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일: 2023.09.06 
캐스팅: 박정원, 주다온, 홍승안, 조민호, 황성재, 김도원, 선유하, 이영미 
장소: 대학로 링크아트센터 페이코홀 
좌석: H열 중앙 

 

[문화뉴스 강시언] 복잡한 계단이 즐비한 학교를 들판 거닐 듯 자유롭게 걸어 다니는 맹인 학생들, 그리고 그들 앞에 등장한 지팡이를 짚은 이방인. 학교라는 안전한 둥지 안에서 어둠의 위협을 피해 살던 학생들에게 이방인이 건넨 경고는 이들이 보던 세상의 종말이었을까, 새로운 세상을 향한 변화의 시작이었을까.

뮤지컬은 평화롭던 맹인학교의 일상에 돌을 던지는 전학생 ‘이그나시오’와 그로부터 학교를 지키려는 우등생 ‘까를로스’의 대립이 일어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이그나시오는 학생들에게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의 존재를 강하게 인식시키며 앞을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반면 까를로스는 앞을 보지 못하는 우리도 앞을 보는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학교의 가르침에 반기를 드는 이그나시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의 싸움을 보고 있노라면 자존심을 건 사춘기 소년들의 치기 어린 대결을 표방한 철학적인 토론의 열기가 느껴진다. 언젠가는 벗어나야 할 자신들만의 세상, 안전한 학교 안에서 충분히 행복하고 자유롭다고 말하는 까를로스와 장애물로 가득 찬 바깥세상을 두려워하며 밀려드는 어둠 속에서 길을 찾는 법을 전파하는 이그나시오의 치열한 공방전은 결론을 내지 못한 채 허무한 끝을 맺는 동시에 그 커다란 물음표를 관객에게 넘긴다. 앞을 볼 수 있는 이들과 다름없다 믿으며 좁고 안전한 둥지 속에서 살 것인가, 앞을 볼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드넓고 험한 세상 속에서 넘어지지 않는 법을 깨우칠 것인가. 

우리는 모두 앞을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산다. 단순히 시각의 문제를 넘어 앞으로 다가올 일을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모두 같은 두려움의 범주 안에 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우리는 그저 앞에 무엇이 있을지 더듬어보고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딛는 수밖에 없다. 이 필연적인 두려움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부끄럽거나 창피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어쩌면 진정으로 앞을 볼 수 있게 되는 시작점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결국 모두 장님이라고 말하는 작품의 메시지는 어둠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 타오르는 어둠 속에 숨겨진 빛을 발견하게 만든다.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요소인 ‘어둠’과 ‘빛’을 표현한 무대 연출은 꽤 신선한 인상을 남긴다. 특히 중간에 암전 상태에서 잠시 공연이 이어지는 구간을 두어 관객들이 어둠의 존재를 완연히 느낄 수 있게끔 함으로써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선사하는데, 여타 뮤지컬들에서는 보지 못했던 독특한 연출이다. 시각의 통제에 따른 갑갑함과 무기력함이 고스란히 느끼게 함으로써 인물들의 상황과 감정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하는 효과적인 기법이었다. 

박정원, 홍승안, 주다온 배우가 안정적인 호흡으로 극을 끌고 가는 동시에 학생 역할을 맡은 배우들 모두 이들이 처한 혼란한 상황을 섬세하게 표현하면서 몰입도를 높인다. 급변하는 감정선과 부족한 개연성의 틈을 충분히 메우는 탄탄한 연기가 감명 깊었다. 

각각 인물들의 서사와 관계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느껴지는 부분도 분명히 있고 작품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약간은 모호하여 아쉬운 점도 있었으나 어둠 속에 갇힌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하는 철학적인 메시지, 다채로운 연기와 풍성한 넘버, 신선한 연출이 더해져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아낼 것인가.
우리는 그 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안에 타오르는 그 어둠 속에서. 

문화뉴스 / 강시언 kssun08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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