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물결의 아리스토파네스 작·송현옥 연출의 리시스트라테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고대 그리스의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리시스트라테>, 일명 <여자의 평화>로 불리는 이 작품은 집안에 갇혀 남편에게 복종해야만 했던 여성들이 잠자리 거부운동을 벌여서 남자들이 벌이고 있는 전쟁을 중단시킨다는 내용의 희극이다.

작품의 배경은 기원전 400년경,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모두가 지친 상황에서 아테네의 젊은 유부녀 리시스트라테는 아네네와 적국인 스파르타의 유부녀들을 설득해 남편들이 동족간의 전쟁을 그만두지 않으면 잠자리를 거부하기로 결의한 것이다.

처음에는 비웃던 남자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성욕을 참지 못하고, 결국은 아랫도리가 괴상하게 부풀어 오른 모습으로 여자들에게 백기를 들고 만다. 이렇게 한 여성의 기지로 고대 그리스에 평화가 찾아오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리시스트라테>의 줄거리다.

2003년 3월,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기 직전 즈음에 신문에서 매우 파격적인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는 몇몇 나라의 여성들이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는 남성과는 잠자리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즉, 기사 속의 그녀들은 "잠자리를 거부해 전쟁을 멈추자. 끝내자!"했던 것이다.

또한, 2004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코미디 작가 겸 감독 지망생 미셀 콜린스라는 23세 여성이 인터넷에 '보터가즘(Votergasm)'사이트를 만들었다. 투표자와 오르가슴의 합성어다. 콜린스는 사이트의 슬로건을 'No Vote, No Sex'로 내걸었다. 투표하지 않은 애인과는 섹스를 거부하자는 뜻이다. 캠페인은 뉴욕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같은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머그잔·냉장고 자석은 인기 상품이 됐다. 이들은 투표 안 한 사람과 1주일간 섹스를 거부하면 '시민’, 투표한 사람과 섹스하면 '애국자'로 구분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9년 4월 케냐 여성단체들의 모임은 남성들에게 '잠자리 파업’을 선언했다. 당 간의 불화로 정부가 위기에 처하자 정치인들이 화합하지 않을 경우 남성들과 성관계를 거부할 것을 여성들에게 요구한 것이다. 대통령과 총리 부인에게도 여기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또 성매매 여성들에게는 '섹스 파업'참여 대가로 보상금 지급을 약속하기도 했다.

이러한 섹스스트라이크의 발상은 아리스토파네스가 쓴 희곡인 '리시스트라테’의 주인공인 리시스트라테의 발상이다. 기원전 411년의 발상이 지금의 사회에서도 쓰인다고 볼 수 있다. 위의 예에서 나온 투표를 위한 성파업은 67%의 투표율로 성공적이었다. <리시스트라테>라는 이름은 '반전’의 대명사라 하겠다.

극단 물결의 이번 <리시스트라테> 공연은, 눈만 뜨면 동서의 갈등과 남북의 대립, 진보와 보수의 분쟁을 바라보며 살아가야하는 현 세태에 던져주는 송현옥 연출가의 충고이자 풍자극이라 평하겠다.

   
 

무대는 배경 가까이 정중앙에 어두컴컴한 색깔의 커다란 여닫이문이 있고, 문 양쪽으로 여러 개의 고풍스런 기둥과 함께 피부색의 벽이 좌우로 벌려져 있다. 2층 구조인데, 2층은 베란다처럼 통로가 무대좌우로 펼쳐져 있고, 수많은 볕가리개처럼 된 차단물이 세로로 드리워져 그 차단물 사이로 출연자들이 고개를 내밀거나, 등퇴장을 한다. 무대 좌우로도 등 퇴장 로가 있고, 사각의 입체조형물을 들여와 의자나 탁자로 사용하고, 남성성기상징의 대형조형물을 남성출연자들이 부착하고 출연해 폭소를 유발한다. 음악은 랩 음악과 탱고음을 사용해 분위기를 상승하고, 의상은 관능미를 돋보이도록 디자인을 했다.

연극은 도입에 리시스트라테가 소형컴퓨터 노트북을 펴놓고 앉아 집필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장기간 계속된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의 전쟁으로 지치고 피폐해진 상황에서 탈출해 보려는 리시스트라테의 영민한 기지가 촉발된다. 동료이자 절친한 친구인 아테네의 여인들에게 제시하는 내용은 원작과 일치한다. 그들보다 연상인 백발의 아테네 여인들도 리시스트라테의 제안에 동참한다. 여인들은 아테네의 적국인 스파르타 여인들의 동의도 받아낸다.

   
 

남녀의 잠자리, 그것도 전쟁을 치르는 젊은 남자들에게 계속되는 긴장감의 해소를 위해서라도, 부인과의 동침은 절대 필요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부인들의 잠자리 거부운동은 핵폭탄에 비견되는 충격이다. 남성들은 공룡처럼 부풀어 오른 상징물을 부착하고 등장해, 무대를 누비며, 해소책을 생각하지만, 닫혀있는 여인들의 성전건물은 열릴 기미를 보이지를 않는다. 개중에는 별의별 핑계를 대고 부인과 대면하지만, 철의 여인 같은 부인의 심경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대단원에서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정전협약이 이루어지고, 사랑하는 부인과 만나며 환호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된다.

조선주, 이은지, 오주원, 박설화, 장교한, 신민주, 도상란, 김현승, 장준현, 안성욱, 김산성, 임재현, 유태성, 신동혁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은 관객을 폭소로 몰아가고 갈채를 받는다. 특별출연으로 김남중, 김재은, 도상란, 박종원, 서정민, 우경내, 윤원태, 윤현철, 이기영, 이 산, 이성진, 이애리, 이정순, 이현우, 임영신, 조대한, 조미경, 조민선, 조하진, 천지훈, 하인아, 하종웅, 허원실, 황훈성, 민경신 등이 참여해 시민 역을 해낸다.

안무 이영찬, 액팅코치 나현민, 조연출 이종민, 총기획 이애리, 기획 이준석·김연정, 기술감독 정진철, 무대 조환준, 음악감독 윤서연, 의상 이영신, 디자인 송지연·지 성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극단 물결의 아리스토파네스 작, 송현옥 연출의 <리시스트라테>를 현 시국과 세태에 적절하게 어울리는 한 편의 명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공연기간 2015년 3월 10일~3월 29일.
#문화뉴스 공연칼럼니스트 박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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