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가게부터 시작한 현대그룹 창업가 정주영 회장
초졸 농사꾼에서 14대 대통령 선거 출마까지....

[ The CEO ] 쌀가게에서 현대건설까지...故 정주영 회장 일대기 (사진 = 현대자동차그룹)
[ The CEO ] 쌀가게에서 현대건설까지...故 정주영 회장 일대기 (사진 = 현대자동차그룹)

[문화뉴스 신선 기자] 현대그룹의 창업자, 일명 왕회장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의 1세대 기업인, 故 정주영 회장의 일대기를 알아본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는거야

정주영의 유년시절

故정주영 회장은 1915년 11월 25일, 강원도 아산에서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초등 의무 교육이 시행되지 않았던 시기였던 탓에, 오늘날의 초등학교인 정주영의 최종학력이다. 당시의 취학률이 17%였던 것을 감안하면 조선인 기준 고학력자이다. 

정주영 회장의 유년시절 사진 / [ The CEO ] 쌀가게에서 현대건설까지...故 정주영 회장 일대기 (사진 = 현대자동차그룹)
정주영 회장의 유년시절 사진 / [ The CEO ] 쌀가게에서 현대건설까지...故 정주영 회장 일대기 (사진 = 현대자동차그룹)

소학교를 졸업한 후 아버지를 따라 매일 농사를 짓던 정주영 회장은 고된 농삿일과 반복되는 하루일과에 지쳐 19살이 되던 해인 1933년, 친구에게 돈을 빌려 인천으로 가출을 한다. 

하역부터 이삿짐 나르기까지 온갖 궂은 일을 하며 빈대가 가득한 방에서 참을 청하며 “빈대도 먹고 살기 위해 오르는데, 나는 무슨 노력을 하고 있는가”라며 열심히 살아 성공을 하겠노라 다짐했다고 한다. 

그렇게 끊임없이 일을 하며 경성으로 올라간 정주영은 1934년에 ‘복흥상회’라는 쌀가게에서 배달원 일을 하게 된다.  

정주영의 첫 사업

성실히 일 하던 정주영은 예전에 부기학원을 다녔던 기억을 되살려 장부까지 관리하게 됐다. 아들이 노름에 빠져 가게를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쌀가게 주인은 평소 신뢰가 가던 정주영에게 가게를 물려주게 된다. 

쌀가게의 이름을 ‘경일상회’로 바꾸고 경영에 직접 뛰어들며 첫 성공을 이뤄나가던 어느 날, 중일전쟁이 일어나게 되면서 쌀 자유판매가 금지된다. 더 이상 쌀 장사를 할 수 없어진 상황 속에서 정주영의 첫 사업은 막을 내린다. 

정주영 회장 / [ The CEO ] 쌀가게에서 현대건설까지...故 정주영 회장 일대기 (사진 = 현대자동차그룹)
정주영 회장 / [ The CEO ] 쌀가게에서 현대건설까지...故 정주영 회장 일대기 (사진 = 현대자동차그룹)

쌀을 운반하던 트럭 정비사의 추천을 받아 정주영은 돈을 빌려 자동차 수리공장 ‘아도 서비스’를 인수한다. 

갖은 시련들에도 불구하고 차별화된 전략을 밀어붙여 ‘아도 서비스’를 성공으로 이끈 그였지만,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일본군에게 ‘아도 서비스’를 잃는다. 

현대건설 주식회사의 시작

시련은 있지만 실패는 없다는 정주영의 명언처럼, 그는 시련에 굴하지 않고 계속 사업에 도전을 하며 마침내 1950년 현대건설주식회사를 설립한다. 

설립 얼마 후, 6.25 전쟁이 터지면서 부산으로 피난을 간 정주영 회장은 미군 부대 건설을 맡으면서 사업을 이어나갔다. 휴전협정으로 미군 철수가 이뤄지면서 정주영의 현대건설은 복구공사에 뛰어든다. 현대건설은 고령교 복구공사를 어렵게 성공해내 큰 수익을 거두며 대한민국의 6대 건설회사 중 하나로서 자리 잡아갔다. 

현대건설과 현대상선의 탄생

경부고속도로의 개통 / [ The CEO ] 쌀가게에서 현대건설까지...故 정주영 회장 일대기 (사진 = 현대자동차그룹)
경부고속도로의 개통 / [ The CEO ] 쌀가게에서 현대건설까지...故 정주영 회장 일대기 (사진 = 현대자동차그룹)

1969년, 대한민국 첫 고속도로 건설을 현대건설이 맡아 경부고속도로를 몇 달만에 개통하는데에 성공한다.

대한민국 1호 자동차 '포니' / [ The CEO ] 쌀가게에서 현대건설까지...故 정주영 회장 일대기 (사진 = 현대자동차그룹)
대한민국 1호 자동차 '포니' / [ The CEO ] 쌀가게에서 현대건설까지...故 정주영 회장 일대기 (사진 = 현대자동차그룹)

도로도 생겼겠다, 자동차로 고개를 돌린 정주영 회장은 미쓰비시와 손을 잡고 대한민국 첫, 아시아 2호 자동차인 현대 포니를 출시해, 대성공을 거둔다. 이후, 박정희의 지시에 따라 조선소 사업을 개척하기 위해 유럽으로 가서 기업가들과 은행을 설득해가며 한국에 조선소를 짓고 배를 만들었다. 

하지만 1973년, 오일쇼크로 인해 배 구매를 취소한 기업가들로 인해 배를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정주영은 직접 기름운반 사업을 시작해 지금의 현대상선을 만들었다. 

14대 총선 후보, 정주영

14대 대통령 선거 기호 3번 정주영 / [ The CEO ] 쌀가게에서 현대건설까지...故 정주영 회장 일대기 (사진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14대 대통령 선거 기호 3번 정주영 / [ The CEO ] 쌀가게에서 현대건설까지...故 정주영 회장 일대기 (사진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현대건설의 창업에서 성공한 기업가로 이름을 알린 정주영은 1992년 정치에 뛰어들어 통일국민당을 창당한다. 

14대 대통령 선거에 도전했다가 낙선을 한 그는 이듬해 탈당을 한 뒤, 2000년도에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다음해인 2001년에 폐렴으로 생을 마감한다. 

故 정주영 회장 / [기업 이야기] 쌀가게에서 현대건설까지...故 정주영 회장 일대기 (사진 = 현대자동차그룹)
故 정주영 회장 / [ The CEO ] 쌀가게에서 현대건설까지...故 정주영 회장 일대기 (사진 = 현대자동차그룹)

오늘날의 대한민국 대표 기업인 현대건설은 故 정주영 회장의 무모하지만 용감한 정신을 이어받아 계속적인 성공을 거둬내고 있다. 故 정주영 회장의 도전이 없었다면 지금의 현대건설은 없었을 것이다. 

문화뉴스 / 신선 기자 press@mnh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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