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위의 구도자 백건우 거장의 짐 내려놓다!”

827() 오후 5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안토니오 멘데스 & 백건우 with SAC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건반위의 구도자피아니스트 백건우가 거장의 짐을 내려놓았다.

백건우급의 피아니스트라면 출연할 스테이지의 경중(輕重)도 따져볼 만 하고 자신의 국내외 클래식 팬들에게 보여질 이미지나 캐리어 관리등을 당연히 신경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해외의 저명 여름음악제등 비중있고 명망있는 음악제 무대에 서는 것을 당연히 거장급 피아니스트라면 저울질 하지 않을 수 없을 터인데 이에 마다않고 이제 3년차 밖에 되지 않은 국내의 SAC 여름음악축제에 등장해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한참 후배뻘에 해당하는 신진 아티스트들과 스페셜 스테이지 with 백건우 무대를 펼쳤고 SAC 여름음악축제 폐막공연에선 거장의 짐을 벗어버린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제26K.537 "대관식의 연주로 한 작곡가의 연주곡들에 천착, 주제의식으로 점철돼왔던 최근의 자신의 연주회 스타일에서 비껴가는 모습을 연출했다.

SAC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거장의 짐을 내려놓은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제26번 K.537 "대관식"을 협연하고 있는 '건반위의 구도자' 피아니스트 백건우. (사진: SAC)
SAC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거장의 짐을 내려놓은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제26번 K.537 "대관식"을 협연하고 있는 '건반위의 구도자' 피아니스트 백건우. (사진: SAC)

한 작곡가에 천착하는 테마형에서 전환하는 백건우의 피아니즘!”

최근 이런 테마에 천착하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연주행보를 주목해본다면 2007년과 2017, 8일 동안의 베토벤 소나타 32곡 전곡 리사이틀 무대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선보이며 뜨거운 성원을 받았던 것을 우선 지목할 수 있을 것이다.

20192월에 도이치 그라모폰(DG)에서 쇼팽 녹턴 전곡음반을 발매하며 15개 도시에서 백건우와 쇼팽리사이틀 무대를 성료한 것은 그 후속탄이다. 2020년에는 슈만 신보발매와 함께 백건우와 슈만리사이틀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가장 최근의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그런 테마에 천착하는 리사이틀은 2022년에 스페인 작곡가 엔리케 그라나도스의 대표작, 고예스카스를 담은 신보가 발매되는 것에 앞서 20229월 국내 전국 리사이틀 투어를 통해 한국 관객에게 그만의 그라나도스-고예스카스를 소개한 무대를 꼽을 수 있다.

지난해 2022101일 마포아트센터에서 만난 백건우의 고예스카스 연주회는 지금까지의 백건우 피아노 리사이틀과는 또 다른 차원의 경험이 된 리사이틀로서 우리 안에 잠들어있는 이국적인 감수성과 감성을 자극한 특별한 기회가 되었다는 점에서 비단 나뿐만이 아니고 리사이틀에 참석했던 많은 음악애호가들에게 매우 이국적인 에스프리로 기억될 백건우 피아노 리사이틀로 남아있는 연주회다.

이에 앞서 지난 2020109일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백건우와 슈만리사이틀에선 관객은 이날 사회적 거리두기의 여파로 절반만의 관객이 빼곡히 운집한 전반부에서 긴장과 밀도가 높은 콘서트홀의 분위기 탓에 힘입어 능숙하게 조탁하는 세 개의 환상작품집과 새벽의 노래 등 꿈꾸는 백건우의 선율과 슈만월드를 만끽할 수 있었다. 마치 백건우가 2008년 메시앙, 2011년 리스트, 2013년 슈베르트, 2015년 스크랴빈과 라흐마니노프, 그리고 최근 2019년에 쇼팽을 해석했듯이 3년전 하반기에 슈만의 곡들을 펼쳐보여 관객들을 새 음악세계로 이끈 것이다.

이번 SAC여름음악축제에 앞서 내가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국내 젊은 연주자들과의 실내악 무대를 본 것은 2년전인 202186일의 평창대관령음악축제에서의 무대였다. 이날 저녁 730분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열린 바위(Rock) 피아노 삼중주에서도 백건우가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강및 첼리스트 김두민과 협연한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삼중주는 열정의 흔들림없는 대서사시의 연주로 관객의 반응이 매우 뜨거웠다. 메시앙, 베토벤, 슈만등 국내 관객들에게 한 작곡가의 작품에 천착하는 리사이틀의 이미지가 확고한 백건우에게 실내악의 무대는 이날 요란한 커튼콜을 받을 만한 주목할 만 것이었다는 점에서 백건우에 대한 위상의 재확인과 함께 그해 평창대관령여름음악제의 뜻깊은 무대의 하나로 꼽을 만 했다.

온화하게 풀어진 듯한 1악장을 거쳐 리드미컬한 2악장, 멜로디와 반주가 명확하게 나뉘어 서정적 노래를 하는 3악장, 감정의 진폭이 큰 4악장의 전반부 드뷔시 피아노 삼중주 연주였다면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삼중주는 3악장에서 백건우의 피곤기가 잠깐 느껴질 만큼 대서사시의 연주를 완주한 점에서 프로페셔널한 연주자 생활을 하고부터는 독주만 줄곧 주로 해온 이미지의 백건우에게서 실내악의 무대를 차후 더 기대할 수 있는 전초(前哨)의 무대였다고 본다.

전날 거울 무대에서도 당시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음악감독으로 있던 피아니스트 손열음이나 불가리아 문화성이 수여하는 크리스털 리라를 세 번이나 받은 불가리아 국민 아티스트인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브의 위상이 은연중 각각 빛나는 무대였다면 백건우의 피아노 삼중주 무대 역시 ‘건반위의 구도자’ 백건우의 피아노 연주 65년이 녹아든 무대였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니리라.

한편의 대하 드라마와 같은 웅장한 스케일과 아름답고 서정적인 선율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올해 SAC여름음악축제에서 넘치는 사랑을 표현하듯 아름답고 자유로운 선율과 고전적인 형식이 조화를 이루며 3악장의 Andante cantabile에선 아련한 향수를 불러낸 듯한 슈만의 피아노 4중주, 실연의 연주맛이 있어 피아노의 깊은 음색으로 세음이 울리면 장황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두눈을 감게 되는 곡, 쇼송 바이올린 피아노, 현악4중주를 위한 합주곡을 바이올린 송지원. 비올라 신경식, 첼로 문태국등과 흡사 자신을 비우는 연주를 했다.

마지막날 폐막공연에서의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제26번의 연주는 흡사 비슷한 연령대의 포루투갈 피아니스트 조앙 피레스가 10년전 버나드 하이팅크 지휘 런던심포니 내한무대에서의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제17번의 연주를 연상시키는 젊은 날의 열정적 투사(投射)가 이뤄지는 무대보다 인생의 관조(觀操)적 무대를 선사했다는 점에서 향후 실내악등의 연주에 더 관심을 쏟으려는 백건우 피아니즘의 전환을 조심스럽게 점쳐볼만한 무대였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안토니오 멘데스 SAC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후반부에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제2번은 이곡의 한편의 대하 드라마와 같은 웅장한 스케일과 힘을 자랑하면서도 아름답고 서정적인 선율이 과연 걸작다운 위용을 보여준 연주였다는 점에서 개막공연의 말러교향곡 5번 연주의 고조된 연주분위기를 다시끔 일깨우는 연주곡이 됐다.

지난 822일 저녁에 있었던 SAC여름음악축제의 개막공연 안토니오 멘데스 &SAC페스티벌오케스트라의 공연에선 말러교향곡 5번의 마지막 5악장이 다시 한번 앵콜로 연주되며 연주회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일등공신이 됐었다.일반 교향악단들의 연주회에서도 대부분 말러교향곡 제5번의 4악장 아다지에토가 앵콜곡으로 연주되어 이 아다지에토의 아름다움이 부각되는 것이 관례.

그런 점에 비춰 스페인출신 안토니오 멘데스가 지휘봉을 잡은 올해의 SAC페스티벌오케스트라가 말러교향곡 5악장 론도-피날레. 알레그로를 다시 앵콜곡으로 연주한 데서 4악장과 대조적으로 해학적이고 목가적인 한편 다이내믹한 악장으로서 희망과 긍정으로 시종 화려하고 열광적으로 전개되다가 환희의 순간을 연출하며 막을 내리는 것이 SAC여름음악축제에 대한 평가와 관심을 새삼 고조시키는 순간이었다.

(: 음악칼럼니스트 여 홍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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