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한글은 표음문자이면서도 표의문자의 합자 형태를 취한다. 이 점은 세계에서 유일하다.

표의문자로 현재 남아 있는 언어로는 유일하게 한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자는 뜻으로 이뤄진 문자를 한자로 만들고 이를 또다시 합자해서 새로운 뜻의 글자를 형성한다. 이러한 합자 방식은 새롭게 만들어진 글자가 하나하나 개별 단어로 존재해서 각 글자를 따로 알아야 하는 복잡한 불편함을 초래한다.

표음문자는 이러한 불편함을 보완하기 위해 모음과 자음 체계를 이뤄서 자음이 단어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모음으로 하여금 단어를 형성할 수 있는 윤활유로 작용하게 한다. 즉 자음은 모음의 도움을 받아서 모음과 더불어 여러 가지 단어로 만들어 줄 수 있게 한다. 이 덕분에 기본 자모의 수를 대폭 줄임으로써 단어를 최대한 형성시킬 수 있게 해 준다.

세계의 언어들이 대부분 표의문자에서 표음문자 체계를 갖추게 된 것은 어쩌면 언어 사용의 편리함과 쉽게 활용하고자 하는 인류의 기본 욕망에 부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하면서 자음과 모음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밝혔다. 이 내용은 '훈민정음해례'에 적시하고 있다.

훈민정음에서 자음은 초성과 종성, 모음은 중성으로 각각 이르면서 초성과 중성과 종성 이 3개는 서로 어울려야 글자를 이룬다고 하였다. 모음인 중성은 초성과 종성의 사이에 놓이고, 초성의 오른쪽이나 아래쪽에 위치한다고 설명했다.

즉 중성 가운데 둥근 것(ㆍ)과 가로로 된 것(ㅡ ㅗ ㅜ ㅛ ㅠ)은 초성의 아래, 세로로 된 것(ㅣ ㅏ ㅓ ㅑ ㅕ)은 초성의 오른쪽에 놓인다. 이는 평평한 땅(ㅡ)을 보았을 때 만물(ㆍ)이 땅 아래에서 생겨나 땅 위로 자라고, 인간(ㅣ)을 볼 때 활동할 수 있는 지면(地面)이라는 공간의 한계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어서 주변에 있는 만물과의 소통을 문자의 좌우 변화 형태로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모음은 음양오행설에 입각한 성리학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땅 아래와 인간의 왼쪽에 하늘이 위치하면 음이 되고, 그 반대쪽에 위치하면 양의 성질을 띤다. 이에 따라 자음을 모음과 함께 써서 글자를 이룰 때 모음이 양성이면 어감이 작거나 밝고 가벼우며, 음성이면 어감이 크거나 어둡고 무거운 성질로 나타난다.

이처럼 가운뎃소리인 중성(中聲) 가운데 양성의 성질을 띠면 양성모음, 음성의 성질을 띠면 음성모음, 양성과 음성 모두의 성질을 띠면 중성(中性)모음이라고 한다.

▲ 훈민정음 ⓒ 문화재청

'훈민정음해례'에서는 또 자음과 모음의 합자를 예로 들면서 어금닛소리와 중성을 합했을 때 어떤 소리를 이루는가 하는 것도 자세히 나타냈다. 즉 '군(君)' 자를 예로 들면 '어금닛소리 군(君) 자의 초성은 ㄱ과 같고, ㄱ은 ㅜ+ㄴ과 더불어 군이 된다'(如牙音君字初聲是ㄱ ㄱ與ㅜ+ㄴ而爲군)라고 하면서 자음과 모음을 합자했을 때 첫소리가 어떻게 발음되는가도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한글은 훈민정음 창제 때부터 일반 민중으로 하여금 글을 쉽게 익히게 하기 위하여 표음문자로 만들어졌다. 그렇다고 당시에 표음문자가 우수한 문자임을 알고 있은 것도 아니었고, 세계의 언어 현황을 조사한 것도 아니었다. 더욱이 중국의 문자인 한자를 사용되던 시절에 표의문자에서 표음문자를 '창조'하는 일은 '문자혁명'이라 할 수 있다.

자음과 모음을 합해 글자를 이루는 표음문자는 현재 언어 발달 과정에서 최상위 문자로 알려져 있다. 태어날 때부터 표음문자인 한글은 또한 표의문자의 특징인 합자 형식을 취하면서 다른 표음문자와 차별성을 보인다. 자음과 모음이 합해지면서 비로소 완전한 글자 형태를 이루는 한글은 표의문자의 특징인 모둠글자체를 이룸으로써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는 점은 여느 표음문자가 따라올 수 없는 우수성을 보여 준다.

여기에서 한글을 제외한 여타 표음문자는 소리를 나타내는 모음의 발음이 여러 갈래로 나타나기 때문에 음을 읽는 데 혼란을 일으키지만 한글은 자음과 모음이 모두 하나의 발음으로만 나기 때문에 자음과 모음을 합자할 때 모음의 발음만 알면 어떠한 글자라도 발음할 수 있어서 이 점은 여타 표음문자가 따라올 수 없는 커다란 특징이기도 하다.

중성은 초성 뒤 또는 초성과 종성 사이에 놓여서 글자를 제대로 이루게 하기 때문에 '어버이 소리'라 하여 모음(母音), 초성과 종성은 같은 문자로서 중성에 의해 글자로서 제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식 소리'라 하여 자음(子音)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표음문자인 한글은 표의문자의 특징인 합자 형식을 취하면서 하나의 글자를 이룰 때 자음과 모음의 음가가 전혀 변하지 않는다. 물론 축약 형태에서는 자음과 모음의 음가가 변하긴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축약에 한해서이고, 소리로 나는 발음과 문자 형태로 나타나는 글자의 음가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소리와 글자 각각의 특성에 따른 현상이지 결코 자음과 모음의 음가가 변한 것은 아니다.

합자 형식을 취하는 한자의 경우 자음과 모음의 조화로 글자를 이루는 표음문자가 아닌 표의문자이기 때문에 자음이나 모음의 변화를 거론할 순 없지만 하나의 글자에서 나타나는 음절을 모음과 자음으로 구분해 그 음가를 보면 합자 이전의 글자가 띠는 자음과 모음의 음가가 새로 형성된 글자의 자음과 모음의 음가를 나타내지 못하고 상이한 형태를 취하기 때문에 일일이 합자된 글자를 따로따로 발음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한글은 어떠한 글자로 형성되든 자음과 모음의 음가는 고스란히 살아 있어서 기본 자음과 모음의 음가만 알면 모든 글자를 발음할 수가 있다.

같은 표음문자 계열인 영어의 경우 모음 a, e, i, o, u, y는 각각 하나의 음가로 존재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소리 형태로 나타난다.

자음의 경우 'bomb'처럼 'b'가 묵음이 되기도 하고, 'summer'처럼 'm'이 두 개가 아니라 하나의 음가('섬어' 또는 '서머')를 보이기도 한다. 'w'는 자음으로 분류되지만 모음 기능이 강하며, 때에 따라 'j'는 모음 기능을 하기도 하고 'h'는 자음의 음가를 상실하기도 한다. 'b' 및 'v', 'f' 및 'p', 'l' 및 'r'는 훈민정음의 '․' 및 'ㅏ', 'ㅅ' 및 'ᅀ'과 같이 서로 미묘한 음가를 보인다. 'g'와 'z'는 같은 음가를 나타내기도 하고, 'g'의 경우 'ㄱ'과 'ㅈ' 두 가지 음가를 나타내면서 '-ng' 형태가 되면 'o'의 음가를 취하기도 한다.

일본의 가나는 대체로 변화가 없는 편이지만 그래도 일부에서 변화를 보인다.

오십음도에서 '사(さ, サ)'와 '다(た, タ)' 행의 'す(ス)' 및 'つ(ツ)'은 모음 배열 순서에 따르면 각각 '수'와 '쑤'의 'ㅜ' 형태가 되어야 하지만 '스'와 '쓰'의 'ㅡ' 음가를 나타낸다. 또 자음의 경우 '다' 행에서 'た(タ), ち(チ), つ(ツ), て(テ), と(ト)'는 '다/타, 디/티, 드/트, 데/테, 도/토'의 'ㄷ/ㅌ' 음가로 나타나지 않고 '다(타), 지(치), 쓰, 데(테), 도(토)'의 불규칙한 형태가 된다.

참고로 외국어의 우리말 표기법인 외래어표기법에 따르면 일본어의 경우 'ㅋ ㅌ ㅊ' 음이 단어의 맨 앞에 놓이면 각각 'ㄱ ㄷ ㅈ'으로 표기하도록 되어 있다.

[정리]  문화뉴스 홍진아 기자 hongjina@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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