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맨덜리 저택의 안갯속에서 피어나는 사랑

관람일: 2023.11.08
캐스팅: 신영숙, 이지수, 민영기, 윤석원, 윤사봉, 이은율, 김순택, 제병진, 김현웅, 이종원 외
장소: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좌석: 5열 우측 통로

사진=EMK뮤지컬컴퍼니 제공 / 10주년 맞은 ‘레베카’→밀리언셀러 뮤지컬 등극 ‘앙코르로 관객 사랑 보답’
사진=EMK뮤지컬컴퍼니 제공 / 10주년 맞은 ‘레베카’→밀리언셀러 뮤지컬 등극 ‘앙코르로 관객 사랑 보답’

 

[문화뉴스 강시언] 음산한 안개로 덮인 맨덜리의 한 대저택, 금방이라도 레베카의 원혼이 튀어나올 것 같은 어두운 분위기와 희번득한 미소를 지으며 레베카를 부르짖는 댄버스 부인의 광기 앞에서 공연을 보는 내내 마른침을 삼키게 된다. 사랑하는 막심을 따라 불길한 저택에 발을 들인 '나'와 평소엔 다정하다가도 레베카 이야기만 나오면 180도 변하는 '막심', 대놓고 새 안주인을 무시하는 '댄버스 부인'. 과연 '나'는 이 거대한 난관을 헤치고 막심과 행복한 미래를 그릴 수 있을까? 그리고 레베카와 저택에 얽힌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뮤지컬 '레베카'는 영국의 유명 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의 동명 소설과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를 모티브로 하는 작품으로 올해 10주년을 맞아 기념 공연을 진행 중이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웅장한 넘버, 캐스트들의 생동감 넘치는 연기로 수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온 '레베카'는 최근 역대 최고 흥행을 기록하며 내년 2월 24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의 앙코르 공연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뛰어난 작품들이 즐비한 대한민국 뮤지컬 시장에서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독보적인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한 것만 보아도 이 작품이 얼마나 매혹적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극장에서 만난 '레베카'는 이런 명성에 기대치가 한껏 올라간 관객들을 모두 만족시키고도 남을 정도로 뛰어난 공연이었다.

'레베카'의 흔적으로 가득 찬 맨덜리 저택의 비밀이 밝혀지는 서스펜스적 스토리는 이 작품의 가장 큰 묘미라 할 수 있다. 레베카, 레베카…. 모두가 레베카의 이름을 부르지만 정작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레베카의 존재는 호기심과 공포를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유려하게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서 점점 우리의 숨통을 조여오던 그녀의 그림자는 극의 클라이맥스에 다다라 커다란 악몽의 모습으로 저택을 삼키고 사그라든다. 레베카, 그 차가운 영혼의 노래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섬뜩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채워진다. 인간의 광기에 타오르는 횃불과 그 속에 자리 잡은 사랑의 형상, 처절한 절규를 뚫고 솟아나는 희망 같은 것들로 말이다.

구조와 진행에 맞추어 딱딱하게 짜인 대본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필연 배우들의 몫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뮤지컬 '레베카'의 배우들은 무대 너머 관객들에게 스토리를 생생히 전달하는 이야기꾼의 역할을 톡톡히 해 낸다. 댄버스 부인 역을 맡은 신영숙 배우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와 압도적인 가창력, '나' 역의 이지수 배우가 선사하는 맑고 고운 선율, '막심' 역의 민영기 배우가 표현해 낸 사랑의 빛과 혼란의 그림자는 마치 내가 지금 맨덜리 저택 한가운데에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극에 완전히 몰입하게 만든다. 여기에 조연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 앙상블 배우들의 완벽한 호흡이 더해져 그야말로 탄성이 절로 나오는 무대를 완성시킨다.

뮤지컬 '레베카'에서 가장 유명한 넘버는 아마도 댄버스 부인과 '나'가 부르는 '레베카 Act. 2'일 것이다. 댄버스 부인의 천장을 뚫을 듯한 절규가 인상적인 이 넘버도 물론 너무나 인상적이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넘버들 모두 이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뮤지컬 '레베카'는 '나'의 '어젯밤 꿈속 맨덜리', '행복을 병 속에 담는 법', 막심의 '신이여', '놀라운 평범함', 댄버스 부인의 '영원한 생명', 앙상블의 호흡이 돋보이는 '새 안주인 미세스 드 윈터', '건지는 놈이 임자' 등 시쳇말로 거를 타선이 없다고 할 정도로 탄탄한 넘버 라인업을 자랑한다. 때로는 웅장하고 섬뜩하게, 때로는 따스하고 감성적으로 선율을 채워가는 다채로운 넘버들의 향연은 벅차오르는 감동으로 관객들을 이끈다. 여기에 오케스트라의 풍부한 소리까지 더해 화려한 대극장 뮤지컬의 위용을 제대로 뽐내는 모습을 보고있자면 감탄에 감탄만 나올 뿐이다.

강력한 로맨스 서스펜스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뮤지컬 '레베카'의 서사는 결국 '사랑'으로 귀결된다. 그것이 화염에 뒤덮인 뜨거운 사랑이든지, 서로를 감싸 안는 따뜻한 사랑이든지 간에 말이다. 이들이 그려내는 세기의 러브스토리는 극장을 나서서 집 현관문에 들어서는 순간까지 생생하게 느껴질 만큼 뇌리에 강렬히 남는다. 좀 더 보태자면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맨덜리 저택의 안갯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랄까. '레베카'가 드리운 짙은 그림자는 꽤 오랜 시간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다. 그리고 어쩌면 나는 곧 다시 맨덜리 저택의 문을 두드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레베카를 찾는 그 한기 어린 노랫소리가 아직까지 귓가에 선명히 맴도니 말이다.

문화뉴스 / 강시언

kssun081@naver.com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