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585회, 내일도 풍성하여라! 남도의 가을 갈무리
17일 목요일 저녁 7시 40분 KBS1 방영

[문화뉴스 조아현 기자] '한국인의 밥상' 585회에서는 풍성한 남도 밥상의 저장 음식을 소개한다.

농번기가 끝나가며 잎이 떨어지는 풍경은 어딘지 쓸쓸해 보이지만, 감상에 젖어 있기에는 아직 이르다.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추운 겨울을 든든하게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겨울이 늦게 찾아오는 남도는 그만큼 할 일도 많다는데. 새 곡식을 쌓아놓고, 젓갈을 담아 김장을 준비하고 산과 들, 바다에서 나는 각종 산물을 저장해야 한다.

먹을 것이 풍성한 남도에서 저장법과 조리법이 발달한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 곳간을 채우고 있는 양식은 지혜의 가마니나 마찬가지다. 든든한 내일을 준비하는 남도 사람들의 갈무리 비법을 엿본다.

황금빛 유자골의 첫 수확!
– 전라남도 고흥군

전국 최대 규모의 유자 생산지 전라남도 고흥군. 과일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추는 시기에 제철을 맞이하는 유자 덕분에 이맘때면 고흥은 온통 황금빛으로 물든다. 아열대 작물인 유자는 남쪽 지방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귀한 과일이다. 조선시대에는 관리들에게 유자의 작황을 살피게 했다는 기록까지 남아있다. 유자 농장을 운영하는 김종삼, 최세미 부부가 귀한 몸 자랑하는 유자를 수확하기 위해 지인들을 불러 모았다. 한 알 한 알 손으로 수확한 후에는 가공까지 해야 하니 정신없이 바쁘다는데.

왕가와 반가를 중심으로 다양한 저장법이 발달해 온 유자. 세미 씨는 왕가에서 즐겨 먹던 유자단지에 도전했다. 다진 과육과 밤채, 대추채를 섞어 속을 채운 후 설탕 시럽에 절여 놓으면 1년 내내 유자의 새콤달콤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데. 유자 껍질 속에 각종 약재를 넣고 열아홉 번 찌고 말리는 과정을 거쳐야 완성되는 유자쌍화는 최근에 개발된 새로운 저장법이다. 몸보신을 위한 수육에 유자쌍화를 띄우니 잡내는 사라지고 은은한 한약재 향이 기운을 북돋아 준다. 향긋하게 익어가는 고흥의 가을 갈무리 현장에 나가본다.

하늘물고기가 돌아온다!
– 전라남도 신안군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 김장철이 돌아오는 것처럼, 신안에서는 겨울을 나기 위해 꼭 준비하는 것이 있다는데, 바로 건정을 만드는 것이다. 건정은 말린 생선을 이르는 신안 지역의 방언으로 간하여 말린다는 뜻의 ‘간장’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특히 신안의 작은 섬 화도에서는 바닷물에 씻은 생선을 장대에 매달아 말리는 옛 방식을 고수해 오고 있다. 건정을 말리는 철이면 골목마다 높다란 장대가 줄을 서 장관을 이룬다고. 젊은 시절부터 화도를 지키며 살아온 안미영 씨와 정길자 씨가 화도에서 가장 먼저 건정 말리기에 나섰다. 생선을 다듬고 말리는 데는 도가 텄다는 두 사람, 과연 손발이 척척 맞는 베테랑들이다.

전기도 수도도 없던 시절부터 서로를 의지해오며 힘든 시절을 이겨내 온 두 사람은 최근 들어 함께하는 시간이 더욱 애틋하다는데. 10년 전 길자 씨가 암을 선고받은 후 3번이나 큰 수술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매년 함께 건정을 맛보고 싶다는 소망을 담아 미영 씨가 한 상을 준비했다. 민어 건정 대가리를 우려낸 뽀얀 국물에 생김을 넣고 끓인 민어건정김국과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건정고추장장아찌까지 차려내면 길자 씨를 위한 화도식 보양식 완성이다. 두 사람의 우정만큼 진하고 오래가는 건정의 참맛을 느껴본다.

농부의 곳간을 채우는 지혜!
– 전라남도 해남군

말이 살찌는 가을, 속이 든든해지는 것이 또 있다. 바로 농사를 마무리 지어가는 농부의 곳간이다. 해남군 현산면의 산골짜기에서 농사를 짓는 정선자 씨와 강준호 씨 부부도 도라지와 무 수확에 열을 올리고 있다. 농약과 비료, 퇴비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재배하는 부부는 수확물을 보면 웃음이 나올 때도 있다는데. 제각기 개성 있는 모양새에 작달막한 크기 때문이다. 겉모습은 볼품없어도 영양만큼은 자신 있다는 남편 준호 씨의 호언장담에 자연농을 반대하던 선자 씨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오히려 남편을 거들어 가공식품까지 만들게 됐다는데.

특히 선자 씨가 정성을 쏟는 것은 조청이다. 인공으로 만든 꿀이라는 뜻의 조청은 귀한 꿀 대신 단맛을 느낄 수 있게 해준 천연 감미료였다. 도라지 물을 우려내고 엿물을 걸러내는 긴 과정을 거칠 때면 조상들의 지혜와 정성에 감탄하게 된다고. 선자 씨가 직접 만든 조청은 또 사용할 곳이 있다는데. 쌀 조청에 푹 고아낸 무를 콩고물, 깨고물 고루고루 묻혀 겨울철 대표 간식 무정과를 만든다. 수확물과 저장 음식으로 곳간을 가득 채웠으니 이제는 배를 채울 차례. 물기를 짠 두부를 된장에 박아 보관하는 두부장은 겨울이면 준호 씨가 꼭 찾는 음식이다. 뜨끈하게 끓여낸 두부장찌개 한 술이면 수확의 고단함은 날아가고 뿌듯함만 남는다는데. 오는 겨울도 든든한 농부의 곳간을 구경한다.

한편 '한국인의 밥상'은 KBS에서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40분에 방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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