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가 돈다/ 어린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중략···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매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

···중략···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聖人)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김수영’ 시인의 [달나라의 장난] 중 일부로, 퍽 감동적인 시라 여겨집니다.

시인, 김수영(金洙暎) 1921년 11월 27일 ~ 1968년 6월 16일
시인, 김수영(金洙暎) 1921년 11월 27일 ~ 1968년 6월 16일

김수영 시인은 2001년 10월 20일 금관문화훈장을 추서 받았으며, 1956년에 간행된 최초의 첫 개인 시집(詩集)인 ‘달나라의 장난’(춘조사<春潮社> 간행)은 대한민국 문학상에서 가장 오래된 상(賞)인 ‘한국시인협회상’ 제정 후 첫해(1958년) 수상작으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이 한국시인협회상은 그 후 김춘수(58년), 정한모(72년), 조병화(74년), 김남조(75년) 등 걸출한 시인들을 수상자로 배출했습니다.

비록 애증(愛憎)의 관계이기는 하나 생전에 박인환 시인과 절친했던 김수영 시인을 통상 문학비평계에서는 ‘모더니스트(Modernist) 시인’, ‘자유를 갈망한 현실참여 시인’, ‘철학하는 시인’으로 평하고 있으며 그의 작품세계는 김지하 시인(70년대), 김남주 시인(90년대)으로 계승되며 현대문학의 맥(脈)을 형성해 오고 있습니다.

김수영 시인 시비/ 타계 1년 후인 1969년 고인의 선영인 도봉동에 건립된 이후 1991년 도봉산으로 이전, 현재 도봉서원 앞에 위치.시비에 새겨진 구절은 그의 마지막 작품 ‘풀’의 두 번째 연(聯)이며글씨는 시인의 자필 원고를 확대한 것이다. 
김수영 시인 시비/ 타계 1년 후인 1969년 고인의 선영인 도봉동에 건립된 이후 1991년 도봉산으로 이전, 현재 도봉서원 앞에 위치.시비에 새겨진 구절은 그의 마지막 작품 ‘풀’의 두 번째 연(聯)이며글씨는 시인의 자필 원고를 확대한 것이다. 

[팽이를 바라보며.....]

현재의 삶과 과거의 삶이 부끄럽고 치욕스러워도, 아! 그러나 내일을 위해서는 ‘달나라의 장난’처럼 가볍게 보아 넘길 수도 있다는 그 건설적인 끄덕임이 묻어나고 있습니다.

지난날 ‘청마 유치환’ 선생의 묘비를 끌어안고 울부짖던 김수영 시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형님, 우린 어떻게 살란 말입니까?"

왠지 오늘 밤은 가슴이 메어옵니다. 좋은 시를 읽었을 때 피어오르는 감흥은, 좋은 음악을 들었을 때와 별다를 게 없습니다.

피아니스트, 알리시아 데 라로차(Alicia de Larrocha)
피아니스트, 알리시아 데 라로차(Alicia de Larrocha)

오래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있었던 '알리시야 데 라로차(Alicia de Larrocha)’의 피아노 연주는 그런 감흥의 늪이었습니다. 연주하는 내내 그녀의 열 손가락이 빚어내는 음향 속으로 나는 꼼짝없이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40여 년이 지난날의 일이지만 그날의 감흥을 잊을 수 없습니다.

김포공항에서 배웅하고 돌아오며 ”이제 그분의 연주를 다시 들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니 섭섭한 마음에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결국 다시 만나지 못하고, 지난 2009년 9월 25일 먼 곳 바르셀로나(Barcelona)로부터 부음(訃音)을 접하고 말았습니다.

예술은 영원히 이어져가는데 우리네 인생은 이렇듯 한번 만났다 사라지는 인연이라 생각되어 무상함이 느껴집니다.

이제 와 그날의 공연을 추억하니 작은 체구에 노년기에 접어든 그분, 무대 위에서의 정열은 건재해 보였지만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하는 기우(杞憂) 속에는 감흥과 함께 비감함도 곁들여져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세계적으로 대가(大家)의 명성을 얻은 스페인이 낳은 천재 여류 피아니스트였지만 님이 떠난 지금 생각해보니 남녀노소 빈부 귀천을 막론하고 인생의 발걸음이 한낱 '달나라의 장난'처럼 덧없이 여겨져 오늘따라 김수영 시인의 시상(詩想)이 더욱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근대 스페인 최고의 작곡가 '마뉴엘 드 파야(Manuel de Falla)‘가 작곡한 [스페인 정원의 밤]을 소개하려 합니다.

이 작품은 얼핏 피아노협주곡으로 볼 수 있으나 정확히 구분하면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곡'입니다. 악기의 비중으로 볼 때 피아노의 역할이 두드러지기는 하지만 역시 편성된 여러 악기 중 하나일 뿐입니다. 

1916년에 완성한 이 곡은 작곡자 자신이 '교향적 인상'이라고 말했듯이 파야의 오케스트레이션 능력을 보여준 가장 빛나는 작품입니다.

모두 3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1악장, 헤네랄리훼에서(En el Generalife)
제2악장, 먼 곳의 춤(Danza  lejana)
제3악장, 코르도바 산의 뜰에서(En los jardines de la sierra de Cordoba)

피아노 연주를 맡은 ’알리시아 데 라로차‘는 1923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출생, 2009년 86세를 일기로 바르셀로나에서 타계 했습니다. 그는 일찍이 6세에 독주회로 데뷔하여 11세에 오케스트라와 첫 협연 무대를 가진 후 80세였던 2003년 은퇴 시까지 74년간의 현역 연주 활동을 통해 4천여 회 공연 기록을 남긴 금세기 위대한 피아니스트입니다. 
  

Manuel  de  Falla / Nights in the Gardens of Spain - George Cleve and Alicia de Larrocha /San Jose (CA) Symphony Orch.

 스페인의 정서가 듬뿍 담긴 스페인 최고의 작곡가 '마뉴엘 드 파야'의 작품 ’스페인 정원의 밤‘을, 역시 스페인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알리시아 데 라로차'의 연주로 들으니 그 감흥이 더욱 새롭습니다.

특히 제1악장은 알람브라 궁전 근처에 있는 '헤네랄리훼(Generalife)’ 정원의 화려하고 우아한 야경을 오케스트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헤네랄리훼' 정원에는 휘영청 밝은 달이 환하게 비치고 있으리라. 오늘 우리 조국의 앞날을 밝혀줄 용산(龍山)에 뜬 만월(滿月)과 같이.....

 

강인

 

 

예술비평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대표 
국민의힘 국가정책 자문위원(문화)

 

문화뉴스 / 강인 colin15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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