뤄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부속적 장치를 가능한 제거 했다. 무대도 국립극장 대극장 무대에 올라가 막이 내려진 안쪽 무대에 객석을 만들고 거기서 아홉 명의 배우들이 연극을 하고 때로는 일인 다역을 하며 같이 만들어가는 형식으로 했다. 이 작품을 가능한 서양연극, 영국작품, 셰익스피어, 이렇게 보지 않았다. 고전이라고 하는 것은 인류 공동재산이기 때문에 이것을 연극적 자산이라 보고 '동양, 서양이란 이분법적 구도를 극복해보자' 하고 어설픈 서양식의 옷을 입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어설프게 동양적 해석을 하고 오지도 않아서 동시적이고 보편적인 햄릿으로 만들고자 한다. 이것은 연극 자체가 배우의 예술이긴 하지만 우리가 만드는 '햄릿'은 배우의 연기 자체로 승부를 거는 작품으로 만들고 있다.

ㄴ 박동우 무대 디자이너: 연출선생님 말에 이어 하는 설명이 될 것이다. 보통 공연을 하나 하면 무대 컨셉을 잡게 된다. 근데 이번 컨셉은 '연기'다. 무대 미술가가 무대 컨셉을 왜 연기로 잡았냐 생각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관객이 접하게 되는 무대는 액자틀 무대다. 물론 달오름도, 해오름도 액자틀이다. 액자틀 무대의 특징은 배경은 입체화되지만 공간과 배우가 평면화된다. 그렇기에 주로 스펙타클에 의존하는 공연을 많이 한다. 대부분 뮤지컬이 액자틀이다. 근데 이번에는 무대 컨셉이 연기기 때문에 '연기를 가장 돋보이게 하는 것을 찾자' 해서 무대 위에 육백석 좀 넘는 객석을 만들고 무대를 둘러쌌다. 무대의 배경 자체가 평면화되면서 무대 위 배우는 입체화된다. 한국 연극의 살아있는 전설들의 입체화된 연기를 가장 잘 보이게끔 하는 것이 이번 공연의 중요한 컨셉이다.

   
▲ (좌측부터) 김성녀 배우, 유인촌 배우, 윤석화 배우

연극의 컨셉이 연기라고 했는데 배우들의 말에는 '연기를 하지 말라'고 하셨다. 무슨 의미인가.

ㄴ 손진책 연출: 좀 메타 연극적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우리가 사실 이번에 출연하는 아홉분 배우들의 연기를 몇십 년간 쭉 봤다. 이번에는 새로운 연기, 새로운 연극으로 관객을 만나는데 이분들에게서 연기를 걷어내고 연극을 하는 의식, 개인의 연극 철학 이런 것과 관련돼서 진솔한 소통을 하면 어떤가. 보여주는 연극이 아니라 관객과 소통하면서 느껴지는 연극을 느껴보자는 의미다.

ㄴ 손숙: 엄청 어렵다. 우리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강 뜻은 알아서 지금 맞춰가는 중이다(웃음).

ㄴ 김성녀: 저는 같이 살아서 잘 알아들었다(웃음). 사람들이 연기를 '가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술로 하는 연기가 아니라 진솔한 연기가 필요하다는 것 같다. 손진책 연출 이야기는 통역이 필요하다(웃음). 연출자로 말을 너무 거창하게 한다. '우주를 표현하라'던가. 우리는 말한다. '네가 해라 네가'(웃음). 결론은 진솔한 연기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햄릿'에 여섯 번째 도전하는데 잠깐 언급했는데 나이가 주는 압박은 없으신지 궁금하고 동료들이 연배가 지긋하신데 연습실 분위기도 궁금하다.

ㄴ 유인촌: 나이는 어쩔 수 없다. 저뿐만 아니라 선배님들도 고통스러워하고 극복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일단 나이는 다 잊어버리기로 하고 관객의 몫으로 남기기로 했다. 나이만큼 가진 경험으로 극 중 배역의 나이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열심히 하고 있다. 원칙대로 배역에 맞는 젊은 배우들 들어오고 해서 하면 극이 풍성해지겠지만, 기념 공연이기도 하고 해서 그렇다. 어떤 연극보다도 연습실 분위기는 진지하고 이렇게 많이들 고민한다. 마치 연극을 처음 하는 것처럼 어렵게 진지하게 정열적으로 시작부터 가고 있고, 그러면서 재밌게도 해야 하는데 그 역할은 윤석화가 하고 있다. 육십인데 막내다(웃음). 연습실 분위기로 봐선 호흡 잘 맞는 잘 만들어진 연극이 될 걸로 기대한다.

ㄴ 손진책 연출: 나이에 대해 많이들 궁금해하신다. 전자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았지만 68.5세 정도 된다.
나이가 많은 것이 장점이 되는 연극을 만들고 싶다. 나이를 장점으로 이용하도록 해보겠다.

ㄴ 김성녀: 나이뿐 아니라 성별에도 문제가 있다. 저도 남자 역을 하는데 이 역을 하는데 본질을 따져야지. 성별이 뭐냐 나이가 뭐냐에 대한 과제는 우리에게 떠나보내야 할 것 같다.

ㄴ 손숙: 그런데 나이에 대한 건 좀 고정관념인 거 같다. 외국에선 배불뚝이 오셀로, 머리까진 햄릿도 있다. 요즘 유인촌 씨 햄릿 보면서 어느 젊은 배우가 저렇게 해낼까 싶은 것이 있다. 그러니 나이라는 고정관념은 버리셔도 될 것 같다.

ㄴ 윤석화: 손봉숙이랑 제가 나이가 젤 어리다. 그나마 제가 좀 많지만(웃음). 육십 넘어서 연출자에게 이런저런 지적도 받고 하는 게 '아 내가 이 나이에도 이런 지적을 받으며 새롭게 도전하는구나' 하는 기쁨도 있지만 반대로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어들고 싶을 때도 있다. 선배님들 눈치도 많이 봤다. 연습도 잘 안 되고 그래서 기가 너무 죽는 거 같아서 그 자구책으로 밤에 홀로 눈물 흘리다 문득 '내일부턴 내가 나가서 스스로 재밌게 해야겠다. 내가 너무 어리다고 기죽지 말자. 내일부터 나가서 한껏 애교를 떨자' 하는 컨셉에서 그랬다. 그리고 다들 너무 열심이다. 제일 열심인 게 정동환 배우다. 클로디어스 차례만 되면 연출과 진지한 토론을 하느라 시간이 너무 간다(웃음). 물론 그게 너무 좋지만 무겁고 진지한 작품이니 연습 분위기가 어두워질까 봐 쉬는 시간에 노래 부르고 춤도 추면서 작품에 도움되려고 한다.

ㄴ 유인촌: 남자 중 막내는 저다(웃음).

   
▲ (좌측부터) 윤석화 배우, 손봉숙 배우, 손진책 연출

'햄릿'이 많이 공연되기도 해서 궁금한 게 원작과 스토리나 다른 차이가 있는지. 성별이나 나이 이야기하셨지만 그런 경계가 허물어져 있는데 연출 본인의 해석에 힘을 준 배역이 있는지.

ㄴ 손진책 연출: 셰익스피어 작품은 하면 할수록 훌륭하다. 어떤 평론가는 '사백 년을 해석해도 풀리지 않는다'고 평하기도 했다. 이분법적 구조가 아니라 다양한 해석을 했기에 내가 어떻게 뛰어봐도 그 손바닥 안에 있다. 그래서 특별히 많이 달라진다는 것이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원작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냥 '햄릿'을 하면 네 시간 정도 걸리기에 두 시간 반 정도로 압축했다. 각색한 배성식 씨와 함께, 사백 년 전에 할 때는 조명, 미술 장치가 없기에 배경을 설명하는 대사가 많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연기나 배우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을 구태여 설명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대사를 정리했다. 어느 한 인물에 포커스를 두진 않았다. 아홉 명이 돌아가며 역할을 하기에 골고루 그 배역이 충분히 역할을 해서 아홉 명이 큰 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특별한 캐릭터에 엑센트를 주진 않았다.

ㄴ 정동환: (연습 때 토론을 많이 하셨는데 혹시 덧붙일 이야기가 있느냐는 질문에) 뭘 덧붙이나. 덧붙일 게 없다. 보면 참 잘 썼다. 줄어들었다기보단 많이 함축됐다. 그리고 어느 쪽으로도 해석할 수 있기에 굉장히 어렵다. 우린 보통 대본을 읽고 나면 쭉 작품 느낌이 아 이건 어떻게 하면 되겠다 싶은데 이 작품은 그런 느낌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연출이 가진 키를 통해 우리 연극을 좀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내재돼 있다. 어떻게 해서든 연출에게 한마디 더 들어보려고 한 번 더 읽고 더 해보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내가 헤매는 동안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시간을 뺏는 이유는 고통을 나눠 가지자고 하는 것이다(웃음)

   
▲ 박동우 무대 디자이너

이해랑 선생님은 어떤 분이었는가.

ㄴ 전무송: 제가 처음 드라마센터에서 선생님 만나서 배울 때 말씀하신 것이 '느껴서 해라', '내면이 없다'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다. 진솔하게 느껴서 표현하는 것이 선생님 말씀이셨고 그것이 잘 안 되면 조용히 따로 말씀해주셨다. 저의 자존심이랄까 이런 걸 굉장히 보호해주시고 그러시면서 가르쳐주셨는데 그것이 굉장히 '마음을 다해 공부해야겠다'란 다짐을 받게 하는 그런 가르침을 주셨다. 저에게 해주신 말씀 중에 기억나는 게 드라마센터에서 쭉 연극을 하다 국립극단 처음와서 선조역할을 맡았는데 리딩 시간에 한번 읽었다. 그러더니 그걸 보시고 '허허 멋지다' 하고 제가 읽은 것에 대해서 선생님이 표현하셨다. 그러면서 단원들이 다 제게 시선을 주셨다. 한 일 초 정도. 그런데 그 뒤에 '내면이 없어'라고 하셨을 정도로 '느껴서 해라', 그것이 가르침의 근본이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자면.

ㄴ 박정자: 엊그저께 꿈을 꿨다. 정말 악몽이었다. 무대 위에 서는 사람은 하나도 빠짐없이 악몽을 꾸리라 생각한다. 저도 수없이 꿨지만, 관객은 꽉차있다. 나는 대사가 하나도 생각이 안 난다. 대본을 찾는데 대본이 안 나온다. 이 막막함을 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악몽은 절대 꾸고 싶지 않지만 배우는 다들 꾼다. 연습장 와서 이런 걸 꿨다고 했더니 유인촌 씨가 "이번 연극 잘되겠다"고 했다. 잘 부탁한다.

ㄴ 손봉숙: 저도 가끔 막 올라가기 전에 꿈을 꾼다. 의상을 못 찾아서 맨몸으로 뛰는 꿈. 분위기 메이커를 잘 못하는 젤 어린 제가 있어서 죄송한데 선생님들 열정이 너무 느껴지는 무대다. 제가 가장 밑이니 위에 계신 분들의 정열과 실력이 합쳐져서 근사한 '햄릿'이 만들어질 거라 생각한다.

ㄴ 손숙: 이 연극이 만들어지기까지 엄청난 과정이 있었는데 무엇보다 의지를 갖추고 추진한 박명성 대표가 있다. 지금 연극이 계속 쪼그라들고 가난하다 하다 보니 점점 더 쪼그라든 상황인 건 잘 알 것이다. 근데 박명성 대표는 뮤지컬만 해도 편하게 할 수 있는데 꼭 일을 저질러서 손해를 볼 상황에 처해있다(웃음). 근데도 하겠다고 해서 고맙고 이게 망하면 앞으로 박명성 대표가 연극 하기 어렵다. 그러니 잘들 부탁한다. 앞으로 더 많은 좋은 연극 할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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