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강인 ]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모래알 같은 이름 하나 불러본다

기어이 끊어낼 수 없는 죄의 탯줄을
깊은 땅에 묻고 돌아선 날의
막막한 벌판 끝에 열리는 밤

내가 일천 번도 더 입 맞춘 별이 있음을
이 지상의 사람들은 모르리라

날마다 잃었다가 되찾는 눈동자
먼 부재(不在)의 저편에서 오는 빛이기에
끝내 아무도 볼 수 없으리라

어디서 이 투명한 이슬은 오는가
얼굴을 가리우는 차가운 입김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물방울 같은 이름 하나 불러본다"

이가림 시인의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라는 시입니다.

아무리 유리창이 사랑을 단절시켜도 투명한 유리 안의 기쁨과 슬픔과 아픔까지야 어찌 감출 수 있겠습니까?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이가림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이가림

여러분은 사랑이 어떠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흔히들 말하듯이 달콤하고 꿈결같고 너무나도 아름다워 황홀한 것입니까?

아마도 이러한 느낌은 자신이 직접 겪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공통분모만을 표현한 것일 뿐, 실제 사랑은 그렇게 감미롭고 현기증 날만큼 어여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가슴이 찟어질 것 같고, 막상 사랑하는 이를 만나면 서로 마음을 적절히 전달하지 못해 답답할 지경입니다. 이런 게 사랑입니다.

심프슨(Wallis Simpson) 부인을 위해 왕위까지 버렸던 영국의 윈저공 에드워드 8세(Edward Ⅷ)도 나중엔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사랑을 너무 아름답게, 그리고 안이하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사랑은 그것을 위해 왕위를 버렸을 때까지는 정말 위대했을런지 모릅니다.

둘 중 한 사람만 먼저 등을 돌리면 허망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인생살이에서, 그래도 사랑 하나만으로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믿고 있는 우리들이 가여운 존재가 아닐런지요? 정말 피곤하고 덧없는 것이 우리네 사랑인 것 같습니다.

고요한 산사의 풍경(風磬)소리
고요한 산사의 풍경(風磬)소리

때로 우리는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슬픔, 그리고 배신의 아픔을 맛봅니다. 

고요한 산사(山寺)의 추녀 끝에 풍경(風磬) 하나가 앙증스레 매달려 있습니다. 바람이 없는 날이면 그 풍경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정적(靜寂)을 깨고 청량(淸亮)한 울림으로 나는 그 소리는 바람이라는 고요에의 배신이 가져다준 아픔입니다.

이 밤 여러분에겐 또 어떤 배신이 아픔으로 다가와 잠 못 이루시지는 않는지요. 궂이 말하지 않아도 고사(古寺)의 정적을 깨고 들려오는 풍경소리로 들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사랑’을 주제로 한 대표적인 두 작곡가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먼저 ‘프리츠 크라이슬러(Fritz Kreisler, 1875~1962)’의 연작(連作) 곡인 <사랑의 기쁨 'Liebesfreud'>과 <사랑의 슬픔 'Liebesleid'>입니다. 

이 두 곡은 유태인 출신으로 오스트리아의 바이올리니스트이며 작곡가인 ’크라이슬러‘가 오스트리아 빈(Wien) 지방의 민요를 소재로 하여 작곡한 왈츠곡으로 흔히 자매 곡으로 함께 연주되고 있는 매우 감미롭고 애상적인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두 곡이 한 쌍을 이루는 이 노래는 '사랑의 기쁨'으로 시작하여 '사랑의 슬픔'으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랑이란 결국 '기쁨'과 동시에 '슬픔'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마치기쁨과 슬픔이 [사랑의 양 날개]인 듯.....

곡의 원래 순서가 보통 '기쁨' 뒤에 '슬픔'을 연주하게 되어 있으나 이제 들으실 동영상은 먼저 '슬픔'을 연주하고 이어서 ’기쁨'을 연주합니다.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슬픔(Liebesleid) 가단조>와 <사랑의 기쁨(Liebesfreud) 다장조>를 ’죠슈아 벨(Joshua Bell)‘의 바이올린 연주로 들으시겠습니다.

Fritz Kreisler, Liebesleid A-minor/Liebesfreud C-major Violin, Joshua Bell

이어서 ’장 폴 마르티니(Jean Paul Martini, 1741~1816)‘의 <사랑의 기쁨>입니다.  

이 곡은 독일에서 태어난 프랑스 작곡가 마르티니가 프랑스 시인 ’장 피에르(Jean-Pierro)‘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歌曲)으로 마르티니에게 일약 명성을 안겨준 유명한 로망스(Romance) 입니다.

선율이 너무 아름다워서 2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성악가들은 물론 유명한 샹송, 팝 가수들이 즐겨 부르고 있고 각종 악기나 관현악으로도 널리 연주되고 있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나는 오래전 이 노래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부터 줄곧 제목에 대한 의문이 있었습니다.

이 노래는 가사의 앞부분을 따서 <사랑의 기쁨>이라고 제목을 붙였지만, 뒷부분 가사의 결론은 “사랑의 슬픔만 영원히 남았네”로 끝나는 것을 볼 때 제목을 <사랑의 슬픔>으로 바꾸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 노래의 가사(歌詞)인 장 피에르의 시를 보면 서두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기쁨은 한순간이지만 사랑의 슬픔은 영원하죠.....>
<Plaisir d'Amour ne dure qu'um moment Chagrin d'Amour dure toute la vie.....>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랑의 슬픔만 영원히 남았네

어느덧 해 지고 어둠이 쌓여오면
서글픈 눈물은 별빛에 씻기네

사라진 별이여 영원한 사랑이여
눈물의 은하수 건너서 만나리

그대여 내 사랑 어디서 나를 보나
잡힐 듯 멀어진 무지개 꿈인가

사라진 별이여 영원한 사랑이여
눈물의 은하수 건너서 만나리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랑의 슬픔만 영원히 남았네”

마르티니의 <사랑의 기쁨>
소프라노 ’신영옥‘의 노래로 들어보시죠.

Jean Paul Martini, 'Plaisir d'Amour'  Sop. Youngok Shin

"가슴을 저미며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도종환 시인>

"사랑은 고통스러운 쾌락이다. 그대를 사랑하는 동안 내게는 우는 날이 많았다" <레바논의 시인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  '이카로스(Icaros)의 추락' 죠르쥬 퐁피두 센터 소장.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 '이카로스(Icaros)의 추락' 죠르쥬 퐁피두 센터 소장. 

황홀한 기쁨과 쓰라린 슬픔의 양 날개를 가진 '사랑'. 

결국 이는 하늘을 나는 황홀함에 한껏 고조 됐다가 추락하는 이카로스(Icaros)의 꿈 이런가? 그러나 우리가 죽을 때까지 이러한 사랑을 갈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숙명(宿命)이 아닐런지요?

 

강인

 

 

예술비평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대표 
국민의힘 국가정책 자문위원(문화)

 

문화뉴스 / 강인 colin15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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