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미국의 어느 정신신경과 전문의는 역대 음악가들의 정신질환과 천재성(天才性)과의 관계는 별 무관하다는 연구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예를들어 '슈만'과 '라흐마니노프'가 그랬고 '헨델'의 말년이 그러했으며 또한 '베토벤'도 다소 그러했다.

사실 음악가뿐만 아니라 화가, 소설가 등 내로라하는 천재들은 대개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화가 중에는 '목이 긴 여인'을 그려 우리를 몰아지경으로 빠져들게 한 '모딜리아니'가 젊어서부터 정신이상이었고 작가로는 '버지니아 울프' 등 여러 사람이 기억된다.

그런데 미국의 그 의사는 "이 정신질환이 곧 천재의 대표적인 증상이라는 일반적인 믿음에는 과학적 근거를 가지지 못한다. 다만 그들의 예술을 향한 내적(內的) 충만성이 과잉되어 일어나는 일시적인 착란 현상일뿐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천재성으로 이해하기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러니까 확률적으로 그런 사람들에게 정신질환이 많았다는 것이지 '천재는 정신질환자'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러한 과학적 논증에도 불구하고 모든 예술가는 그들이 추구하는 어느 정점에 이르기 위하여 보통 사람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가장 고조된 정신상태, 이것이 어쩌면 남들이 정신이상이라고까지 부를지도 모를 그런 상태에 이르도록 자신을 불태우곤 했다.

그러나 그것이 정신질환이든 아니든 별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그런 경과를 거친 후 만들어진 작품이 건강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는 것은 어쩌면 그 의사가 논증한 사안이 신빙성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자고로 음악가 중에 천재라 하면 우선 ‘모차르트(Mozart)’를 떠올리게 된다. 그 누구도 모차르트가 음악적인 천재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천재(天才)란 문자 그대로 ‘하늘이 준 재능’이다.

음악적 천재인 모차르트의 풀네임은(Full Name)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인데 그중 ‘아마데우스(Amadeus)’는 우연스럽게도 '신(神)이 가장 사랑하는'이란 뜻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지난 1985년 '밀로스 포먼(Milos Forman)'이 감독으로 제작한 '아마데우스'라는 미국영화다. 그리고 여기서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출연한 배역이 '안토니오 살리에리(Antonio Salieri)‘라는 동시대 작곡가였는데 이 영화가 살리에리를, 천재 모차르트를 질투하고 적대시하여 결국 살해까지 하는 영원한 2인 자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신이여, 당신은 왜 모차르트에게만 천재성을 부여하시고 나 살리에리에게는 그토록 평범한 것만 주셨나이까!" 

이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신을 향해 처절하게 절규하는 살리에리의 외침이다.

모차르트가 사망했던 당시 빈(Wien) 음악계에 독살설이 파다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살해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그 이전에 역사적으로 증명되었고 영화 아마데우스는 단지 흥행을 노려 극적으로 꾸민 허구에 불과하다.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조각상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조각상

이제, 살리에리는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 

그는 죽기 1년 전까지 궁정 악장 자리를 지킨 성실한 자였다. 수많은 제자들을 키워내고 생활이 힘든 제자들을 도와주는 등 자선활동에 적극적이었다. 실제로 실직한 음악가나 사망한 음악가의 유족을 위해 상조회를 조직하여 자선 콘서트를 매년 개최하기도 한 따뜻한 인간성의 소유자다.

이러한 살리에리와 모차르트의 대립은 오히려 모차르트의 잘못된 언행에 기인한다. 모차르트는 "내가 빈에서 출세하지 못하는 것은 나의 재능을 질투하는 살리에리의 방해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 모차르트가 빈에 쉽게 진출하지 못했던 원인은 그를 적극적으로 후원했던 황제 '요제프 2세'의 사망 후 후임자인 황제 '레오폴트 2세'가 그를 대단치 않게 여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콜로라도 대주교 '히에로 니무스'에게 대항했다가 해고된 적이 있어 종교계에서도 인정받지 못했다. 더욱이 결정적인 요인은 궁정 작곡가 자리를 스스로 박차고 뛰쳐나와 프리랜서 생활을 한 것이다. (세계 최초의 프리랜서 음악가)

이렇듯 누구와도 융합되지 못하는 건방지고 경망스러운 성격의 모차르트를 성실한 살리에리를 위시하여 많은 사람이 좋아할 리가 없었다.

살리에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분명히 그를 싫어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가 싫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궁정에서 나만 그를 싫어했던 것은 아니다. 또한 내 뜻으로 그를 죽게 만든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 말을 들은 베토벤은 "나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두 사람 모두에게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니지만 그러나 살리에리의 말을 믿는다"라고 했다.

살리에리가 천재는 아니었지만 천재를 질투하고 2인 자로서 열등감에 사로잡혀 상대방을 해치는 소인배(小人輩)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가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다면 베토벤, 슈베르트, 리스트 같은 천재 음악가들의 스승으로서 그들의 능력을 발견하여 도와주지 못했을 것이며, 그가 모차르트를 질투하고 해치려 했다면 모차르트의 제자였던 '프란츠 크사버 쥐스마이어'와 아들인 '프란츠 자버 볼프강 모차르트'를 키워내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살리에리는 누구보다 모차르트를 더 많이 이해하고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살리에리는 천재(天才)와 범재(凡才)의 대결 구도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대립하며 질투심에 사로잡혀 있는 나약한 인간이 아니라, 과연 인간이 자신의 피나는 노력으로 천재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는 존재인가, 아니면 천재라는 절대적 신의 선택 앞에 무력하게 굴복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있는 [범재(凡才)들의 대변인]이라 여겨진다.

모차르트는 타고난 천재적 재능 덕분에 감동적인 음악을 쉽게 만들어 후세에 남긴 것 외에 인간적인 다른 면에서는 칭송받을만한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와 같은 천재성은 부족한 범재이지만 그는 피나는 노력을 통해 훌륭한 작품들을 후세에 남겼고, 더더욱 흠모할 만한 것은 그의 대인군자(大人君子)적 인간됨과 이웃을 위한 이타(利他)적 삶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는 과거에 소위 천재성을 가졌다는 국내 각계 예술인들과 개인적 교분을 가진 적이 있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점은, 그들 대부분에게서 반짝거리는 예술성은 엿볼 수 있었으나 인간적인 면에서는 실망감을 느꼈음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술적 천재성이 인간 본연의 모습을 깨뜨리는 것은 분명 패역(悖逆)이다. 과연 바람직한 인생의 모습이 어떤 것일까?

안토니오 살리에리 의 음악을 한 곡 듣고자 한다. [스페인의 라 폴리아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다.

이 곡은 그의 마지막 관현악곡이다. 그리고 시대적으로는 베토벤의 중기에 해당하는 1815년경의 작품으로 브람스의 그 유명한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 나타날 때까지 19세기의 유일한 관현악 변주곡(Variation)이다. 그만큼 그가 당시 위대한 음악가였다는 것을 이 작품이 증명하고 있다.

여기 주제인 '라 폴리아'는 17세기 포르투칼 지방의 민요로 살리에리 외에도 코렐리의 바이올린곡, 바하의 칸타타, 리스트의 스페인 광시곡 등이 '라 폴리아'민요를 소재로 하고 있다.

Antonio Salieri / 'Variazioni Sulla Follia di Spagna’ | 지휘, Matthias Bamert / London Mozart Players

[안토니오 살리에리]

오는 8월 18일은 그의 생일이다.

그는 천재도 아니었고 2인 자로서 질투심에 사로잡힌 나약한 자도 아니었다. 살리에리는 훌륭한 인간미를 가지고 주어진 인생을 성실히 그리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고 간 위대한 음악가요 [영원한 범재(凡才)들의 대변인]이다.

나는 천재 모차르트보다 범재 살리에리의 삶을 존중하며 사랑한다. 천재만 기억하고 추앙하는 세상이지만 오늘 이 땅 위에 존재하는 나를 포함한 수많은 범재들과 함께 살리에리의 생일을 축하한다.

강인

 

 

예술비평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대표
국민의힘 국가정책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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