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僧貪月色<산승탐월색> 
-산속에 사는 스님 달빛이 너무 탐나 
幷汲一甁中 <병급일병중>
-물을 길러 갔다가 달도 함께 담았네 
到寺方應覺<도사방응각>
-절에 돌아와서야 비로서 깨달았네 
甁傾月亦空<병경월역공> 
-물을 비우면 달빛도 사라진다는 것을 
 
詠井中月(영정중월-우물 속의 달) 
이규보 

 

이규보(李奎報)/ 고려시대의 문신, 문학가, 재상, 1168~1241
이규보(李奎報)/ 고려시대의 문신, 문학가, 재상, 1168~1241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는 우리나라에 현존(現存)하는 가장 오래된 시문집(詩文集)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을 저술하고 문집의 일부인 그 유명한 영웅 서사시 '동명왕편(東明王篇)’을 쓴 고려시대의 대표적 문인(文人)입니다. 

그는 지난 2012년 MBC가 고려 무인(武人) 시대를 소재로 인기리에 방영한 드라마 '무신(武神)‘에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정권을 휘둘렀던 '최충헌'과 그의 아들 '최이'에게 등용되어 최고의 벼슬을 얻었던 문인으로 소개된 바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이규보는 후세인(後世人)들에게 "광세(曠世)의 문인인가?, 권력의 아부꾼인가?"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받고 있지만, 그가 고려시대 최고의 문인인 것만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고로 시(詩)라 함은 말씀 '언(言)’ 변에 절 '사(寺)‘자로, 절에서 수행자들이 주고받는 말이라 했습니다.즉, 시는 세속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언어의 나열(羅列)을 의미합니다. 

앞서 소개한 이규보의 대표적인 시 '영정중월(詠井中月)’은그리 어렵지 않은 글자만 가지고도 정확히 운을 맞추고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의 불교 논리를 절묘히 표현하여 시화(詩化)한 작품으로 그의 불교에 대한 인식의 철저함을 넘어 시적(詩的) 형상화의 수준에 감탄사를 발하게 합니다.

전에 영화다운 영화를 한 편 본적이 있습니다. 바로 임권택 감독이 만든 [달빛 길어 올리기]라는 방화(邦畵)입니다.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를 홍보하는 이미지와 이규보의 시 '영정중월'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를 홍보하는 이미지와 이규보의 시 '영정중월'

지난 2011년 3월에 개봉한 그의 101번째 영화로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꽤나 잘 만든 훌륭한 작품이었습니다. 

이 '달빛 길어 올리기'라는 영화는 한마디로 우리나라 전통 한지(韓紙)에 관한 영화입니다. 

[지천년(紙千年) 견오백(絹五百)]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단은 오백 년의 영롱함을 자랑하지만 종이는 천년의 향기를 머금는다’라는 의미입니다. 

달빛을 닮은 우리의 종이 '한지(韓紙)’.이 '한지'의 다른 표현이 '백지'입니다. 백지의 '백'은 흰 '백(白)’이 아니라 일백 '백(百)‘이라고 합니다. 이는 '한지' 한 장을 떠내는데 불순물을 거르기 위해 백 번의 노력과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한지'의 생명입니다. 

이 영화는 취하고 버려야 할 것들에 대한 '거르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한지'의 생성(生成) 과정을 비유해 인생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모티브(Motive)는 학창 시절 수학여행에서 '필용'과 '효경'을 사랑에 빠지게 한 이규보의 '영정중월(詠井中月)’이라는 시에서 따온 듯합니다. 

만년 7급 공무원 '필용'은 3년 전 뇌경색으로 자리에 누운 아내 '효경'의 수발을 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 밤 거동이 힘든 아내에게 달을 보여주기 위해 대야에 달을 담아오는 남편. 그러나 대야에 담긴 달은 이내 사라지고 그 대신 남편 얼굴에 환한 달빛이 가득합니다. 

극 중 대사 한 구절이 기억에 남습니다. 

"달빛은 길어 올린다고 해서 길어 올려지는 것이 아니에요. 달빛을 그대로 두고 마음으로 그 빛을 보듬을 때 비로서 한가득 길어 올려지는거에요."

이렇듯 이 영화의 기조(基調)는 이규보의 시 '영정중월'에서 흘러나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시는 항상 이 영화 홍보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한 가지 유감스러운 것은 이 시에 대한 설명이나 소개의 언급이 전혀 없어서, 이규보를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감독이 쓴 글인지, 시나리오 작가가 쓴 글인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오래전에 살고 간 시인의 작품이라 저작권은 없지만 선조가 남긴 귀한 시문학 작품을상업적으로 인용하면서 시의 제목과 시인의 이름쯤은 명시하는 것이 영화인으로서 최소한의 양식(良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프랑스 인상주의 작곡가 '드뷔시(Claude Debussy)‘의 [달빛 'Clair de Lune']을 소개합니다.

작곡가 드뷔시(Claude Achille Debussy), 1862~1918
작곡가 드뷔시(Claude Achille Debussy), 1862~1918

드뷔시의 피아노곡인 '달빛'은 그가 북이탈리아 베르가모 지방을 여행하면서 받은 인상을 작곡한 곡으로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와 함께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유명한 작품입니다. 이 곡은 모두 4곡(1,프렐류드’Prelude‘, 2,미뉴에트’Menuet‘, 3,달빛’Clair de Lune‘, 4,파스피에’Passepied’)으로 되어있는 '베르가마스크 조곡(Suite Bergamasque)‘ 중 3번째 곡입니다.

이 3번째 곡 '달빛'은 그 선율이 빼어나게 아름다워 단독으로 떼어 자주 연주되는 곡으로, 여러 영화의 삽입곡으로 쓰임 받기도 했는데 특히 2008년에 개봉된 영화 '트와일라잇(Twilight)’에서 주인공 '로버트 패틴슨’이 이 곡을 연주하는 장면으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이곡을 피아노의 거장 ‘클라우디오 아라우(Claudio Arrau)’의 연주로 들어보시죠.

지난 1991년에 세상을 떠난 클라우디오 아라우는 남미 칠레 출신의 미국 피아니스트로서 ’블라디미르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 ’루돌프 제르킨(Rudolf Serkin)‘과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3대 피아니스트로 일컬어집니다.

피아니스트, 클라우디오 아라우, 1903~1991
피아니스트, 클라우디오 아라우, 1903~1991

그는 한때 불교에 심취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1978년 ’서울 세종문화회관 개관기념 예술제‘에 초청을 위해 뉴욕의 자택을 방문했을 때 현관에서 합장(合掌)한 채 반갑게 맞아주던 거장(巨匠)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Claude Achille Debussy 'Clair de Lune'  Piano, Claudio Arrau

어떻습니까? 마치 신비로운 밤의 분위기에 취하는 느낌이 들지 않으십니까? 은은한 달빛을 연상케 하는 선율이 가슴을 파고드는 듯합니다. 

드뷔시의 '달빛'은 얼마 전 미국 네티즌들에 의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으로 선정된 곡이기도 합니다.  

문득 우리 가곡 '달밤(김태오 시, 나운영 곡)'의 가사가 생각납니다. 

".....달아 내 사랑아 내 그대와 함께 이 한 밤을 이 한밤을 얘기하고 싶구나"

왠지 오늘은  [달과 함께]  밤이 새도록 정겨운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강인

 

예술비평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대표 
국민의힘 국가정책 자문위원(문화)

 

문화뉴스 / 강인 colin15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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