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칼럼은 ‘에릭 사티’와 그의 음악에 관한 글이었는데 사티의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이 많아서인지 꽤나 여러분이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도 한 번 더 사티에 관한 글과 음악을 게재합니다)

스파르타의 사나이가 춤을 춥니다
몸은 벌거숭이입니다/ 살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약해 뵈진 않습니다
아폴로를 향해/ 한없이 생명을 갈아 진상합니다 

몸에서는 물기가 번들거립니다/ 향유를 발랐습니다 
눈빛은 흔들립니다/ 한 곳을 직시하지도 않습니다 
툭 건드리면/ 사정없이 넘어가고 말 것 같습니다
혈관 속에서/ 신비의 구름이 입니다

영원을 봅니다 
허약한 인간의 몸에서/ 신성(神性)의 샘물이 흐릅니다. 

프랑스의 작곡가 ‘에릭 사티(Erik Satie, 1866~1925)’의 <짐노페디>는 이런 내용의 음악입니다.

 

구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The Suitors' 1852년 작품, 파리 뮤지움 소장
구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The Suitors' 1852년 작품, 파리 뮤지움 소장

<짐노페디(Gymnopédie)>라는 말은 '벌거벗은 아이들'이라는 뜻으로서 그리스어로 '벌거숭이(금노스)‘ 와 '소년(다이도스)’의 합성어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에서는 그들의 신(神)인 아폴론을 찬양하기 위해 매년 며칠간에 걸쳐 제사의 큰 축제를 벌였는데 이 축제에 [벌거벗은 젊은 사내들]이 신전에서 춤을 추었습니다.

이 춤의 의식(儀式)을 가리키는 말이 '짐노페딕(Gymnopaedic)'인데, 교육적 측면에서 엄격한 스파르타 식 훈련에 관심이 많았던 작곡가 에릭 사티가 이 제전(祭典)의 춤을 생각하며 3곡으로 된 피아노 모음곡을 작곡하여 <짐노페디(Gymnopédies) I, II, III> 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입니다.

에릭 사티의 피아노곡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 3곡의 <짐노페디>는 그의 나이 22세 때인 1888년 '검은 고양이'라는 카페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일하면서 만든 곡 중에 하나로서 단음의 애조띤 멜로디와 일정한 리듬의 반복이 단순한 듯 하나 그것을 지배하는 불협화음으로 엄격히 절제된 획기적인 개성으로 인하여 엄숙함과 장중함까지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그리스 고대의 신비함과 함께, 사욕(私慾), 사념(邪念)과 같은 더러움을 떠난 ‘벌거숭이 소년’처럼 순결하고 오묘한 선율이 우리들의 정신세계를 정화시켜 주는 듯합니다.

 

에릭 사티의 초상화, 평생의 연인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의 1893년 작품,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에릭 사티의 초상화, 평생의 연인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의 1893년 작품,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짐노페디>를 가리켜, 사티 음악의 숭배자라 일컫는 프랑스 작가 ‘장 콕토(Jean Cocteau)’는 "군더더기 없이 쇄신된 건강하고 새로운 음악"이라고 찬사를 보냈으며, 러시아 출신인 현대음악 작곡의 거장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는 "프랑스 음악은 ’비제(Georges Bizet)‘, ’샤브리에(Emmanuel Chabrier)‘,  ‘사티’ 외에는 없다"라고 규정하였는가 하면 사티와 30년간이나 친분을 맺고 살아온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Claude Debussy)‘는 이 단순한 멜로디의 곡을 일컬어 "엄숙하기도 하고 장엄하기도 한 곡" 이라 칭찬하며 후에 관현악곡으로 편곡해 놓기도 했습니다.

에릭 사티는 흔히 '프랑스 6인조’라 불리는 ’오리크(Georges Auric)‘, ’미요(Darius Milhaud)‘, ’뒤레(Louis Durey)‘, ’오네게르(Arthur Honegger)‘, ’타이페르(Germaine Tailleferre)‘, ’풀랑크(Francis Poulenc), 등 신고전주의 작곡가들의 음악적 스승이 되는 근대 프랑스의 독특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입니다. 

"나는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왔다."라고 본인 스스로 말했듯이 에릭 사티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시대를 앞서간 천재 예술가입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거침이 없는 언행은 늘 시대적 반항아, 이단아의 모습으로 비쳐져 동료 음악가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클래식 음악인지, 뉴 에이지 음악인지, 상업적 배경음악인지  장르를 구분하기 어려운, 기존의 음악체계와 다른 음악을 추구하므로 학계에서 외면당하기도 했습니다.

‘루이 말’ 감독 작품 영화 '도깨비 불' 포스터
‘루이 말’ 감독 작품 영화 '도깨비 불' 포스터

이렇듯 그는 살아있는 동안에는 빛을 보지 못한 무명의 음악가였지만 ‘고흐(Vincent van Gogh)’나 ’니체(Friedrich W. Nietzsche)‘와 마찬가지로 에릭 사티의 예술가로서의 가치도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8년이 지난 후 뒤늦게 발견되었습니다. 

즉, 그의 사후(死後) 38년인 1963년에 프랑스의 영화감독  '루이 말(Louis Malle)’이 만든 영화 ’도깨비 불(Le Feu Follet)’의 배경음악으로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1번>을 사용했는데 영화가 개봉되자 "정신이 아찔해질 만큼 아름다운 이 음악을 작곡한 '에릭 사티'가 도대체 누구냐?" 하며 전 세계가 깜짝 놀랐던 것입니다.

그의 음악적 특성은 화려한 색채감이나 가슴을 흔드는 격정적인 면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또한 차이코프스키(Pyotr Tchaikovsky)의 감상(感傷)이나 바그너(Richard Wagner)의 극단적인 면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러한 느낌의 문턱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춰 서는, 허영(虛榮)과는 거리가 먼 담담하고 진실한 음악입니다. 

몽마르뜨르의 카페에서 파리 뒷골목의 갖은 더러움을 벗 삼아 피아노를 두들기며 작곡 생활을 한 기인(奇人), 에릭 사티.

분방(奔放)한 낭만주의를 거부하고 고전주의의 엄격함을 지키며 신고전주의의 새로운 음악 정신을 창조해낸 그의 음악적 순수 열정의 세계는 가히 프랑스인의기질을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I, II, III>

제1번 : 느리고 비통하게 (Lent et Douloureux) 
제2번 : 느리고 슬프게 (Lent et Triste) 
제3번 : 느리고 무겁게 (Lent et Grave)

이 중에서 ‘제1번’을 현재 프랑스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파스칼 로제(Pascal Roge’)‘의 연주로 들으시겠습니다. 이 동영상은 2018년 10월 19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열렸던 KBS교향악단 제735회 정기 공연에 협연자로 초청된 파스칼 로제의 앙코르 연주 실황입니다. 

 

Erik Satie, Gymnopédies No.I,(Lent et Douloureux) Pascal Roge’(Piano) / KBS Symphony Orch. Concert Encore, 2018. 10. 19. Seoul Art Center Concert Hall

어떻습니까?

이렇게 단순한 음률이 이토록 인간의 깊은 마음속을 흔들어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합니다. 

프랑스 인 작곡가의 작품을 프랑스 인 피아니스트의 연주로 들으니 그 감동이 더욱더 짙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큰소리로 외치는 것이 아니라 귓가에 속삭이듯 조용히 흘러가는 에릭 사티(Erik Satie)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저는 커피가 생각납니다. 

사티의 <짐노페디>를 들으며 저와 따뜻한 커피 한잔 어떠실런지요.....

 

강인

 

 

예술비평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대표 
국민의힘 국가정책 자문위원(문화)

 

문화뉴스 / 강인 colin153@daum.net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