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571회, 높드리에 살어리랏다 – 고랭지 여름 밥상
11일 목요일 저녁 7시 40분 방영

 

사진=KBS 한국인의 밥상
사진=KBS 한국인의 밥상

[문화뉴스 정승민 기자] 산골짜기의 높은 땅을 일컫는 ‘높드리’. 하늘과 맞닿은 그 높은 곳에도 사람이 일궈낸 터전이 있다.

사람의 발길이 쉽게 닿지 않아 청량한 자연에 사람 사는 맛까지 간직하고 있는 곳. 푸르름 가득한 여름 밥상을 찾아 높드리에 오른다. 

자연의 끈질긴 생명력과 땅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의지, 그리고 누군가가 곁에 있어 늘 넉넉하고 풍성한 높드리의 밥상. 한여름에도 청량한 그 맛을 만나러, 하늘과 맞닿은 높은 땅으로 가본다.


고랭지의 여름 배추를 지켜라 – 강원도 평창

사진=KBS 한국인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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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도 초록빛 물결 넘실대는 높드리, 평창으로 떠난다.

해발고도 700미터의 산비탈에서 고랭지 대표 작물 '배추' 수확이 한창이다. 높은 일교차에 당분을 비축해 더 아삭하고 달큰해진 고랭지 배추. 기후변화와 병해충으로 한숨 짓는 여름 배추 농가들이 많은 요즘, 다행히 이곳 배추가 푸릇푸릇 잘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땅의 회복력을 살려내기 위해 애써온 마을 사람들의 지혜와 깊은 배려 덕분이라는데 그 비결은 무엇일까.

자식처럼 공들인 배추를 잘 키워 시집장가 보내는 날! 평생 맨손으로 자갈을 골라내며 고랭지에서 배추를 키워왔다는 농부 홍성자 씨가 그 기쁜 마음을 이웃들과 풍성한 밥상으로 나눈다.

김장배추 못지않게 아삭한 여름배추로 겉절이를 만들 때에는 얼었다 녹았다 하며 부들부들해진 황태포를 더하는 게 비법! 1년 내내 선선한 평창이라 가능한 고랭지의 맛이다. 여기에 배추 농부들의 기력 보충을 위해 당귀와 배추로 느끼함을 잡아낸 수육을 더하면 금상첨화다.

한여름 높드리 마을에서 즐겨온 푸릇한 배추의 맛은 이뿐만이 아니다. 강원도 산간의 끈질긴 생명력이 담긴 메밀 반죽으로 부쳐낸 배추전을, 그리고 배춧잎을 만두피로 쓰고 절인 배추를 다져 삼삼하게 만든 숭채만두까지 알차게 빚어 먹는다.

고랭지 덕분에 푸른 배추를 사시사철 즐길 수 있으니 그저 고맙기만 하다는 사람들. 옥수수 수제비를 더한 얼큰한 어탕으로 고랭지 농사의 고단함까지 말끔히 씻어내는 농부들의 높드리 밥상을 만난다. 


고향 산의 품으로 돌아오다 – 경북 봉화

사진=KBS 한국인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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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푸른 수박이 옹골차게 익어가는 경북 봉화의 고랭지. 여름향기 가득한 이곳에서 10여 년 전, 귀향했다는 농부 신무섭 씨를 만난다.

가파른 산길을 30분 넘게 올라 도착한 곳은 산꼭대기에 자리한 신무섭 씨의 고향 집. 수도 시설도 없는 깊은 산속의 집에서 아내 곽복희 씨와 손자를 키우고 있다. 각박한 도시 생활에 지친 부부와 몸이 약한 손자는 이곳에 살며 건강을 되찾게 됐다는데, 부부는 부모님이 일군 삶의 터전과 유산인 대추나무 덕분이라고 말한다.

산꼭대기 아궁이 앞에 앉아 가마솥의 대추를 젓고 또 저어 오랜 시간 고아내는 ‘대추곰’을 만들며 부모님의 헌신과 애정을 깨닫게 됐다는 며느리  곽복희 씨. 부모님이 살아온 길을 따라가며 삶의 여유와 자유를 되찾게 된 부부의 사연을 들어본다. 

항상 웃고 사는 신무섭 씨 부부. 산꼭대기 생활이 외롭지 않은 것은 철마다 찾아주는 고마운 친구들 덕분이다. 특히 친한 동생인 채은주 씨는 이곳을 찾을 때마다 귀한 먹거리를 가득 챙겨온다는데, 오늘 그녀의 두 손에 묵직하게 들린 것은 바로 은어! 낙동강 상류의 물에서 자라 수박 향이 난다는 여름 제철 생선이다.

고마운 손님을 위해 곽복희 씨가 두 팔을 걷어붙였다. 단단하고 당도 높은 고랭지 수박으로 단맛을 내고 무 대신 수박껍질을 깔아 조린 은어장조림에는 여름향기가 풍성하다. 여기에 산골의 귀한 버섯과 대추를 가득 넣고, 소나무 담쟁이 넝굴인 송담 우린 물을 더해 지은 솥밥과 솔잎 향과 불 맛을 입혀낸 돼지 등갈비 숯불구이까지. 신무섭 씨 가족을 받아준 고향 산의 품처럼 넉넉하고 푸근한 산꼭대기의 밥상을 맛본다.


산자락을 누비는 화전민의 후예들 – 강원도 삼척

사진=KBS 한국인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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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의 두메산골에는 매일 흥겨운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구성진 노래 솜씨의 주인공은 험한 산자락을 누비며 도라지를 캐는 김선녀, 이선녀 어르신이다. 넘치는 흥처럼 이름도 꼭 닮은 선녀님들. 거친 땅을 일구고 약초를 캐내 팔던 선조들, 화전민처럼 평생 산자락을 누비며 살아온 이들이다.

평소 쉽게 볼 수 없는 오래 묵은 황기를 캐낸 선녀님들이 이웃 동생에게 보양식을 차려준다며 잔뜩 신이 났는데, 가족 같은 산골 동무를 위해 어떤 밥상을 차려낼까. 얼마 전 다리를 다친 이금녀 씨 댁, 점리마을의 ‘하늘 아래 첫 집’으로 향한다. 

선녀님들이 차려낸 첫 번째 요리는 오래 전부터 점리 마을 사람들이 보양식으로 즐겨먹었다는 ‘알 품은 닭’이다. 쌀이 귀한 강원도 산간에서 밥 대신 만들어 먹었다는 감자옹심이로 토종닭 뱃속을 두둑이 채우면, 말 그대로 옹심이 ‘알을 품은 닭’이 탄생한다.

태산보다 높다 했던 보릿고개를 건너게 해준 수수노치는 점리마을 선녀님들이 즐겨먹는 추억의 맛이다. 쌀은커녕 보리조차 맛보기 힘들었던 시절, 수수가루를 익반죽해 구워뒀다 두고두고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고 한다.

인생의 높은 고갯길을 건너게 해준 산고사리와 목이버섯은 돼지고기와 달달 볶아 두루치기로 만든다. 넉넉하게 살지는 못했어도 자식들 건강하고 동무들과 웃고 사는 지금이 행복하다는 선녀님들. 그들을 꼭 닮아 투박하지만 기운 넘치는 산골 밥상으로 다시, 산자락에 오를 힘을 얻는다.


인생 2막의 무대가 된 높드리 – 강원도 영월

사진=KBS 한국인의 밥상
사진=KBS 한국인의 밥상

국토의 70%가 산지인 우리나라. 요즘에는 인생 2막의 무대로 산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많다. 영월의 고랭지 옥수수 밭에서 만난 이청산 씨도 마찬가지.

18년 전, 이곳에 들어와 쫄깃한 강원도 찰강냉이의 맛에 푹 빠졌다는 이청산 씨, 성명희 씨 부부는 치열한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느린 속도로 살아가고 있다. 너와집에 텃밭까지 직접 일구고 살다보니 가장 큰 변화는 밥상에서 왔다. 힘들어도 내 손으로 요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부부.

이들의 밥상을 더 풍성하게 해준 건 인정 많은 이웃 주민이다. 고랭지 농사를 지으며 언제나 먹거리를 나눠주고 챙겨주는 김회진 씨 부부. 덕분에 낯선 산골생활도 잘 적응할 수 있었다는 귀촌 부부가 고마움을 듬뿍 담은 한 상을 대접한다. 

산골에서 갈고 닦은 요리 솜씨를 발휘하는 이청산 씨, 성명희 씨 부부. 꾸지뽕, 헛개나무 등 5가지 약재와 얼큰하게 끓여낸 여름 보양식, 닭개장으로 이웃 농부들의 기력을 보충한다.

옥수수 이웃이 가져온 쫀득한 찰옥수수로는 도시에서 즐겨먹던 달콤한 간식, 맛탕을 만든다.

영월의 송어로 만든 짭쪼름한 생선찜과 영월 산골의 내음이 은은하게 밴 어수리 나물밥까지 이웃들의 인심처럼 풍성한 밥상을 차려진다. 


한편 '한국인의 밥상'은 KBS에서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40분에 방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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