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젊은 농어업인들의 희망보고서 18편, 진도바다영어조합법인 이정근 대표
  • 오지현 기자
  • 승인 2019.11.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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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바다영어조합법인 이정근 대표, "성은 이 씨이지만 김 박사가 되어야죠"
출처 한국농수산대학, 진도바다영어조합법인 '이정근' 대표

[문화뉴스 MHN 오지현 기자] 이정근 대표는 2016년 한국농수산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 밑에서 1년 동안 후계경영 수업을 받았다. 이듬해부터는 대표직을 맡아 3년째 진도바다영어조합법인을 총괄 지휘하고 있다. 조합은 김 종묘부터 물김과 마른김 생산까지 1년 내내 쉴 틈없이 돌아간다. 더 큰 도약을 꿈꾸기 위해 김 가공 공장을 증설하고 있다.

천직이 된 가업, 만족스러웠던 학교생활

30여 년 전부터 진도에서 김 가공업을 시작해 물김 양식과 김 종묘 분야로 사업을 확장한 아버지 덕분에 이정근 대표는 어려서부터 김과 함께 자라났다. 그래서 진로에 대한 고민이나 망설임 같은 것도 별로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한국농수산대학을 소개받은 후로 그곳을 졸업한 다음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자고 마음을 굳혔다.

가업이 천직이 되는 자연스러운 후계농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일찍이 진로를 정한 만큼 학교생활도 만족스러웠다. 입학해서 1년 간은 수산양식의 여러 분야를 폭넓게 배웠다. 2학년 때는 완도해양연구소로 실습을 나갔다. 아버지의 조수 노릇을 하며 익히 봐 왔던 것들이었지만 김 종자 배양의 기초부터 새롭게 배워 나갔다. 다양한 김 전문가들로부터 지식을 전수받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눈이 뜨였다. 또한 많은 학우들과 생활하면서 서로의 지식을 주고받은 것은 인적 네트워크 형성에 큰 도움이 되었다.

경영수업 1년 만에 물려받은 농장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 밑에서 본격적으로 경영수업을 받은 지 1년. 묵묵히 아들의 자세를 지켜봐 온 아버지는 하산을 명했다. 사업장 운영을 맡긴 것이다. 수십 억 매출의 30년 된 사업장을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아들에게 맡기는 아버지의 강단도 대단하지만, 그간 이 대표가 쌓은 신뢰가 단단히 한몫했으리라. “남들은 거저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아버지가 상사인 직장에서 일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학교 다닐 때 학우들과 함께 후계농에 대한 고민을 많이 나눴죠. 부모 자식 간의 갈등과 차이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저는 아버지가 당신의 의견이 확실하셨음에도 저를 많이 믿어 주셨어요.”

지금은 자신의 주도로 많은 것을 시도해 볼 수 있지만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크고 작은 마찰이 많았다. 끊임없이 소통하며 서로의 간극을 좁혀 나가는 수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이게 안 돼서 영영 갈라지는 부모와 자식도 많다. “저는 아직도 경험이 적고 배워야 할 것이 많잖아요. 그래서 그 과정이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정신없이 돌아가는 와중에도 크고 작은 보람들을 많이 느꼈고,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할 때의 장점을 보려고 했습니다.” 

 

출처 한국농수산대학, 진도바다영어조합법인

눈코 뜰 새 없이 지나가는 1년

한국농수산대학 출신으로 현장에서 종사하는 졸업생들이라면 대개가 그렇겠지만 이 대표 역시 1년 내내 눈코 뜰 새가 없다. “11월부터 5월까지는 물김 채취와 함께 김 가공 공장을 가동해요. 김 가공이 끝나면 바다 양식장 시설을 철거하고요. 3월경에는 김 종자를 패각에 이식하고, 5~7월에는 집중 관리를 해서 8월부터 채묘 작업과 동시에 종묘를 출하하죠. 종묘는 돌김 2종과 일반 김 1종을 다루고 있는데 흔히 곱창김이라고 부르는 돌김은 8월부터, 일반 김은 10월 중순까지 차례로 채묘해요. 끝나면 바로 다음 해 종묘와 물김 양식을 준비하죠. 모든 작업이 1년 내내 연쇄적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나마 여름이 한가하고 편한 때이지만 김 종묘는 전염병에 노출될 위험이 크기 때문에 고수온기에는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물김 역시 조금만 방치해도 금방 상해 버리기 때문에 24시간 가공 공장을 돌려야 한다. 공정마다 전문 장비 및 기술과 노하우가 필요하기 때문에 가공 공장에서도 방심은 금물이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기 위해 이 대표가 공장 옆 숙소에서 쪽잠을 자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1995년생인 이 대표는 이제 스물다섯 살이지만 열일곱 살에 진로를 결정한 이후부터 현장 일을 자신의 업으로 삼았다. 현장에 머문지가 거의 10년이 다 돼 가는 셈이다.

도시에서는 아직 새파란 젊은이로 치부될 나이이지만 10년이란 시간은 그에게 진중함과 듬직함을 만들어 줬다. 문득 이렇게 일찍 자기 삶을 결정한 사람은 다른 직종에 대한 호기심은 없었을까 궁금해졌다. 일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묵직함을 보이던 그가 어릴 적 꿈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는 해맑은 청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어릴 때는 막연하게 해양경찰이 되고 싶었어요. 그때도 바다는 좋았나 봐요. 그렇다고 동경 까지는 아니고…. 사실 다른 직업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진 않았어요.”

가끔 다른 친구들처럼 평범한 직장에 다니거나 도시에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보기도 한단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이 대표는 이내 “이제 바쁜 삶에 익숙해졌다”고 말하면서 “좋은 취미가 있으면 추천해 달라”고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 박사가 아닌 김 박사, 책임감으로 임하다

지난해에는 폭염으로 김 종묘장에 전염성 황반병이 돌았다. 전염병은 자칫하다가는 전체로 퍼져 버린다. 다행히 채묘시기에 생긴 질병 이어서 큰 피해 없이 대처할 수 있었다. “종묘장의 사고는 단순히 우리 종묘장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채묘에 차질이 생기면 계약했던 어민들에게 종묘를 납품하지 못하게 돼요. 그러면 어민들 농사에 큰 피해가 가게 마련이고 단지 우리의 매출 하락만으로 끝나지 않거든요.” 

결국 내가 살고 우리가 함께 살기 위해 하는 일이라 생각하면 한순간도 소홀할 수 없게 된다고 이 대표는 책임감을 거듭 강조했다. 한 해 종묘 작업이 성공적이면 조합의 매출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더불어 내가 키운 종묘를 받아간 어업인들도 순조롭게 작업을 시작할 수 있으니 이 대표는 그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도 말했다. 일에 서 보람을 느끼면 소득은 오히려 부가적으로 느껴진다. 매순간 감사하는 자세로 가치를 만들어 가는 이 대표는 아름다운 영어인이 분명했다.

 

출처 한국농수산대학, 진도바다영어조합법인

세계에서 인정받는 김 생산을 목표로

김 양식은 최근 3~4년 동안 큰 호황이었다. 하지만 작년부터는 김 생산 농가가 많이 늘고 중국 황해(서해) 연안에서도 공격적으로 김 양식을 확장하고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 쪽으로 진출해 기술도 많이 넘어간 상태라고.

“김 생산 시장은 어쩌면 지금 포화 상태일 수 있어요. 이렇게 되면 양이 아닌 품질 승부가 될 거고, 그럴수록 준비를 더 많이 해야겠죠. 쉽진 않겠지만 승산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 대표는 생기 있는 젊음을 바탕으로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며 계획의 한 일단을 밝혔다. “현재 김 가공 공장을 증설하고 있어요. 나아가 공장의 일상적인 운영은 전문 관리자에게 맡기고, 저는 연구와 경영에 좀 더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 대표는 생산되는 김밥김의 80%를 5년째 고봉민김밥에 납품하고 있다. 고봉민김밥은 전국에 600여 개의 지점을 가지고 있는 김밥 업체다. 현재 고봉민김밥에서 이 대표의 김이 차지하는 비중은 30% 미만. 가공 공장 증설 이후 고봉민김밥에서 소비하는 김의 50%까지 납품량을 끌어올리는 것이 당면 목표인데, 이미 이 대표의 김은 품질에서는 인정받고 있어 목표 달성이 어렵진 않을 것 같다. 최고 품질의 김 종묘와 김을 생산해 전 세계에 수출하는 것 또한 이 대표의 큰 꿈이다.

이 대표는 그 꿈을 위해 오늘도 촌음을 아껴가며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고 있다. 앳돼 보이는 인상과 달리 노련한 경험과 단단한 의지로 무장한 그의 앞날이 어떻게 크고 아름답게 펼쳐질지. 이정근 대표의 김이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나아가 동북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주름잡을 그날을 힘차게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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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명 : 진도바다영어조합법인

농장소재 : 전라남도 진도군 

경영유형 : 직접경영

영농경력 : 4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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