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정영주 기자] 오는 6월 22∼2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예정 된 '지젤'을 끝으로 국립발레단에서 퇴단하는 발레리나 김지영(41)은 30년 무용 인생의 한장을 덮는 중대 사건을 앞두고 있다.

지난 1997년에 국립발레단에 입단하여 수석무용수로 활약한 그는 '지젤'을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나 경희대학교 교수로 부임하게 된다. 이후 갈라 등도 예정되어있지만, 대형공연장에서 펼치는 전막 공연은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이다.

김지영은 오늘(26일) 예술의전당에서 기자들과 만나 얘기를 나누다 "발레단 친구들과 공연하며 서로 도와주고, 농담하던 사소한 일들이 정말 그리울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히었다.

"만감이 교차합니다. 오래전부터 '그리움이 남는 무용수가 되고 싶다'고 말씀드렸엇는데요, 더 춤추면 사람들이 지겨워할 것 같아요. 그 전에 놓아줘야 사람들이 그리워하지 않겠어요?"

1978년생인 그는 자신을 '1990년대가 익숙한 사람'이라고 소개하였다. 언니·오빠와 터울이 많은 막둥이로 태어나 외로운 유년 시절을 보내었고, 우연히 초등학교 4학년 때 발레에 입문하여 무용 외길을 걸어왔다. 1997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한 후 2002~2009년 네덜란드국립발레단에서 활약하며 유럽에 이름을 알리었다. 그리고 2009년에는 국립발레단에 복귀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전 아직도 1990년대를 살아요. 국립발레단에 1997년 입단했는데 그때가 멀게 느껴지지 않거든요. 그런데요, 춤에도 시대가 있어요. 제가 속한 세대는 서서히 막을 내리는 것 같아요. 국립발레단에서는 무용수가 무대에 설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데, 제가 계속 남으면 그 친구들의 기회를 뺏는 것일 수도 있어요. 이제는 새로운 시대의 춤이 나와야죠."
    

그는 자신을 발탁했던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과 강수진 현 국립발레단장에 대한 애틋함도 털어놓았다. 최 전 단장은 19세였던 김지영을 발탁하여 스타 발레리나로 길러내었으며, 쉰 가까이까지 현역으로 활동한 강 단장은 김지영에게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최태지 단장님은 쟁쟁한 언니들 사이에 어린아이였던 저를 기용하고 역할을 주셨어요. 저는 제가 잘해서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 거라 생각해요. '김지영'을 만들어주신 분이기에 정말 감사해요. 또 강수진 단장님은 항상 제게 그러셨어요. '마흔이 되면 춤추는 게 편해지더라'라고. 늘 가야 할 길을 제시하여주신 분이에요. 저는 이렇게 발레를 하면서, 무대에서 인생을 배웠네요."

김지영은 퇴단을 앞두고 마지막 작품으로 낭만 발레 '지젤'을 선보이는 것이 운명 같다고 하였다. '지젤'은 시골 처녀 '지젤'이 귀족 청년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졌다 배신당한 충격으로 죽지만, 유령이 되어서도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알브레히트를 지켜주는 내용이다.

그는 "'지젤'은 내게 숙제 같은 작품이었다. 1999년 '지젤' 전막을 처음 했을 때는 너무 못해서, 끝나고도 찝찝하였다"고 하며 "예전에는 문제조차 이해를 못 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숙제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다"고 말하였다.

어떤 마지막 무대를 꿈꾸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어린아이처럼 해사한 웃음을 지어냈다.

"외국에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도 복귀한 무용수들이 많거든요. 은퇴 무대에 남편과 아이들이 와서 꽃을 주는 장면이 정말 아름다워 보였어요. 내 인생에 저런 사진 한장 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는데 이젠 늦었고요(웃음). 무대를 완전히 떠나지는 않을 거에요."

발레 인생이 평생 꽃길과 같은 길이었을 리 없다. 춥고 배고팠던 러시아 유학 시절도, 춤에 심드렁해지었던 젊은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토슈즈 신기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춤은 더욱 깊어져갔다.

"경험이 쌓인다고 무대가 무섭지 않아 질까요? 아니에요. 더 심해져요. 자신과의 싸움이 중요해요. 저는 자신감과 겸손함의 균형을 맞추면서 살아왔어요. 어릴 땐 주위에서 잘한다 잘한다 하니 진짜 잘하는 줄 알고 잘난 맛에 춤을 췄었는데, 거기서 온 혼란이 컸었죠. 나이가 들면서 점점 자신을 잘 알고 겸손해지는 것 같아요. 앞으로의 삶도 균형을 잘 맞추며 살아갈 것입니다."

인터뷰를 매듭지을 즈음, 왜 그리 춤이 좋았냐고 기자가 물었다. 김지영은 당연한 것을 물어본다는 듯이 생긋 미소를 지었다.

"진심으로 사랑할 때는 이유가 없잖아요. 사랑하는데 이유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