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강인 ] 이번 총선(總選)에는 어떤 나무를 심어야 할까?

“벽오동(碧梧桐) 심은 뜻은 봉황(鳳凰)을 보려터니/ 내 심은 탓인지 기다려도 아니 오고/ 밤중에 일편명월(一片明月)만 뷘 가지에 걸녀세라”

중종 때 황진이가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조입니다. 그런가 하면 ’송강(松江) 정철(鄭澈)‘은 귀향지에서 이렇게 시를 읊었습니다.

“다락 밖에 벽오동나무 있건만/ 봉황새는 어찌 아니 오는가?/ 무심한 한 조각달만이/ 한밤에 홀로 서성이누나”

'벽오동나무에 머무는 봉황' 화조도(花鳥圖) 8폭 병풍 중 봉황 부분, 가회민화박물관(嘉會民畵博物館) 소장.
'벽오동나무에 머무는 봉황' 화조도(花鳥圖) 8폭 병풍 중 봉황 부분, 가회민화박물관(嘉會民畵博物館) 소장.

註) 봉황을 그릴 때는 대개가 오동나무와 대나무를 함께 그린다. 그 이유는 봉황은 오동나무 아래 깃들고 3천 년 만에 한 번 열린다는 대나무 열매인 죽실(竹實)을 먹고 산다는 설이 전해오기 때문이다.

동양에서 벽오동은 예로부터 상상의 동물인 봉황(수컷은 ‘봉’, 암컷은 ‘황’)이 깃드는 나무라는 설(說) 때문에 매우 상서로운 나무로 알려져 귀하게 대접받습니다.

그 이유는 중국의 ‘사서삼경(四書三經)’ 중 하나인 ‘시경(時經)’에 기록된 “봉황이 저 언덕 높은 곳에서 우는데 거기 양지 녘에 오동나무가 자라고 있다”에서 유래됩니다. 또한 '장자(莊子)'의 '추수편(秋水編)'에 보면 장자가 양(梁)나라 재상인 ‘혜자(惠子)’를 만나서 나눈 유명한 대화 내용이 나옵니다.

“남쪽에 ‘원추'라는 새가 있는데 그대 아는가?/ 원추는 남해를 출발하여 북해까지 날아가는데/ ’오동‘이 아니면 머무르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고/ ’예천(醴泉)의 단물‘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 즉, 군자(君子)를 원추(봉황)에 비유하여 ’아무리 궁하여도 아무것이나 함부로 탐하여 취하지 않는다‘는 지조와 절개를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오동‘은 [벽오동]을 일컫습니다.

벽오동은 줄기가 곧고 그 수피(樹皮)가 푸르러 오동나무보다 훨씬 아름다우므로 관상용 정원수로 인기가 높습니다. 그래서 벽(碧)은 '푸르다'라는 뜻으로 '벽옥', '벽계수' 등에 쓰이는 한자입니다.

성장한 벽오동나무의 모습
성장한 벽오동나무의 모습

​벽오동은 한해에 1m 이상 자랄 만큼 성장 속도가 매우 빠른 수종입니다. 그래서 딸이 출생하면 집 근처에 벽오동 나무를 심어 시집갈 때 장롱을 짜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특히 껍질과 열매는 달여서 약으로 먹고 목재는 악기를 만들거나 관(棺)을 짜는 데 썼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동나무가 많아 붙은 동네 이름도 있습니다, 예컨대 서울의 오류동(梧柳洞)은 예로부터 오동나무(梧)와 버드나무(柳)가 많았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화투 놀이에서 11월을 가리키는 ’오동 광(光)‘은 봉황이 벽오동 열매를 따먹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 합니다.

이렇듯 동양의 식수(植樹)에 관한 역사는 중국의 벽오동뿐이 아닙니다.

고대 인도의 마우리야(Maurya) 왕조 제3대 왕으로, 남부 일부 지역을 제외한 인도 전역을 통일하여 전성기를 누렸던 인도 역사상 최고의 군주로 일컬어지는 ’아쇼카(Ashoka, 阿育) 왕‘은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 <다섯 그루의 나무>를 심고 가꾸어야 한다고 선포했는데 그 다섯 그루의 나무는 1. 약나무 2. 유실 나무 3. 땔감 나무 4. 건축용 나무 5. 꽃을 피우는 나무입니다. 아쇼카는 이를 두고 <다섯 그루의 작은 숲>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일찍이 공식적으로 나무를 심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굳이 1,300년 전 신라 문무왕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그 유래를 찾을 것 없이 1949년 4월 5일을 대통령령(令)에 의해 법정 공휴일인 ‘식목일’로 제정한 사실입니다. 이 식목일 제정으로 인해 온 국민이 대대적인 산림녹화 사업에 동참한 결과 6.25 전쟁 이후 10여 년 만에 전 국토에 울창한 산림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1960년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가 이듬해인 1961년 다시 공휴일로 부활 되었으나 2006년 또다시 공휴일이 폐지되어 실질적으로 식목일 자체가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는 등 나무 심는 일이 이처럼 우여곡절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나무 심기 운동이 시들해진 시기에 정부산하의 도시개발 업무를 수행하는 어느 공사(公社) 직원들에 의해 갑자기 특정 지역에 나무 심기 운동이 벌어져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용버들’이란 나무입니다.

성장한 용버들 나무 모습
성장한 용버들 나무 모습

용버들은 쌍떡잎식물로 버드나무과에 속한 나무입니다. 비틀어진 가지가 마치 용(龍)처럼 꿈틀거리는 모습과 닮았다 하여 용버들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이렇듯 나무를 심는 뜻으로 따지자면, 과거 나라의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원하는 선비는 "아무리 궁하여도 아무것이나 함부로 탐하여 취하지 않는다"는 전설적인 상상의 길조(吉鳥)인 봉황을 고대하며 마당에 <벽오동나무 한 그루>를 심었고, 또한 인도의 성군(聖君) 아쇼카 대왕은 자칫 권력욕에 빠져 정치에 경도(傾倒)되기 쉬운 백성들에게 각자에게 주어진 본연의 직(職)에 전념케 하기 위해 비유적 교훈으로 <다섯 그루의 나무 심기>를 선포했으나 최근 우리나라 공기업 직원들이 신도시 개발 특정 지역에서 벌였던 대량의 <용버들 나무 심기>는 과연 그 의도가 무엇일까요? 

당시 언론이 지적한 의혹들이 사실이라면 이 용버들 나무 심기는 순수한 식목(植木)이 아니라 국민의 주거 복리를 위해 주어진 공적 정보를 사적으로 이용한 땅 투기와, 보상액을 높이기 위해 그 땅에 나무 대신 비리(非理)를 심은 심히 추악(醜惡)한 행위로 여겨집니다.

​앞서 언급한 용버들 나무는 시장에서 3천 원이면 구입할 수 있는 묘목을 2∼3년가량 키우면 그루당 수십만 원까지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한 평(3.3㎡)에 한 그루가 적당한 이 나무를 25그루가량 빽빽하게 심었다고 하니, 이 정도라면 나무들이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려울 것입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김모 씨가 2019년 6월 27일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소재 2739㎡ 규모 토지를 자신의 부인 이모 씨와 매입하며 심은 용버들의 모습. 김씨는 보금자리 지구 개발 바람이 한창 불 때인 2013년 2월부터 약 1년간 LH 광명, 시흥 사업본부에서 2급(부장급)으로 재직하며 소속 부서 업무를 총괄했다. (2021년 3월 12일, 헤럴드경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김모 씨가 2019년 6월 27일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소재 2739㎡ 규모 토지를 자신의 부인 이모 씨와 매입하며 심은 용버들의 모습. 김씨는 보금자리 지구 개발 바람이 한창 불 때인 2013년 2월부터 약 1년간 LH 광명, 시흥 사업본부에서 2급(부장급)으로 재직하며 소속 부서 업무를 총괄했다. (2021년 3월 12일, 헤럴드경제)

전문가들은 토지 보상 업무에 정통한 자들이 보상을 노리고 이렇게 나무를 촘촘하게 심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무튼 그 옛날 <벽오동 심은 뜻>이나 <다섯 그루의 나무를 심은 뜻>은 알겠는데 오늘날 <용버들 심은 뜻>은 아무리 생각해도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불현듯 젊은 시절 통기타를 치며 부르던 인기 듀엣 ’투 코리언즈(김도향, 손창철)‘의 노래인 <벽오동 심은 뜻은>이 귓가에 다시 들려오는 듯 합니다.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잤더니/ 어이타 봉황은/ 꿈이었다 안오시뇨/ 달맞이 가잔 뜻은/ 님을 모셔 가잠인데/ 어이타 우리 님은/ 가고 아니 오시느뇨
하늘아 무너져라/ 와뜨뜨뜨뜨뜨뜨뜨뜨뜨뜨/ 잔별아 쏟아져라/ 까뜨뜨뜨뜨뜨뜨뜨뜨뜨뜨/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잤더니/ 어이타 봉황은/ 꿈이었다 안오시뇨“ 

 

'벽오동 심은 뜻은' 김도향 작사, 작곡 / 투 코리안즈 노래

이 노래를 듣노라니 원래의 가사를 이렇게 바꾸어 부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용버들 심은 뜻은/ 대박을 보잤더니/ 어이타 대박은/ 꿈이었다 안오시뇨.....“

언젠가 찾아올 봉황을 사모(思慕)하여 벽오동(碧梧桐)을 심었건만 봉황은 아니 오고 용버들 사이로 온갖 잡새만 날아들고 있습니다. 당시 유행어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보고 있는 것 같아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제 국가의 흥망성쇠를 가름할 총선이 하루 이틀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번 총선에서는 용버들이 아니라 반드시 벽오동 묘목을 심어야 합니다. 봉황은 그 줄기가 반듯하고 수피(樹皮)가 푸르른 벽오동 나무에만 깃들기 때문입니다. 용버들같이 가지가 뒤틀린 정치 풍토를 벗어나 아무리 궁하여도 아무것이나 함부로 탐하여 취하지 않는 지조와 절개의 벽오동 묘목을 심어야 이 나라에 봉황이 깃듭니다. 그래야만 대한민국이 태평성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옹색한 나에게 한 뼘 마당은 없지만, 나는 내 마음속 마당 한 켠에 오늘도 조용히 벽오동 나무 한 그루 심습니다.

 

강인

 

 

예술비평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대표 
국민의힘 국가정책 자문위원(문화)

 

문화뉴스 / 강인 colin15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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