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강인 ]

그대가 보낸 편지로
겨우내 마른 가슴이 젖어든다

봉긋이 피어오르던 꽃눈 속에
눈물이 스며들어 아픈 사랑도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리라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겨울 일기장 덮으며
흥건하게 적신 목련나무
환하게 꽃등 켜라고
온종일 봄비가 내린다

목필균 시 <봄비는 가슴에 내리고>

서울에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옷깃을 파고드는 꽃샘추위와 봄비로 인해 봄의 전령이 슬며시 다가옴을 느낍니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립니다.

빗물은 유리창에 부딛혀 흐르다가 물줄기가 되어 땅으로 떨어져 내립니다. 그리곤 땅바닥 여기저기에 고입니다. 그러나 그 물줄기가 고여있어야 할 곳은 흙이 쌓인 땅이 아니라 메말라버린 사람들의 가슴입니다.

촉촉히 내리는 빗줄기 사이로 계절이 은밀한 보행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아침 녘은 쌀쌀하지만 한 낮에는 따사로운 봄볕에 따뜻함을 느끼게 합니다. 

겨울에도 그랬지만 여느 시장통은 상인들의 외침 소리가 그득하고 벌판 위로 내달리는 봄바람에 푸성귀들은 쑥쑥 키를 올릴 것입니다.

어른들은 점차 꿈을 잃어가고 아이들은 더욱 영악해질 것입니다. 어른들은 아는 척 알랑대며 쓸데없는 말들을 더 많이 지껄일 것이고, 아이들의 말버릇은 기가 막히게 달라져 갈 것입니다.

총선(總選)이라는 큰 행사를 눈앞에 둔 한국의 봄은 어쩐지 더욱 그러할 것 같습니다. 계절은 그런 사람들의 열악함에 등을 돌려대고 그저 무심코 봄비나 추적추적 내리게 할 뿐입니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봄날 ‘쇼팽(Frédéric Chopin)’의 피아노 독주곡 한 곡 들어보시면 어떨까요?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 내림라 장조 Op. 28-15. 
손열음의 피아노 연주로 들으시겠습니다.

Frédéric François Chopin, Preludes in D-Flat Major Op. 28-15  'Raindrop' Piano, Yeol Eum Son

음산한 유럽의 날씨에 폐병이 든 쇼팽은 침대에 누운 채 “잠시 다녀오마”하고 나간 '죠르쥬 상드(George Sand)'를 기다립니다.

스페인 '마요르카(Majorca)’ 섬에 사랑의 도피처를 마련한 쇼팽과 상드, 그날따라 비가 추적추적 우울하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빗방울이 바닥에 떨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는 쇼팽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습니다.

"나의 운명도 저 빗방울과 같이 바닥에 떨어져 잠시 동그란 모습을 남기다가 이내 사라져 버리려나?....."

조금 전 들으신 쇼팽의 <전주곡, 내림 라장조  Op. 28-15> 일명 ‘빗방울(Raindrop)’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곡입니다.

비는 그쳤지만 지금도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피아노 선율을 통해 들려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전주곡’이라는 것은 ‘바하(Johann Sebastian Bach)’ 시대에도 사용했던 악곡 형식의 하나로 환상곡이나 즉흥곡처럼 형식보다는 작곡가의 자유분방한 악상을 더욱 중요시하는 음악으로 낭만주의 시대의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원래 전주곡은 극음악의 막이 오르기 전에 연주되는 서곡(序曲) 같은 것과, 또 다른 하나는 연주용으로 독립해서 연주되는 것이 있습니다.

쇼팽은 이러한 연주용 전주곡을 모두 24곡이나 남기고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곡이 지금 들으신 바로 이 <빗방울 전주곡>입니다.

병든 몸으로 사랑의 도피처를 찾은 쇼팽에게 있어서 추적추적 내리는 빗방울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혹시 음악 한 번 더 들으시며 찾아보지 않으시겠습니까?

 

강인

 

 

예술비평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대표 
국민의힘 국가정책 자문위원(문화)

문화뉴스 / 강인 colin15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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