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 동백림(동베를린)간첩단 사건 연루 이후 이념 논란 시달려...최근 음악적 공로 재평가 움직임 뚜렷
도시오 호소카와 "각자의 문제와 비극을 음악 언어로 표현하고 싶다"

[문화뉴스 MHN 한진리 기자]윤이상(1917~1995)의 수제자 중 한명으로 꼽히는 일본 히로시마 출신 작곡가 도시오 호소카와(64)가 경남 통영국제음악제를 통해 한국과 만난다.

ⓒ통영국제음악재단

"윤이상 선생님은 늘 고향을 그리워했어요. 독일 베를린 집 근처에서 산책하다가 붉게 물든 나뭇잎을 보고 고향의 낙엽은 더 붉다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납니다. 거의 피처럼 붉은 빛깔이라고 하셨죠."
   
도쿄에서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한 그는 1976~1983년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윤이상을 사사했다.

서구 현대음악과 일본 전통문화를 넘나들며 자기만의 음악 언어를 개발해온 호소카와의 음악은 동·서양의 음악기법과 사상을 융합시킨 윤이상 음악과 그 맥락을 함께 하다.

 '통영국제음악제' 개막 공연을 앞두고 통영을 찾은 그는 "스승의 고향이라 감회가 남다르다"며 "윤이상 선생님에게서 통영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윤이상과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에 비유하며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선생님의 베를린 자택에서 함께 살기도 했어요. 윤 선생님 부부가 투어 공연으로 오랫동안 집을 비우면 제가 그들을 대신해 고양이들 밥을 주고 정원을 가꿨죠.(웃음)"

ⓒ윤이상평화재단

그가 윤이상을 처음 만난 것은 1974년 일본에서다. 실연으로 접한 윤이상의 음악에 깊이 감명을 받은 호소카와는 윤이상을 따라 독일 유학을 결심했다.

그는 "내 음악의 뿌리는 윤이상"이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윤이상에게서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지점으로 "한 음에 지대한 힘과 큰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을 꼽았다.

한 음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꺾이고, 사라지는 윤이상의 독특한 작곡법은 '주요음', '주요음향'으로 불린다.

"서양 음악에서는 음과 음이 모여 하나의 주제나 모티브를 형성합니다. 그러나 동양 음악에서는 다르죠. 한 음 안에 시작과 소멸, 진동과 성장 등이 다 담을 수 있습니다. 마치 붓에 먹을 묻혀 그리는 하나의 선이 두꺼워졌다가 얇아지고 꺾이기도 하는 것처럼 동양의 한 음은 끝없는 의미를 담을 수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윤이상을 독창적 음악기법을 개발한 세계적 현대음악가로 평가하지만, 정작 고국에서는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이후 줄곧 이념 논란에 시달려왔다.

그러나 작년 그의 유해가 고향 통영으로 돌아오는 등 그의 음악적 공로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최근 뚜렷하다.

호소카와는 윤이상에 대해 "정치적인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들은 기억이 거의 없다"며 "그럼에도 정치적 이슈에 너무 많이 연루된 점이 안타깝고 슬프다"고 했다.'

ⓒ통영국제음악재단

다음달 7일까지 열리는 통영국제음악제에서는 호소카와 작품 4편이 소개된다.

이 중 가장 관심을 끄는 작품은 오페라 '바다에서 온 여인'(3월 29~31일)이다.

일본 전통 가무극 노(能)를 대표하는 '후타리 시즈카'를 현대오페라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2017년 프랑스 파리에서 초연됐던 작품으로, 이번 무대가 아시아 초연이다.

윤이상이 한국 전통음악에서 많은 영감을 얻은 것처럼, 호소카와는 일본 전통예술의 미학적·영적 요소에 관심이 많다.

전통극 '노'를 비롯해 궁중음악 가가쿠(雅樂), 서예 등이 그의 음악적 표현에 많은 영향을 줬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문제와 비극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가진 음악 언어로 이 부분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스승께서도 테크닉적인 음악이 아닌,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음악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셨죠. 지금까지도 그 가르침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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