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강인] 사람의 수명이 점점 길어지다 보니 회갑(回甲)은 기념할만한 나이로 여기지 않아 잔치하는 것도 부끄러워하는 것이 요즘의 세태이지만 이는 그저 신체적 측면의 자위적 이야기일 뿐 나이가 들면 늙는 것이 인생의 순리인 것 같습니다.

동양철학에 의하면 회갑은 인생 십간(十干) 즉, 천간(天干)의 열 개인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의 시작인 '갑'을 다시 맞이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60세로 마감하고 61세부터는 '덤'으로 주어진 삶을 살게 되는 것이 회갑의 본래 의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쓸쓸하고 공허한 마음을 떨쳐 버리지 못함은 아마도 살아온 삶의 열매가 없어서인 듯합니다.

떠날 때는 '공수거(空手去)‘ 한다지만 그것의 진정한 의미는 '버리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 놓은 열매를 '남기고 가는 것'이라 믿기에, 남길 것이 없으니 쓸쓸하고 공허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며 가장 절실한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잘 사는 것(Well Being)입니다.
둘째, 잘 늙는 것(Well Aging)입니다.
셋째, 잘 죽는 것(Well Dying)입니다.

그런데 덤으로 사는 삶이라면 그저 살고, 늙고, 죽는 것뿐이지 이 단어들 앞에 'Well'을 붙인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제 나이도 이미 오래전에 회갑을 지내고 보니 이 세 가지가 실감 됩니다. 그중에서도 두 번째, 잘 늙는 것 즉 Well Aging 에 대한 욕구가 자못 심각합니다. 예컨대 법정(法頂) 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도 이 Well Aging을 일컬음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어떻게 해야 잘 늙는 것인가? 그것은 끝까지 비전을 품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며 살아가는 것일 겁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팔십 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을 이끌고 출애굽 하여 가나안으로 인도한 민족의 지도자 모세를 위시하여 인류의 모든 업적 중에 64%는 모두 60세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라 합니다.

그러고 보면 법정 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라고 한 명언이 실제로 마음에 와닿는 것이 무리가 아닌 듯싶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제 '닉네임(Nick Name)'을 Supervisor(큰 비전의 사람)으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늘 다짐하기 위해 모든 I.D를 Supervisor로 바꾸었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연세가 좀 드셨다고 생각되시는 분 계시면 오늘을 새로운 시작의 기점으로 삼아 큰 비전을 품고 힘있게 일어나 보시죠.

이것이 Well Aging은 물론 Well Being, Well Dying의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요?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오늘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네 개의 마지막 노래>를 준비했습니다.

R. 슈트라우스는 1864년부터 1949년까지 85년을 살았던 작곡가입니다. 슈베르트, 모차르트, 멘델스죤, 쇼팽 등과 같이 30대에 생을 마감한 작곡가들에 비해 꽤나 장수한 편입니다.

그런 슈트라우스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84세에 작곡한 주옥과 같은 명작입니다.

한번 들어보시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네개의 마지막 노래 Op.150>

제1곡: 봄  
제2곡: 9월 
제3곡: 잠자리에 들 때 
제4곡: 저녁노을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Renée Lynn Fleming)과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가 지휘하는 루체른 페스티발 오캐스트라(Lucerne Festival Orchestra)의 루체른 페스티발 2004 갈라 콘서트 실황입니다.

R. Strauss, 'Vier  Ietzte  Lieder (Four Last Song) Op.150'  Sop. Renée Lynn Fleming, Cond. Claudio Abbado, Lucerne Festival Orchestra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계속 의미 있는 곡을 쓰세요"라는 아들 프란츠 슈트라우스(Franz Strauss)의 권유에 따라 마지막 힘을 다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악기인 인간의 목소리를 위한 작품을 써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48년에 ‘아이헨도르프(Joseph von Eichendorff)’의 시와 ’헤르만 헤세(Herrmann Hesse)의 3개의 시에 곡을 붙여 완성한 작품이 바로 지금 들으신 <네 개의 마지막 노래>입니다.

[제1곡 : 봄 (Frühling) - 시,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
너의 나무와 푸른 미풍
너의 향기와 새의 노랫소리를
오랫동안 꿈꾸었다

이제 너는 광채로 치장되고
빛을 담뿍 받아
경이처럼
내 앞에 펼쳐진다

너는 나를 다시 알아보고는
다정하게 유혹하니
너의 복된 현존으로
내 온몸이 떨리는구나“

1절은 봄을 기다리는 심정을, 2절은 봄의 눈부신 정경을, 3절은 봄이 주는 감동과 기쁨을 표현하고 있고, '너'라는 봄의 지칭은 아주 친밀한 감정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제2곡 : 9월 (September) - 시,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정원은 슬퍼한다
빗방울이 차갑게 꽃들 위로 떨어지는 것을
여름은 그 종말을 향해
고요히 몸을 움추린다

큰 아카시아 나무에서
황금빛으로 물든 나뭇잎이 뚝뚝 떨어진다
여름은 놀라고 지친 듯
죽어가는 전원의 꿈속에서 미소 짓는다

여름은 아직도 오랫동안
장미 곁에 머물면서
안식을 동경한다
지쳐버린 눈을 감는다“

[제 3곡 : 잠자리에 들 때 (Beim Schlafengehen) - 시,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이제 낮이 나를 지치게 하니
내가 간절히 바라는 바는
마치 열망에 지친 아이처럼 다정하게 
별이 빛나는 밤을 맞는 것이다

손이여, 모든 하던 일을 멈추어라
이마여, 모든 생각들을 잊어버려라
내 모든 사고, 감각은
이제 잠으로 침잠하려 한다
하여 영혼은 아무런 감시 없이
밤의 마법 권 내에서 
깊이 그리고 오랫동안 살기 위해 
자유로이 공중을 떠돌려 한다“

이 곡은 가사의 구절이 풍부한 감성으로 노래하고 있는데 특히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시구에 붙여진 오케스트라의 효과가 놀랍습니다. 상승하는 바이올린의 음절 위에 아득한 하늘나라의 반짝이며 신비로운 울림을 주는 첼로와 피콜로와 플루트가 기막힌 효과를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제 4곡 : 저녁노을(Im Abendrot) - 시, 요제프 아이헨도르프(Josept Von Eichendorff)]

“우리는 슬픔도 기쁨도
손을 맞잡고 견디어왔다
이제 방황은 멈추고
저 높고 고요한 곳에서 안식을 누리리

주위의 계곡은 깊히 패이고
사방은 어둠이 가득 찼네
다만 두 마리 종달새가
아쉬움을 좇아 저녁 안개 속을 날아오르네

이리로 물러서
그들이 노래하도록 내버려 두세
곧 잠들 시각이니
외로움 속에서도

우리 방황하지 않으리
오, 넓고 조용한 평화여
저녁노을 속에서 우리 피로로 지쳐있네
이것이 아마 죽음이 아닐까“

이 <네 개의 마지막 노래>로서 R.슈트라우스는 19세기 말 후고 볼프(Hugo Wolf) 이후 가장 앞선 가곡 작곡가 임을 다시 확인시켰습니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넘쳐흐르는 고도의 서정성을 만나기 위해서는 음성과 동격의 교향곡적 차원의 오케스트라 반주가 필요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R. 슈트라우스는 가곡 작곡가로 시작하여 가곡 작곡가로서 그의 위대한 작곡 인생을 끝마쳤습니다.

이 작품이 완성된 1848년, 그때 R.슈트라우스의 나이는  84세였습니다.

그후 2년 뒤인 1950년에 영국 로열 앨버트 홀(Royal Albert Hall)에서 초연이 이루어졌지만 안타깝게도 슈트라우스 자신과 그의 사랑했던 아내 파울리네는 이 작품의 초연을 보지 못했습니다.

슈트라우스는 초연 8개월 전에 세상을 떠났고 아내 파울리네(Pauline)는 불과 9일 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하직하기 직전까지, 더구나 84세의 노년에도 불구하고 큰 비전을 품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므로 후세에 위대한 작품을 남기고 간 R.슈트라우스야말로 가장 귀감이 되는 Well Aging의 모델이며 진정한 Supervisor라 할 수 있습니다.

 

강인

 

 

예술비평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대표 
국민의힘 국가정책 자문위원(문화)

 

문화뉴스 / 강인 colin15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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