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오혜재 독학예술가

나는 독학 예술가(self-taught artist)다. 2014년부터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예술 활동 증명을 신청했고, 2개월여 간의 심사를 거쳐 예술활동증명서를 손에 넣었다.

「예술인복지법」 제2조 및 「예술인복지법 시행령」 제2조에 의한 공식 승인으로,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예술가의 활동이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법으로 보호하는 국가 공인 시스템을 통해 인정받은 것이다.

‘독학 예술’(self-taught art)이라는 용어의 원류는 비주류 예술을 총칭하는 ‘아웃사이더 아트’(Outsider Art)로, 그 기원은 정신의학에서 시작됐다.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였던 발터 모갠셀러는 1921년 그림을 그리던 그의 환자 아돌프 뵐플리를 다룬 책 『예술가로서의 정신병자』를 출판했고, 1922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이자 미술사가였던 한스 프린츠호른은 정신질환자들의 미술작품 수천 점을 모아 『정신질환자의 조형작업』이라는 책을 발표했다.

 

아르 브뤼의 창시자 장 뒤뷔페(출처: digitale.beic.it)
아르 브뤼의 창시자 장 뒤뷔페(출처: digitale.beic.it)

프린츠호른의 책은 정신의학 분야와 예술을 접목한 최초의 공식 연구 자료로서, 프랑스 화가 장 뒤뷔페를 비롯해 당시 여러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1945년 뒤뷔페는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주류 사회 및 예술계 밖에 존재하는 창작자들의 예술을 ‘날 것의 예술’이라는 뜻의 ‘아르 브뤼’(Art Brut)라고 정의했다.

이후 1972년 영국의 예술학자 로저 카디널은 아르 브뤼의 영문 번역어로서 ‘아웃사이더 아트’(Outsider Art)라는 용어를 고안했고, 이는 포괄적이고 개방적인 개념으로 진화했다.

예술가의 범위에 있어 아르 브뤼는 정신병원이나 수용소에서의 예술에 초점을 맞춘 협의의 개념인 반면, 아웃사이더 아트는 정식 예술교육을 받지 않은 모든 창작자들에게 적용되는 광의의 개념이다.

이후 아웃사이더 아트는 앞서 언급한 독학 예술 외에도 민속 예술(Folk Art), 예지 예술(Visionary Art) 또는 직관 예술(Intuitive Art), 나이브 아트(Naïve Art), 프리미티브 아트(Primitive Art), 버내큘러 아트(Vernacular Art) 등 다양한 예술 영역들로 세분화됐다.

 

장 뒤뷔페가 1948년에 구성한 '아르 브뤼 컬렉션'(Collection de l’Art Brut) 작품들(출처: www.artbrut.ch)

1920년대 초 유럽의 정신의학에서 ‘비주류 예술’ 개념이 태동한 이래로, 한 세기에 가까운 세월동안 미국과 유럽에서 비주류 예술은 개념화와 세분화, 확대와 정착의 과정을 거쳤다.

또한 오래전부터 아웃사이더 아트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비전공 예술가들의 예술적 재능과 가치를 인정해왔다.

앙리 루소, 빈센트 반 고흐, 프리다 칼로, 장 미셸 바스키아 등 이름만 들어도 아는 이들 예술가 모두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이었다. 그렇다면 한국 미술계에서 비주류 예술의 위치는 어디쯤일까.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아웃사이더 아트는 여전히 낯설고 설익은 미지의 예술이다. 국내 아웃사이더 아트의 현주소를 진단했을 때, 크게 3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아웃사이더 아트 관련 자료가 양적ㆍ질적으로 모두 부족하다. 도서로만 봐도, 2022년 4월 기준으로 <네이버> 책 세션에서 ‘아르 브뤼’, ‘아웃사이더 아트’, ‘독학 예술’이라는 키워드로 검색되는 국내 관련 도서는 28권에 불과했다.

2003년부터 2021년 사이에 발간된 이 책들 중에서 21.4%(6권)는 이미 절판된 상태였다. 아웃사이더 아트 자료의 양적 부족, 절판에 따른 자료 접근성의 차단, 아웃사이더 아트의 100년 역사에 비해 국내에서는 2000년대 이후 관련 책이 등장했다는 점 모두 국내 아웃사이더 아트의 인식 증진에 있어 큰 걸림돌로 보인다.

둘째, 소위 ‘진화된 개념’으로서의 비주류 예술에 대한 접근과 분석이 부족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20세기 초 정신과 의사들이 정신질환자들의 미술 작품을 토대로 치료 방안을 모색하면서 비주류 예술 개념의 토대가 마련됐지만, 이후 비주류 예술의 포괄적ㆍ개방적 개념인 ‘아웃사이더 아트’가 등장했다.

 

아시아 최초의 아르 브뤼 및 아웃사이더 아트 전문 미술관인 벗이미술관 전경(출처: versi.co.kr)
아시아 최초의 아르 브뤼 및 아웃사이더 아트 전문 미술관인 벗이미술관 전경(출처: versi.co.kr)

이는 독학 예술, 민속 예술, 나이브 아트 등 다양한 영역들로 세분화됐다. 그러나 많은 국내 자료들에서 여전히 아웃사이더 아트의 개념과 활동을 정신질환자나 장애인 등 ‘특수계층의 예술’로서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치료가 목적이었던 초기 개념에서 더 나아가, 일반인 아웃사이더 예술가들의 활동까지 비주류 예술에서 아우르는 노력이 한국사회에 좀 더 필요하다고 본다.

셋째, 향후 국내 아웃사이더 아트 활동의 정착과 체계화를 위해 개별 활동 주체들을 결집하고, 이들을 관리ㆍ지원하는 ‘구심점’이 필요하다.

아시아 최초의 아르 브뤼 및 아웃사이더 아트 전문 미술관인 벗이미술관의 활동처럼 여러 관련 기관ㆍ단체 및 학계 전문가 등과 협력하는 사례가 있으나, 이것이 통합적인 관리 체계에 기반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실 국내 아웃사이더 아트 관련 기관ㆍ단체 및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들은 산발적으로 각자의 활동에 전념하고 있으며, 그 규모나 현황에 대한 정기적인 조사나 연구, 관련 자료의 아카이빙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향후 국내 아웃사이더 아트 활동이 보다 지속 가능하고 내실 있게 추진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 주체들을 포괄하는 국내 아웃사이더 아트의 ‘본부’가 구축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화예술 분야 중앙ㆍ지방 정부 부처나 그 산하기관에서, 또는 관련 학회나 연구소가 설립돼 이러한 역할을 담당해주면 좋지 않을까 싶다.

 

유네스코 「예술가 지위에 관한 권고」(1980)를 토대로, 코로나19 위기에 직면한 예술의 회복탄력성 증진을 위해 유네스코가 2020년부터 추진해온 레질리아트 운동(ResiliArt movement)(출처: unesco.org)
유네스코 「예술가 지위에 관한 권고」(1980)를 토대로, 코로나19 위기에 직면한 예술의 회복탄력성 증진을 위해 유네스코가 2020년부터 추진해온 레질리아트 운동(ResiliArt movement)(출처: unesco.org)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인 유네스코는 1980년 제21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예술가 지위에 관한 권고」(Recommendation concerning the Status of the Artist)를 채택했다. 이 권고에서 유네스코는 예술가와 그 지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1. ‘예술가’란 예술작품을 창작하거나 독창적으로 표현하거나 혹은 이를 재창조하는 사람, 자신의 예술적 창작을 자기 생활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생각하는 사람, 이러한 방법으로 예술과 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사람, 고용돼 있거나 어떤 협회에 관계하고 있는지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예술가로 인정받을 수 있거나 인정받기를 요청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2. ‘지위’라는 용어는 한편으로는, 한 사회에서 예술가에게 요청되는 역할에 따르는 중요성을 기초로 위에서 정의된 예술가에게 주어지는 존중을 의미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적, 경제적, 사회적 제 권리를 포함해, 특히 예술가가 당연히 누려야 하는 소득과 사회보장과 관계되는 제 자유와 권리에 대한 인정을 의미한다.

이 권고를 통해 유네스코는 예술가의 자격 요건이 소속기관이나 학위가 아닌, 예술을 위한 독창성과 열정에 기반하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더불어 ‘예술가들을 위한 권리장전’이라 불리는 만큼, 이 권고는 창작 활동에 있어 모든 예술가들이 누릴 권리를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존중하고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술가 지위에 관한 권고」가 전 세계 국가들에게 기대하는 것처럼, 한국의 미술계에서도 아웃사이더 아트에 대해 보다 열린 인식이 자리 잡았으면 한다.

또한 모든 아웃사이더 예술가들이 예술가로서의 권리를 동등하게 누리면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한층 발전시킬 수 있도록 이들을 위한 교류협력 네트워크 및 관리 체계의 기틀이 한국에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필자 소개]
오혜재는 대한민국의 독학 예술가다.
오혜재는 대한민국의 독학 예술가다.

오혜재는 대한민국의 독학 예술가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 학사(언론정보학 부전공)와 다문화‧상호문화 협동과정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2014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 현재까지 총 5차례(개인전 3회 포함) 전시회를 열었다. 2019년 홍콩 아시아 컨템퍼러리 아트쇼를 통해 해외에서도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2020년부터 싱가포르 아시아예술협회(AAA) 국제작가위원회 회원, 일본 글로벌 아트 플랫폼 트라이세라(TRiCERA)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2020년 AAA에서 주최한 코로나19 국제 자선 그림 공모전 <Fight COVID-19>의 심사위원을 맡았다. 아티스트 부문 출품작으로 최고상인 금상을 수상했다.

2021년에는 이탈리아 현대작가센터(COCA) 주최 <제3회 COCA 국제 공모전>의 1차 선정 작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직장인이자 작가이기도 한 오혜재는 2007년부터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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