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계동에 위치한 리만머핀서울 갤러리, 비니언 개인전은 오는 7월 13일까지 진행
뉴욕에서의 개인사 담긴 추상화 '주소록 회화'가 바탕

맥아서 비니언, 핸드: 워크, 보드에 종이·오일스틱, 121.9×182.9×5.1cm, 2019
출처: 리만머핀서울

[문화뉴스 MHN 박현철 기자] 서울 종로구 계동에 위치한 리만머핀서울 갤러리에 격자무늬 작품 여러 점이 걸렸다. 격자의 작은 그리드마다 'ALEX' 'APT' '7XX-4X78'와 같은 영어 단어나 수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림 '핸드: 워크'(2019)에 대한 미국인 미술가 맥아서 비니언의 한마디가 인상적이다. "뉴욕 사람들은 거의 번호를 바꾸지 않아서, 여러분이 지금 이 번호로 연락하면 전화를 받을지도 모르겠네요. 친구들이 자기 번호가 여기 서울에 전시된 것을 알면 화낼 것 같기도 합니다. 하하하."

비니언의 격자무늬를 활용한 '주소록 회화' 중의 한 작품이 바로 '핸드: 워크'이다.

작가는 주소록과 가족사진, 출생증명서 등을 한데 모아 보드에 붙인 뒤, 다채로운 색깔의 오일 페인트 스틱으로 선을 그어 격자를 만든다. 이제 격자 속에 남겨진 문자와 숫자 흔적은 그가 수십 년간 교류한 사람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에서 예술작품의 구성이 된다. 구체적인 개인사를 기하학적 추상에 녹여낸 삶이 담긴 작업이다.

이번에 리만머핀 서울에서 열리는 비니언 개인전 '핸드: 워크: Ⅱ'의 바탕도 '주소록 회화'다. 최근 갤러리에서 만난 작가는 이 작업을 두고 "내 삶의 지리학이면서,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것들"이라고 덧붙였다.

"1972년부터 20여 년간 꼼꼼히 기록한 주소록을 작업에 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무엇인가 복받치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내 삶을 이루는 것들을 일종의 직물처럼 엮기 위해 이러한 격자무늬를 택했고요."

 

 

맥아서 비니언
출처: 연합뉴스

투명한 터치로 만들어진 작품은 마치 하늘하늘한 린넨 스카프처럼 맑다. 작가 또한 "주소록에 사용한 세피아 잉크가 오일스틱을 만나 새로운 색으로 튀어 오르는 것을 보면 놀란다"라고 자신 역시 감탄했다고 말했다.

비니언은 1946년 미국 미시시피 메이컨에서 태어나, 뉴욕으로 이주한 뒤 장 미셸 바스키아, 솔 르윗 등 훗날 세계적인 거장이 되는 작가들과 함께 그림을 그렸지만, 유독 빛을 보지 못했다. 그게 이미 1980년대의 이야기이다.

이후 1980∼1990년대를 거치며 비니언의 액션 페인팅은 점차 절제되고 기하학적인 추상으로 바뀌며 자신의 또 다른 개성을 가졌다. 이번 전시의 바탕인 '주소록 회화' 작업은 2005년 즈음에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가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 2017년 베네치아비엔날레(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 본 전시 참가 때였다. 당시 그의 나이 71세였다. 다음해 1월 세계에서 손꼽히는 화랑인 리만머핀은 비니언과 전속 계약을 했다고 발표하며 세계무대에서 그의 늦은 등장을 알렸다.

"작가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이 일은 평생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습니다. 지금도 매일 작업을 합니다. 매일 다른 감정으로 대하기에, 같은 선처럼 보여도 어느 하나 같지 않은 작업이죠."

비니언 개인전은 리만머핀 서울뿐 아니라 리만머핀 홍콩, 마시모 데 카를로 홍콩 갤러리에서 동시에 열린다. 전시는 오는 7월 13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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