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강인 ]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한그루/ 찔레로 서 있고 싶다

사랑하던 그 사람/ 조금만 더 다가서면/ 서로 꽃이 되었을 이름/ 오늘은/ 송이송이 흰 찔레꽃으로 피워놓고/ 먼 여행에서 돌아와/ 이슬을 털 듯 추억을 털며/ 초록 속에 가득히 서 있고 싶다

그대 사랑하는 동안/ 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 아픔이 출렁거려/ 늘 말을 잃어갔다

오늘은 그 아픔조차/ 예쁘고 뾰족한 가시로/ 꽃 속에 매달고/ 슬퍼하지 말고/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무성한 사랑으로 서 있고 싶다

문정희 시인의 <찔레>라는 시입니다.

문정희 시인
문정희 시인

이 시에서 나오는 구절처럼 남자든 여자든 사랑을 하게 되면 우는 날이 참 많습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 북받치는 설움을 울음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레바논의 시인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도 "사랑은 고통스러운 쾌락이다. 그대를 사랑하는 동안 내게는 우는 날이 많았다."라고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그렇게 울음이 솟구쳐 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슬픔이 아닙니다. 슬픔과는 조금 다릅니다. 이상하게도 같은 땅을 짚고  같은 시각에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벅차올라 마치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오히려 답답할 지경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답답함, 그것은 우리가 꿈꾸고 영속하려 하는 가장 먼 이상의 세계가, 이 서투른 현실 속에서는 감각이나 인식의 그물로는 낚아채이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무정한 마음이 서러워서, 그 답답한 마음을 참지 못해서 곧잘 눈물을 흘리는지도 모릅니다.

피카소 (Pablo Picasso),  '우는 여인'(Weeping Woman)' 1937년 작품
피카소 (Pablo Picasso),  '우는 여인'(Weeping Woman)' 1937년 작품

이 밤, 사랑 때문에 눈물 흘리는 분들께 ‘베토벤(L. v. Beethoven, 1770~1827)’의 <로망스(Romance) 제2번>을 띄워 드립니다.   

베토벤은 2개의 <로망스>를 작곡했습니다.

<제1번 G장조 작품번호 40>과 <제2번 F장조 작품번호 50>. 이렇게 두 곡인데 그중 지금 들으실 제2번이 제1번에 비해 많이 알려진 곡입니다.

이 두 곡의 차이라고 한다면 제1번은 보다 사색적이고, 이성적이고, 엄숙한데 비해 제2번은 멜랑꼴리하고 우아합니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이 전해주고 있는 공통적인 느낌은 결국 ’사랑의 괴로움‘입니다.

‘궤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불후의 명작 속에서, 사랑을 얻지 못한 주인공이 권총 자살로 끝내는 비극적인 종말을 써서 괴로움을 표시했고, 이 로망스를 작곡한 베토벤도 ’하일리겐슈타트(Heiligenstadt)‘라는 곳에서의 질병과, ’브룬스빅(Brunsvik)‘ 백작의 딸과 인연이 닿지 못하자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결심하는 그런 일화(逸話)를 남기고 있습니다.

작곡가, 베토벤
작곡가, 베토벤

이처럼 사랑은 자기 말살의 결과를 가져올망정 타인 소멸은 결코 가져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역사는 일러주고 있습니다. 

베토벤 <로망스 제2번 F장조 작품번호 50>
체코의 ’요세프 수크(Josef Suk)‘의 바이올린과 ’체코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들으시겠습니다.

19세기 체코 국민주의 음악의 효시인 ’스메타나(Bedrich Smetana, 1824~1884)‘와 보헤미아 음악의 세계화에 공헌한 체코의 위대한 작곡가 ’드보르작(Antonin Dvorak, 1841~1904)‘에 이어 등장한 또 한 사람의 보헤미아 작곡가가 ’요세프 수크(1874~1935)‘인데 그는 위대한 작곡가 드보르작의 사위이기도 합니다. 이제 연주할 바이올리니스트 ’요세프 수크(1929~2011)‘는 체코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앞서 작곡가 ’요세프 수크’의 동명(同名)의 친손자이며 드보르작의 외증손자가 되는 셈입니다. 이만하면 바이올리니스트 요세프 수크는 대단한 음악 가문의 혈통을 이어받은 음악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지난 1992년 11월 27일 중앙일보의 초청을 받아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독주회를 가진 바 있습니다.

Beethoven, Romance for Violin & Orchestra Ⅱ, Fmajor Op.50 / Josef Suk, Violin. Václav Smetáček, Cond. Praha Symphony Orchestra

평생 다정한 연인과 달콤한 밀어(蜜語) 한 번 속삭여 보지 못한 베토벤,

이 곡은 그토록 고독에 몸부림치면서도 사랑하는 여인의 부드러운 손길을 애타게 갈망했던 베토벤이 그의 샘솟는 밀어를 담아 온 인류에게 전한 눈물 어린 사랑의 고백이 아닌가 합니다.

 

강인

 

 

예술비평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대표 
국민의힘 국가정책 자문위원(문화)

 

문화뉴스 / 강인 colin15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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