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한동안 김정숙 여사의 활동이 꽤나 두드러진 적이 있었다. 더욱이 지난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부군(夫君)인 문재인 후보의 홍보를 위해 대중 앞에서 우리 가곡 <희망의 나라로>를 노래하는 김 여사의 모습은 '유쾌한 정숙씨'라는 별칭보다는 '호탕한 정숙씨'가 걸맞을 정도로 거침이 없었다.
그러다 영부인이 된 후, 언제부터인가 그 이름 앞에 성악가라는 호칭이 붙여졌다. 예컨대 인터넷 위키백과 ‘나무위키’는 김정숙 여사를 ‘한국의 성악가’ 반열(班列)에 올려놓고 있다. 특히 가나다 순서에 의해 ‘김자경’, ‘김천애’ 사이에 ’김정숙’이 위치하고 있다. 그 후 발 빠른 일부 언론의 호들갑에 의해 이미 김 여사가 성악가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대한민국 성악가의 수준
사전적 의미로 ‘성악가’란 “성악을 전문적으로 하는 음악가”를 일컫는다. 사회 통념상, 음악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어도 졸업 후 그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하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자를 ‘성악가’라고 칭하지 않는다. 즉,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성악가(聲樂家)의 ‘가(家)’는 성악 분야에 일가(一家)를 이룬 저명 인사에게 붙여주는 일종의 훈장과 같은 명예로운 호칭이다.
지난날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는 과거 모 음악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음악도이다. 그는 졸업 후 1978년 세종문화회관 건립과 함께 창단된 서울시립합창단 단원으로 잠시 활동한 바 있으나 그 외에 음악인으로서의 활동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도 사회 일각에서는 김 여사를 성악가라고 지칭한다. 이는 김정숙 여사가 당시 영부인인 것은 엄연한 사실이니 인정해야겠지만 그 때문에 그녀를 성악가라 호칭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것 같다.
아무튼 성악가는 앞서 나무위키에 적시(摘示)된 김자경, 김천애 선생 같은 분에게 붙여야 할 호칭이라 여겨진다.
김자경 선생은 ‘김자경 오페라단’을 통해 한국의 오페라 중흥에 크게 기여했고, 김천애 선생은 일제 강점기 한국 최초의 가곡인 ‘봉선화’를 불러 옥고(獄苦)를 치른 한국 음악계의 역사적 큰 인물이다. 그런데 필자가 살아생전 가깝게 모셨던 이 두 분에 대해 갑자기 죄송한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더욱이 지난 2016년 대선 기간 중 부군(夫君)인 문재인 후보를 돕기 위해 공개적으로 부른 우리 가곡 <희망의 나라로>는 언론의 실황 보도를 통해 이미 100만 명 이상의 조회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 동영상은 지금도 SNS를 통해 ‘성악가 김정숙’만 클릭하면 언제든지 쉽게 보고 들을 수 있도록 공개되어 있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것은 성악가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예술가곡을 이처럼 아무렇게나 불러도 되느냐? 하는 것이다.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것은 분명하지만 성악가가 예술가곡을 이처럼 박자와 음정을 무시한 채 자유롭게(?) 부를 수 있단 말인가? 대통령 부인은 가곡을 그렇게 부를 수도 있겠지만 성악가는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부르면 안 된다. 아무튼 필자는 성악가가 대중 앞에서 그렇게 마구 부르는 <희망의 나라로>는 생전 처음 들어본다. 이는 (대한민국 성악가의) 음악적 수준으로 볼 때 <희망의 나라로>가 아니라 차라리 [절망의 나라로]라고 제목을 바꿔야 할 듯하다. 혹시 이 곡을 작곡하신 현제명 선생이 듣는다면 얼마나 상심하실까?
그런데도 이에 대한 일부 언론의 칭송은 실로 눈물겨울 정도이다. 예컨대 그녀가 음악 재원 임을 전제로 "맑고 청아한 목소리와 뛰어난 가창력", "무반주에도 강한 김 여사", "성악 전공자 출신다운 뛰어난 박자 감각도 화제" 등 소프라노 '조수미'가 무색할 정도의 찬사로 수준 높은(?) 평(評)을 북악(北岳)을 향해 쏘아 올렸다.
아무리 '적자생존(適者生存)' 시대를 지나 '아부생존(阿附生存)' 시대에 길들여져 있는 저급한 수준의 언론이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 것 같다. 한 나라의 문화 역량을 대변하는 주류언론의 수준이 이 정도라면 대한민국의 장래는 가히 [절망의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진정한 성악가, 테너 이인범 선생을 기억하며.....
필자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성악계의 은사(恩師)가 한 분 생각난다. 바로 진정한 성악가인 테너 ‘이인범(1914~1973)’ 선생이다.
<희망의 나라로>라는 노래는 필자가 중,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어디 가나 쉽게 들을 수 있었던 대표적 우리 가곡 중 하나이다. 그러면서도 그때는 이 노래의 의미를 잘 몰랐다. 1969년 어느 날 연세대학교에서 테너 이인범 교수에게 레슨을 받던 중 선생이 부르는 <희망의 나라로>를 들으며 젊은 가슴속에서 솟구쳐오르는 ‘희망’을 체험한 적이 있다.
이인범 교수는 일본 ‘구니타치 음악대학’의 전신인 ‘도쿄 고등음악원’을 졸업, 1939년 마이니치 신문사가 주최한 전(全) 일본 음악콩쿠르 성악부에서 1등 없는 수석으로 입상한 후 그 이듬해 동경에서 열린 기념 독창회에서 “천부의 미성(美聲)과 음악적 재질을 지닌 당대의 독보적 테너”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1953년 불의의 화재로 인한 화상(火傷)으로 코와 입 등 얼굴 한 부분이 심하게 일그러져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당시 30대 후반의 나이에 선생은 절망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었지만 3년이라는 어두운 시간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각고의 노력 끝에 성악가로서 다시 재기하였다.
물론 화상으로 인해 발성 중 다소 불규칙한 바이브레이션은 감수해야 했지만 그 시절 선생이 부른 <희망의 나라로>는 우리 음악계는 물론 대한민국의 미래를 희망의 세계로 이끌어준 힘이었다.
1978년 지구레코드에서 테너 이인범 애창곡집 LP 음반을 낼 때 당시 음악평론가 고 ’유한철‘은 음반 재킷에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겼다.
“그분은 분명 누구와도 비할 바 없는 아름답고 투명한 음색을 가졌다. 그러나 한 번이나마 자기 현시(顯示) 없이 인기 있을 때 음반 하나 남기지 못한 우직한 분이었다. 불탄 자리에 새싹이 돋듯 이 음반은 그의 믿음과 소원의 싹을 이 땅 위에 새롭게 뿌려주는 매개 작용을 할 것이다.”(출처-2014. 01. 21, 국민일보 기사)
관제(管制)하에 만들어낸 대한민국의 성악가
이에 비해 오늘 또 다른 성악가 소프라노 김정숙이 부른 <희망의 나라로>는 어쩐지 우리 음악계를 [절망의 나라로] 향하게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해외 저명 콩쿠르마다 한국인이 상(賞)을 휩쓸며 대한민국의 음악적 우수성을 선양하고 있는 오늘날의 국제적 현실에 비추어볼 때, 인터넷에서 백과사전 역할을 하는 나무위키나, 국내 일부 언론사의 기사(記事)는 공신력을 잃은 채 저급한 코미디를 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렇듯 영부인을 앞세워 음악계를 조롱하는 세상 앞에서 필자도 평생을 음악과 함께 살아온 음악인의 한사람으로서 부끄러움과 함께 끓어오르는 분노와 절망감을 억제할 수 없다.
부디 언론은 비전문가적 견해로 마구 써대는 무익한 보도를 절제해주었으면 한다. 이는 김 여사의 노래에 대한 언론의 무분별한 미화로 인해, 클래식 음악에 이해가 부족한 일부 국민들에게 성악가의 일반적 수준을 잘못 인식시키므로 음악계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는 김 여사야말로 관제(管制)하에 만들어낸 저급한 수준의 성악가로 여겨지는바, 대한민국 음악계를 위하여 언론들은 앞으로 그녀의 이름 앞에 성악가라는 호칭을 붙이지 말아 줄 것을 간곡히 건의하는 바이다.
현재명 작사, 작곡 <희망의 나라로>. 테너 이인범의 음성으로 듣고자 한다.
진정한 성악가 이인범 선생은 50여 년 전 나의 첫 번째 스승이며 지금까지도 마음속 깊이 간직한 잊을 수 없는 은사이다.
“배를 저어가자 험한 바다 물결 건너
저편 언덕에
산천경개 좋고 바람 시원한 곳
희망의 나라로
돛을 달아라 부는 바람맞아
물결 넘어 앞에 나가자
자유 평등 평화 행복 가득 찬 곳
희망의 나라로”
테너 이인범 선생의 노래와 같이 대한민국이 “자유 평등 평화 행복이 가득 찬 희망의 나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강인
예술비평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대표
국민의힘 국가정책 자문위원(문화)
문화뉴스 / 강인 colin153@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