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영화 '연결고리' #026 '어느날'

   
 

[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4월에 접어들자, 어느덧 쌀쌀했던 찬바람은 사라지고 향기로운 봄꽃 냄새로 가득해졌다. 화창한 날씨이다보니 사람들은 주말에 너도나도 바깥으로 나가 봄을 만끽하고 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변함없이 영화관을 찾는 이들도 많다. 그래서 오는 봄에 어울리는 영화 '어느날'에 대해 '영알못' 석재현 기자와 '평점계의 유니세프' 양미르 기자가 이야기를 나눠본다.

'어느날'을 본 소감이 어떠했는가? 현재 박스오피스에 이름올린 다른 영화들과 차별성이 있던가?
ㄴ석재현 기자(이하 석) : 이윤기 감독은 그동안 남녀의 복잡미묘한 관계를 잘 그려냈던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어느날' 메인 포스터 또한 봄날의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두 남녀 배우인 김남길과 천우희가 등장했으니, 이전에 이윤기 감독 작품을 봤던 이들이나, 이 영화를 보러 가는 관객들은 로맨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날'은 유일하게 남녀 관계가 로맨스로 엮이지 않는다는 게 특징이며, 이는 최근 개봉했던 다른 국내 영화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포스터를 보고 낚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영화는 우리의 고정관념의 관계를 깨뜨렸다는 점에서 참신했다고 생각한다.

   
 

양미르 기자(이하 양) : "결국은 사이다처럼 톡 쏜다"며 말해달라고 애걸하는 장르의 한국영화를 보다가, 무언가 템포는 느리지만, 여운을 주는 작품을 만났다. 혹시 대형 포털사이트에서 이 작품의 장르를 확인해 본 적이 있는가? 놀랍게 이 영화의 장르는 표기되어 있지 않는데, 평점 사이트인 '왓챠'에서는 '미상'이라고 기재가 될 정도다. 영진위 통합전산망에서 확인하니 '멜로/로맨스'라고 표시됐는데, 이 작품은 그 장르라기보다 드라마에 가깝다. 결국은 상처를 받은 사람이 연대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로맨스 없이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독특했다. 여담이지만, '장님'이라고 하지 말고 '시각장애인'이라는 말을 하라고 하는 장면에서, 일부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이다 같은 순간이었다. 

'어느날' 이윤기 감독의 작품세계는 보는 관객에 마다 다소 다르게 느껴져서 호불호라는 말도 있다. 두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른 작품을 빗대어서 설명해도 좋다.
ㄴ석 : 그의 작품을 많이 접한 사람들은 이윤기 감독의 영화들이 하나같이 취향을 많이 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윤기 감독 작품들은 어투부터 문어체를 주로 사용하면서 영화가 한 편의 문학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영화를 통해 '치유'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그의 데뷔작인 '여자, 정혜'와, 이윤기 감독의 역작 '멋진 하루'를 예로 들면, '희수'와 '병운', 그리고 '정혜' 모두 과거의 상처를 지니고 있는 인물들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기 자신을 되찾음과 동시에 상처를 치유해나갔다.

   
▲ 멋진 하루(2008)

'어느날'이 전작들과 달리 남녀의 로맨스가 1%도 담겨있지 않는다는 점이 분명 다르다. 하지만 '어느날'은 이윤김 감독의 주 색채인 '치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강수'와 '미소' 두 사람만 서로 볼 수 있도록 설정했던 건 두 사람 다 남들에게 말 못 할 아픔을 지니고 있었으며, 같은 아픔을 가진 두 사람이 감정을 교류하며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나갔다. '어느날'에서도 문학적인 냄새는 고스란히 전해졌다. '강수'와 '미소'의 어투, 그리고 그들을 한 편의 문학처럼 아름답게 담아내려고 시도했던 흔적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것이다. 보는 이에 따라 지루하거나 낡았다고 하지만, 슬로푸드를 음미하듯, 우리의 감성을 잔잔하게 되새겨보면 되지 않을까?

양 : 아무래도 '상업영화'의 공식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지루하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매우 느린 템포로, 카메라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배우를 쳐다보거나, 먼발치에서 지켜본다. 그러면서도 할 이야기는 하려 한다. 이윤기 감독의 작품을 보면 대부분이 '멜로/로맨스' 장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격정 멜로'라기 보다는 두 사람의 외로움, 공허, 불안, 결핍된 마음 등이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 남과 여(2015)

'어느날' 이전 이윤기 감독의 근작인 '남과 여'만 하더라도 '불륜'을 다루지만, 그 행위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과 그 선택에 옳고 그름을 관객에게 물어볼 정도였다. '멋진 하루'에 나오는 헤어진 연인 사이,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의 헤어지기 직전에 처한 연인 등 이러한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의 상황은 매우 현실적이다. 앞서 드라마로 '어느날'을 이야기했지만, 그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소재는 '판타지'다. 죽은 사람이나 유령이 보인다는 설정은 '사랑과 영혼', '식스 센스', '꼬마 유령 캐스퍼' 등 멜로, 공포, 가족 장르 등을 통해 선보여졌다. 그러나 이 작품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어느날'의 결말은, 결국 사랑이 아닌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 느낀 바를 말해달라.
ㄴ석 : 이 이야기는 언제나 꺼내도 참 어렵다. 일단 '강수'가 '미소'를 위해 호흡기를 떼버린 행위를 법적으로 판단한다면 엄연한 살인행위를 저지르는 것이기에 그의 행동은 처벌받게 되어도 할 말이 없다.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에선 안락사를 법으로도 허용되지 않고 있으며, 보호자도 아닌 영혼의 말을 듣고 그런 선택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해 다소 황당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직접 우리가 '강수'나 '미소'같이 당사자가 되어 상황이 닥치지 않는 한, 감히 무엇이 옳다 그르다고 판단할 수 있을지 사실 잘 모르겠다. 이윤기 감독 또한 이 민감한 부분을 '어느날'을 보러 온 관객에게 판단을 맡겼다. 한번쯤, 이 부분에 대해 우리도 생각해볼 만하지 않을까?

양 : 삶과 죽음이라고 했는데, 참 슬픈 장면이 있다. '미소'가 '케인'을 잃어버린 후 길에서 헤매는 장면이다. 앞이 안 보이는 상황임에도 자신의 친어머니는 자신을 이해해줄 줄 알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결국, 모든 희망을 잃었다고 판단한 '미소'는 위험한 상황에 빠지고 만다. 그런데 앞서 유사한 장면이 '강수'에게도 펼쳐진다. 아내가 죽고 모든 희망이 사라진 순간, 술에 만취한 후 차에 치일뻔한 모습이다. 또한, '강수'는 아내가 병에 걸린 순간 "나에게 이런 시련이 찾아올지 몰랐다"는 의미의 말을 한다. 우리가 죽음의 순간을 알 수 없으므로, 그래서 더 열심히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게 아닐까라는 감정도 떠오른다.

   
 

'어느날'을 간략하게 요약한다면?
석 : ★★★★ / 노을 지는 바닷가처럼, 아름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공허함을 주는.
양 : ★★★ / 그 선택에 동의하지는 않을지라도.

syrano@mhns.co.kr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