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과의 깊은 대화: 이고르 레비트, 서울 무대에서의 음악적 순례"
“무대에 올라가면 나와 내 음악만 있다.”

1122일 저녁 730분 강동아트센터

러시아에서 태어나 독일로 이주한 피아니스트 이고르 레비트에게 베토벤은 그의 연주인생에 있어서 절반 이상을 차지해 왔다고 한다.

내가 이고르 레비트의 첫 피아노 리사이틀을 직관(直觀)한 것은 지난해 20221115일 늦가을이 정점을 이루던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의 무대였다. 자신의 대표 레퍼토리인 베토벤 소나타 17템페스트’, 소나타 8비창’, 소나타 25, 소나타 21발트슈타인의 연주로 밀도높은 연주를 펼쳤던 기억이 새롭다.

올해 2023년 두 번째의 서울 내한 피아노 리사이틀에서 지난 1121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무대에서의 후반부 바그너의 코치시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과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연주가 지난해 이고르 레비트의 그런 밀도높은 피아노 연주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 이튿날 강동아트센터에서 있은 레비트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마지막 30, 31, 32번 연주무대도 가게 됐다.

이고르 레비트는 과장된 연주나 기교적 치중이 아닌 연주에만 오롯이 천착하는 피아니스트형의 연주를 특징으로 한다. (사진은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의 이고르 레비트의 연주장면)

과장된 연주나 기교적 치중이 아닌 연주에만 오롯이 천착

강동아트센터에서의 레비트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마지막 세곡의 연주는 오롯이 피아노 연주에만 몰두하는 이고르 레비트의 모습을 엿보게해 연주에만 천착하는 레비트의 모습이 과장된 연주나 기교적인 것에 치우치는 것이 아님을 알수 있어 피아노 연주가 관객에게 주는 울림은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게보게 된 그런 연주회가 아니었나 싶다.

예전 클래식 월간지 월간 객석과의 인터뷰에서 당신의 음악을 들을 때에 관객이 당신의 정치적 발언이나 행동에 대한 의견을 배제하고 오로지 음악만을 감상하길 바라는가?”라는 질문에 레비트는 무대에 올라가면 나와 내 음악만 있다. 무대 위에서는 오직 음악만이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고, 또 음악만으로 솔직할 수 있다고 자신의 견해를 밝혔는데 강동아트센터에서의 레비트의 모습이 무대에 올라가면 나와 내 음악만 있다는 자신의 술회 그 모습을 연출해냈다.

베토벤의 최후의 피아노 소나타 3부작은 베토벤 음악세계의 정수를 담아 베토벤의 가장 은밀한 고백이라고도 불린다. 때문에 베토벤이 남긴 32편의 후기 소나타중 후기작인 제 30,31,32번은 베토벤의 내밀한 감정이 표현된 작품들로 베토벤의 가장 은밀한 고백이라고 평가된다. 이런 작품의 속성을 반영한 탓인지 레비트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마지막 3부작의 연주에선 꾸밈이 없이 묵묵히 참선하듯 앞으로 나아가는 그의 피아노 연주 스타일을 반영한 연주를 엿볼 수 있었다.

작품 내용면에서 보자면 우수에 찬 아름다운 서정성을 표현한 피아노 소나타 30(Op.109)의 소나타와는 달리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1번은 정서적인 색채를 품고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슬픈 감정을 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넘어 서려는 감미로운 꿈과 그것을 떨쳐 버리려는 확고한 신념이 함께 매우 유연하고 유기적인 흐름을 만들어 나간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번은 이름이나 별명이 붙어 있지 않은 탓인지 곡의 인지도는 베토벤의 다른 유명 소나타에 밀리지만 작품성으로만 보면 베토벤의 피아노곡 가운데 최고의 걸작 중 하나이며 특유의 신비롭고 명상적인 분위기 덕분에 무궁무진한 감상과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작품이다. 기교적으로도 매우 어렵지만 그보다 곡에 내재된 음악성을 끌어내기 위해 연주자에게 고도의 해석능력과 음악적 성숙도를 요구하는 작품이라 이고르 레비트의 그런 곡에 내재된 음악성을 끌어내려는 노력이 무대에서 엿보였다.

곡에 내재된 음악성 끌어내려는 연주

올해 내한 피아노 리사이틀 무대에서 이고르 레비트는 브람스-부소니의 여섯 개의 코랄 전주곡, 재즈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오래 활동한 프레드 허쉬의 무언가(Songs without Words) 2, 바그너-코치시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 그리고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까지 낭만음악부터 재즈음악까지 넘나드는 자유로움은 올해 프로그램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지점으로 이는 레비트가 얽매임없이 스스로의 중심으로 달려갈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이는 지난해 202211월달 이고르 레비트의 리사이틀 시점과 국내에서 비슷한 시점에 피아노 리사이틀을 가진 프랑수아 프레데릭 기나 리샤르-아믈랭 캐나다계 피아니스트가 지난해 최근 정형화되고 있는 체류형 피아니스트의 모습을 보였던 것과는 사뭇 다른 이고르 레비트의 연주 스타일로 적시할 수 있는 대목이다.

참고로 거의 10년만에 서울시향과 협연무대를 가졌다는 프랑수아 프레데리크 기 피아니스트의 이미지는 내게는 체류형 피아니스트의 전천후 새 본보기의다양한 스펙트럼의 연주를 보여주는 이미지로 비쳐진다. 샤를 리샤르-아믈랭 캐나다계 피아니스트도 쇼팽의 24곡의 프렐류드, Op. 28등의 국내에서 자신의 리사이틀과 필하모니코리아 창단연주회에서 라벨의 피아노협주곡 연주로 이런 체류형 피아니스트의 이미지를 이어갔지만 지난 119일 금호연세아트홀에서 있었던 프레데리크 기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월광이나 제12장송행진곡’, 베토벤 소나타 제25뻐꾸기’, 그리고 베토벤 소나타 제28번의 연주곡들로만 듣고서는 사실 나는 프레데리크 기의 그런 여러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체류형 피아니스트의 모습을 실감할 수는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고서야 프레데리크 기가 1117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서울시향과 롯데콘서트홀에서 가진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제5황제연주들 듣고서야 나는 프레데리크 기가 최근 정형화되고 있는 체류형 피아니스트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데 프레데릭 기 피아노 리사이틀의 색다른 중요한 의미가 내게 다가왔다.

지난해 20221125일 필하모니코리아 창단연주회에서 피아노 협연자로 나온 샤를 리샤르-아믈랭 캐나다 피아니스트도 1주일전 라벨과 쇼팽 사이에서 전체적으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라벨의 프렐류드’, ‘쿠프랭의 무덤’, 쇼팽의 ‘24곡의 프렐류드 Op.28'4곡이지만 각 곡을 펼쳐놓으면 32곡의 다채로움이 살아 숨쉬는 순간들을 피아노 건반위에서 펼쳐냈다. 2015년 폴란드 바르샤바 쇼팽콩쿠르에서 조성진에게 밀려 2위에 그치기는 했지만 리샤르-아믈랭은 라벨을 통해 자신이 프랑스의 숨결과 닿아있음을 보여주고 쇼팽의 대표작을 통해 쇼팽의 후예임을 보여준 것이다.

내가 또 주목했던 포인트는 리샤르-아믈랭이 라벨의 피아노협주곡으로 서울시향과 베토벤 교향곡 제5황제의 협연을 펼쳤던 프랑수와 프레데리크 기가 그러했듯 그런 국내 체류형 피아니스트의 이미지를 이어가 피아니스트가 보여줄 수 있는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 음악칼럼니스트 여 홍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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