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소의 말 - 이중섭>

한국 근대 서양화가의 거목인 대향(大鄕) 이중섭(李仲燮) 화백은 다양한 소재로 그림을 그렸지만 두 가지 주제로 압축하면 그 하나는 '소' 이고 또 하나는 '가족'일 것입니다. 그중에서 오늘은 '소'를 주제로 하는 글을 통해 그를 회고하고자 합니다.

화가 이중섭(1916. 9. 16~1956. 9. 6)
화가 이중섭(1916. 9. 16~1956. 9. 6)

필자는 오래전, 불운의 화가 '이중섭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어느 전람회장에 갔던 적이 있습니다. 

이중섭 화백의 이름 앞에는 수많은 수식어가 붙어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불운의 화가’를 비롯하여 ‘비운의 천재화가’, ‘은둔 화가’, ‘가난과 싸웠던 화가’, ‘향토적이고 서정적인 야수파 화가’, ‘소와 가족을 사랑한화가’, ‘슬픈 화가’ 등등.....  그래서인지 이중섭 화백의 회고전은 어쩐지 [슬픈 전람회]라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이 전람회장에는 그가 남긴 모든 종류의 그림들이 액자 속에 곱게 넣어져 정갈하게 걸려 있었고 그 중에서도모습을 달리하고 있는 여러 점의 '소' 그림이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이중섭은 젊어서부터 소를 유난히 좋아했습니다.한때는 종일 소만 바라보고 관찰하며 지낸 날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소도둑으로 오해받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이중섭 자신은 드넓은 목초지가 되었고소 들은 하나씩 둘씩 이중섭 안에 들어와 살게 되었습니다. 그 후 6.25 전쟁이 나자 피난민이 되어 부산으로, 제주로, 통영으로 떠도는 동안 자기 속에 살고 있는 소 떼를 몰고 다니며 먹이고 키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중섭은 깨닫습니다. 이젠 이 소들을 풀어 줘야겠다고..... 그래서 풀려난 소들은 이중섭의 손끝을 통해 화폭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중섭 [황소]  2010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35억 6천만원에 낙찰된 작품, 2007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45억에 낙찰된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에 이은 2위 낙찰 가격이다.
이중섭 [황소]  2010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35억 6천만원에 낙찰된 작품, 2007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45억에 낙찰된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에 이은 2위 낙찰 가격이다.

드디어 이중섭의 화폭 위에는 황소, 흰 소, 울부짖는 소, 서 있는 소, 떠받으려는 소, 싸우는 소, 용을쓰는 소 등 많은 소들이 뛰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태어나고 성장한 소들이 전람회장 곳곳에서 그 위용(偉容)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의 생전의 모습이 찍힌 사진과 그에 대한 약력이 걸려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불운한 나라의 운명 속에서 함께 우울하고 슬픈 나날을 보내며 살았던 이중섭 화백의 삶의 내력과 궤적을 더듬어 볼 수 있었습니다. 

그가 그려놓은 소와 은지화(銀紙畵), 그리고 수 점의 서양화들을 보면서 나는 이런 것을 느꼈습니다. 

예술에 있어서 겉멋이 꼭 필요한 것인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하고 진솔한 그릇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실제로 그의 은지화를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던 것은 캔버스 화폭에서 받은 인상과는 또 다른 것이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당시 양담배 금박지와 은박지에 그려놓은 그림들이 다른 어느 화려한 화폭의 그림에 비해 눈시울이 뜨거울 정도로 정겹고도 내밀(內密)했습니다. 

가족이 그리워 소가 된 남자 이중섭. 그가 그린 소는 전람회장 여기저기서 움메~, 움메~ 울고 있었습니다. 마치 그의 강렬한 터치와 같이 억세고 투박한 한국 소의 특유한 목청으로..... 

전람회장을 빠져나오자 해사한 햇볕이  이 빈약한 졸부(猝富)의 도시에서 숨 쉬고 있는 우리의 몸을 휘감았습니다. 그 순간 이런 고통스러운 생각이 현기증처럼 어지럽게 솟구쳤습니다. 아! 우리는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오늘은 ‘무소르그스키(Modest Mussorgsky)’의 [전람회의 그림 'Pictures at an Exhibition']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작곡가 [무소르그스키]/ 화가 '일리아 레핀(Ilya Y. Repin)‘이 무소르그스키가 세상을 떠나기 수 주일 전에 그린 초상화. 코가 빨갛게 표현된 것은 실제로 젊은 시절 한 때 알콜 중독에 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작곡가 [무소르그스키]/ 화가 '일리아 레핀(Ilya Y. Repin)‘이 무소르그스키가 세상을 떠나기 수 주일 전에 그린 초상화. 코가 빨갛게 표현된 것은 실제로 젊은 시절 한 때 알콜 중독에 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 곡은 무소르그스키가 친구이자 화가(畫家)였던 '빅토르 하르트만(Victor Hartman)‘의 전람회를 보고 난 후 그때 받은 인상을 피아노 모음곡 형식으로 1874년에 작곡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원곡은 피아노곡인 셈이죠. 

그 후 1922년, 소위 '오케스트라의 마술사'라 일컬음을 받는 '라벨(Maurice Ravell)‘이 러시아의 '더블 베이스' 대가이며 지휘자인 '세르쥬 쿠세비츠키(Serge Koussevitsky)‘의 의뢰로 이 곡을 관현악곡으로 편곡, 같은 해  쿠세비츠키의 지휘에 의해 초연되므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모두 10곡의 모음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곡마다 빅토르 하르트만이 그린 그림의 이름 들을 그대로 사용했으며 음악의 내용도 그림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했습니다. 

이제 들으실 곡은 이 10곡의 모음곡 중에서 가장 뛰어난 곡으로 평가되는 마지막 10번째 곡인'키에프의 대문(The Great Gate at Kiev)’입니다.

키에프 성은 옛날 러시아의 웅대한 건축양식으로 되어있는데 이 건축을 위해 빅토르 하르트만은 러시아의 대도시인 '키에프(현, 우크라이나의 수도)‘ 시(市)로 부터 의뢰를 받아 고대 러시아풍의 둥근 지붕을 얹은 누각의 대문을 설계했습니다.

빅토르 하르트만 작 [키에프의 대문]
빅토르 하르트만 작 [키에프의 대문]

이 곡은 러시아 군대들이 이 대문으로 개선하여 돌아오는모습을 환상으로 묘사해 낸 듯 가장 웅장하고 극적인 고조를 보여주는 곡 전체의 피날레 음악입니다. 러시아의 고유한 민요와 농민들의 무곡(舞曲)을 인용하여 작곡했기 때문에 멜로디와 리듬에서 독특한 흥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곡 후반에는 탑 위에서 엄숙한 종소리가 들려옵니다.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중 10번째 곡 [키에프의 대문]. 정명훈의 지휘와 그가 음악감독 및 상임지휘자로 있던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입니다.  

Modest Mussorgsky/ Pictures at an Exhibition, (The Great Gate at Kiev) / Myung-Whun Chung, Cond./ Orchestre Philharmonique de Radio France

생전의 빅토르 하르트만 과 무소르그스키는 함께 러시아 예술의 순수성을 고수하기로 작정했던 관계였습니다. 

그러한 동지요, 친구인빅토르 하르트만이 앞서 1873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무소르그스키로서는 무척이나 상심이 컸을 것입니다. 

빅토르 하르트만이 31세의 나이로 요절한 다음 해 페테레스부르크 미술학교에서 열린 그의 회고 전람회에 애도하는 마음으로 참석한  무소르그스키에게 있어서 그 전람회는 아마도 [슬픈 전람회]였을 것입니다.

무소르그스키는 그곳에 전시된 400여 작품들을 보고 같은 해에 즉시  ’전람회의 그림’이라는 불멸의 위대한 작품을 썼던 것은 이 작품을 통해다시금 빅토르 하르트만과의 민족주의적 예술혼을 되살려 보고 싶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인

 

예술비평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대표 
국민의힘 국가정책 자문위원(문화)

 

문화뉴스 / 강인 colin15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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