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추진 법안 더불어민주당 법안과 유사…논란의 소지 커
'민주당과 전 정부의 정책 공약을 현 정부에서 밀어주는 셈'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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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뉴스 최윤희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 기업들을 사전에 지정해 규제하는 가칭 ‘플랫폼 경쟁촉진법’을 추진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정부에서 추진해온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의 연장 선상이자 유럽연합(EU)이 시행 중인 디지털 시장법(DMA)와 유사한 것으로 플랫폼 기업의 매출액이나 이용자수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지배적 사업자’로 간주하고, 자사우대 금지 등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새 정부가 플랫폼 기업에 대해 ‘자율규제’ 기조를 유지한 상황에 이 법안이 지난 11월 민주당이 만든 온플법안과 흡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비판이 예상된다.

혁신 저해를 우려하는 재계의 거센 반대에 부딪힌 데다 민주당도 총선을 앞두고 법안 추진 의지가 꺾인 상황에서 "새 정부 부처가 민주당이 제정한 법안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최근 여당 지도부에 가칭 ‘플랫폼 경쟁촉진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지난주 보고했다. 19일 국무회의에서 관계부처들과 ‘토의 안건’으로 올려 방향성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시장을 좌우할 정도로 영향력이 큰 소수 핵심 플랫폼을 ‘지배적 플랫폼사업자’로 사전에 지정하기로 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전 지정 사업자는 매출액이나 이용자 수, 시장점유율 같은 정량 정성 요건을 고려해 정하는데, 이 기준을 넘으면 규제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규율 내용에 대해선 ‘4가지 대표 반칙 행위’인 자사우대·끼워팔기·멀티호밍 제한·최혜 대우를 금지하겠다고 정했고 이를 위반할 경우 사업에 대한 임시중지명령을 도입하거나, 공정거래법과 비교해 과징금을 상향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한 것으로 확인됐다.

주요 관계 부처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공정위의 ‘플랫폼 경쟁촉진법’ 안은 민주당이 독과점 폐해를 막겠다며 대표 법안으로 정한 박주민 의원안(지난 11월 발의)과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박 의원을 포함해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온라인 플랫폼 독점규제에 관한 법률안’은 시가총액 30조 원 이상, 직전 3개 연도 매출액 3조 원 이상, 직전 3개연도 온라인 플랫폼 이용자 월평균 1000만 명 이상 또는 국내 이용사업자 수 월평균 5만 개 이상 사업자 조건을 모두 충족하면 게이트키퍼로 등록한다.

규제 기업은 자사우대, 끼워팔기 등이 원천 금지되고, 과징금은 최대 매출의 10%로 정했다. ‘플랫폼 사업자’의 종류를 중개 플랫폼이나 검색엔진뿐 아니라 운영체제(OS)와 온라인 광고 등으로 넓혔지만, 실제 규제를 받는 게이트키퍼의 기준은 소수의 대형 사업자에 한정된다. 플랫폼 중개와 검색 엔진 사업이 중심인 네이버와 카카오 등 기업들이 규제 물망에 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카카오 먹통 사태’ 이후 올 들어 ‘플랫폼 독과점 심사지침’을 제정해 자사우대·끼워팔기 규제하겠다며 입법안을 추진해 왔다. 공정위는 이번 법안을 추진하면서 사전에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한 사업자는 항변권을 보장하면서 의견제출 기회와 지정철회 신청 등을 받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작동할지 미지수다. 공정위가 추진하는 법안이 민주당 법안과 유사하다는 점은 논란의 소지가 크다.

주요 부처 일각에서는 "여당은 물론 야당도 무관심한 상황에서 현 정부 경쟁당국이 민주당에 힘을 실어주며 규제 법안을 강행하는 것은 총선을 앞두고 이례적인 일"이라는 의외의 반응을 내비쳤다.

여당은 물론 야당은 총선을 앞두고 법안심사 일정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온플법을 정무위 법안소위 등에 상정하지 않을 방침인 상황에서 여당 정부의 경쟁당국이 ‘부활’시켰다는 비판이 예상된다. 

공정위와 민주당이 추진하는 플랫폼 규제법안은 애플 등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의 반대에 부딪힌 유럽연합(EU) DMA와 유사하다. EU는 연 매출 75억유로(약 10조6000억원)·시가총액 750억유로(106조원), 월간 플랫폼 이용자 4500만명·3개국 이상 진출 등의 요건을 충족하는 플랫폼 기업을 게이트키퍼로 지정한다.

게이트키퍼 기업은 자사우대 금지, 이용사업자의 판매 자율권 허용 등 규제를 받고 이를 어기면 매출에서 최대 10% 과징금이 부과한다. DMA의 특별 규제 대상은 애플·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 등 6개사로, 애플은 이에 반발해 지난 11월부터 EU에 소송을 추진중이다.

하지만 EU의 DMA는 미국의 플랫폼을 사전에 규제해 견제하기 위해 만든 법이라는 점에서 학계와 재계의 반대에 직면한 상태다. 구글이나 애플 같은 미국 기업들이 유럽에서 90%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다양한 나라에서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동안 토종 플랫폼 기업육성에 한발 늦은 유럽이 "미국 기업들에 징벌적 규제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또 한국 플랫폼 기업들의 경쟁력은 구글이나 애플 같은 거대 글로벌 공룡 기업과 비교해 크게 뒤처져 있다. 미국 씽크탱크인 전략국제연구소(CSIS)는 올 들어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이 미국 기업을 겨냥한 DMA같은 법을 도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매우 놀라운 일"이라며, "DMA는 새로운 규정 준수를 위한 비용 양산, 기업 가격 인상 등을 야기해 기업 경쟁력을 저해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비판 의식을 의식해 공정위는 올해 중순 EU식 ‘사전규제’보다 독일 등 수위가 낮은 플랫폼 규제안을 검토했지만, 결과적으로 규제할 플랫폼을 사전에 정해 규제 칼날을 들이대는 ‘초강수’로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국무회의에 상정한 온플법에 대해 논의를 거쳐 공식 발표 시기를 정하겠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정치권과 재계 관계자는 "21대 국회 회기가 종료되는 내년 5월말까지 법안 소위가 열리지 않으면 온플법 안이 자동폐기되는 상황에서 공정위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안과 비슷한 규제법을 추진하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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