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가는 시 예산과 달리 줄어드는 예술계 예산
문화 예술을 하는 이들이 포기하지 않기에 활력을 찾은 대학로

글: 지하창작소 제가백가 이훈경 대표

 

코로나가 삶을 뒤흔든 지 2년이 되어간다. 밥을 먹는 방법도, 사람을 만나고 사귀는 방법도, 일하는 방법도, 연애하는 방법도, 돈을 버는 방법도, 아이들이 세상을 배워가는 방법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세대별로 어떻게 살아가는지조차, 누군가를 걱정하고 이야기를 나눌 여유조차 없어진 세상이다. 

보이지 않는 회색 도시가 되어버린 느낌. 2020년은 그렇게 모든 게 멈추었다. 영화는 TV 속으로 들어가고 극장은 모든 공연이 멈추거나 온라인으로 대체되고···.

예술이 평생 업이었던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다른 곳곳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극장은 치솟는 임대료에 문을 닫고 연습실들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문화지구라는 대학로에는 주에조차 사람들이 없는 유령도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이렇게 예술이 연기처럼 사라질 것 같았다.

 

 

하지만 수많은 겹겹의 시간을 예술가로, 연극인으로 살아온 우리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좀 더 튼튼하게 이 바닥을 버티기 위해 잠시 움츠러들었을 뿐. 2021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지금, 확진자의 수는 이미 수천 명을 찍고 내려왔지만, 여전히 많은 숫자를 기록하고 있다.

대학로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예전 만큼은 아니지만, 거리에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들로 인해 가게들도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공연들도 하나둘 티켓이 오픈되기 시작했다. 무엇 때문일까? 상황은 그다지 큰 차이로 나아지지는 않았는데 예술의 거리에 이 변화는?

이 아슬아슬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며 무대 만은 지켜야겠다는 연극인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한여름에도 마스크를 쓰며 연습을 하고 단 하루를 공연하더라도 공연을 지속하고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수시로 코로나 검사를 받고 가장 열심히 백신을 맞은 업종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관객의 발길이 끊긴 객석을 위해 연극인들은 서로서로 공연을 보며 제작비에 도움이 되라고 초대가 아닌 할인권을 이용해 공연을 보고 있다. 그렇게 힘을 보태며 2년을 버티고 있었다. 그들이 무대를 지키고 대학로를 지키고 예술을 지키고 있었다.

겹겹의 시간 속에 갖은 시련을 겪으면서도 변화와 지켜내기를 하는 그 예술 영웅들을 지켜줘야 하는 우리의 정책은 어떤지 들여다보자. 소상공인 손실보상은 어떠한가? 공연업이 미포함 되었던 초안 정책 방향에 끝없이 소리 낸 결과 공연업을 포함은 시켰으나 정작 지원 대상에 공연단체들은 포함이 되지 않은 상태로 극장들만 포함되어 진행되었다. 

그렇다면 그 해당하는 극장들에 대한 혜택은 결국 누구에게 가는가? 임대료가 미납되지 않을 수 있으니 건물주가 그 혜택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공연계 뿐 아니라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불만으로 보도되었다. 

영업 제한, 규제 등으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들을 위한 정책이었는데, 극장은 코로나로 대관을 할 수 없으니 당연히 피해자이고 그 극장에 공연을 만들어 들어가는 단체는 거리두기로 관객을 30~50%밖에 받지 못했는데 왜 포함되지 않는 것인가?

고용보험은 어떠한가? 너무나 좋은 그리고 필요한 정책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현장에서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적응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리 현장인들이 외쳤건만 고용보험은 시행이 되었다. 

이 코로나 시국에 단체들은 공연을 올리는 것도 버거운데도 서로 공연을 봐주는 문화를 만들며 버티고 있는 이들에게 또 하나의 과제처럼 주어진 고용보험은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커다란 산이 되어 버린 것이다. 지원사업에 고용보험은 선택이라고는 하지만 10% 가산 점수가 있으니 결국은 필수인 것이 아닐까?

늘어나는 시 예산과는 달리 매년 예술 예산은 줄어들고 예술가들은 그 예산에 맞춰 안고 가야 하는 피해는 늘어날 것이다. 

현장인들의 소리를 듣지 않는, 인정하지 않는, 그들을 하나의 업체로 생각하는 연극을 대하는 정책에 또 한 번 말한다. 우리는 이렇게 생존하고 있다고. 우리의 힘으로 말이다. 우리의 예술을 위해, 그리고 국가의 예술을 위해.

문화와 예술이 국제적으로 뻗어나가는 것이 과연 정책 때문이었을까? 그 문화와 예술을 하는 이들이 포기하지 않고 최악의 시련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도 지켜왔기에 그 흐름이 세계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었다. 정책이 만들어내는 예술이 아니라 예술이 만들어낸 정책이다.

그렇다. 모든 예술인은 아직 그들의 자리에 있다. 안개가 걷히고 나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이 선명해질 것이다.

우리는 여기 이렇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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