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간 LG 성장 이끈 혁신의 전도사, '도전과 혁신' 강조

故 구자경 LG 명예회장 4주기, 범 LG가 일가 조용히 추모 / 사진 = LG그룹 제공
故 구자경 LG 명예회장 4주기, 범 LG가 일가 조용히 추모 / 사진 = LG그룹 제공

[문화뉴스 최병삼 기자] LG그룹이 올해도 고(故) 구자경 명예회장의 기일을 별도의 공식 행사 없이 조용히 기렸다. 

재계에 따르면 범 LG가(家)는 일가의 전통대로 집안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2주기 때부터 그룹 차원의 추모 행사는 열지 않고 있다. 지난 2020년 1주기에도 사내 방송과 사내 온라인 게시판 등을 통해 차분히 고인을 기리고 별도의 행사는 갖지 않았다. 

LG그룹의 2대 회장인 상남(上南) 구자경 명예회장은 창업주인 고 구인회 명예회장의 6남 4녀 중 장남이다. 그는 1995년 장남인 고 구본무 회장에게 총수 자리를 물려주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엘지연암문화재단과 엘지복지재단 이사장을 지내며 사회 공헌 활동을 했다. 향년 94세로 지난 2019년 12월 14일 별세했다.

구 명예회장은 지난 1970년 LG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후 25년간 '도전과 혁신'을 강조하며 그룹의 성장을 주도했다. 
구자경 회장은 “우리나라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뛰어난 기술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1976년 국내 최초로 민간 기업의 연구소인 금성중앙연구소를 설립하고, 1985년 안양연구단지를 조성하는 등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확대했다. 그 결과 LG는 전자, 화학, 통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또한 구 명예회장은 해외 진출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1982년 미국에 컬러TV 생산공장을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전 세계 100여 개국에 진출하여 글로벌 시장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구 명예회장은 기업의 외형적 성장뿐만 아니라 선진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실천한 혁신가였다. 국내 민간 기업으로는 최초로 기업을 공개하였고, 국내 기업들이 엄두도 내지 못하던 해외 생산공장 설립을 과감히 실행하였다.

특히 1980년대 후반부터는 다가올 21세기를 주도할 수 있는 기업 체질을 갖추기 위한 경영혁신 활동을 열성적으로 전개했다. 계열사 사장들이 ‘자율과 책임경영’을 할 수 있도록 권한을 위임하는 LG의 ‘컨센서스(Consensus) 문화’를 싹 틔웠고, 철저한 ‘고객 중심 경영’을 표방했다.

여기에 무한경쟁시대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1995년 2월 '무고(無故)' 승계를 택하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큰 귀감이 됐다.

구 명예회장이 회장에서 물러날 때 창업 때부터 그룹 발전에 공헌을 해 온 허준구 LG전선 회장, 구태회 고문, 구평회 LG상사 회장, 허신구 LG석유화학 회장, 구두회 호남정유에너지 회장 등 창업세대 원로 회장단도 동반 퇴진을 단행해 주목받았다. 

故 구자경 LG 명예회장 4주기, 범 LG가 일가 조용히 추모 / 사진 = LG그룹 제공
故 구자경 LG 명예회장 4주기, 범 LG가 일가 조용히 추모 / 사진 = LG그룹 제공

1995년 2월 회장 이·취임식장에서 구 명예회장은 "돌이켜 보면 행운보다는 고통이, 순탄보다는 고난이 더 많았던 세월이었지만, 임직원들의 헌신적인 노고가 늘 곁에 있었기에 용기와 신념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이 요구되는 이 시점에서 여러분을 믿고 나의 역할을 마치고자 한다. 젊은 경영자들과 10만 임직원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기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를 넘기고자 한다"라고 덧붙였다. 

구 명예회장이 25년간 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LG는 매출 260억 원에 2만 명의 종업원을 거느리던 기업에서 30여 개 계열사에 10만여 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매출액 38조 원의 기록하는 재계 3위 그룹으로 성장했다.

은퇴 후 구 명예회장은 평소 갖고 있던 소박한 꿈이었던 분재와 난 가꾸기, 버섯 연구에 정성을 기울이는 등 회사 생활 50년 만에 맞은 자유인의 삶을 자연 속에서 충실히 누렸다.

평소 생명이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스스로의 꿈을 향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신념을 피력하곤 했던 그는 이러한 생각을 실천하듯 경영자의 삶에서 은퇴한 이후 ‘영원한 자유인’으로 충실하고도 아름다운 자화상을 완성했다.

구 명예회장은 훗날 회고에서 "은퇴에 대한 결심은 이미 1987년 경영혁신을 주도하면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경영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차기 회장에게 인계한다는 것이 경영권 승계에 대한 내 나름의 밑그림이었다"라며 "그래서 내 필생의 업으로 경영혁신을 생각하게 됐고, 혁신의 대미로서 나의 은퇴를 생각했던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 구 명예회장은 20년 전인 2003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구본무 회장 이후 누가 LG의 후계를 맡게 되는지에 대한 질문에 "본무 동생인 둘째 본능의 외아들을 장손으로 본무 호적에 올리려고 한다"라며 "나도 그랬고, 본무도 그랬듯이 지분을 승계 받아 당연히 그룹을 맡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인터뷰는 현실화됐다. 구본무 회장이 2018년 작고하고, 그해 구광모 회장은 40세에 집안 어른들의 뜻에 따라 회장직을 맡게 됐다.

문화뉴스 / 최병삼 기자 press@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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