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5일은 제78주년 광복절이었다. 우리나라가 일제(日帝) 강점기에서 해방되어 나라와 주권을 다시 찾은 날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이 뜻깊은 광복절을 맞아 오늘은 애국적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애국적 음악이라 하면 국민주의(민족주의) 음악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주의 음악은 낭만주의 음악의 한 지류로서 19세기 후반 러시아, 노르웨이, 체코, 핀란드 등 북유럽의 나라들에서 일어난 음악운동으로 1848년 프랑스 2월혁명 이후 그 영향을 받아 강대국의 지배를 받아오던 나라들 사이에 독립운동이 성행한 가운데 작곡가들이 자기민족의 의식을 가지고 민족 고유의 특색을 음악에 담던 서양음악 사조(思潮)이다. 

이 국민음악 악파의 대표적 작곡가로는 러시아의 글린카, 림스키 코르사코프, 무소르그스키, 독일의 바그너, 체코의 드보르작, 야나체크, 스메타나, 스페인의 파야, 핀란드의 시벨리우스 등을 꼽을 수 있다.

그중에서 대표적으로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1865~1957)를 소개하고자 한다. 

핀란드 하면 시벨리우스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핀란드 음악의 아버지라 불려지고 있는 시벨리우스는 필자가 아는 작곡자 중에서 가장 장수한 음악가로, 그가 92세로 세상을 떠났을 때 핀란드는 국장(國葬)으로 장례를 치루었다. 

그가 남긴 업적 중에 가장 먼저 손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교향시 [핀란디아 ‘Finlandia’]의 작곡자라는 점이다. 그 이유는 이 곡을 통해서 강대국의 압제 속에 고난받는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국민을 하나로 묶는 것, 즉 국민통합이란 물질적 영역에 의지하는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 차원보다는 정신적 영역인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차원으로 접근할 때 이룰 수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원래 이 작품의 곡명은 [핀란드여 일어나라 (Suomi herää)]인데 당시 스웨덴에 이어 러시아의 압제 속에 독립된 국가를 갖지 못한 핀란드 국민들에게 ‘핀란드여 일어나라!’ 하며 민족의식을 고취시킨 곡으로 핀란드 제2의 국가라고 할 정도로 널리 알려진 민족음악이다. 후에 시벨리우스의 열렬한 추종자인 '악셀 카펠랑'이라는 사람에 의해 [핀란디아]로 불려지게 되었다.

이 곡의 중심 멜로디는 찬송가를 통해서도 널리 알려져 있고 핀란드 출신의 영화감독 '레니 할렌'의 액션영화인 '부르스 윌리스'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다이하드Ⅱ]의 클라이막스 부분에 배경음악으로 이 곡을 사용하므로 더욱 유명해졌다.

핀란드 하면 '3S'를 떠올릴 수 있다. 첫째 : Sauna, 둘째 : Sisu, 셋째 : Sibelius이다. 이 중에서 'Sisu'는 '집요함'이라는 뜻으로 핀란드 사람들의 기질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오늘날의 핀란드를 이룬 원동력은 바로 이 슬기로움을 바탕으로 한 'Sisu 정신'일 것이다.

당시 강대국들 틈에 낀 신생국 핀란드는 1939년 스탈린 치하 소련의 침략을 받았을 때 이를 외부의 도움 없이 과감히 물리쳤고, 냉전 시에는 강대국들의 정치적 역학 관계를 이용하여 자국의 이익을 최대한 챙겼다. 

또한 동시에 강력한 문화 잠재력도 세계에 보여주었는데 인구 비율로 볼 때 오케스트라, 합창단, 도서관 등과 첨단 건축물을 가장 많이 소유한 나라로서 그 구심점을 이룬 인물이 음악가 시벨리우스였다.

핀란드 정부는 그에게 평생 연금을 주고 그의 이름으로 공원을 조성하였고 조용한 교외에 훌륭한 저택을 마련해 주었는데 그의 작곡 활동을 위해 저택 위로는 비행기가 날지 못하게 했고 자동차도 경적을 울리지 못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시벨리우스 공원 모습 

이를 보면 핀란드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는 나라인지, 시벨리우스가 얼마나 국민적 작곡가로 추앙을 받았는지 익히 알 수 있다. 시벨리우스, 그는 아마도 이 세상 모든 작곡가들 중에 가장 행복했던 음악가일 것이다.
 
[핀란디아] Op.26”.

이 곡은 단순히 8분 남짓한 관현악 작품이 아니다. 시벨리우스의 얼과 혼이 담긴 위대한 핀란드의 국민음악이다. 이 곡을 통해 과묵하고 무뚝뚝한 사나이 시벨리우스의 조국 사랑과, 뛰어난 음악적 능력을 동시에 느껴보시기 바란다.

​시벨리우스의 교향시 [핀란디아] Op.26을 핀란드 출신 바이올리니스트이며 지휘자인 '사카리 오라모(Sakary Oramo)'가 지휘하는 영국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연주로 들어보고자 한다.

"오! 핀란드여, 보아라. 너의 날이 밝아오는 것을, 험난한 밤의 장막은 이제 걷히었도다."
핀란디아 1절 가사의 첫 부분이다.

Sibelius: Finlandia (Prom 75) 영국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 지휘 : '사카리 오라모(Sakary Oramo)'

필자는 이 연주를 들을 때마다 벅차오르는 감격과 함께 이 노래가 대한민국의 노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마음에 품어본다. 

그런데 앞서 소개한바 핀란드의 애국음악으로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안익태(1906~1965)’가 작곡한 [한국환상곡 'Korea Fantasy']이 있다. 이 작품의 정식 제목은 [교향적 환상곡 제1번Symphonic Fantasy No.1 ‘Korea’]으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설움과 조국의 웅대한 비상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광복절이면 늘 생각나는 음악이기도 하다. 후반부의 합창 부분은 우리나라 애국가의 가락이 중심을 이루며 ‘만세, 만세’의 가사로 격앙과 고조를 이룬다. 국내 초연은 1955년 4월 19일 이승만 대통령 탄신 80주년 경축음악회에서 이루어졌다. 이때 안익태는 25년 만에 귀국해 지휘했고, 정부로부터 제1호 문화포장을 받았다. 

한국을 떠난 지 25년 만인 1955년 4월 이승만 대통령의 80회 생일 축제를 위한 특별초청으로 귀국한 작곡가 안익태. 이 대통령은 그에게 한국 최초의 문화포장을 수여했다.
한국을 떠난 지 25년 만인 1955년 4월 이승만 대통령의 80회 생일 축제를 위한 특별초청으로 귀국한 작곡가 안익태. 이 대통령은 그에게 한국 최초의 문화포장을 수여했다.

"귀하는 훌륭한 능력과 풍부한 경험을 가진 지휘자라는 엄연한 사실을 나와 우리 벗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귀하의 그 민족음악적 작품을 대단히 가치있는 것으로, 그 탁월한 솜씨를 높히 평가합니다. 그것은 또한 착실한 심포니의 연주회 곡목으로 선택된다면 반드시 흥미를 끌 것입니다. 나는 귀하의 음악예술가로서의 장래에 큰 희망을 갖습니다. 신의 가호 아래 대성의 길로 매진하시기 바랍니다.“

위의 글은 후기 낭만파의 거장이라 일컬어지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안익태에게 준 추천장의 내용이다.

당시 안익태는 일제 치하의 약소국인 한국의 작곡가로 망명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대단히 뛰어난 재능으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위시해 '죨탄 코다이', 프릿츠 라이너', '바인 가르트너' 등 기라성 같은 음악가들에게 작곡과 지휘를 사사받고 '프르트 뱅글러', '토스카니니', '폰 카라얀'등과 교제를 나누었으며 이탈리아의 '뭇소리니‘로부터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던 '한국음악의 선구자'이다. 

이 '한국 환상곡'은 1938년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초연한 이래 '로마 교향악단', '베오그라드 라디오 교향악단', '불가리아 필하모니', '부다페스트 필하모니', '베를린 필하모니', '바르샤바 심포니', '마드리드 필하모니' 등 여러 관현악단을 통해 세계무대에 올려진 바 있다.

한 가지 유감스러운 것은 요즈음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온 국민이 지금껏 벅찬 가슴으로 불러온 애국가를 바꾸자고 주장하는 소리가 비등하다. 그 이유는 안익태가 2006년 3월,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축하곡을 작곡하고 직접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하는 영상이 발견됨으로 친일 의혹이 제기되었고, 결국 2009년 11월 8일 발간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협력한 인물로 이름을 올리므로 민족 반역자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월간조선 2023년 4월호는 “당시 이들이 내세우던 명분은 ‘애국가는 대한민국의 국가가 아니다’라는 것과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작곡한 애국가를 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애국가가 국가인 것은 ‘애국가의 역사성’ ‘국민적 공감대’ ‘헌법재판소 판결’ 등의 세 가지 관점에서 입증되기 때문이다”라고 보도했다.

이는 앞서 핀란드 정부와 국민들의 국민음악가 시벨리우스를 추앙했던 성숙된 애국의식에 비하면 너무도 졸렬한 문화 후진국의 모습을 탈피하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럽기 그지없다.

‘광복(光復)’이란, 문자 그대로 ‘빛을 찾았다’라는 뜻이다. 우리가 매년 8월이 오면 습관처럼 광복을 외치며 성대한 행사를 펼치고 있지만, 78년이 되도록 아직도 빛을 찾지 못한 채 어둠 속에 갇혀있는 실상을 발견한다.

저마다 애국자임을 자처하고있지만 이 애국도 왜곡되고 편협한 사고방식을 가진 국가의, 국민의 생각이라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많다. 

과거 국민주의 음악은 투철한 애국, 애족의 정신이 살아 숨 쉬던 시대에 찬란한 꽃을 피웠다. 세계 각국의 작곡가가 애국심의 발로로 작곡한 곡을 통해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 생각되는 것은 우리나라에는 그 애국, 애족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제는진정한 국민주의 정신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지난날 일제시대에 나라 잃은 슬픔을 노래한 우리나라 최초의 예술가곡 [봉선화]. 이 노래는 국민음악가 홍난파 선생이 작곡하고 김형준 선생이 작사로 만들어진 우리 민족의 문화적 유산이다.

당시 이 노래를 불렀던 소프라노 김천애 선생은 오랜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국민음악을 작곡한 홍난파 선생은 물론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 같은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애국 선진(先進)들을 '친일파'라는 틀 속에 가두어 정죄하려는 자칭 애국 후손이라는 자들을 필자는 차라리 '매국노'라 칭하고 싶다.

안익태 작곡 [한국 환상곡, 'Korea Fantasy']을 듣고자 한다.

지휘 : 알렉산더 드미트리예프 / 상트 페테르부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 상트 페테르부르크 방송 합창단 / 합창지휘 : 블라디미르 스톨포프스키

“안익태는 미주·유럽에서 활동할 때 <한국환상곡>의 4장 <애국가> 부분은 꼭 한국말로 부르도록 주최 측에 요구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 곡을 지휘하지 않았다.”라고 안용환 안양대 석좌교수는 전하고 있다. 연주 중 외국인 합창단의 한국어 발음은 너무나 완벽하여 그 감동을 더해준다.

광복절에 듣는 [한국 환상곡]은 무언가 비장한 마음에 옷깃을 여미게 한다. 우리가 애국가를 부르는 한 안익태 선생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예술비평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대표
국민의힘 국가정책 자문위원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